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생
벚꽃이 흩날린다.
온 세상이 분홍빛으로 뒤덮힌다.
내리는 꽃잎사이로 네가 아지러져, 가슴이, 먹먹해진다. 흘러가버리는 이 시간이 안타깝다.
내가 너와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은 얼마되지 않기에.
변백현은 나와 같은 고등학교, 같은 학급에 있는 동급생이다.
나는 원체 조용한 아이였고, 백현이는 밝고 눈에 띄는 성격이라 우리 사이에는 전혀 접점이 없었다.
그래서 1학년이 끝나갈 때까지 우리 사이는 말 한번 섞어보지 않은 사이였다. 아마 백현이는 나의 존재조차 몰랐을 것이다.
내가 백현이에 대해 알고 있는 건, 언제나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웃음을 터뜨리고 있었단 것과, 죽고 못사는 여자친구가 있다는 것 뿐.
그 아이를 왜 좋아하게 되었고 어떻게 사귀게 되었는 지 같은 건 잘 모른다. 그때의 난 사실 백현이에게 별로 관심이 없었다.
나에게 백현이는 그저 항상 웃는 아이, 친구 많은 아이, 그리고.......
가끔 터지던 청량한 웃음소리가 기분 좋던 아이
2학년이 되어서도 우리는 같은 반이 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그냥 '같은 반 애' 정도의 사이였다. 아마 쭉 그 정도 사이였을 것이다.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여전히 모르는 사이였을 것이고, 나는 변백현을 좋아하지 않았을 것이고, 그랬더라면 지금 이렇게 이 글을 쓰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일이 일어난 후부터 모든 것이 바뀌었다.
내게는 사고로 죽은 변백현 여자친구의 기억이 있다.
누가 봐도 서로 좋아하는구나-란 생각이 들게끔 예쁘게 사랑하던 그 아이. 예쁜 얼굴만큼이나 심성도 고운 아이였던 걸로 기억한다.
반에서 몸이 불편하던 친구를 항상 챙기는 것도 그 아이였고, 반 친구가 다치면 가장 먼저 달려가는 것도 그 아이였다.
쉬는 시간에 혼자 복도에서 쓰레기를 줍고 있던 모습을 기억한다. 결석한 친구의 필기를 대신해 주던 모습도 기억한다.
변백현이 수업시간에 엎드려 자고 있으면, 못 말리겠단 얼굴로 부드럽게 머리를 쓸어서 깨워주던 모습,
그리고 변백현이 일어나서 어떻게 했더라........나는 고개를 돌려버렸었나
그렇게 남 돕기를 좋아하던 그 아이는 남을 도와주다가 그만 사고를 당했다.
차에 치일 뻔한 아이를 구하려다가 자신이 대신 치인 것이다.
변백현은 그 날 이후 많이 바뀌었다. 눈꼬리가 접히며 예쁘게 웃던 미소는 사라지고, 대신에 아무 감정이 담기지 않은 무표정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학교에도 잘 나오지 않았다. 어쩌다 간혹 나오는 날이면 하루종일 책상에 엎드려 있어 얼굴 보기도 힘들었다.
계속해서 그런 식이자 백현의 친구들도 하나 둘 씩 찬찬히 떠나갔다. 어느 순간, 변백현은 혼자가 되었다.
기분 좋게 웃어재끼던 그 청량한 웃음소리를 더 이상 듣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조금 우울해졌다.
그제서야 깨달았다. 내가 변백현을 좋아한다는 것을.
왜 하필 나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쩌면 그 아이는 내가 변백현을 좋아하니까-란 단순한 이유로 자신의 기억을 내게 준 것일지도 모른다.
그냥 어느 날, 갑자기 모든 것이 떠올랐다. 그 모든 것이. 태어났을 때부터 백현을 만나고, 사랑하고, 사고를 당해 죽을 때까지의 모든 것이.
순간 환생........?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빙의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정확히 정의내리기가 좀 어렵다. 나는 공부를 잘하지 못하는 아이였다.
그냥, 원래부터 그랬던 것처럼 그 모든 기억을 가지게 되었다.
나는 백현의 여자친구이지만, 여자친구가 아니다.
나는 뭘까? 나는 나일까? 아니면 그 아이인걸까?
어떤 기억이 맞는 걸까? 나는 두 사람의 인생을 기억하고 있다.
확실한 건, 나는 백현을 사랑한다는 것.
그래서 지금의 백현이가 계속해서 가슴에 박힌다는 것.
하교하는 백현이를 뒤에서 좇아갔다.
그 아이를 조금이라도 더 보지 못하면, 가슴이 터져버릴 것 같아서, 그래서
조금이라도 놓치기 싫은데 눈물 때문에 계속 백현이가 흐릿해진다. 백현이는 어디 멀리 가 버릴 것처럼 내게서 성큼성큼 걸어간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의 발걸음이 멈춘다. 이곳에서 멈춘다.
집이 같은 방향이었던 우리가 매일 함께 등교하던 다리야 백현아. 우리 여기서 처음으로 손 잡았었잖아.
아무 것도 아닌 일로 싸웠던 날, 내가 여기 강에서 넘어지는 바람에 해가 질 때까지 한참동안 우리 함께 옷 말리면서 이야기도 나눴잖아.
기억나, 백현아?
그래서, 멈춘거야?
춤추듯 흩날리는 벚꽃이 내 가슴에 내려앉아서 아프다. 네가 흐느끼는 모습이 날 아프게 한다.
울지마 바보야
네가 우니까 나도 울고 싶어지잖아
지금까지 괜찮았는데, 다신 널 못보게 된다고 해도 참을 수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이제 너와 내가 한 시공간에 있지 않다는 사실도 받아들일 수 있었는데,
괜찮지 않아졌어, 너 때문에, 너가 울어서, 너 때문에 참을 수 없어졌어
태양이 눈부시던 한낮이 지나가고, 분홍빛 노을이 고요히 스러져가던 해 질녘, 너와 나는 이 강가에 앉아 있었다.
너는 아픈 어린시절 이야기를 하며 울었다. 눈가가 하늘만큼 붉어질 때까지 너는 울었다. 나는 그런 너를 묵묵히 듣고 있었다.
"백현아"
"....응"
"내가 신기한 주문 하나 알려줄까?"
".....뭔데?"
"있잖아, 슬플 때 있잖아, 울고 싶을 땐 말이야"
"응"
"그럴 땐 이렇게 코를 잡아. 울음이 나오려고 하잖아? 그 때 코를 잡으면 울지 않게 될꺼야."
"....정말?"
"응! 나도 어렸을 땐 진짜 많이 울었거든. 그 때 우리 엄마가 가르쳐 준거야. 엄마는 할머니가 가르쳐줬대. 그래서 나도 슬프려고 하면 코를 잡아"
".....그러면 나도 그렇게 할래"
"응, 그러면 울보쟁이 변백현도 씩씩한 싸나이가 될 수 있을거야"
"뭐야- 나 울보쟁이 아니거든! 지가 더 울보면서"
.....백현아 울지마
그 때를 닮은 분홍빛 노을 속 흐느끼는 너를 향해 나는 다가간다. 쓰다듬으면 항상 기분 좋게 내 손 사이로 살랑거리던 너의 머리가 분홍빛으로 변색한다.
"백현아"
네가, 나를, 돌아본다
가슴이 터질 것 같다
"울고 싶어질 땐, 이렇게 코를 잡아"
코를 감싸쥐며 나는 코맹맹이 소리로 네게 웃어보인다. 변백현, 울보쟁이 아니라더니, 나보다 네 눈가가 더 분홍색이 됬잖아.
내가 사랑했던 눈이 나를 향해 커다래진다.
내가 사랑했던 팔이 내게 다가온다.
내가 사랑했던 손이 나를 붙잡는다.
"너 뭐야"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기억을 가지게 된다는 건 무얼 의미하는 걸까
너는 나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이지만, 나는 너에게 가장 가까운 사람이 아냐
".......너 누구야"
나는 그 날로 백현이를 잊었다. 너를 향한 모든 울렁거림과, 네게로 밀려드는 모든 파도를 잊기로 했다.
너 또한 그 날 일을 잊은 듯 했다. 우리가 처음 말을 섞은 그 날을, 나와 너는 잊기로 했다.
나는 너를 모르는 척했다. 나는 너에게 그냥 동급생이 되었다. 그럼으로써 나는 너에게 상처를 줄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이대로, 모든게 잊혀가겠지
나는 고개를 묻고 눈을 감았다. 온갖 상념 속에서 헤메다 잠이 들었나 보다. 고개를 들었을 땐 이미 텅 빈 교실 창 밖으론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큰일 났다, 나는 급하게 몸을 일으켰다. 그 때였다, 내 책상 위에 놓여져 있는 작은 쪽지를 발견한 것은.
여러번 썼다 지운 듯 얼룩덜룩한 쪽지는 여러 번 꼬깃꼬깃 접혀져 있었다.
떨리는 손으로 쪽지를 펼쳤다.
내가 너무나 사랑했던 어린애 같은 너의 글씨
'코를 잡아도 울음이 그치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해?'
사랑하는 나의 백현아.
이렇게 내 글은 끝나.
시간이 지나면 너도 함께 지나갈 줄 알았는데, 너는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선명해져만 간다.
너는 어디에 있어? 어떻게 지내? 결혼은 했어? 아이는, 낳았고?
그러나 나는 기억 속의 너와 함께 살아간다. 나는 너와 내가 함께였던 그 강가에 혼자 앉아있어.
하고 싶은 말이 많았는데, 모두 할 수 없는 말 뿐이구나.
나는 너를 잃고 아직 고교생의 끝자락에 머물러 있어.
네가
보고싶어서
나는 아직 코를 잡고 있다.
end
안녕하세요!!! 쓰란 글은 안쓰고 다른 글을 들고 온 여나입니다!!!
세상에 엑소 리팩이라니요!!!!!!! 세상에
너무 기뻐서 글을 안 쓸 수가 없더라고요 8ㅅ8
그냥 바로 노트 부여잡고 생각나는대로 막 써버렸어요ㅋㅋㅋㅋㅋㅋㅋㅋ
설정도 그냥 쓰다보니 생각나서 그냥 그대로 넣음ㅋㅋㅋㅋㅋ
주인공이 백현이인 이유는 내 최애가 백현이라서ㅋㅋㅋㅋㅋ
여나 글의 특징 : 전혀 계획이나 구상 없이 바로바로 써내려가는 글
쨋든 쫌따가 원래 글로 돌아오던지 할게요
사랑해요(하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