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amB. 헝거게임]
-김한빈의정석-
오랜만이예요, 내 사랑들 :)
브그브
브금은 필순거 알죠?
* 암호닉 * (암호닉이 빠졌다 싶으면 바로 댓글로 알려주세요!)
<3 기맘빈과김밥 <3
수박
냐미냐미
캐서린
바뱌
뽑뽀
밤비
디보
햫기동동
구릴라
쿠쿠
라임
김빱
J
코카콜라
옥수수
김까닥
진지한팀비
하늘
네티
분홍양말
김밥이랑
다이
으우뜨뚜
파랑쨱쨱이
찌푸
갓바비
보리차
두비두밥 오뚜기밥
감자
소녀
bobb_y
까만원두
두비두밥
너에게로가는걸음
헤헷
지원아
백년가약
양꽃
몰랑이
한비니맘비니
빈블리
메추리
헛둘헛둘
콘이
기맘빈과김밥
꿀갓빈
들레
지나니
푸
달다리
허니콤보
매력넘치는
뜟
뿌요
바비사랑
비니비니한비니
으우뜨
꽁빈냥
양양
주네야
구주네
닭다리
김셍
어깨박이
연결고리
꽁냥꽁냥
체리돼지
한빈아뿌잉
갓빈워더
곰돌이푸
꿍디꿍디
거북이
지원아!죽지뭬!!
서채
진주
닭다리
워후워
조으디
햇님
토끼이빨
그가 죽었다는 사실은 나의 세상 하나가 무너져갔다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아니였다.
나를 사랑해주던 사람이 나를 등돌리고, 나를 보지않으며, 나와 더이상 눈을 마주치지 않는 다는 것을 의미했다.
괴롭냐고 물으면 당연히 나는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그가 그동안 써왔던 일기장도, 그리고 그 안에 표현하지못했던 자신의 마음을 표출하는 모든 글자 하나하나가.
내게는 화살이 되어 인식하지못했던 나태한나를 자책했다. 시퍼렇게 멍이 들때까지 내 가슴을 주먹으로 내리쳐도 그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이나 마찬가지다.
비참한 그의 인생은 그것으로 끝이 나는 것도 아니였다. 김지원은 자신의 생일날 삶을 마감했다. 그의 넓은 인생을 두고 보자면 반도 안되는 삶을 끝마쳤다.
잔인함에 몸서리가 또 한번 쳐졌다. 이제 지독하게도 진절머리를 앓아와서 미련없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또 나만의 착각이였던 것이다.
미친듯이 눈을 굴려서 김지원의 피가 덕지덕지 묻은 총을 찾았다. 내 눈은 빠르게 돌아가고 있었고, 모든 정신은 이게 헝거게임이라고 인식도 하지못했다.
김지원이 쏘고 떨어져버린 그의 마지막 흔적이 남아있는, 살인의 흔적이지만 내게는 지금당장 그것이 필요했다. 김지원 주변에 떨어져있던 그것은 더러워진지 오래였다.
힘이 풀려서 움직이지도 못했던 내 다리는 거짓말을 친것처럼 다시 일으켜세워졌다. 단단히 버티고 있었다, 내 다리는. 김한빈의 분위기는 나를 경계하고있었다.
내 행동 하나하나를 놓치지않겠다는 그의 날카로운 눈초리가 다리로 쿡쿡 박혀서 가동이 걸린 것마냥 내 다리는 빠르게 그 총으로 다가섰다.
파스락 거리는 풀의 움직임과 비틀거리는 내 시각이 온전치 못했다. 숨이 가빠오고 있었다. 곧 김지원의 곁으로 갈 것을 의미하는 건지, 내 뇌는 터질듯이 아팠다.
손을 뻗어서 총을 집어들자, 김한빈이 빠르게 다가왔다. 그거 내려놔. 그의 목소리가 낮게 깔리자 나는 괜한 오기로 고개를 세게 저었다.
이러지마, 이러지마. 나는 애원하듯이 그에게 말했다. 김지원 봐서라도 너는 살아남아야 할거아냐. 김한빈은 으르렁거리며 미간을 좁혔다. 당장, 내려놓으라고.
한빈아, 싫어. 나는 그의 이름을 부르며 좇아오르는 내 미숙한 눈물에 이를 악물었다. 너 지금 무슨 생각하는지 다 아니까 총 내려놓든가, 나한테 건네든가 해.
김한빈은 끝까지 이기적이였다. 김지원이 저렇게 불쌍하게 죽었는데도 나를 살려놓기 위해서 그의 마지막 흔적이였던 총을 뺏으려고 들고있었다.
가까이오지마! 한순간에 날카로워진 내 목소리에 김한빈은 움찔하고 그 자리에 멈춰섰다. 가까이오면, 쏴버릴꺼야. 누구, 나를? 김한빈은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르켰다.
나는 보란듯이 그의 안면에 총구를 들이밀었다. 철컥 하는 소리와함께 곧게 뻗은 내 팔의 방향은 김한빈의 얼굴이였고, 그는 허탈하게 웃으면서 나를 노려보았다.
날 쏴버리면, 너가 이 게임의 우승자가 되는거야. 날 죽이고 말야. 김한빈은 조용히 중얼거리며 내 경고를 무시하고 발걸음을 떼었다. 그리고 너 착각하는게 있는데.
"넌 나를 절대 못쏴."
"..."
"내가 잘 알거든."
"너가, 뭘 알아."
"그럼 나 쏴보던가."
김한빈은 팔을 벌려서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르켰다. 내가 뭘 아냐고 으스댔잖아. 빨리 쏴. 그는 나를 부추기며 거만한 얼굴을 띄었다. 총고리에 얹힌 손가락이 무거웠다.
손이 벌벌 떨리면서 동시에 총도 덜컥덜컥거리는 소리를 냈다. 총구의 목표 끝이 불안전하다는 의미였다. 한켠에서는 김한빈을 쏴버리고 나도 같이 자살할까, 싶었다.
하지만 나는 그 마음을 일찍 접었다. 김지원의 의미가 너무 무의미해지는 것이였다. 애써 살려놓은 내가 그의 수고를 짓밟아버리고 이기적이게 죽는다는건 사치다.
한참동안 이만 악물고 아무말도 안하는 나를 진작에 알았던 건지 그는 김빠지는 웃음을 지으며 넓게 벌렸던 팔을 다시 접었다. 그리고 한걸음씩 내게 다가왔다.
위험하게 총들고 설치진 마, 아직 생존자는 너와 내가 있으니까. 그는 내 귓가에 속삭이면서 부드럽게 총을 빼앗아갔다. 힘없이 강탈된 총은 이제 김한빈 것이다.
김지원의 얼굴을 다시 생기있게 볼 수만 있다면 나는 처음으로 뭐든지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종대이후로 누굴 위해 뭐든지 하겠다고. 낯설다. 매우.
난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잘난줄 알았어. 김한빈은 살짝 땀에 젖은 머리를 흐트러놓으며 읊조렸다. 적어도 그 일 전까지는. 그는 나름 풋풋한 웃음을 띄었다.
울지마, 너 울라고 살려둔것도 아니고 죽으라고 살려둔것도 아니잖아? 그는 다시한번 냉혹하게 나를 건들였다. 애써 고개를 끄덕이자 착하다며 다시 웃었다.
헝거게임은 우승자가 한 명이라는 규칙은 너도 알고있겠지. 그는 붕 뜬 목소리로 말했다. 알아. 나는 대답을 했고, 그는 항상 그랬던 것처럼 말을 이었다.
지금부터 너와 나는 목숨을 가지고 놀 거야. 목숨? 반문하듯이 대답하자 김한빈은 대충 고개를 주억거리며 총고리에 검지손가락을 넣은 채 핑그르르 돌렸다.
철컥하는 소리를 내면서 다시 안착한 총. 목숨을 가지고 놀거라는 말이 우습게 들릴진 몰라도, 최소한 저 윗 분들의 눈은 속여줘야 제 맛은 아니겠어.
김한빈은 여전히 턱도없는 헛소리를 해대는 듯했다. 나는 이해가 안가는 눈치를 줬고, 그는 이상하게 그걸 무시하며 반대편 손으로 총알탄 구멍을 만지작거렸다.
러시안 룰렛 알고있겠지. 김한빈은 반듯한 어조로 약간 커진 목소리를 이용해 오버스러운 액션을 취했다. 총을 높게 들고서 그는 씨익 웃었다.
지금부터 너와 나는 목숨을 건 내기를 할 거야. 방금 전 그가 목숨을 가지고 놀 거라는 말은 이걸 의미하는 듯했다. 확률은 50대 50, 누구 하나는 죽는 거야.
둘 다 살아남을 거라는 확률도 없는거야? 내 질문에 그가 비웃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웃음기를 싹 뺀 얼굴로 곰곰히 생각하는 얼굴이 되었다.
그런 가정도... 없지않아 있겠지. 그 가정은 이 총에 총알탄이 없는 걸 가정하고 두자. 몇 번째에 꽂혀있는지 너와 나는 동등하게 모르니까. 게다가,
몇 개의 총알이 있는지도 모르잖아. 하나는 이미 소멸되었고. 그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김지원을 흘끔 쳐다보았다. 내가 알기론 이 총은 총 6개의 구멍이 있는데.
번갈아가면서 서로가 가장 약점이 되는 곳을 찍어준 곳에 갖다대는 거야, 이 총을. 그리고 말하는거지. 너가 평소에 약점이라고 생각했던 치부를 들춰내.
"잔인하다."
"..."
"김한빈, 너 되게 잔인한 새끼구나."
"원래 사람은 잔인해. 너도 알잖아."
"..."
"모두들 숨기고 살아서그렇지."
치부라는 건 뭐든 상관없는거 알지. 어렸을 때 감추고싶었던 기억, 뭐든 가능해. 김한빈은 자신에게 주문을 걸어놓은 얼굴로 몽롱하게 눈을 깜빡였다.
결정은 상대방이 하는 걸로 하자. 좀 더 가까이 와, 얼굴보고싶다. 그는 달콤하게 속삭이며 내 곁으로 바짝 다가섰다. 나보다 큰 몸집때문에 내 시야는 오롯이 그만 보였다.
살구색 크림을 발라놓은 것같은 그의 피부결에 나는 조용히 손을 들어서 볼을 쓸어내렸다. 투박하지만 조금이나마 서로의 위로가 되고싶어서, 나는 그랬다.
김한빈의 숨결이 잠깐 멈췄지만 곧 다시 숨을 들이키는 그의 공기의 움직임이 낯설지만은 않았다. 나는 입술이 벌벌 떨려왔다. 내 손으로 나를 죽이는 거구나.
그도 나름의 최선의 선택이였을 것이다. 다시 재촉할지 모르는 나레이션의 목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오는 것같아서 몸이 움츠러들기 일보직전이였다.
그의 팔을 잡고 있는 힘껏 안았다. 남의 체온이 후욱 들어와서 나도모르게 눈을 감았다. 그의 말라버린 몸이 딱딱했다. 뻣뻣해진 그가 더 눈물이 날 지경이였다.
한빈아, 나는 그의이름을 불렀다.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너와의 포옹이 왜이렇게 쓰라린 걸까. 물에 젖은 솜처럼 자꾸만 처지는 내 모든 행동들이 메스꺼웠다.
그는 잠깐 뻣뻣해진 자신의 몸을 그 상태에서 몇 초간 있다가 부드럽게 풀렸다. 내 등을 감싸고 그가 더욱 매달리 듯이 껴안았다. 그는 호흡을 고르게 하려고 애썼다.
어디서부터 잘못된거야. 내 질문에 김한빈은 고개를 저었다. 우리는 잘못되지 않았다고. 그는 그렇게 속삭이며 내 등을 토닥였다. 정말이야, 우리는 잘못아니야.
김한빈은 질척거리던 우리 사이의 공간을 애써 떨어뜨렸다. 나도모르게 허우적거리며 그의 품을 찾으려고하자, 그는 고개를 저으며 괴로운 표정을 지었다.
김지원 대신으로 날 안으려고 하는 거면 사양이야. 그의 정갈한 목소리가 갑자기 모서리가 박힌 칼날처럼 변해버렸다. 흠칫하고 놀랐지만 꾹 참고 고개를 숙였다.
아니야. 쥐어짜듯이 내뱉은 목소리는 변명이라고 터무니없이 나타내고있었다. 아니야, 한빈아. 나는 무언가를 말하려고 했지만 그의 손에 의해 저지당했다.
말하지마, 더이상 상처받지말자. 그는 무섭도록 침착한 동공으로 날 내려다보고있었다. 서로 상처받기엔 너무 멀리와버렸다고 생각해. 그는 침을 삼켰다.
다시 한발자국 그와 떨어졌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가 뒷걸음질 친것이였다. 다시생겨버린 공간에 마음이 공허함이 밀려왔지만 그를 원망할 수도없었다.
총은 김한빈이 쥐고있었다. 적막함이 흐르는 이 곳에서 알 수 없는 불안함에 요동치는 음악이 들려오는 착각이 일었다. 하지만 정신을 차려야만 했다.
그는 천천히 자신의 관자놀이에 갖다댔다. 질리도록 차가운 총구의 얹힘이 들려왔고 나는 더이상 그의 눈을 마주칠 용기가 나질 않았다. 곧 그의 말이 시작된다.
도망칠 수만 있다면 도망치고싶다. 꼭 거쳐가야할 암묵적인 서로의 약속때문인지 잘만 걸리던 다리가 또 다시 굳어져왔다. 타격을 들어야하는 내 귀는 아프다.
왜이렇게 약해빠진거야? 그를 쳐다봐야하는 데, 우습지도않아? 또 다시 환청이 들려오기시작했다. 당장 쳐다봐. 너가 짊어지고가야할 것이니까, 당장!
"김지원이랑, 나랑 무언의 약속을 했었어."
무언의 약속이라는 말에 비스듬히 그를 응시했다. 김지원이랑, 너랑? 되묻는 내 말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 한숨섞인 웃음을 다시 짓는 그의 얼굴이 보였다.
너를 두고 우리 둘은 치열하게 경쟁을 했었지. 너도 알다싶이 우리 둘은 공식적으로 널 사이에 두고 싸우는 두 남자의 혈투였잖아. 캐피톨에서도 주목할 정도로.
김지원이랑 잠깐 만날 시간이 있었어. 그 때가 게임시작하기 며칠 전이였는데, 그날따라 유독 지치고 힘겨워서 11구역 트레이닝 중에 쓰러졌거든.
부축해주겠다는 멘토의 배려에도 나는 거절하고 엘레베이터를 눌렀어. 좀 기다리다보니까 누가 오더라고. 힐끔보니까 김지원이였어. 말 섞을 생각조차 못했지.
근데 그 새끼가 먼저 말을 거는거야, 원래부터 말을 했던것처럼. 앞 뒤 다 잘라먹고 말하는터라 이해하는데 좀 시간이 걸리긴했지만, 걔 목소리가 그날따라...
죽음을 기어가는 목소리였어. 꼭 당장이라도 내일 죽을것만 같은 눈치여서 한번에 예감했지. '아 이 새끼는 널 무척이나 신경쓰고 있구나' 그렇게.
뭐라고 했는데. 내 말에 그는 잠시 눈을 감았다. 잘 부탁한다고, 너를. 그의 말이 들리자 나는 김지원을 쳐다봤다. 점점 보기흉할 정도로 부패해져가고 있었다.
올라오려는 것을 애써 참아내고 빠르게 김한빈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는 눈을 다시 뜬 채 무안할 정도로 무표정이였다. 관자놀이에 박힌 총은 더 깊숙이 들어갔다.
나 같은게 얼마나 의미있다고 차마 말할 순 없지만, 널 울게 하지말라고 했는데. 난 그 녀석 약속도 못지켰어. 그는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울려버렸으니까.
그렇게 올 상황이란 것도 눈치챈 놈이야. 그리고 보란듯이 이 세상을 등져버린 무책임한 놈이고. 자신이 스폰서 없는것도 알아챘어. 왜 그랬는지, 대충 알겠더라.
왜... 왜 스폰서가 없는걸 알아챈거야. 아니, 스폰서가 없는걸 어떻게 알아챘어? 그와 나 사이에는 침묵과 질문과 그리고 대답만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우리 셋이서 다친걸 생각해봤어? 그의 질문에 잠자코 떠올렸다. 피떡에 얼룩졌던 우리 셋, 그리고 서로를 보살피며 간절하게 빌었던 지난 며칠간의 나날들.
누구 하나 덜 다쳤다는 거 하나없었어. 더 다쳤다면 모를까, 그런데 너와 내가 다쳤을 때 스폰서들이 지원해준 거 얼마나 걸린지 알아? 그의 재차 질문이 박혔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나와 김한빈이 다쳤을 때 반나절도 걸리지않았었다. 특히 나 같은 경우에는 자고 일어나면 곧바로 도착해있던 스폰서의 물품에 어리둥절했었다.
김지원도 아마 혼자 떠돌아다니다가 다쳤을꺼야. 왠만한 사람들은 무적아니면 하루정도는 앓고 나거든. 근데, 김지원은 그랬었어? 김한빈은 날카롭게 반응했다.
그의 예리한 눈초리에 온 몸의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그것조차 생각치도 못했는데 김한빈은 나보다 훨씬앞서서 뒤를 돌아보고 있었던 것이였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내 말에 그는 다시 말을 이었다. 차마 널 죽일 수없다고 했었던 놈이고, 날 믿는다고 했었어. 그동안... 싫어했다는 말도 덧붙였고.
장난스럽게 말을 늘이던 모습이 겹쳐져서 목이 따끔거리며 아파왔다. 그리고 붕대를 한동안 감싸고 있던 다리가 부질없게 느껴지고 있었다. 김지원.
"끝까지 착한 척하고 죽은 놈."
"..."
"불쌍하지도 않냐, 너는."
"김지원이, 그랬을 줄은..."
"..."
김한빈은 내 반응이 어떻든간에 신경을 쓰지않는 눈치였다. 엇박자로 총고리를 잡아당기는 소리가 났고, 철컥거리는 소리가 들리고나서야 깨달았다. 꽝이구나.
너의 차례라며 던져오는 총이 그닥 반갑지는 않았다. 김지원의 손길과 김한빈의 손길이 겹쳐져서 그랬을까, 미적미지근한 얼굴로 총을 툭툭 치다가 내 명치로 갖다댔다.
움찔하는 그의 몸이 느껴졌다. 못 본척하며 마른입술을 침으로 축이고 머리를 쓸어내렸다. 무엇을 말해야 김한빈의 반응을 유도할 수 있을지 잠시 고민했다.
12구역에 있었던 일을 말해줄까, 아니면... 나는 자꾸 떠오르는 주젯거리에 혼동이 오고있었다. 김한빈 나름 묵혀두었던 이야기였을 텐데. 나는 말이지.
먼지 쌓인 이야기로 건네볼까. 생각을 그렇게 해도 이미 결정은 났다. 고개를 주억거리고 명치에 꽂은 총을 더욱 단단히 쥐었다. 김한빈의 표정변화가 웃겼다.
무슨 얘기를 해줘야 할지 좀 고민이 있었어. 내 말에 그는 대답조차 하지않았다. 텅 빈 눈으로 날 그저 바라보기만 했을 뿐. 그 모습이 꼭 혼을 잃은것같았다.
내가 말해야할 차례구나. 내 목소리가 들리자 김한빈의 시선이 총으로 떨어졌다. 무슨 얘기 해줄까 고민을 많이 했어, 내 치부를 드러내야하는데.
그래서 좀 시간이 지난 이야기를 해볼까 해. 주제는... 우리 아버지로하자. 김한빈은 낯선 단어에 아예 시선을 거두었다. 그에게 아버지란 아직 달갑지만은 않은걸까.
우리 아버지는 김지원이 잠깐 언급했듯이 광부였어. 12구역은 광산이 발달되어있는 구역들 중 하나였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광산에 종업하고 있었어.
우리 가족은 단란했지만 언제 아버지가 돌아가실지 몰라서 노심초사했어. 특히 우리 엄마는 아빠라면 사죽을 못썼지. 동생과 나는 잘 몰랐었거든.
6월 19일, 광산이 무너져내린 날. 아버지가 실종되었어. 제발, 제발 하고 안믿던 신한테까지 기도하면서 무사하길 바랬어. 사망자명단이 나왔고, 실종자는...
100명의 인부가 들어가 있었는데 그 중에서 생존자는 5명 안팎이였어. 나머지는 모두 실종자 및 사망자. 비고란에 사망여부가 되있었는데 아버지 이름을 찾았어.
아버지는... 실종상태였어. 한 가닥의 희망이라도 찾은 것 마냥 나는 사망이 아니면 괜찮다고 나 자신을 타일렀어. 하지만 그것도 잠시 실종자들이 속속히 발견되었는데,
모두들 사망상태였던 거야. 나는 점점 희망을 놓아야 하나 고민했어. 그래도 엄마가 옆에 계신데 좀만더 기다려보자, 기다려보자하고 꾹 참았거든.
실종된지 몇 주가 되서야 아버지가 나타났어. 정확하게 말하자면 나타난게 아니라... 발견된거였지만. 얼굴이 보기힘들정도로 뭉개져있었다고 했어.
그 사건이 터진지 약 3주가 되서야 100명의 인부가 모두 발견되었고, 남은 생존자들은 눈치를 보며 장례식을 진행했어. 차가운 세상에 동떨어버린 아버지가 가여웠고.
단체로 영정사진을 보고 있을 때야 눈물이 비로소나더라. 그래도 티를 내진않았어. 눈물은 났지만 닦지않고 오롯이 노려만봤어. 아버지가 금방이라도 말을 걸어줄거라고.
아버지는 끝내 나와 말을 섞지않았고 그 상태에서 5일동안 장례식이 치러졌어. 입관하는 걸 보고싶었지만 엄마만 보게 했고, 엄마는 아버지를 본 뒤에...
"큰 충격을 받고 삶을 포기하셨지."
"..."
"목숨을 버린게 아니라 그냥 자신을 놓고 미쳐버린거야."
"..."
"불쌍한 우리 엄마, 가엾지 않아?"
무미건조한 목소리에 김한빈의 움직임이 둔해졌다. 엄마가 미쳐버렸다는 말은 우리 마을 사람들 왠만한 분들말고는 모르는 일이다. 아마 윤형이도 모를터이고.
어딘가에서 우리를 지켜보고있을 카메라를 흘끔 쳐다봤다. 12구역에도 생중계 되는 나와 김한빈의 러시안룰렛에 캐피톨 또한 숨죽이고 보고있겠지.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이게 내 치부이자 자존심 하나였어. 난 지금 자존심 하나 버린거나 마찬가지고, 지금 되게 기분이 이상해. 홀가분한데 더러워.
나는 말을 마치자마자 눈을 질끈감았다. 총고리를 부여잡고 총구를 찔렀다. 잡아당긴 후에야 세상이 멈춘줄만 알았는데 이번에도 총알이 들어있지 않았다.
철컥거리는 소리만 들릴뿐이였다. 허탈하고 허무해서 웃음조차 나오지도 않았다. 눅눅해진 기분을 뒤엎고 김한빈에게 총을 던졌다. 그는 한 손에 잡아냈다.
그는 자신의 몸을 한 번 훑어보더니 곧바로 턱에 총구를 들이밀었다. 무리하는거 아냐. 나는 생각했지만 굳이 입밖으로 그 말을 내뱉지 않았다.
내 이야기로 다시 돌아왔네. 그는 잠깐 고민하는 얼굴이였지만 아이같이 웃음을 터뜨렸다. 이 상황에서 웃음이 나오는 건지, 그는 한참동안 끅끅대며 웃었다.
자칫보면 미친 사람처럼 보일 수 있지만 난 그의 웃음이 도피적이라고 느꼈다. 차마 할 게 없을 때 사람들이 웃는 것처럼 그는 지금 그의 나름 기분을 표현하고있다.
색다른방법이다. 처음보다 훨씬 편해진 기분으로 김한빈을 응시했다. 그는 웃음을 멈추고 얼굴을 쓸어내렸다. 남자다운 그의 손이 얼굴을 덮었다.
무슨 얘기를 해야할지 고민했는데 너의 이야기를 들이니까 나도 어린 시절을 이야기 해야할 것만 같아. 치덥지않은 과거 여행 집어치워. 전자는 그였고, 후자는 나였다.
남에게서 듣는 과거얘기는 그닥 달갑진않단말야. 자칫보면 칭얼거릴 수 있는 내 말에도 그는 받아들인다는 제스쳐를 취했다. 그럼 뭔 얘기를 해줘... 아.
내 망상증 엄청 심한거 너 모르냐? 난생처음듣는 말에 이게 무슨 소린가 싶어서 눈을 똑바로 떴다. 김한빈은 말 그대로라며 총을 고쳐잡았다.
내 망상증은 아무한테도 얘기하지않았지만, 너를 만나고나서야 발동했어. 너와 이 게임에서 공동우승자가 되고, 그리고 11구역과 12구역의 비운의 연인이라고 불리고.
서로를 애타게 그리면서 바라보다가 다른 구역에 가서 사는 걸로 딜을 거는 거지. 그리고 우리 둘만의 어디론가 떠나는 것. 김한빈은 진지하게 말했다.
그렇게 너와 내가 사람들에게 잊혀져가고 서로를 바라보면서 살고싶었어. 휘말릴 정도로 깊게빠져든 건 처음이라서 주체할 수 없는 건지 모르겠어, 확신이안서.
김한빈은 빠르게 말을 이어갔지만 내게는 콕콕 들어왔다. 느리게 한숨을 쉬고, 그의 말을 들었다. 망상증이라는 그의 말이 이제는 진짜인지 의심이간다.
하지만 지금 내가 너에게 느끼는 감정은 동정이 아니란 건 확실하니까, 날 믿어주면 안될까? 그의 조곤조곤한 말에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달콤한 꿈을 꾸게 하는 너가 너무나 밉다고 말해도 할 말없을 텐데, 너는 끝까지 날 비참하게 만드는 것만 같아서 왠지모를 비참함을 느꼈다.
"여기까지가 나의 이야기."
"..."
"쉽게 내 말을 믿진마."
"..."
"아직 어리잖아."
그리고나서 김한빈은 총고리를 잡아당겼다.
"김진환, 대박인거 알려줄까요?"
김한빈과 대치를 이루고있는 모습을 보고있던 김진환이 김동혁의 호들갑스러운 목소리에 나른한 눈빛을 보냈다. 김동혁은 신남에 붉은 뺨을 띄고있었다.
오다가 봤는데, 캐피톨에서 지금 난리가 났어요. 줏어들은 것도 있고. 그 말에 김진환은 삐딱했던 자세를 고쳐서 날카로운 눈을 빛냈다. 그게 무슨말이야?
김동혁은 김진환 옆에 털썩 앉아서 어지럽게 놓인 스낵들을 쳐다보다가 하나 집어넣었다. 오물오물 거리며 맛을 음미하는 그의 표정이 얄밉기만 하다.
별거아니면 저리좀 가지그래? 쟤네 봐야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촉박하단말이다. 김진환은 재떨이를 옆으로 밀치며 테이블 위에 다리를 올려놓았다.
김동혁은 수북히 쌓인 재떨이에 시선을 고정했다가 이내 궁금증을 가득 떨친 웃음을 보였다. 담배가 그렇게 좋아요? 쟤보다? 김동혁은 화면 속 그녀를 가르켰다.
씨발, 갖다댈걸 갖다대. 김진환은 끝내욕을 내뱉으며 김동혁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김동혁은 짧막한 신음을 뱉으며 왜 쥐어박냐고 울컥해댔다.
"시덥지않은 소리를 해대니까."
"너무하다, 진짜. 지금 듣고온것만으로도 승산이 있단말이예요!"
"뭔 승산을 말하는건데?"
"그야 당연히..."
김동혁은 다시 화면을 가르켰다. 당연히 누구겠어요, 쟤네 둘이죠. 살아남을 가능성이 없는건 아니더라구요. 아니, 오히려 좀 많은 편에 속하게 됐수다.
그의 말에 김진환이 튀어나오듯이 놀란건 꽤나 볼만한 짓거리들이였다. 김동혁, 뭐라고? 재차 반문했을 때 김동혁은 모른척하며 다시 중얼거리기 일쑤였다.
쟤랑 김한빈이랑 둘이 동시에 살아남을 가능성이 꽤나 높은 축에 속한다구요. 김동혁의 말에 진환은 얼떨떨한 기분이였다. 대체 이게 무슨상황이고, 뭔 말인지.
자세히 말해보라며 재촉하는 그의 목소리에 동혁은 씨익웃었다. 미리 던져둔 떡밥이 작용하는 아주 좋은 예였죠. 떡밥? 설마, 네. 당신이 생각하는 그것.
서로를 향한 치열한 쟁탈전과 러브스토리. 캐피톨 사람들의 눈시울을 적시게 만든 장본인들이 꽤나 역효과가 아닌 제대로 효과를 냈더라구요?
방송사에다가 전화하고 난리고, 지금 정부에도 비상이 걸렸어요. 여기 방음처리되서 안들리겠지만 밖은 좀 소란스러워야 말이죠. 앨리스리도 지켜보고있고요.
"..."
"축하해야할 일이예요,이건."
"자세히 말해봐."
동혁은 진환의 반응에 쾌재를 부르며 진지하게 헛기침을 했다. 그니깐 말이예요, 방송사에다가 전화해서 뭐라고 했는 줄 알아요? 김지원이 죽었을 때.
김지원이 죽었을 때 방송사 사상 시청률 최고점을 기록했었어요. 그의 희생에 방송사는 떼돈벌었다며 좋아했는데 왠걸, 김한빈이랑 러시안룰렛을 한다고?
이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또 다시 작용한다는 거잖아요. 쟤만 바라보고 달리던 김지원이 쟤 살리기위해서 희생했는데 죽는다는게 말이 되는 소리예요?
캐피톨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것들 중에서 하나가 뭐냐면,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거에 끔찍하게 싫어해요. 되게 역겨운 역설같은데, 진짜라니까요.
방송사에 전화해서 지금 시청자압박넣고 장난아니예요. 사상 이래로 이런적은 처음이니까, 지금 방송사도 꽤나 당황한 눈치고. 정부는 또 헬렐레되고.
정부 전화넣어서 욕하고 당장 헝거게임을 중지시켜라는 의견이 가장 많다고, 두번째는 공동우승을 만들어라는 협박이 들어왔어요. 꼼짝달싹 못하는거죠.
동혁의 말에 진환은 곰곰히 생각했다. 미리 던져둔 떡밥에 캐피톨 사람들이 얼씨구나 하고 걸렸다. 이건 무슨 우연인지,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몰랐다.
눈만 도륵도륵 굴리고 있으니 동혁은 쾌활하게 웃으며 이제 둘에게 신호만 보내주면 된다며, 조금만 버티면 된다고 떠들어댔다. 진환은 입술을 깨물었다.
김지원의 희생이 헛되이 되진않았다고. 정말 둘은 순수하게 진심이였지만 어쩌다보니 방송용으로 전락되버린 사랑이야기가 애달프게 작용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의 가슴이 미약하게 쑤셔왔다. 호흡곤란은 절대 아니였으나, 당장이라도 담배를 꼬아물고 싶었지만 동혁이 두 눈 부릅뜨고 있었기에 끙끙거리며 인상만 썼다.
그거 잘됐네. 끝내 진환이 한 말은 그게 전부였다. 동혁은 그의 미적미지근한 반응에 실망한 목소리였다. 에엑, 김진환. 그것밖에 할말이없어요?
나머지는 쟤네가 살아남고와서 말해도 괜찮아. 그리고...
"김지원의 죽음이 꽤나 타격이 클 것으로 예상되는데."
"..."
"특히나 저 아이같은 경우에는."
진환은 그녀를 쳐다보며 한숨을 쉬었다. 한빈의 말이 끝나자 명치에 꽂기 시작한 그녀의 모습이 위태로워보였다. 러시안 룰렛이라고? 그는 피식 웃었다.
머리 좀 썼네, 김한빈. 죽지못하게 내버려두는 것이얼마나 괴로운건지 제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잔인할만큼 영특했다. 진환은 담배곽을 열고 참다못해 한 개피꺼냈다.
동혁이 뭐라고 하던 그는 개의치않았다. 두번째 순서였던 총구가 명치로 닿고나서 그녀의 이야기가 시작되었다. 아버지로 운을 띄운 그녀의 이야기가 유난히 컸다.
광산이 무너진 날을 말하며 불안한 눈으로 말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계속 치여온 말라비틀어진 사람같았다. 그녀 자체가 말라비튼 것이 아니라, 피폐해진 정신이.
철컥 하고 총고리를 잡아당길 때 시간이 멈춘 것같은 기분을 아찔하게 느끼며 진환은 순간적으로 담배 필터를 으득, 하고 씹어버렸다. 다행히 이번에도 꽝이였다.
허탈해보이기도 했고 한편으로 안심하고 있는 듯한 모습에 진환은 지금당장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점점 혼란스러워 져가는 기분이였다.
"그래서, 지금 캐피톨 상황은?"
"...아.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대통령의 명령이 떨어져야 하든가 할텐데, 지금 쟤네 상황도..."
"..."
"만만치않게 흥미롭잖아요. 서로의 약점을 드러내면서 그동안 숨겨져왔던 이야기를 털어넣는다는 건."
동혁은 씨익 웃으며 스낵 하나를 더 집어먹었다. 코를 찌르는 달콤한 향에 진환은 인상을 찌푸리고 화면으로 고개를 곧 돌렸지만, 눈에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제발 부탁인데, 조금만 버텨줬으면 좋겠다. 김한빈의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는 동안이라도. 아니, 저 아이 차례가 다시 되어서 꽝이 걸렸을 때 명령이 떨어졌으면 좋겠다.
그는 안절부절 못하며 다리를 덜덜 떨었다. 동혁은 그러나마나 그녀를 응원하고 있을 뿐이였다. 진환은 들리지않을 속삭임을 내심 전했다.
버텨라.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조언이라고. 진환은 담배를 지져끄고 머리카락을 엉망으로 흐트러놓았다.
사실, 난 헝거게임에 선택받아서 온 추첨자가 아니야. 운명의 장난인 것마냥 내 동생이 추첨자로 지목이 되었고, 자동반사로 나는 초인적인 힘으로 내가 하겠다고 우겼어.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자발을 한 사람이라며 언론에선 주목을 했었고 나는 그저 사람들의 관심이 이렇게까지 클 줄 몰랐어. TV에도 처음나와봤고, 예쁜 옷들도 입었지.
평소라면 꿈도 못꿀 호화를 누리면서 사니까 속으로 불안해지더라. 언젠가 마감될 내 인생이 너무 초라하게 느껴져서 밤마다 잠을 못자겠더라고. 매일매일.
속사포를 하는 것처럼 쉴 틈없이 빠르게 말을 뱉어냈다. 김한빈은 내 말을 들으면서 간간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총구를 눈썹 사이에 두고 있었다. 즉사를 꿈꿨다.
너도 나와 같은 신세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동안 널 오해한 것 같아. 넌 진심이였는데 나는 거짓이라고 우겼었는데... 혹시 기억해? 내 말에 김한빈은 숨을 멈췄다.
어찌됐던 간에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 곳에 오고난 후부터 내 심경변화를 말하고 있었다. 연예인처럼 항상 웃고 행복해하는 참가자들의 모습과 다른, 진짜 심경을.
김지원과 너를 만나고 가시밭에서 사는 사람같았지만 나는 누구 하나를 지킬 수 있는 것에 행복해했어. 내 동생도 아마 지금 이걸 보고있을꺼야. 12구역의...
그리고, 윤형이도. 나는 마지막 말을 삼켰다. 금언의 일종같았다. 숨겨둔 애인이라고 이상한 소문이 나면 나와 김한빈은 끝장이라는 걸 알고 있기에, 더더욱 그랬다.
김한빈이 끝까지 이기적이라고 미워했는데 나도 이기적이다. 결국에는 나도 살자고 상처주는거나 다름없으니까. 여차저차보면 모두들 각자의 사정이 있는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자 김한빈이 더 안쓰러웠다. 할말이 더 있지만, 아껴둘께. 그러자 김한빈이 손을 허공에 반쯤들었다. 잠깐만. 나, 너한테 뭐 물어봐도 돼?
살짝 끄덕이자 그는 옷자락을 쥐면서 느릿하게 표정을 굳혔다. 질문이 할게 많아서 고민하고 있는 건지, 아니면 쥐어짜면서 시간을 벌이는 것인지 모르겠다.
총을 한 번 움직이자 김한빈은 사색이 되면서 씨발, 이라고 욕을 뱉었다. 그는 지금 내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모양이다.
내가 변했다는 걸 어디서 알았던 거야. 그가 하고자하는 질문은 바로 그것이였다. 변했다... 차츰 기억을 더듬어보니 그가 방송에서 일을 만든 뒤 테라스일을 말했다.
그 때 내가 분명히 말했다. 너가 왜 이렇게 변한거 같냐고. 그 말에 코웃음을 치면서 멀어져갔던 김한빈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할 질문이 없어서 이런걸 말하는 거야?
너무 티가 났지만 나는 비웃지도 않았다. 반응도 하지않았고, 오히려 침착하게 시선을 고정하면서 그와 눈을 마주쳤다. 김한빈은 눈살을 찌푸렸다. 변했다고.
내가 알기론 넌 그렇게 막되먹지도 않았고, 날 전 날까지 챙겨주기도 했는데 하루아침에 너가 그렇게 이기적으로 '변했다.'라는 말 밖에 할게 없었어. 너의 본 모습이라고,
나는 한 편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 되지도않는 낯선모습에 적응하려고 노력하기 위한 말이였어. 내 말에 그는 고개를 떨궜다. 어쨌거나 본 모습이란 것에 큰 부정은 안했다.
더 이상 아무말도 하지않아서 나는 총고리를 잡아당겼다. 덜컥 거리는 소리가 나면서 이번 판도 꽝. 불쾌한 기분에 바닥에 침을 찍 뱉고는 김한빈에게 던졌다.
"...난 숨기는 거 없어."
"뭐?"
"더 이상 드러낼 것도 없단 말이야. 정말로."
김한빈은 한참동안 총을 바라보고 있다가 그렇게 말하며 총구를 팔에다 갖다댔다. 너무 많이 드러내는 것이 자신에게 좋지않다는 걸 깨달았는지, 그는 대답하지않았다.
오히려 이야기를 풀어놓는 것 대신에 쿨하게 한 방 먹기로 마음을 먹은 모양이다. 다른 부위도 아니고 상대적으로 타격이 약한 팔을 고른 그는 침착함만 웃돌았다.
많이 좋아하니까, 이렇게라도 너와 단 둘이서 이야기 하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다시한번 깨달았다고. 김한빈은 씁쓸하게 웃으며 목덜미를 매만졌다.
이게 너가 아는 김한빈의 모습이라는 걸 알아줘. 그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은 변하지않았다고, 오히려 약해졌을 뿐이라고 둘러댔다. 약해져서 두려웠다고.
왠지 내가 당첨될 것 같아. 헝거게임에서도 추첨해서 내가 뽑혔는데, 이거라고 해서 내가 당첨 안될리는 없잖아? 김한빈은 또 다시 웃으면서 무서운 소리를 해댔다.
그의 말을 듣자 나는 뒤늦게 쏘지말라고 소리쳤다. 총 쏘지마! 김한빈, 총쏘지말라고! 내 말에도 그는 꿋꿋히 무시하며 대꾸했다. 하나도 안무서워. 개소리하지마.
"안 무섭다는게 말이 돼?"
"..."
"김한빈, 뭐라고 말이라도 해봐."
"..."
"난 지금 무서워 죽겠어. 너마저도, 너 마저도 가면..."
그런데 대답대신 막장드라마처럼, 그가 총고리를 잡아당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