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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있어, 선배.” 떠나는 당일날 급하게 소식을 듣곤 들어가기로 했던 수업들을 모조리 빼먹고는 돈없는 가난한 교환학생임에도 불구하고 비싼 교통비까지 들여 공항으로 달려왔더니 저 나쁜놈의 후배가 하는 말은 고작 “어, 선배 어떻게 오셨어요?”라며 나를 보고 놀라더니 곧 비행기 시간이 다 된듯 저렇게 간단한 인사 한마디를 남기고는 나에게서 뒤돌아 섰다. 그래도 낯선 이국 땅에서 같은 나라에서 온 교환학생으로 인연이 맞아 서로 수업도 같이 들으러 다니고 밥도 같이 먹으며 나름대로 친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저렇게 뒤돌아 보지도 않고 내가 그렇게도 그러워하는 모국의 땅으로 돌아가 버리는 저 녀석이 너무 밉고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모든게 낯선 나라에서 같은 한국인을, 그것도 같은 시기에 같은 학교에 교환학생으로 온 또 다른 남자아이는 나에게 정말 축복과도 같은 행운이었다. 그리고 다행히도 이 아이는 누구에게나 친절했고, 또 붙임성이 좋은 성격을 가지고 있던 터라 우리 둘은 쉽게 친해질 수 있었고, 난 이 아이와 거의 모든 학교 생활을 같이 다닐 정도였다. 그런데 그 끝은 교환 학생 시기를 끝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짜 조차도 나에게 알려주지 않았다니… 설마 친구라고 생각했던건 나 뿐이었을까, 하고 의문까지 들 정도로 이 낯선 나라에서 생활을 시작한지 1년만에 겪어보는 가장 황당한 일이라 단언할 수 있다. 그리고 이 기억은 내가 그 자식이 한국으로 돌아간지 1년 후에 교환학생 시절을 끝마치고 드디어 가족이 있는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는 날까지 끈질기게 날 괴롭혔다. 하지만 그 트라우마처럼 남아있던 추억이라 말하기도 어색한 그 애의 기억은 곧 내가 한국에 돌아와서 모두 잊어버렸다 해도 무방했다. 왜냐고? 그건 내가 그렇게 한국으로 귀국한지 하루도 안되서 먼 타국 생활을 하면서 한달에 한번 울릴까 말까 했던 내 핸드폰에 불이 난 것처럼 울려대기 시작했기 때문이고, 끊이질 않는 연락에 난 왠지 쓸데없이 뭉클한 마음이 들어 집에 들어와 가방을 내려놓자마자 옷도 갈아입지 않은 채 친구들을 만나 밤새 술을 부어댔기 때문이다. 친구들은 2년만에 보는 내가 반가운건지 내 등짝을 퍽퍽 때려가며 과격한 환영인사를 했고, 난 겉으로는 싫은 내색을 내곤 그만 하라며 친구녀석들을 밀쳐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이태일, 얌마 이자식! 근 2년만에 니 얼굴 제대로 보네!” “…야 숨막혀, 이것 좀 놔라.” 우리들은 그렇게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하고, 여기저기 싸돌아 다니면서 날을 샜고, 우리들은 결국 술이 꽐라가 된 채로 아침이 되서야 각자 집으로 돌아가게 됬는데, 아무래도 이런 방탕한 생활을 너무 오랜만에 즐겨서 그런지 도통 몸을 가누기가 힘들었다. 정말 내 몸이 내 맘대로 움직이지 않아주는 느낌이랄까…이렇게 말해도 알아듣지 못할테지만, 아무튼 그랬다. 난 아침부터 술에 취해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며 돌아다니는, 예를 들면 그런 아저씨들을 정말 몸서리 치며 혐오했건만 오늘은 내가 그렇게 싫어하던 행동을 스스로가 하고 있다는게 한심하고, 또 그냥은 오랜만에 이렇게 취할 때 까지 마셔본 술이 나쁘지 않다는 생각도 들고…그냥 여러가지의 복잡한 심정이었다. 어쨌든 그렇게 난 겨우 겨우 몸을 가누며 집 앞에 도착했고, 몇개 안되는 계단만 올라가면 드디어 집에 들어갈 수 있었는데…아 정말, 어째선지 도저히 그 자리에서 발걸음을 더 이상 뗄 수가 없었다. 한발짝이라도 그 자리에서 뗐다간 속이 메슥거리고 금방이라도 토할 것만 같아서 이 자리에서 움직이면 걷잡을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질 것만 같다는 그런 불길한 예감이 나를 사로잡아버렸달까? 아무튼 그랬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난 그렇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로 바로 우리집 몇걸음 앞에서 우뚝 멈춰 서서 멍하니 움직이질 못하고 있는데 내 뒤쪽에서 자그맣게 사람 발자국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아 젠장…하필 이런때에.” 그런데 재수 없게도 이게 무슨 재앙인지 그렇게 돌처럼 굳어있던 내가 지금 금방이라도 오바이트를 할 것만 같은 충동에 휩싸였고, 제발 내 뒤에서 서서히 가까워지며 들려오는 저 발자국 소리가 날 지나칠 때 까지만이라도 내 위장이 참아주길 바랬지만, 부질없는 짓이라는걸 이미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난 속으로 몇번이고 계속 기도에 기도를 거듭하며 눈을 꽉 감은채 속을 억눌러봤지만 오히려 그 덕에 속이 더 뒤집어지는 것만 같았다. …아무리 내가 이렇게 술이 꽐라가 되서 취해 있어도 공과 사는 구분할 줄 아는 S대 생이라며 늘 자부심을 느끼고 살아왔건만. 내가 왜 몇발만 더 가면 우리 집이 있는데도 가질 못하고 식은땀만 줄줄 흘리고 있는지. 난 겉으로는 애써 태연한 척 했지만 속은 뒤틀리고 꼬이는 것만 같은 고통에 시달렸다. 지금 오바이트를 하면 저 사람이 날 쳐다보겠지? 사진을 찍어 길거리에서 토하는 남자라고 인터넷에 뜨기라도 하면 어쩌지? 하며 내가 온갖 걱정에 시달리고 있을때 발자국 소리는 어느새 내 바로 뒤에까지 와 있었다. 난 크게 한숨을 쉬었고, 일정한 간격으로 뚜벅, 뚜벅 들려오던 그 발자국 소리에 난 ‘제발…제발….’하며 제발 좀 진정하라는 의미에서 배에 살짝 손을 댔고… “…우웨에에엑…!” 아 젠장… 이태일 이 병신, 또라이, 멍청이! 그렇게 참고 참았는데 결국 저지르고 말았다. 그것도 길거리에서, 아니 그나마 큰길가가 아닌 사람이 별로 없는 골목길인게 다행이라고 여겨야 하나…하지만 어쩌나, 이미 내 뒤에서 이어지던 발자국 소리는 내 바로 뒤에서 끊기고 말았고, 날 바라보는 그 누군가의 시선이 따갑게까지 느껴지는데. 이렇게 땅바닥에 쭈그려 앉아 이대로 고개를 바닥에 박고 모르쇠로 저 사람이 지나가길 바래야 하나, 아니면 뒤를 돌아서 제발 눈 딱 감고 모른 척 해달라고 싹싹 빌어야 하나. 지금 내 머릿속은 정말 1초에 수백가지의 생각들이 스쳐 지나가는 것만 같은 착각을 느꼈다. 술 따위는 이미 한번에 깨버린지 오래였다. 지금은 그저 길거리에서 오바이트를 하고야만 내 어리석음에 한번 더 비통함을 느낄 뿐…. 난 결국 수많은 고민 끝에 이대로 계속 뒤 돌아 보지 않은 채 모르쇠로 일관하며 저 사람이 그저 지나가 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마음 속으로는 계속 제발 지나가라, 지나가라 하며 수백번은 되새긴 것 같은데 내 뒤에서 멈췄던 발자국 소리는 도대체가 다시 들릴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설마 지금 이 상황까지도 계속 찍고 있는건 아니겠지? 하며 패닉상태에 빠진 난 속으로 정말 절규아닌 절규를 내뱉으며 자포자기한 심정으로 그렇게 길바닥에 쭈그려 앉아 있는데, 곧 몇초 뒤에 내 뒤에 멈춰선 누군가가 나에게 말을 거는게 아닌가? 그런데 무척, 아니 아주 많이 이상하게도…그런 내 귀에 들려오던 목소리가…너무나 익숙했다. “…혹시 태일 선배?” …아아, 오늘은 정말 재수가 더럽게도 없는 날이구나…라고 느꼈다, 그것도 아주 절실하게. |
예 그렇슴다 사실 단편이고 이 한 게시물로 이야기를 끝마치려고 했는데
이것저것 잡다한 설정들을 넣다보니 上 下로 나뉘어지게 되겠네요
下편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까 과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