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
마감 40분전이었다. 저 쪽 구석 테이블에 붙어있는 커플 한 쌍을 쳐다보았다가, 다시 한 번 시계에 눈을 돌렸다. 39분 남았다.
이 짓을 몇 번째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사실 쟤네만 나가면 삼사십분 정도는 일찍 문을 닫아도 되는데. 사장은 이런 것에 쿨했다.
대충 하고 퇴근해, 어차피 내일 되면 또 오픈 할 거.
하여간 커퀴들이 문제다 시발.
그냥 카운터 안 쪽에 있는, 키가 낮아서 앉으면 바깥이 잘 보이지 않는 의자에 앉았다. 안 보는게 속 편하지. 조금만 버티면 된다...
딸랑ㅡ
그렇게 멍하니 엉덩이를 걸치고 앉기가 무섭게, 카페 문이 열릴 때 나는 맑은 종소리가 울렸다. 제발 커플이 아니길 빌었다.
테이크아웃 해 제발. 앉지 마 제발.
안 들리게끔 재빨리 한 숨을 내뱉고는 무릎에 손을 짚으며 일어섰다.
"어서오세......어?"
존잘이다. 카운터 앞에 서 있는 남자는 존잘이가 맞았다.
심지어 옆에는 존나 예쁘고 몸매도 착한 처자가 팔짱을 끼고 있다.
그러니까, 이름이 ㅡ 박찬열. 박찬열이었다. 통칭 존잘 박. 존잘이.
여기서 존잘이는 존나 잘생김의 그 존잘이 맞았다. 이름 대신 불렀었다.
왜 내가 팔자에도 없는 존나 잘생긴 남자사람을 존잘이라고 서슴없이 불렀었냐면,
"..."
내 과외둥이 였으니까. 그게 벌써...거의 3년전이었다.
세상에, 존잘이 ㅡ 박찬열의 얼굴은 실로 대단한 것 이었다. 왜냐하면 3년 전 보다 더 잘생겼거든. 본의 아니게 인사를 하다 말고 얼굴을 감상한 꼴이 되었다. 어쩐지 옆의 처자가 나를 째려보는 것 같아서 얼른 멍청하게 벌어진 입을 닫았는데,
왜 아는 척을 안 하지?
뭔가 익숙한 듯이 ㅡ 자기 얼굴보고 놀라는 사람은 비단 나뿐이 아니어서 그런걸까 ㅡ 분명히 구면인 카페 알바생이 인사를 하다 말아도 그다지 개의치 않은 듯 시선을 올려 메뉴판을 보더라. 그래도 인사 정도는 할 줄 알았다. 시선이 일순 마주쳤는데도, 그냥 무표정하다. 조금 당황스러울 지경이었다.
심지어 너는 나를,
"아메리카노 아이스 하나요."
"오빠 저는 딸기 요거트 스무디요!"
좋아했잖아.
***
날씨가 오지게 좋았다. 이런 날 고삐리랑 마주보고 수학이나 파야한다는게 슬펐다. 그래도 박찬열 본인만 할까. 불쌍한 고3새끼...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나름 가볍게 박찬열이 사는 아파트 단지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집에 먼저 가 있으려나? 오는 길에 교복을 입은 무리들을 몇 보긴 했다.
"쌤!"
아니구나. 등 뒤에서 우렁차게 불러제끼는 목소리에 바로 돌아보았다.
커다란 게 막 뛰어온다. 키 존나 크다 진짜. 길다란 다리로 몇 번 성큼성큼 뛰니까 벌써 앞에 서 있다.
"야 넌 볼때마다 새삼 크다 진짜."
"ㅋㅋㅋ쌤이 쪼끄매서 그런거죠."
"존잘이 오늘 맞고 싶어?"
파이트 뜰까? 하고 패기롭게 말했다. 물론 올려다봐야 했지만.
아 쌤 그러니까 무서워요ㅋㅋㅋ
거짓말도 잘하시네, 막 아주 만만하지?
그러자 존잘이가 워워, 하듯이 양 손바닥을 펴서 달래는 제스쳐를 한다.
"평소엔 집 먼저 가 있더니 웬일로 뒤에 와?"
"아아, 쩌어기ㅡ서 쌤 올 줄 알고 기다렸는데, 좀 엇갈렸어요."
쩌어기, 하며 기다란 팔을 뻗어 저 쪽 너머를 가리킨다. 오, 나 기다렸어?
쫌 기특하죠? 그리고는 뿌듯하다는 모양새로 입꼬리를 당겨 웃는다.
근데 너 숙제는 다 하고 이러는거지?
"..."
"너 이 시키..."
"는 훼이크고, 당연히 다했죠."
오오올ㅡ하고 추임새 한 번 넣어주니까, 좋다고 또 웃는다.
성실 박 몰라요? 엣헴.
나는 일주일에 한 번 씩 그 애의 수학 과외를 했었다. 엄마 친구의 어쩌고저쩌고, 해서 지금 고3인 남자애 하나 있는데 이번에 모의고사 성적이 잘 안 나왔나봐. ㅇㅇ이 네가 수학 좀 잠깐 봐줄래?
그렇게 된 거 였다.
19살 남자애. 고3. 좀 걱정했었다. 막 존나 어색한거 아냐? 그냥 두시간 동안 수학만 풀어주다 가면 되나. 그래도 겨우 세살 차이니까 그렇게 어색하진 않겠지? 뭐라고 부르라 하지. 누나? 선생님?
선생님은 좀,
"안녕하세요ㅡ"
그런데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박찬열은 19살 남자애라고는, 그것도 고 삼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밝고 싹싹했다.
그리고,
"대박..."
너 진짜 존잘이다. 나 진짜 깜짝 놀랐어.
존나 잘생겼다. 나는 저런류의 감탄사를 필터링 할 수 없는 년이었다. 좋은 말은 대놓고 해주면 좋은 거 아냐? 가 모토였던 나는 그 순간에도 존나 솔직했던 것이다. 야 근데 솔직히,
존잘인데 어떡해...ㅎ 그리고 내가 왜 그렇게 대놓고 감탄을 했냐면, 실제로 저 정도의 일반인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며, 나는 철저한 수녀테크를 탄 여중여고의 산증인이었기 때문이다. 여튼 그 말을 뱉으면서 아차했는데, 그 말을 듣자마자 존잘이, 아니 박찬열은 막 웃어댔다.
진짜 온몸을 다 떨어가며 미친듯이 웃길래, 나는 조금 머쓱했더랬다.
왜...그런 소리 자주 듣지않아...?
"야...그만 웃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만 웃으라고..."
"앜ㅋㅋㅋ...킄ㅋㅋㅋㅋ고맙습니다ㅋㅋㅋㅋ쌤도,"
쌤도 이뻐요.
?얼굴에 대한 감상을 말했더니 칭찬을 받았다. 동시에 호칭에 대한 고민 또한 끝났다. 너 착한 애구나. 존잘이는 붙임성이 좋은 애였다.
그렇게 나는 박찬열의 과외 쌤이 되었다.
다행히 신은 공평했다. 존잘이는 공부까지 존(나)잘(하는)인 사기캐는 아니었다. 수학이 3등급이었는데, 가르쳐보면 뭐랄까.
"..."
"...알겠어?"
손가락을 튕겨 딱 소리를 냈다.
어허, 멍 때리지 말고. 다시 봐봐.
모르겠어?
"...아."
알겠어요.
약간 이런식의 대화가 반복 되었다. 존잘이는 참 특이한게, 마치 글씨 쓰는 것을 처음 보는 양 내가 쓰는 것을 물끄러미 보고는 했다.하긴 좀 그럴만도 했던게 보통 과외를 하면 옆에 나란히 앉아 설명해주지 않는가. 근데 나는 마주보고 설명을 했다. 다시 말해 글씨를 쓸 때 마주보고 앉아 박찬열에게 똑바로 보이게끔 거꾸로 썼다는 것이다.
"야, 손을 보지말고 풀이를 봐. 풀이를."
"...근데 진짜 신기하다. 어떻게 거꾸로 써요?"
글씨가 가끔 좀 비뚤어지긴 했는데, 나름 깔끔하게 또박또박 쓸 수 있었다.
그리고 박찬열은 그걸 써 내려가는 내 손을 쳐다보고.사실 생각해보면 사기캐가 맞는 것도 같다. 내가 한 번 설명해주면 곧잘 풀었거든. 커다란 덩치에 커다란 손으로 가느다란 샤프를 쥐고 수학문제를 푸는 걸 보고 있노라면 오히려 내가 좀 웃기고 신기하기도 했다.
꼭 다 풀고나면,
"짠. 맞죠?"
무슨 칭찬을 바라는 대형견 마냥 그랬다. 자알 했어ㅡ 하고 머리라도 한번 쓰담어주어야 했을, 그런 느낌이었다.
***
이런 느낌이 아니었다고. 그 나름 해맑고 풋풋한 남학생의 모습을 완전히 벗겨낸 것 처럼, 3년만에 우연히 마주한 존잘이는 낯설었다.
심지어 아메리카노라니. 하마터면 야 니가 무슨 아메리카노, 하고 웃을 뻔 했다. 딸기 스무디는 존잘이 너가 먹는 거 아니야?
라는 말은 입 속에서 바로 삼켰지만..ㅎ
어쨌든 분명히 눈이 마주쳤는데, 존잘이는 그냥 무표정이다. 진짜 생판 처음 보는 사람 보듯 하길래, 나는 잠시 얘랑 과외했던 게 코를 사기 전이었나, 하고 착각했다. 아닌데. 코는 대학 붙자마자 샀다. 내 코는 필러가 아주 낭낭하게 잘 들어갔다고 존나 자연스럽게 됐다고 부러움을 산 그런 코였는데, 여튼 존잘이가 혹시라도 나를 못 알아 볼만한 이유는 0에 수렴했다는 것이다.
얘가 이렇게 모른 척 하는 마당에, 나라고 해서 아는 척 할 만한 분위기가 아니었기에 그냥 여느 손님한테 하듯 주문을 받고 계산을 했다.
여자 친구도 있는데 말이야. 사실 수능까지 보고 좋게 빠이 빠이 한 건 아니라서, 좀 찔리는 것도 있었다.
"아메리카노 아이스랑 딸기 스무디 한 잔 나왔습니다 ㅡ"
그런데 좀 이상한 건,
아는 척도 안 하면서 왜 자꾸 나를 쳐다보냐 이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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ㅎ.....괴롭히기 번외 기다리시던 분들 죄송함미다....ㅎㅎ......갑자기 수위말고...그냥 이런게 쓰고시펐ㅅ어요..
과외학생 고삐리 차녈이...아마 상중하 해서 하편에는 불마크달예정...! 괴롭히기 번외는 아마 다음주쯤..갖고올것가ㅌ아여 이번에는 짤도 넣어보려고 텀블러도 뒤졌다는ㄴ..ㅎㅎ
아 맞다 암호닉 한분
☆예쁜이☆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당
헐 확인여러번ㄴ눌렀더니 세개나 올라갔어.......알림 세개갔어요?죄송함ㅁ다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