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환은 자신의 뒤에 따라붙은 남자들의 눈치를 보며
모퉁이를 돌아 비상구쪽으로 향했다.
계단으로 들어서고 자신을 따라오던 발자국과의
거리가 좁혀짐을 느끼던 재환은 비상구의 문이 닫기는 소리와 동시에
몸을 돌려서 정면으로 남자들을 마주했다.
총을 쥔 손에 힘이 바짝 들어가고 계단 반층을 사이에 두고
긴장한듯 서로를 쳐다본다.
다시 한번 비상구의 문이 열렸다 닫히면.
들어오는 검은 수트를 입은 남자.
제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던
제발 도와달라며 매달리던 자신을 내치기보다
쓰다듬어주었던 연구관.
손에 힘이 풀린다.
*
결국 그도 같은 사람이였을까.
우리를 못괴롭혀서 안달이난 그들과
같은 사람이였을까.
*
재환은 허탈하게 웃는다.
바람빠진 소리만 날 뿐.
목울대를 울려오는 웃음소리를 뺀.
무미건조한 웃음.
아니 어쩌면.
바보같이 기대했던 자기자신에 대한
자조적 비웃음.
*
조용하던 대치상황에 재환의 커넥터를 타고
원식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린다.
'형… 어디야…!'
재환은 다시 한번 총을 고쳐잡는다.
탕-
제일 선두에 서있던 남자의 허벅지를 노린 재환의 총알이
제 위치를 찾아가고 남자들이 허둥될때.
재환은 재빠르게 계단을 타고 위로 올라간다.
빠르게 올라간 3층.
아무것도 없이 존재하는 긴 복도.
그 끝에 자리한 문 하나.
재빠르게 소음기를 장착한 총을 들어
문고리를 쏴버리려던 재환의 등 뒤로
*
“이재환”
제 이름이 불린다.
[곧… 네가 원하는데로…]
그래.
꿈 같던 말이였어.
그 말이 너무 달콤해서.
정말로 일어난다면 더없이 좋겠다 생각했었는데.
뒤돌아본다.
내 눈에 보이는 남자가 나를 향해 걸어온다.
손에 쥐어진 총을 들어 그를 겨눠야 하는데.
"재환아…"
다정하게 부르지마요.
"…늦어서 미안하다…"
*
내가 조금이라도 더 용기를 냈었더라면.
내가 조금이라도 더 빨리 미친척 행동했다면.
너희가 덜 아플 수 있었을까.
이제는 너희와 같은 길을 걸을께.
도와줄테니.
꼭 자유로워지기를.
*
해진은 재환의 발 앞으로 검은색 서류가방을 밀어보냈다.
가방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재환은
해진의 입에서 나직히 흘러나오는 숫자를 따라
"524…"
떨리는 손을 들어 가방을 열어본다.
수많은 서류들을 읽어내리는 바쁜 두 눈동자.
이내 눈물이 차오르고 재환이 스러진다.
약해져버린 가지가 뚝 하고 끊어지듯.
종이를 쥔 손이 부들거리고
쉴틈없이 떨어지는 눈물방울들이 바닥을 적시면.
해진이 재환에게 다가와
어깨를 끌어안는다.
*
'탕-'
'콰직-'
총알이 발포되는 소리.
끊어져버린 커넥터.
"재환형… 대답해요."
원식은 아무런 응답이 없는 재환이 걱정이되서
계속 돌아오라는 커넥터를 타고 들려오는 명령을 무시한채로
재환이 있어야할 3층으로 뛰어올라간다.
"형…? 재환형…?"
아마도 잃어버린것 같은 제 사람의
흔적을 바라본다.
분명 바닥에 떨어져 짓밟힌모양인
커넥터와 그 옆에 흩어진 핏자국.
흔적없이 사라져버린 이재환.
*
상혁은 조용히 침대에 누워있다.
늘 학연이 두려움에 떨며 누웠을 그 자리에.
한 남자가 상혁이 누워있는곳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제 발로 굴러들어왔네…"
상혁은 눈을 질끈 감는다.
.
*
형.
이제는 내가 형을 살릴께.
*
택운은 벌떡 일어나 남자의 멱살을 휘어잡는다.
"당신들… 내 동생들. 내 친구 건들이기만 해봐…"
남자는 장난스럽게 손을 들어보인다.
마치 항복이라도 하겠다는 시늉을 해 보이며.
"그럼… 내가 억지로 그럴까봐…?"
남자는 제 멱살을 쥔 택운의 손을 힘껏 털어내더니
주름진 셔츠를 탁탁 쳐내며 말한다.
"난 마음이 약한 사람이라서…"
문고리를 잡은 남자의 손이 잠시 멈춘다.
택운을 돌아보는 남자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부탁을 어길수가 있어야지."
*
학연은 홀로 방에 앉아있다.
덩그러니.
언제쯤 또 불려가게 될지.
언제쯤 또 그 방으로 불려갈지.
잠시도 마음 놓지 못하고.
*
홍빈은 바로 화장실로 뛰어들어간다.
헛구역질이 올라온다.
어지러운 머리를 부여잡고
울렁거리는 속을 게워내려하지만.
그래.
그렇다고 달라지는건 없다.
갑자기 제 모든것이
경멸스러워지고.
맨 주먹으로 벽을 쳐내리다가.
결국은 주저앉는다.
한참을 울고 소리지르다가
겨우 힘을 주고 몸을 일으킨 다리가 이끄는
세면대 앞에 서면
홍빈은
거울속에 있는 자신도.
사람이 맞는것인지.
진짜이긴 한건지.
또 한번 울음을 쏟아낸다.
*
원식은 뒤이어 올라온 검은남자들에 의해서
양팔을 붙잡힌채로
비상구를 통해 지하까지 끌려간다.
준비된 차량에 밀려 넣어진다.
강해지겠다 다짐한뒤로.
제 모든것을 바쳐서 제 사람들을 자유롭게 해주겠다
다짐한뒤로.
단 한번도 보이지 않았던 눈물이
원식의 눈에서 떨어진다.
손에 꽉 쥐어진 커넥터에서
떨어져나온 파편이 맨 손바닥을 뚫고
핏망울을 만들어낼때 까지도.
절대 놓치지 않는다.
*
다 죽자.
그냥 다 죽어버리자.
내 사람들의 미래에
있어서는 안 될 당신들을
내가 모조리 끌고
지옥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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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많이 늦었습니다ㅠㅠㅠㅠ
죄송해요.
요즘 매번 글을 올릴때마다 죄송하다는 말을 하는것 같네요.
미안해요 내 독자님들ㅠㅠㅠㅠ
아시는 분들은 아시다시피 제가 글을 의식의 흐름대로
손 가는대로 쓰는데ㅠㅠㅠㅠㅠㅠㅠㅠㅠ
도통 글이 써지질 않더라구요ㅠㅠㅠ 또 변명이네요ㅠㅠㅠ
하루는 잘 보내셨는지 모르겠네요.
하루 마무리 잘 하시길 바랄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