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연은 겨우 진정된 재환의 얼굴에 남아있는
울음의 흔적을 맨손으로 훔쳐냈다.
“재환아. 다 울었어?”
형이 미안해.
그만 들어가자. 감기 걸리겠다.
학연은 몰랐다.
재환이 택운이 사고를 당하는 순간 옆에 있었음은
짐작해서 알았지만
지금 자신과 함께하는 이순간.
재환은 단 한번도
'울음소리' 조차도
내지 못했다는 것을.
*
택운은 불안했다.
자신에게 따라붙는 학연의 시선을
알아차렸기 때문에.
그리고 그런 학연이
재환과 함께 밖으로 나갔다는 사실에.
문이 열리고 재환과 학연이 들어오면.
택운은 급한마음에 앉아있던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둘에게 다가간다.
학연은 그런 택운을 보고 웃는다.
어설프지만 불안했던 택운의 눈을 속일 수 있을 만큼은 활짝.
택운은 안심한다.
학연은 그런 택운을 뒤로하고
천천히 자신의 침대로 가서 앉는다.
떨리는 다리를 숨기기 위해
급히 주저 앉는다.
“재환아. 아무말도 안했지?”
택운은 그래도 왠지모를 찜찜함에
재환의 뒤로 학연을 흘끗 쳐다보며 말했다.
떨리는 재환의 동공을 보지 못한 택운은.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동생의 모습을 보며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다.
그리고
그 순간.
재환은 완전히 알아버렸다.
분명 자신은 택운에게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고 말을 하려 했는데.
입을 벌려도 나오지 않는 소리때문에
그저 고개만 끄덕이던 자신의 모습에.
제 목소리를 잃었다는것을.
자신은
제 사람들에게 말 못할 비밀이 또 하나 생겼다는것을.
*
홍빈이 남자를 따라 더 으슥한 건물의 내부로 들어가면.
온갖 의학자료들이 널려있는
그의 방에 도착한다.
남자는 홍빈을 쇼파에 앉히고
태평하게 물어본다.
“코코아? 커피?”
홍빈은 제 사람들을 살릴 궁리를 하며.
지금 당장은 택운의 세상을 돌려주기 위해서.
그렇게 무거운 짐을 지고 남자를 따라왔건만.
남자는 그런 홍빈의 속도 모르고
쓸데없는 얘기만 한다.
“필요없고 말해요. 내가 할 수 있는게 뭔지.”
“성질이 급해진 것 같네요. 며칠사이에.”
너무 서두르지 말아요.
어차피 홍빈군은 내가 해주는 말을 들으면
혼란에 빠질텐데.
서둘러서 일찍 듣는다고
덜 혼란스러운것도 아닐테고.
“그냥 지금의 이 평화로운 시간을 좀 즐기는게 어때요?”
곧 당신의 존재에 대한 이유를 알게될텐데.
정말.
더 힘들어 질텐데.
괜찮겠어요?
“상관없다고 몇번을 말해요.”
이미 내 세상에는 내가 없다고.
몇번을 말해야해요.
내 존재의 이유가
내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된다면.
그 어떤 진실을 들어도
난 괜찮아요.
*
원식은 쓸 수 없게된 오른손을 대신하기 위해
쉬지않고 왼손으로 사격연습을 했다.
사격을 하는 도중 자신을 부르는 검은 남자들에 의해
불려나가면 또 마주하게 되는 세상.
늘 단절되있다가 다시 만나는 세상은
지독히도 평범해서 너무 아름다워 보인다.
검은색 벤에 올라타면
이미 먼저 타고있는 재환.
왠일인지 힘들어도 늘상 웃고있는 입꼬리가
한없이 밑으로 내려가있는 모습에
원식은 마음이 좋지않다.
오늘은 또 무슨일로
'그들'을 대신해서
나쁜일을 하게될지.
*
재환과 원식이 수트까지 갖춰입고 도착한곳은
'연회장'
수많은 인파들 사이로 유명한 정재계 사람들이 보이고.
간간히 방송쪽 사람들도 눈에 보인다.
그렇다 한들.
원식과 재환은 누가 누군지 알지 못하지만.
그들은 그저 귀에 꼽힌 조그마한
이어커넥터에서 흘러나오는 지시대로만 행동할 뿐.
'잘들어. 연막탄을 터뜨릴꺼다.
그러면 김원식 너는 목표물 2명 사살.
이재환 너는 지금 바로 3층 복도 끝에 있는 방에가서
검은색 가방을 들고 나온다.
이상.'
애처로이 허공에서 섞이는 두 시선과
살짝 맞잡았다 떨어지는 두 손으로
인사를 대신하고 떨어진다.
둘은 각자의 위치를 향해서
사람들 속에 섞여든다.
원식은 보타이에 붙어있는 마이크를 향해
살짝 고개를 숙여 조용히 말을한다.
“형. 무슨일 있으면 말해요.
나 끝나면 바로 따라갈테니까.”
보통같으면 귓속으로 되돌아올 재환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발끝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불안감을
애써 누른다.
재환은 자신의 귓속으로
흘러들어오는 원식의 목소리를 듣는다.
이미 틀렸다.
벌써 자신의 뒤로 따라붙은 정체 모르는 사람들.
재환은 태연하게 행동한다.
'내가 말을 할 수 있었어도.
식이를 부르지는 않았을거야.
니들이 원하는 그런 상황에 잘 따라주기에는 우리가 너무 불쌍하잖아.'
내 사람이 위험할때는 달려가고.
내 사람이 위험해질 것 같으면 입을 다무는 것.
그게 내가 내 사람들을 지키는 방법이니까.
*
상혁은 참으로 오랜만에 2번째로 이름을 불렸다.
그렇게 검은 남자들에게 이끌려
동떨어진 방으로 들어가게되면.
곧이어 문을 열고 들어오는
흰 가운을 입은 남자.
상혁은 안다.
자신이 왜 여기로 불려왔는지.
[살고싶어요.
당장 우리를 살려줄 수 없다면.
학연이 형이라도 살려줘요.
형이 겪는 그 아픔.
이제는 제가 겪을테니까.
살려줘요. 형을.]
“한상혁.”
남자는 눈짓으로 모두 나가라말한다.
이내 방 안에 둘만 남게 되면.
남자는 상혁에게 쪽지를 건네준다.
그리고 조용히 눈짓으로 읽어보라 말한다.
쪽지를 펼치면
[내가 도와줄 수 있는게 당장은 없어.
하지만.
기다려라.
너희가 강한만큼.
내가 더 강해지면.
그때는 너희와 나.
손잡고 이 지독한 곳에서 벗어나.
형. 동생.
하는 사이가 한번 되어볼 수 있게.
그렇게 만들어 볼테니.
이미 계획은 시작되었으니.]
상혁은 이 쪽지가
자신들을 도와주겠다는 해진의 답임을 알아차렸다.
상혁은 남자를 쳐다본다.
그 남자도 고개를 끄덕인다.
형.
어쩌면.
정말 어쩌면.
우리도 남들처럼.
행복해질 수 있어요.
*
택운은 치료실로 향했다.
무거운 발걸음을 터덜터덜 옮기며.
아직 익숙해지지 않아 조금 어지러운듯 비틀비틀.
치료실의 문이 유난히도 무겁게 느껴진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쏟아지는 햇빛에
택운은 한쪽눈을 찡그린다.
늘 보던 의사와 창가에 기대어 있는 처음 보는 남자.
“반갑네요. 정택운군.”
택운은 그 남자를 경계한다.
왠지모를 기분나쁨이 남자에게서 흘러나온다.
남자는 그런 택운을 웃으면서 쳐다본다.
비웃는듯.
의사는 택운에게 말한다.
“네 반쪽세상. 되찾고싶은가?”
기대를 품은
택운의 눈이 크게 떠진다.
하지만
뒤이어 들려오는 남자의 목소리에 택운은
인상을 찌푸린다.
“대신 조건이 있지.”
남자는 택운에게 다가선다.
“희생이 따를거야.”
택운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그리고 남자를 노려본다.
“그 희생이라는게 애들을 건들이는 일이라면.”
이따위 반쪽 세상은.
없이 살아가도 상관없습니다.
내게 가장 중요한 세상은.
따로있으니까요.
“근데 어쩌나.”
남자는 택운의 말이 가소롭다는듯이
눈을 찡긋거린다.
“싫다해도 어쩔 수 없어.”
니가 원하지 않아도
우리의 필요에 따라.
넌 네 세상을 되찾아야만 하니까.
*
해진은 급히 발을 움직인다.
하지만 티나지 않게.
그와 그들을 가두고 있는
높은 벽과 싸울 준비를 위해.
또 많이 늦었죠ㅠㅠㅠㅠㅠ변명같지만 이번에는 좀 크게 아팠어요ㅠㅠㅠ 감기가 심해져서 눈까지 번지는 바람에ㅠㅠㅠㅠ 그거 아시죠?ㅠㅠㅠ 알레르기 생긴것처럼 눈따갑고 눈물나고ㅠㅠㅠㅠ 모니터를 쳐다보지 못하겠는거에요ㅠㅠㅠ 많이 늦어서 죄송합니다! 늘 고마워하고있어요 독자님들 정말 감사합니다! 조만간 Fairy tale 원식편으로 찾아올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