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너를 만난다면 12
"안 지쳐? 안 지겨워? 이제 그만 좀 해"
때려도 아프지도 않고, 그래도 이렇게 계속 때리다 보면 언젠가 한 번쯤은 고통이 오지 않을까 그럼 깨지 않을까. 연신 뺨을 쳐대는 내게 물어보았다.
"말 걸지 마"
도와주지 않으면 내가 알아서 할 거야. 어떻게든 꿈에서 깰 거다. 보내달라고 아무리 소리쳐도 못 간다는 말만 반복해서 할 뿐, 말이 통하지 않았다.
언제까지나 그런 실랑이를 하고 있을 수도 없고. 지금쯤이면 깨고도 남았을 시간인데. 전에는 내가 그렇게 가기 싫다고 난리를 쳐도 꼭 그렇게 날 꿈에서 깨우더니 오늘은 왜 계속 이 자리인 걸까.
그래서 난 무슨 짓이라도 해야 했다. 어쩌다 하나 맞아서 깰지도 모르니까.
"보고 있자니, 내가 힘들다고. 그렇게 한다고 해서 갈 수 있는 게 아니야"
무슨 상관이람. 어떻게 갈 수 있는지 알려줄 것도 아니고, 자기가 보내 줄 것도 아니면서.
계속 팔을 움직여 뺨을 때려도, 볼이고 팔이고 어디 하나 아픈 곳이 없었다. 하... 팔을 내리고 한숨을 쉬었다. 나 어쩌지 정국아? 나 진짜 여기서 쟤랑 살아야 하나?
"어"
내가 생각하는 것까지 들리는 건가. 불공평해. 난 쟤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들리지도 않는데. 들렸다면 진작에 여기서 어떻게 빠져나가는지를 물어봤겠지.
남의 생각을 허락도 없이 읽지 말란 말야. 고개를 들어 그 아이를 흘겼다.
"부질 없는 짓 그만해. 내가 널 어떻게 여기 데려왔는데. 나에겐 시간이 별로 없다고"
맞다. 이 아이가 아까 곧 사라진다고 했지.
"있지. 나 궁금한 게 있는데"
"물어봐"
"넌 정국이야?"
정국이를 만난 순간부터 늘 이곳에 다시 와서 너에게 묻고 싶었다. 너는 누구인지.
"맞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고"
무슨 대답이 저래. 후- 입술을 내밀었다.
"그럼, 난 이제 어떻게 되는 거야?"
"...."
"내가 꿈에서 깨지 못하면, 저쪽에 있는 나는 어떻게 되는 거야?"
"잠만 자겠지. 평생 깨지 못하고. 잠만 잘 거야"
식물인간. 뭐 이런 게 되는 건가? 아니다, 실은 잠만 자고 깨어나지 못하는 건데. 그건 좀 너무했다.
"정국이는? 정국이는 왜 자꾸 기억을 잃는 거야?"
"내가 아까 한말 못 들었어?"
못 들었지. 들었어도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때 내 머릿속은 하얬고 얼른 여길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으니까.
"내가 그랬잖아. 난 그 아이의 기억과 추억을 먹고 산다고."
그러니까 그게 무슨 소리냐고
"바보야? 왜 이해를 못해"
저게 나보고 바보냔다. 아니, 나만 이해 못하는 거 아니야. 저거 가지고 대체 뭘 어떻게 이해를 하라는 건지.
"하...."
또 내 생각을 읽었는지 머리에 손을 올리고 한숨을 쉬었다. 자꾸 아까부터 나 무시하는데.
"내가 사라지지 않기 위해서는 그 아이의 기억을 삼킬 수밖에 없어. 그 아이의 기억을 내가 가져가야 한다고. 이제 이해돼?"
조금. 아주 조금 되는 것 같기도 하고. 그러니까 정국이가 기억을 자꾸 잃는 이유가 너 때문이란 거잖아.
"나쁜 놈"
"내가 왜 나빠. 내가 사라지기 싫은 이유는 너였는데"
그 아이의 말에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왜 나야.
"니가 항상 그랬잖아. 너랑 함께 가자고. 내가 좋다고. 나도 니가 좋았어. 너랑 함께이고 싶었고, 항상 니가 보고 싶었어"
"근데 넌 이제 사라진다며"
"...."
"뭐야 앞뒤가 안 맞잖아"
대답을 하지 못하고 고개만 숙인 채 꽃들만 손으로 쓸었다.
"저기. 왜 날 보내주지 않는 거야?"
"하..."
그 아이는 다시 한숨을 쉬었다.
"대체, 내가 아까 한 얘기는 하나도 듣지 않은 거야?"
듣긴 들었는데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도 안 난다니까 자꾸 물어.
"그 아이랑은, 꽤 깊은 사이가 된 거지?"
정국이가 나와 정국이가 무슨 사이냐고 묻는다. 꿈이면 쟤 얼굴 좀 바꿔주면 안 될까. 나 헷갈리는데.
"쓸데없는 생각 좀 하지마"
아오. 무슨 생각도 못하겠네.
"응."
"내가 분명 말했어. 니가 다시 그곳으로 간다면 난 그 아이의 기억을 삼켜버릴 거라고"
"내가 안 가면?"
"그 아인 더 이상 기억을 잃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지"
"그럼 니가 사라진다며"
"...어"
"내가 여기 남고 니가 사라져서 너한테 좋을게 뭐야?"
"자꾸 그런 식으로 내 생각 흩트려 놓지마. 니가 그래도 내 계획은 변하지 않아. 널 내 세계에 가둘 거야"
내가 언제 흩트려 놨다고. 난 단지 궁금할 뿐이었다.
그럼 난 정국이를 위해서 여기 있을 수밖에 없는 건가. 내가 깨어나지 않는 곳에서 여전히 날 기억한 채 내가 깨기만을 기다리게 두는 건 맞는 일일까. 그게 정국이를 위한 일일까.
"이럴 줄 알았으면, 시간 따위 주질 말걸 그랬어. 그때부터 널 묶어놔야 했어"
날 보고 한참을 한심한 눈길을 주더니 다시 고개를 숙이며 중얼거렸다.
"내가 좋다고, 아무 상관없다고, 다 괜찮다고 했으면서"
"...."
"난 널 위해 사라질 수도 있다는데, 니가 어떻게 나한테 이래"
"...미안해"
어쩌다가 이렇게 되었을까. 그때였으면, 4년 전이 바로 오늘이었으면. 난 기꺼이 여기 남는다고 했겠지.
아니 니가 사라진다는 말에 펑펑 눈물을 떨구었을 것이다. 정국이의 기억을 삼켜도 난 그런 애 모르니까 너만 나와 있어준다면 상관없다고. 그랬겠지.
상황이 이렇게 변했구나.
내가 정국이를 만나서, 너를 만나서.
"이제 너한테 난 필요 없잖아. 더 이상 그 아이가 상처받을 일도 없고, 나도 사라져 주겠다는데. 뭐가 문제야?"
그래서 지금 생각 중이다. 어떤 게 더 정국이를 위한 일인가. 너와 나를 위한 일인가.
"내가 문제야"
"...."
"여기 혼자 남아 나는 뭘 해야 해? 너도 없고 정국이도 없는 이곳에서 난 뭘 어떻게 해야 하는데?"
너는 내게 꽤 중요한 사람이었다. 너를 위해 현실에서 내게 고백을 해오는, 내게 사랑을 시작해 보자는 남자들도 다 져버렸고 현실과 꿈도 구분 못한 채 꿈속에서 허우적거렸다.
그만큼 니가 좋았다. 그땐 그랬다.
그래서 지금도 니가 여기 남아있고 나와 함께 여기 있는다면 너를 위해서, 정국이를 위해서, 그리고 나를 위해서 여기 남아있을 생각도 한다.
마지막 내린 결론이 그거라면 난 그렇게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넌 사라진다며. 그럼 난 혼자 여기서. 혼자 어떡해.
"...넌,"
"...."
"그 아이를 위해서 그 정도 못해?"
"...."
"니가 여기 남으면 더 이상 그 아이의 기억을 가져가지 않겠다잖아. 너만 날 위해 여기 남아준다면, 그렇게 해준다잖아"
아까는 허락도 없이 마음대로 내 생각을 읽더니 지금은 내 생각이 들리지 않는 듯 보였다.
단지 내가 궁금한 건, 나 혼자 여기 남아서 너에게 좋을 게 뭐냐는 거다.
"그 아이가, 내가. 널 위해 뭘 해줬는데. 넌 그거 하나 못 해줘?"
"뭐..?"
"니가 물었지, 그날 왜 없었냐고. 넌 몰랐나 본데. 그 아이와 니가 처음 만날 날은 니가 알고 있는 날보다 훨씬 전이야"
"...."
"난 니가 그 아이와 만나는 걸 원하지 않았고, 그 기억을 영원히 묶어버리려고. 그래서, 난 그날 널 내가 있는 곳으로 부르지 않았어. 니가 여기 오면 난 그 기억을 놔버려야 하니까."
"...."
"그렇게, 영원히 보지 않길 바랬는데. 내가 너무 착했지. 널 다시 보내는 게 아니었어"
"...."
"아니, 잘 되건가. 그 아이가 너에게 소중한 만큼, 넌 거기로 돌아갈 수 없을 거야. 맞지?"
맞다. 그동안 정국이가 얼마나 상처받았는지, 얼마나 힘들었는지 누구보다 잘 아니까.
그래서 내가 꿈에서 깰 수 있다 해도 쉽게 그 문을 나서지 못할 것이다.
"날 위해서가 안된다면, 그 아일 위해서라도 넌 여기에 남아. 혼자 그렇게. 여기 남아, 쓸쓸하게. 날 버린 대가야"
버린 적 없어. 그렇게까지 생각하지마.
"너 지금 내가 생각하는 거 하나도 안 들리지?"
"... 듣고 싶지 않아"
"왜?"
"들어서 내가 좋을 만한 게 아니잖아. 내가 듣기 싫어하는 생각하고 있잖아, 지금"
내게 시선을 치워 저쪽 허공을 바라보며 말이 이었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내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내가 정국이와 처음 만나게 된 것도, 정국이에게 관심이 간 것도. 너였는데. 너와 닮은 아이여서. 너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랬던 건데.
난 널 버린 적 없어.
"정국아"
한 번도 저 아이를 불러본 적이 없었다. 이름을 내게 알려준 적이 없었으니까.
이렇게 불러도 될까. 괜찮겠지. 니가 맞기도 하다고 했으니까.
"그렇게 부르지 마"
여전히 나와 시선을 맞춰주지 않았다.
"니가 듣기 싫어하는 생각이 뭔데?"
"니가 지금 하고 있는 생각"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
"말해봐"
"어차피 널 위해 사라질 각오했으니까, 나 하나 희생하고 널 그 아이에게 보내주는 거"
그런 생각... 한 적 없다. 정말. 그런 이기적인 생각 한 적, 단 한 번도 없다.
아까 니가 내게 차갑게 내뱉을 때도, 전혀 그런 생각 한 적 없다.
니가 나에게 어떤 존재였는데. 절대 아니다.
"나 하나만 사라지면, 너희 둘은 행복할 테니까"
"아니야"
"...."
"그런 생각 한 적 없어"
그 말에 참 고집스럽게 치웠던 시선을 내게 주었다. 놀라 눈이 조금 커져서는.
"난 니가 사라지는 게 싫은 거야. 넌 내 평생의 꿈이었어. 그땐 내 전부였고. 나도 너처럼 널 위해 모든 걸 버릴 수 있었어."
"...."
"그래서, 그래서 더 미안해"
"...."
"나는 니가 없는 이곳에서 혼자 있을 내가 걱정인 거야. 그때 내가 말했잖아. 니가 없어서 많이 슬펐다고."
"...."
"난 슬퍼지기 싫어. 내가 너 때문에 마음이 아팠으면 좋겠어?"
"...."
그 아이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를 떨구었다.
마음이 아팠다.
나와의 추억을 기억한 채 그곳에 혼자 남을 정국이도, 그로 인해 사라져버릴 저 아이도, 그 누구도 없는 이곳 혼자 남을 나도.
이게 과연 누구에게 좋은 일일까.
한참을 둘은 말이 없이 고개만 떨구고 있었다.
그러다.
그 아이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고 조금 멀리 떨어져 있는 내게 다가왔다.
"미안해"
내 앞에 앉은 그 아이는 손으로 내 눈을 가렸다.
처음 봤을 때 정말 작았는데. 언제 나와 함께 자라서 저렇게 손이 커졌을까.
그 아이의 미안하단 말에 뭉클거리는 이유는 왜 일까.
내가 더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너의 얼굴을 보려고 눈 위를 덮은 손을 잡아 내리려 하면, 내 손을 그러지 못하게 잡았다.
"너는 결국 그 아이를 위해 여기 남을 거야. 그렇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야 정국이는 더 이상 상처받지 않을 거고, 시간이 지나면 나를 잊고 새로운 사람을 찾아 더 행복하게 살수 있을지도 모른다. 내가 여기 남으면.
"아니야. 그 아이는 널 잊지 못해"
"...."
"평생 깨지도 않는 니 옆을 지키고 있을 거야. 그 아인 그럴 거야"
"...."
"내가 보내줄게. 널 좋아하니까. 그래서 보내주는 거야. 가서 꼭 그 아이와 행복해야 해?"
아까보다 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생각이구나. 아까 니가 말했던, 니가 듣기 싫어하는 그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그럼. 내가 좋아했던 아이는 너였다. 지금 내 앞에 있는 너였다.
"너와 함께여서 행복했어. 니가 와줘서 행복했어. 날 위해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나도, 니가,"
"잘가"
*
*
*
*
눈을 떴다. 갑자기 밝아진 시야에 눈이 자연스레 찡그려졌다.
"누나!"
내 옆에선 언제 깼는지, 걱정스런 눈빛으로 날 내려다보고 있는 정국이가 있었다.
"얼마나 걱정했는 줄 알아?"
걱정은 내가 더 했어. 근데 왜 내가 여기 누워있지? 분명 정국이가 누워있었는데
"나 왜 여깄어?"
"그걸 나한테 물어보면 어떡해. 하여간 잠도 진짜 많아. 난 니가 평생 안 깨는 줄 알고 얼마나 놀랐다고"
분명 아주머니가 돌아오시기 전까지, 정국이가 깨기 전까지 정국이 옆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자버린 거야?
"나 얼마나 잤어?"
"하루 꼬박 잤어"
하며 정국이는 내게 꿀밤을 놓았다.
"근데 너!"
내가, 기억나는 거야? 이제 기억을 잃어버리지 않는 거야?
"내가 기억나? 내가 누군지, 안 까먹었어?"
"아, 깜짝이야. 그랬으면 좋겠어요?"
내 목소리에 귀를 긁적거리다 살짝 입꼬리를 올리며 말하는 정국이에게 다가가 얼른 끌어안았다.
얼마나 걱정했는데, 깨어나서 날 못 알아보면, 나보고 누구냐고 물어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정말 막막했는데.
다행이다. 진짜 다행이야.
"미안해요. 많이 놀랐지?"
"응! 내가 얼마나 놀랬다고! 내가 집 앞에서 널 얼마나 기다린 줄 알아?"
"미안해. 이제 걱정하지 마"
시간을 주면 이렇게 빨리 후다닥 글을 쓸수 있는데 왜 방해냐고ㅠㅜㅠㅜㅠㅜㅠ
시간있을때 얼른 써서 올립니다!! 또 바빠질듯 싶으니까ㅜㅠㅜㅠ
쓰는데 왜 자꾸 울컥울컥 눈물이 나오는지ㅋㅋㅋㅋ 잔뜩 빙의해서 안돼 안돼ㅠㅠ 찌통 으흑ㅠㅠㅠ 이러면서 썼네요ㅋㅋㅋㅋㅋ
근데 그거 아세요?
이제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어요....
이번편은 20까지 못갈듯 싶어요! 룸메이트보다 그렇게 내용이 적은 편도 아닌데 분량을 큼직큼직하게 잘라서 그런가 벌써 끝이네요ㅋㅋㅋ
그래도 어떻게 한 15까지는 갈수 있을까요... 저 숫자 딱 떨어지는게 좋은데ㅠㅜㅠㅜㅠㅜ
끝이다... 이제 진짜.. 거의 끝이에요ㅠㅜㅠㅜㅠㅜ 또 이렇게 하나를 보내는 구나ㅠㅜㅠㅜㅠ
그럼 저는 또 더 바빠지기 전에 얼른 다음꺼 쓰러!! 가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암호닉~♥
민슈가님, 김남준님, 설날님, 런치란다님, 권지용님, 베베님, 알라님, 수슙님, 다이님, 얌냠님, 부릉부릉님, 꾹이님, 주르르륵님, 단미님, 꽃밭님!♥ 사랑합니다ㅠ 감사합니다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