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ay with me(english ver.) - Paris match
사거리 신호는 오늘도 요지부동이다. 핸들을 쥔 손을 쥐었다 펴는 사이 빗줄기가 더욱 굵어졌다. 하루 종일 제멋대로인 날씨가 이젠 이상해 보이기까지 한다. 다 와서 이 모양이야 왜. 구시렁대며 핸들 오른쪽 레버를 맨 위로 돌렸다. 와이퍼가 차창의 빗물을 빠르게 닦아냈다. 잠시나마 선명해진 풍경의 구석구석을 살폈다. 저 건너 편의점이랬는데. 흐릿하긴 하지만 편의점 앞에 검고 길다란 게 보이는 것도 같고. 저기 있는게 맞는 것 같은데...미간을 좁히고 혼자 중얼거렸다. 뒤차가 경적을 길게 울리고 나서야 신호가 바뀐 것을 알아차렸다. 급하게 속도를 붙여 가까워진 도착지점에서 뒷문이 먼저 열렸다. 검은색 캐리어가 터프하게 안착했다. 뒷문이 닫히고 조수석 문이 열렸다.
“비 오는데 급발진하기 있어요 없어요”
오늘도 변함없이 온통 까맣게 입은 내 애인도 터프하게 안착했다.
“늦은 거 아니죠?”
“묻는 말엔 대답을 안 하고 이 아가씨가,”
“헤헤”
“그냥 버스 타고 가면 된다니까…”
“쉬는 날인데 뭐 어때요.”
남준이 걱정을 한아름 담은 표정으로 쓰고 있던 검정 스냅백을 벗고 머리를 털어냈다. 해외 출장이 잦은 그가 공항 버스나 택시로 이동 중이라고 나에게 연락을 할 때마다 언젠가 한번쯤은 내가 데려다 주고 싶다고 생각했었는데, 마침 휴일인 오늘 그의 출국이 잡힌 것이다. 일기예보에서 그날 비 온다 했다며 위험하니까 안 된다는 남준의 만류에도 나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자기 고집 진짜 센 거 알아요?”
“네. 아니 근데 왜 이렇게 비를 맞았어요.”
“잘 오고 있나 확인하려는데 갑자기 엄청 내리잖아요 비가”
고슴도치처럼 비죽 비죽 솟은 머리칼 끝에서 물기가 흩어졌다. 어깨도 꽤 많이 젖었는지 축축해 보였다. 감기 걸리면 안 되는데. 조수석 글로브박스에 비상용으로 넣어둔 얇은 타월을 꺼내 건네었더니 가져갈 생각은 않고 얼굴을 들이민다. 물방울이 튄 동그란 콧망울이 찡긋거리며 내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남준씨 손 없어요?”
“네 이거 발이에요. 얼른 닦아주세요.”
기다란 열손가락을 팔랑대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 애인이 귀여워 보이는 나는 이미 중증 중의 중증이다. 꼼꼼하게 얼굴의 물기를 닦아내자 흐흐흐 목 안으로 잠기는 김남준 특유의 웃음 소리에 내 입꼬리도 따라 끌어올려졌다.
“이제 가요.”
“네. 시간 많으니까 천천히 운전해요.”
“남준씨는 눈 좀 붙여요. 요새 계속 못 잤잖아.”
“운전자 옆에서 자는 거 엄청 민폐라던데.”
“오늘은 특별히 봐줄게요.”
“안돼요. 당분간 못 볼 텐데 최대한 많이 봐둬야지.”
“그래놓고 완전 숙면하는 거 아니에요?”
“에이, 설마요”
*
설마는 언제나 사람을 잡지.
정지 신호에 한번씩 걸릴 때마다 나는 고개를 돌려 곤히 잠든 남준을 관찰했다. 내쪽으로 고개를 기대고 눈을 꼭 감은 모습이, 슬쩍 벌어진 입술 사이로 색색 숨을 내뱉는 것이 꼭 어린 아이 같았다. 잠자는 시간까지 모조리 쪼개가며 치열하게 일하면서도 나한테는 장난스럽게 투덜대는 정도일 뿐 힘들다는 내색도 잘 안 하려 한다는 걸 알고 있어서 어쩐지 맘이 짠해졌다. 뒷좌석에 둔 무릎담요를 조심히 덮어주었다. 다행히도 뒤척이거나 깨지 않는다. 스피커에서 은은하고 예쁜 재즈가 흘러나왔다. 운전할 때 들으라며 그가 만들어준 컴필레이션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곡이었다. 볼륨을 살짝 낮추었다. 가장 좋아하는 곡보다 더 좋아하는 그를 위해서.
복잡하고 꽉 차있던 도로가 어느새 한산해졌다. 주변의 풍경도 바뀌었다. 공항에 가까워질수록 무섭게 내리치던 빗줄기도 서서히 줄어들어 도착을 했을 땐 아주 가는 실비로 바뀌었다. 입구 가까이에 차를 대고 벨트를 풀었다. 빗길 운전이라 그런 것도 있고 혹시나 거칠게 운전을 해서 남준이 깰 까봐 신경을 곤두세웠더니 온몸이 뻐근했다. 어깨를 위아래로 움직거리다가 여전히 눈을 꼭 감고 있는 남준의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미동이 없어서 일단 그의 안전벨트를 풀어주고 귓가에 가까이 속삭였다.
“남준씨, 다 왔어요, 일어나야죠.”
“…”
“남준씨-앗!”
조금 더 크게 불러보려는데 순간 허리를 감싸는 손길에 놀라 바둥거렸다. 놓치지 않겠다는 듯 단단하게 끌어안은 남준이 내 목덜미에 얼굴을 묻고선 잠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사실 아까부터 깨어있었는데 눈을 못뜨겠어서 자는 척 했어..”
“으잉, 왜요?”
“미안하고 민망해서요.”
“뭐가 민망해요 남준씨”
“여자친구가 나 배웅해준다고 운전까지 하는데 나는 그 옆에서 잠이나 자고 있고, 나는 나쁜놈이에요”
“풉…알면 됐어요. 괜찮으니까 이제 들어가요.”
웅얼웅얼 말을 이어가던 남준이 나를 안은 팔에 힘을 더 주었다. 등을 툭툭 건드려도 소용이 없었다.
“이래서 같이 안 오고 싶었던 거야.”
“남준씨, 숨막혀요오”
“나 가고 나면 자기 혼자 왔던 길 되돌아가야 하잖아요.”
“…”
“그게 싫었던 건데…닥치고 보니 더 싫으네.”
“그러니까 여기서 바이바이 해요. 남준씨 비행기 타러 들어가는 거 보고 돌아오는 길은 나도 너무 우울할 것 같으니까. 얼른 잠 깨구요.”
내 대답에 남준이 몸을 조금 떼고 나를 내려다보았다. 담담하게 말하긴 했지만 막상 배웅을 하려니 기분이 이상해지는 것이었다. 그런 내 분위기를 감지한 건지 미안스러우면서도 지긋한 남준의 눈빛에 우리는 자연스레 입술을 맞붙였다. 따뜻한 숨이 섞이는 사이사이 그가 다정하게 나의 뒤통수와 어깨를 쓰다듬었다. 금방 다녀올 테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 대신 손길이 나를 달래주었다.
뒷좌석에서 캐리어를 꺼내든 남준이 모자까지 야무지게 고쳐쓰고선 창 밖에서 손가락으로 전화기 모양을 만들어 제 귀에 갖다 대곤 흔들거렸다. 바로 연락할게요, 먼저 가요. 들어가는 모습 보고 가겠다고 말해봤자 들어줄 것 같지가 않아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차를 출발시켰다. 사이드 미러로 그가 멀어지는 모습을 자꾸만 힐긋거렸다. 기분이 정말이지 멜랑콜리해서 음악 볼륨을 높이고 직진하는데 휴대폰이 띠링 울렸다.
잠시 멈춘 신호등 아래에서 문자를 확인했다. 기다란 엄지와 검지손가락으로 만든 작은 하트가 사진 속에서 나에게 고맙다고 말해주었다. 발신인은 [나의 애인]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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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체모를 글로 말씀드릴 것 같으면,
비가 와서요 근데 애들은 출국을 하고 그래서 걱정을 하다가 아 나도 배웅해주고 싶다(고 말하는 저는 만년 장롱면허소지자....) 궁시렁대다가 의식의 흐름대로 급하게 써본 조각입니다(마지막 줄의 손가락 하트를 눈치채주신다면 좋겠어요!히히히히). 올리면서 보니 엉망이네요 흐흐 그래도 즐겁게 썼어용! 함께해주신 여러분들 감사합니다! 오락가락한 날씨 가운데에서 건강 잘 챙기세요! 건강한 마음으로 출장가신 오빠(아님)들을 기다려보아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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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전기 님, 꾸기 님, 벨 님, 나무 님, 코코몽 님, 목도리 님, 모니 님, 콩 님, 고딕 님, 화양연화 님, 설날 님, 팥빵 님, 김남준 님, 모찌 님, ㅠㅠ님, 잊잉기 님, 립밤세통 님, 이봄 님(죄송해요 닉 신청해주신 걸 너무 늦게 확인했습니다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