세상 사람들은 끝도 없는 욕심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옛날.
그들의 욕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그렇게나 지독히도 아팠던 것 일까.
*
남자는 뒤에 검은 속내를 숨기고 있었고.
홍빈은 그것을 알지못했다.
아니 알았다해도.
분명 홍빈은 제 자신보다
제 사람들을 먼저 위했을테지만.
그래.
그남자는 분명 그리말했다.
[네가 가진 그 온전한 세상을.
정택운에게.
너의 그 온전한 세상을.
반쪽만 남은 정택운에게.]
멍청하게도 착해빠진 이홍빈은.
제 세상을 포기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
상혁은 식은땀을 바지에 닦아내고
차가운 쇠 문고리를 잡았다.
덜컥하고 열리는 문을 밀고
온기가 가득한 사무실로.
[박해진]
들어간다.
마치 너희들을 구해주겠다 말하는듯이.
따스한 햇빛이 밝히고 있는 그 방으로.
*
해진은 지끈거리는 머리에 약을 먹고
잠시 책상에 엎드려 잠을 취하고 있었다.
벌컥 열리는 문에 놀라서 몸을 일으키면
아직도 너무 앳된 소년이.
이미 모든걸 다 알아버렸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빛나는 눈동자를 가진 소년이.
자신을 바라보며 손을 내민다.
해진은 놀라서 주변을 둘러보고 재빠르게
그 손을 잡아채고 문을 닫는다.
“너 뭐야.”
상혁은 굳은눈으로 해진을 쳐다본다.
일단 상혁을 쇼파에 앉힌 해진은
다시 몸을 돌려 급하게 문을 걸어잠근다.
“너 여기 왜 온거야.”
상혁은 울컥 받쳐오르는 설움을 꾹꾹 눌러담는다.
간밤에 보았던 학연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 입술로 중얼거리던 아픔과
꽉 쥐어 펴지지 않던 주먹으로 나타내던 고통들이
그리고 제가 몸소 겪어본
그 지독한 황홀함을.
떠올린다.
“도와줘요.”
해진은 한숨을 푹 내쉬며 머리를 쓸어넘긴다.
가운 주머니에 손을 넣고 문에 기댄다.
“돌아가.”
분명히 그 날.
자신이 이곳에 속하게 된 그 날.
해진은 다짐했다.
절대로 감정을 베풀지 말자고.
자신을 지독히도 끔찍한 이 지옥으로 밀어넣은
그 감정이란 것을.
절대로 베풀지 말자고.
*
상혁은 쇼파에서 일어나 천천히 해진의 앞에 섰다.
아까 자신을 이끌어 주었던 손을 잡고
서서히 바닥으로 내려간다.
두 무릎이 땅에 닿으면
상혁의 눈에 힘겹게 매달려 있던 눈물도 땅에 닿는다.
“제발.”
이내 꽉 잡았던 그 손마저 놓치고 바닥으로
쓰러진다.
“살고싶어요.”
“아…”
해진은 탄식을 내뱉는다.
그 옛날의 목소리가 들린다.
*
'살고싶어.'
생각만으로도
눈물이 흐를것만 같은.
이 소년들은
왜 지독히도 아파서.
날 또 한번 더
시험에 들게 하는가.
*
원식은 어느순간부터
왼손으로 총을 잡기 시작했다.
과녁에 맞지않아 이리저리 벗어나는 총알들을 보며
원식은 제 답답한 가슴을 세게 쳐내었다.
그 때 그날.
막내 상혁이 사격연습실에 발을 들였던 그날.
그날 이후로.
원식의 오른쪽팔은 잘게 떨리기 시작했고.
결국 총을 쥘 수 조차 없게 떨림이 강해져서.
오른쪽팔을 쓰지 못하게된만큼
더 약해진 자신의 모습을 보며.
원식은 생각을 바꿨다.
강해지고자 무뎌졌던 감정표현을
스스럼없이 드러내고.
약점이 있는 모습을 들키고 싶지않아
일부러 멀리했던 제 사람들에게 더 살갑게 다가가고.
소년들은.
갑자기 원래의 모습보다 더 따뜻해진 원식을 보며
찜찜함을 뒤로한 채 좋아했지만.
저보다 더 딱딱해진 홍빈조차
제 벽에 둘러쌓여있으면서도 은근히
다행이라는 눈빛을 보내왔지만.
소년들의 눈에 비치는것처럼.
정말 다행인걸까.
소년들은 모른다.
혼자 무거운 짐을 지고가려고
늘 위태롭게 걸어가던 김원식은
바보같이 더 약해진 제 모습을 보며
[미안해. 모두들.
강해지고 싶었는데 난 이제 강해지는건 둘째치고
짐이 될지도 몰라.
그렇다면.
내가 할께.
이들과 함께 지옥으로 떨어지는건 내가 할께.]
자신을 불태워서
자유를 얻게해주겠다 다짐했음을.
소년들은.
알지못한다.
*
제 시선끝에 걸리는
저를 등지고 돌아서 누워있는 택운을 바라본다.
학연은.
겨우 멈춘 눈물을 닦아낸 손을 꼭 말아쥔다.
이상한 시선이 느껴진다.
자신을 힐끗거리며 쳐다보는 시선이.
고개를 돌리면 학연의 시선과 어긋나는
재환의 시선이 있다.
학연은 안다.
아니 모든 소년들이 아는 사실.
불안하면 손톱을 물어뜯는 재환의 손끝은
이미 피가 베어나오고 있었다.
학연은 재환에게 다가간다.
슬프게 웃음짓는다.
손을 내밀면
재환이 그 손을 잡고 학연을 따라나선다.
조용한 복도 구석에서
학연은 벌써부터 눈물을 흘려내며
울음소리는 꽉 눌러 속으로 삼키고 있는 재환을
끌어안는다.
“택운이… 내가 생각하는거 맞지”
재환은 학연의 옷자락을 세게 움켜쥔다.
그러면서도 속에 진 응어리를 뱉어내지 못하고 끙끙거린다.
학연은 상처투성이 손을 들어
천천히 재환의 등을 쓸어내린다.
“쉬이… 숨쉬자 재환아.”
헐떡거리며 재환이 숨을 몰아쉰다.
왜 이제야 발견했을까.
이미 너무 많은 눈물을 쏟아내서
불어터진 재환의 눈가를.
깨물고 또 깨물어서 상처가 깊게 패인
재환의 입술을.
학연은 감히 입을 열어 물어보지 못했다.
왜 언제 다쳤는지.
택운이 왜 반쪽 세상을 잃어버렸는지.
그저 어린 동생을.
달래주느라.
여전히 소리를 내지못하는
재환의 등을 쓸어주며.
*
해진은 겨우 상혁을 돌려보내고.
아까 제 가운자락에 얼굴을 묻고 울던 상혁을 떠올린다.
얼룩진 가운을 매만지던 해진은.
또다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그 옛날의 기억이 떠올라서 책상옆에 놓여있던
두통약을 꺼내 물도 없이 삼켜낸다.
“살고싶어요… 살고싶어…”
제 마음을 혼란스럽게 한 그 말들을 중얼거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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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해요ㅠㅠㅠ 연재텀이 너무 길죠?ㅠㅠㅠ
면허따랴 연말약속에 연초약속까지ㅠㅠㅠ
너무 바쁘게 보낸탓에 신경을 못썼어요ㅠㅠㅠ
미안해요 독자님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