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지극 정성이었지?"
그랬지..
"변백현이랑은 비교도 할 수 없게."
"하하.."
"아침마다 매점에서 우유 두개사는 건 일상이었고."
김종대의 능글능글한 말에 서준이가 예전 생각이 나는지 한쪽 입꼬리를 올리면서 웃었어. 맞아, 서준이는 우리 학교에서 정말 부동의 외모 원탑이었고 나는..
변백현은 김종대의 말에 많은 생각이 교차하는 듯 입술을 살짝 깨물었어. 나는 옆에서 어떻게 말을 해야할 지 모르고 그저 어색하게 웃었지.
"무슨 우유였더라.."
"..."
"뭐였지? 나 진짜 생각이 안나."
"..딸기우유."
내 말에 변백현이 반사적으로 나를 쳐다봤어.
"아-, 맞다. 그랬었지. 이제야 기억이 나네-."
김종대, 개새끼. 쟤 기억나면서 일부러 나한테 물어본 거였어. 말꼬리 죽죽 늘이면서 묻는 게 아주 얄밉기 그지없어.
"그 딸기우유를.."
변백현이 이번에는 김종대를 쳐다봤어. 김종대는 흥미롭다는 듯이 웃으면서.
"아침마다 얘가 갖다 바쳤잖아.
그러면서 김종대는 턱 끝으로 나를 가르켰고,
"박서준 책상에."
변백현은 허, 하며 헛웃음을 흘렸어.
김종대 말이 맞았어. 고등학교 때 서준이는 정말 잘생겼었고 나는 잘생긴 사람을 정말 좋아했지.
매일 아침마다 매점에서 서준이가 좋아하는 딸기우유를 두 개 사서 나 하나 너 하나 먹자며 생글생글 웃어댔고 서준이는 워낙에 둥글둥글한 아이라 바로 빨대를 꼽아서 내가 보는 앞에서 바로 쪽쪽 들이켜줬어.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우유먹는 아기 보는 마냥 뿌듯해했고 김종대는 차라리 아이돌을 좋아하라며 혀를 차대곤 했었어. 이 얘기는, 워낙 오래 전 일이라 김종대도 한 번 얘기한 적 없던 이야기었고 나도 백현이한테 굳이 할 이야기는 아니었기에 당황스럽기 그지없었지. 게다가 아까 서준이랑 그 난리가 있었던 건 김종대도 몰랐을거야. 몰랐으니까...말했겠지...
"..야, 너는 왜 쓸데없는 이야기를,"
"변백현씨 아주 심각해지셨어요?"
"야, 야.."
나는 괜히 아까 있었던 일 때문에 백현이 눈치를 살살 보며 김종대에게 하지말라는 표시를 보냈지만 김종대는 이미 재미가 들려서 개구지게 웃기만 했어. 서준이도 그냥 아무 말 없이 시선을 내리깐 채로 웃고 있고, 변백현은 정색하고 있고. 나는..눈치보고 있고.
"가자, 시간 됐다."
결국 백현이는 이야기와 상관없는 말을 꺼냈고 나는 아직 여유가 있는 걸 알면서도 자리에서 일어섰어.
백현이는 피곤한 듯, 아니..사실 기분이 안 좋은 거겠지만. 무튼 콧잔등을 손가락으로 꾹꾹 눌러댔어. 나는 옆에서 눈만 데굴데굴 굴렸지.
그렇게 병동에 도착해서 백현이는 바로 스테이션에서 차트를 챙겨 자리에 앉았고 나는 카트를 챙기는데,
"..아,"
뒤 쪽에서 들리는 소리에 뒤를 돌아봤더니 보미가 입술을 삐죽 내밀고 손가락을 만지작거려.
"왜, 찔렸어?"
"힝.."
"하나씩 뜯으라니까. 한꺼번에 뜯으면 찔리기 쉽단 말이야."
내 말에 예전 같았으면 밝게 웃으며 죄송하다고 했을 앤데, 오늘은 고개를 푹 떨구고 아무 말이 없어. 내가 말이 심했나..아닌데..
"혼내는 게 아니라, 여자애 손이 이게 뭐야. 응?"
"..."
"예쁜 손 망가질까봐 그러지. 보미야, 여자 손은.."
여자 손은...하면서 내 손을 봤는데, 딱히 내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아서 픽 웃었는데 보미가 갑자기 바닥에 눈물을 툭툭 떨궈.
"으이잉.."
어, 어. 당황한 내가 순간 입을 쩍 벌리고 그대로 굳어버렸어. 두 손은 허공에 어정쩡하게 떠 있고. 우리 병동이 분위기가 좋다고 소문난 병동이라, 위에서 태우는 것도 없었지만 원래 신규는 태움 없이도 힘든 법이거든. 근데 보미는 그 힘들다는 첫 3개월도 눈물 한 번 안보이고 항상 웃었었는데, 이게..무슨..상황..
"보미야, 보미야? 무슨 일 있었어?"
내가 보미를 살짝 끌어안고 등을 토닥여 줬더니 닭똥같은 눈물을 내 옷깃에 묻히면서 우는데 어찌나 서럽게 우는지. 오늘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싶었어.
내가 아무리 물어봐도 보미는 고개를 절레절레,
"혼났어? 응? 누가 우리 보미를 혼냈어."
"아니이.."
"그럼 왜 울어, 집에 무슨 일 있어?"
"아니요.."
투약하러 가야하는데,
"쌤..얼른 가요.."
그걸 알아차린 건지 보미가 고개를 들고 코를 흥,하고 들이키면서 말했어.
"그리구.."
"응?"
"오늘 저녁에 저랑 술 먹어요, 쌤.."
그래그래, 그래야지. 내가 알겠다며 보미를 몇 번 쓰다듬어주곤 서둘러 카트를 끌고 나갔어. 그나저나 뭐 때문에 저렇게 서럽게 우는지 마음이 불편해서 괜히 자꾸 손만 미끄러지고 머리 속엔 잡생각이 가득했지.
정신없이 투약을 끝내고 차팅도 다 해서 스테이션에 앉아있던 종인이한테 넘겼어. 종인이는 피곤한지 눈이 퉁퉁 부어서 머리에는 까치집이 두개나 지어져있었어.
"종인아, 너 머리에 까치 들어오겠다."
내 말에 종인이가 고개를 들어서 나를 쳐다봤어. 오, 쟤 좀 심각한데. 안그래도 까만 얼굴이 아예 흙빛이 되어서는 밥도 잘 안 챙겨 먹고 다니는 건지 얼굴도 반쪽이 됐어.
"점심은 먹었어? 점심시간 곧 끝날텐데."
"아니요, 아직.."
"얼른 먹고 와. 변백현이 너 밥 안 먹는거 싫어한다?"
내 말에 먹어야죠, 하면서 종인이가 자리에서 일어섰는데,
"어, 어..!!"
애가 순식간에 휘청 하더니 스테이션 난간을 겨우 턱 잡고 섰어. 그 커다란 애가 휘청거렸으니, 깜짝 놀란 내가 종인이 팔을 잡아챘어.
"왜 이래? 괜찮아? 너 잠은 잤어?"
"그냥, 좀 어지러워서.."
"너 밥은 먹고 잠은 자는거야?"
대답도 제대로 못하고 두 눈만 내리 감은 채로 인상을 살짝 찌푸리고 있어. 어떻게 해야되나 머리를 잠시 굴리고 있는데 뒤에서 한숨소리가 들려와.
"야, 김종인."
백현이야. 낮게 깔린 목소리에 종인이도 눈을 떴어.
"어, 선배님.."
백현이를 본 종인이가 몸에 힘을 줘서 일어섰어. 뭔가 위태한 모습에 나는 붙든 종인이 팔을 놓지 못하고 있는데 백현이 표정이 장난이아니야. 분명히 백현이가 자고 오라고 했을 텐데 종인이가 말을 안듣고 밤을 샜거나, 밥 챙겨먹으라는 소리를 듣질 않았거나, 그 중 하나겠지.
"너 내 말 귓등으로도 안 듣지?"
조용히 울리는 목소리에 종인이가 아닙니다, 하고 조그맣게 대답했어. 바들바들 떨리는 종인이의 손을 보고 백현이의 표정을 살폈는데..이거 어떻게 해. 나 어떡해..
"백현아, 먼저 눕혀야 될 것 같은데.."
맘에 안 든다는 듯 고개를 투둑, 꺾은 백현이가 종인이 팔을 들어서 제 어깨에 걸쳤어.
"세트 좀 챙겨서 당직실로 와줘."
으응, 눈치를 보며 대답한 내가 처치실로 들어갔고 백현이는 종인이를 데리고 내려갔어. 백현이 단단히 화가 난 것 같은데. 오늘 집에 가서 살살 기어야겠다 생각했어.
영양제랑 수액세트랑 챙겨서 당직실로 내려갔더니 백현이가 폴대를 세우고 있었어. 내가 온 걸 보곤 바로 수액세트를 받아서 폴대에 걸고 종인이 침대에 맞게 자세를 낮춰 앉아. 종인이 혈관 잘 안보이던데.
그래도 백현이는 단번에 찾아내더니 망설임없이 바늘을 찔러넣었어. 와 씨, 대단하다. 새삼 감탄하며 쳐다보고 있는데 세트 연결까지 끝낸 백현이가 반창고로 꼼꼼하게 붙이곤 일어났어.
그제야 눈을 슬며시 뜬 종인이가 입을 달싹였어.
"저, 선배님.."
"됐다. 쉬어라."
"저기.."
그 됐다라는 말이 다 됐다는 의미가 아니라 됐어, 이런 느낌이었어. 종인이는 몰랐던 걸까, 백현이가 밥이랑 잠에 엄청나게 예민하다는 것을.
백현이가 당직실 불을 꺼주곤 문을 소리나지 않게 천천히 닫았어. 아주 후배사랑 지극정성이다 싶었어. 후배가 여자였으면 질투났을 것 같기도하고.
"종인이 잠 제대로 못 잤지?"
"그런 것 같아. 요 며칠 전에 응급실에서 김준면한테 한 번 혼나고는 잠도 잘 안자."
"오빠가? 왜?"
"김종인이 실수했어."
"쟤도 자존심 한 번 끝내주네."
"나도 같이 까였거든."
"아.."
준면이오빠가 선배니까. 하긴 그러고보면 종인이는 항상 병동에서 쌤들한테 혼나는데 그건 일상일거야. 아마 자기 탓에 백현이가 다른 병동에서 욕 먹는 걸 보고 저렇게 밤을 새워 공부를 하는 건가 싶었어. 사실 백현이는 인턴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다른 동기들에 비해서 일을 똑부러지게 잘 하는 편이거든. 그래서 일을 하면서 선임한테 혼난 적이 있긴 했지만 대형사고를 쳤다거나 심하게 혼나거나, 그런 일은 없었어. 인턴 때 잠깐 싸이코같은 전문의를 만나서 고생 좀 하긴 했지만..
"사람 걱정하게 진짜.."
백현이의 깊은 한숨에 난 속으로 내 과거를 반성했어. 대학교 다닐 때 아침밥 안먹고 가서 실습하다 픽 쓰러졌을 때, 병원에서 첫 신규 때 의욕넘쳐서 밤새워 공부하다 다음 날 근무 중에 정신차려보니 병원 침대였을 때..그리고..또 셀수 없이 많지만 내가 골골거릴 때마다 저렇게 맘 쓰여했을 백현이를 생각하니 내가 백현이 수명을 몇 년은 갉아먹었겠구나 싶었어.
"오늘 퇴근하고 김종대가 보자는데?"
"걔 집에 안 갔어?"
"응. 걔 아는 사람 우리 병동에 또 있나봐."
"김종대 하여튼 발 넓어."
"지금 칠백이십삼호에 있어. 저녁에 일 없지?"
"일..어, 있다. 약속 있어."
내 말에 변백현이 의심스런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어. 나는 얼른 손을 내저었지.
"아냐, 서준이.."
"누구야?"
"보미. 우리 병동에 신규 알지?"
"으응, 그 엄청 해맑은.."
"응, 근데 무슨 일 있나봐. 저녁에 좀 보자더라고."
변백현은 내 말을 듣고 발걸음을 멈춰 세웠어. 내가 의아하게 백현이를 쳐다봤지.
"보미 여자야."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럼 뭐?"
"술 마시겠다고?"
아..그게 중요한 거였구나.
"술 먹고 내일 데이 뛰겠다고?"
"으응.."
"또 속 안 좋다고 아침 밥 거르고 나가서 점심엔 바빠서 밥 못 먹었다고 하려고,"
"아니..먹을게.."
"그리고 알코올 솜 뚜껑 열면서 구역질 하려고,"
"아니.."
"진짜, 혼나려고."
내가 니 환자냐...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꾹 눌러참으며 백현이의 눈치를 살살 살폈어. 잡혀산다, 잡혀살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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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거 보고 간호사하겠다고 하신 분들 손들어보세요..
얼른 맘 바꿔여..절레절레..진짜..간호학과...아닙니다..진짜..다닐 곳 못됩니당..
왜 안오냐고 그러셨죠....잠 쪼개서 자고 걸어다니는 시간도 아까워했다면 믿으시겠어요..?
강의실까지 걸어가는 그 시간이 얼마나 아깝던지..
그래도 무사히 종강을 하고 돌아왔답니당. 헤헤.
그리고 병원에는 저렇게 상큼한 간호사 없어여. 저도 하루하루 학년이 늘어갈수록 화장이 사라지고 있는걸요..
여러분..간호학과..오지마요..타과보다 전공 과목 수가 2배 3배라고 생각하시면돼여..님들..아세요? 간호학과 졸업학점이 다른 과보다 30학점 많다는 것을..?
근데 그 졸업학점보다 수업을 더 듣는다는 것을..
우리학교만 그런가 긁적
무튼 결론은 오지마요 간호학과 취직 백퍼에는 이유가 있어요..
글고 결정적으로 저런 의사도 없어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큐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배쿈 며칠 전에 공항에서 의사처럼 하고 나왔던데 수니 심장저격 타앙타앙
반갑습니당~~~~~^0^ 방학이니 신나게 달려봐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