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의 연애
스물다섯번째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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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아니 생각만큼 나는 나약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줄어들어야하는 것들은 더 늘어만 갔고, 능숙해져야 하는 것은 더 새롭고 낯설게 다가왔다. 집안일이 어느정도 정리가 되었을때 나는 비로소 회사일에 더 집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적응하지 못하는 내 자신에 자괴감을 느낄뿐 내가 꿈꿔왔던 탄탄대로의 삶과는 더 멀어져만 갔다.
***
일에 집중하려하면 잡혀버리는 회식에 걱정을 한아름 안고 회식장소로 발길을 옮겼다.
" 자자 우리 팀 성적이 좋아. 다들 이대로 잘 해보자고 "
팀장님의 말씀을 시작으로 여러번 짠을 하다가 하지도 못하는 술을 내려 놓았다. 회식을 하면 안 좋은 점이 있다. 대학과는 확실히 틀리다는걸.. 대학때는 나에 대해 오랫동안 알아왔던 친구, 선배들이 있어 마음을 놓고 술잔을 비울 수 있었지만 사회에선 차마 그러지 못했다. 모든일은 눈치껏 행동해야 했다. 술을 못마신다고 하면 왜 빼냐며 구박해왔다. 요리조리 눈치를 살피며 잔을 내려 놓았을땐 평소 노처녀 히스테리가 심한 주임님과 눈이 마주침과 동시에 놓았던 잔을 다시 들어 짠을 해야했다. 팀에서 막내인 나는 딱히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선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들을말은 듣고 흘릴말들은 흘리는 것, 그것뿐이다.
" 아미씨, 아미씨 회사생활 어때? "
" 네? "
" 조기취업했잖아. 한창 놀 나이에.. 어떠냐구 "
" 아.. 조금 어려운데, 괜찮아요! "
조금, 아니 많이 어렵고 하나도 안 괜찮은데 거짓말을 한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배운건 눈치와 선의의 거짓말들.. 오늘 우리팀의 성적이 좋았는지 다들 텐션이 업된 상태에 축배를 거절할 수 없었다. 속보다는 머리가 깨질듯이 아팠다. 밤새 작업하느라 잠도 못잤는데, 여기서 취하면 진짜 답이 없다. 정신 차려라. 김아미.
***
힘겹게 일어났다. 정신을 차렸는데.. 무거운 눈꺼풀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 어차피 어제 회식도 했고 오늘 토요일이니 조금만 더 누워있자.. 오랫만에 푹 잔 탓인지 침대가 폭신폭신하니 기분이 나쁘진 않다. 향긋한 향기도 나는게.. 혹시 꿈은 아닌가 싶다. 커튼을 치는 소리가 들렸다. 강한 햇살에 눈이 절로 찌푸려 졌다. 여전히 눈을 뜨기가 싫다. 엄마도 내가 5일동안 일때문에 고생한 걸 아시는지 깨우지 않으셨다. 난 잔뜩 인상을 찌푸리며 이야기 했다.
" ㅇ..엄마..나 콩나물 국..끓여줘여.. "
" ..누나 일어 났어요? "
" ... "
그토록 무겁던 눈꺼풀이 언제 그랬냐는듯이 번쩍 떠졌다. 무거운 몸은 날개라도 달린 듯 벌떡 일어나 졌다. 주위를 둘러보니 낯이 익은 듯한 벽지에 걸린 그림들이 눈에 띄었다. 그 후 금새 시선을 사로 잡은건 커텐을 마주 치고 있는 정국이였다.
" 나..나 왜 여기.. "
" 술을 대체 얼마나 마신거야. "
" 정국아.. "
" 우선 나와요. 해장해야지. "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제 분명 술을 많이 마시긴 했는데.. 계속 짠을하다가 그 이후에 기억은 없다. 머리를 대충 손으로 정리하고 쭈뼛거리며 방을 나왔을땐 정국이의 자취방이였다. 오랫만에 와보니 기분이 이상했다.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거실을 둘러보다 예전 정국이와의 일들이 생각나 가슴이 저릿했다.
" 어제 무슨 일 있었어? "
" 아뇨. 일은 없었고.. "
" 그럼 나 왜 여기에.. "
" 본가에 있는데 누나한테 전화오길래 받았는데,
회사 선임이라면서 취했다고 데리러 오라길래 데리러 갔죠. "
" 응? 니가 왜.. "
" 최근통화 제일 위에 있었대요. "
" 아.. 미안. "
" 미안하면 그거 다 먹어요. "
김이 모락모락나는 콩나물국을 내 앞으로 내미는 정국이였다. 생각지도 못하게 정국이에게 민폐를 끼쳣다. 미안하고 민망한 마음에 꾸역꾸역 밥을 먹었다. 전정국한테 이런 요리솜씨가 있었다니.. 민망함은 잠시 어느덧 내 앞이 그릇이 깨끗하게 비워졌다.
" 맛있죠? "
" 어?어..응. 근데, 넌 안먹어? "
" 아침에 본가에서 먹었어요. 누나 침대에서 자는데 같이 잘 순 없잖아요 "
" 아.. 미안.. "
" 자꾸 나한테 미안한 일만 생기네 그쵸? "
" 그러게.. 나중에 내가 밥 사줄게! "
" 저야 좋죠. 아! 누나 어머니한테 연락왔길래 문자 남겼어요.
친구집에서 자고 간다고 "
" 아.. 고마워.. "
회사에서 잠깐 봐왔던 정국이와는 또 다른 그냥 그 나이또래의 대학생 정국이 같았다. 학기초 정국이와 처음 만났을때가 떠올랐다. 오늘만큼은 일 걱정없이 그냥 하루를 보내고 싶다.
" 누나. 미안해서 어쩌지. 나 회의 가봐야 할 것 같아요. "
" 미안하긴.. 나도 가봐야지 이제. 고마웠어. "
" 오랫만에 봐서 좋았는데.. "
" 회사에서 맨날 보잖아. "
" 에이~ 인사할때 그 잠깐? 10초는 될라나 몰라.. "
" 야근할때 맨날 찾아오면서.. "
" 내가 안찾아가면 못보잖아요. "
" 일이 많아서 그래.. 일이 많아서.. "
" ..같이 나가게 가방챙겨 나와요. "
" 응 "
그렇다. 어쩌면 나보다 바쁠 정국이였다. 내가 야근할때는 귀신같이 어떻게 아는지 야근할때마다 커피와 간식을 들고 찾아와 나에게 힘을 준 정국이.. 항상 정국이가 날 찾아와줬지, 난 먼저 연락한 적도 찾아간 적도 없었다. 너무 고맙고 미안한 정국이였다. 잠을 잤던 방에 들어가 가방을 챙기고 나오려 할때 문득 벽쪽에 시선이 향했다. 침대를 가운데에 두고 양쪽 벽면에 가득 채워진 그림들.. 어디선가 낯이 익다 싶어 가까이 다가가 그림을 보기 시작했다. 낯이 익을 수 밖에 없었다. 이건 누가봐도 내 그림이였다. 고등학교 시절 미술학원 전시회에 냈던 그림부터 최근 공모전에서 상을 받았던 그림까지.. 것도 카피본이 아닌 원본이였다. 그림 끝쪽에 있는 내가 끄적여 놓은 사인에 살짝 번진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멍을 때리며 한참을 생각했다. 이게 왜 여기있지.. 한참을 생각하다 답을 찾진 못했지만 남모를 소름이 쫙 돋았다. 이유를 알 수 없었다.
" 누나.. 왜 안나..와.. "
" ..정국아 "
그림 끝쪽의 사인을 만지작 거리다가 덜컥 거리는 소리에 몰래 훔쳐보다 들킨사람처럼 화들짝 놀랐다. 무서울정도로 정색을 하며 나에게 가까이 다가오는 정국에 내 그림이 왜 이 방에 있는지 조차 물어 볼 수 없었다. 우리 둘 사이에는 알 수 없는 긴장감이 맴돌았다.
" 다 봤어요? "
" ... "
" 어때요? "
" ... "
" 예쁘죠, 그림들.. "
갑자기 바뀌어버린 정국이의 말투에 어찌할바를 몰랐다. 그저 놀란 토끼눈으로 정국이를 바라보았다. 정국이는 알 수 없는 말들을 늘어 놓았다.
" 누나.. 그거 기억하죠? 공모전 수상하면 나 소원들어 준다는거.. "
" ... "
" 그 소원 지금 말해도 돼요? "
" ... "
" 대답. "
" ... "
정국이의 말에 나는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지금 이상황이 얼떨떨하고 당황스러울뿐이였다. 정국이 집에 처음 온 건 아니지만, 정국이 방에 들어온 건 처음이였다. 정국이가 나를 좋아하고 있다는 것 쯤은 알고 있었다. 시선이 바닥을 향해 떨어지려다 자연스럽게 닿은 곳엔 내가 고등학교 전시회때 냈던 작품에게 꽂혔다. 저건 어떻게 알고, 어떻게 갖고 있는지.. 무척이나 궁금했다.
" 너.. 이거.. 다.. "
" 나랑 만나요. 누나. "
" 전정국. 너 무슨소리.. "
" 김태형이랑 헤어지고 나 만나요. "
" 너 어떻게.. "
" 나 누나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더 누나 좋아해요. "
" 전정국 "
" 그러니까 나 만나줘요. "
공포영화를 본 듯 등꼴이 오싹해졌다. 지금 전정국과는 말이 통하지 않았다. 무턱대고 소원을 들어달라는 말부터해서 언제 어떻게 알았는지 태형이와 내 사이까지. 머리가 지끈 아파왔다. 이 상황을 해결하고 싶은 마음도 컸지만, 빨리 끝내고 피하고 싶은 감정이 앞섰다. 몸을 틀어 자리를 벗어 나려 했을때 투박하고 큰 전정국의 손이 내 어깨를 움켜 잡아 쥐었다.
" 놔. "
" 내 얘기 안끝났잖아. "
" 나중에.. 나중에 얘기하자 정국아. "
" 얘기 하기 싫음 듣기만 해. "
" ... "
" 헤어져. 김태형이랑. "
" 말 함부로 하지마. 전정국. "
" 내가 그랬지. 누나 원하는거 다 들어준다고. "
" ... "
" 다 들어줬으니까 나도 소원들어 줘요. "
" 너 지금 무슨 소리하는건데. "
아플정도로 꽉 잡혀있는 어깨와 변한 전정국의 말투에 움찔했다. 여전히 알 수 없는 말들을 내뱉고 있는 정국이였다.
" 눈으로 직접 보여줘야 믿을래요? "
" ... "
" 나 분명 소원말했어요.
소원 들어주고 싶으면 그땐
누나가 직접 나 찾아와요. "
***
[ 김 태 형 시 점 ]
오후 2:00 아미에게서 온 마지막 연락이였다. - 오늘 회식있어. 불안한 감정이고 뭐고, 그냥 앞으로 계속 지금까지 해왔던 것 처럼 아미를 믿기로 했다. 충분히 믿을 수 있는 아이니까.. 하지만 저 짧은 연락에는 많은 의미를 해석하게 만든다. 오늘 회식있으니 연락 못하는건 물론, 술도 먹고, 집도 늦게 들어갈거야.. 라고 해석이 되겠다. 한숨이 절로 쉬어졌다. 시간이 지나 밤이 되었을때까지 연락이 없었다. 집에 들어갔으면 들어갔다고 연락이라도 해주었으면 좋겠다.. 핸드폰 최근 통화 목록에 아미 이름이 저 밑으로 내려가 있었다. 마음이 씁쓸하다.
차라리 친구였을때가 좋았을 뻔 했다. 라고 생각을 종종한 적이 있다. 마냥 기다리고 있는 내가 아닌 기다리고 있을 날 생각할 아미를 위해서다. 우리 사이는 틀어지거나 하지 않은 채 그냥 그 자리에 아무것도 하지 않은채 머물러만 있다. 앞으로도 뒤로도 아닌 한 자리에 계속.. 기다림과 믿음이 공존하는 자리에서..
***
전정국은 그 알 수 없는 말을 끝으로 집을 나 섰다. 난 한참을 멍하니 서 있다 눈을 감았다. 불연듯 꿈처럼 한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아픈 머리를 굴려 기억을 하려 애썻다. 발걸음을 천천히 옮겨 고등학교 전시회 작품 앞에 가까이 섰다. 고등학교때 미술학원 화실 안에 내 모습이 자연스럽게 그려졌다. 귓가엔 '이별의 온도 '가 잔잔히 들려왔다. 파노라마처럼 여러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 어두컴컴한 비상구 계단에 발자국 소리가 가득 채워 들렸다. 무언가 툭하고 떨어진 물건을 떠올리니 핸드폰이였다. 핸드폰을 주어 급하게 내려오던 사람에게 전해 주었다. 마치 생각이 현실이 된 듯 손끝이 뜨거웠다.
' 고마워요. '
비상구 작은 창문 틈새에 비친 달 빛 조명에 살짝 보인 눈끝이 촉촉히 젖은 어린날의 정국이의 모습이 생각이 났다. 나도 모르게 따라 눈물이 흘렀다.
***
집으로 돌아와 씻고 침대에 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저 생각나는 건 눈가에 눈물이 젖은 어린날의 정국이 뿐. 여러가지 생각이 겹쳤다. 정국이는 이미 날 알고 있었는지, 우연을 가장한 인연이였는지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아까 전 차가웠던 정국이의 모습이 겹쳐 머리가 아파왔다.
' 똑똑똑 '
" 아미야, 엄마 들어간다? "
" 네. "
집안일이 잘 해결되서 인지 엄마의 표정은 다시 예전처럼 밝아지셨다. 요즘은 동네에 내 자랑을 그렇게 하고 다니신다고 하셨다. 우리 딸이 S디자인에 들어갔다며.. 엄마와 함께 집을 나섰을때 동네 아줌마들이 딸 잘키웠다며 말을 걸어 오실때마다 뿌듯해 하는 엄마의 표정을 보면 힘들어도 꾹 참을 수 있었다.
" 회식은 잘 했고? 얼마나 정신없었으면 집에 안들어 와. "
" 아.. 술을 좀 많이 먹어서, 근처 친구 집에서 잠들었어.. "
" 일은 어때? 아직도 힘드니? "
" 그냥.. 조금요. "
난 또 엄마를 위해 선의의 거짓말을 한다. 내 손을 꼭 잡아오는 엄마의 주름진 손이 그동안의 고생을 대변해주는 듯 했다.
" 딸, 딸은 엄마, 아빠의 자랑이야. 알지? "
" ..자랑은 무슨, "
" 딸 때문에 우리 다시 잘 돌아왔잖아. "
" 무슨 나 때문이야.. "
" 다 너때문이지. "
" 아니라니까.. "
" 우리 딸이 S디자인 들어가서 전회장님이 도와주신건데..
딸 덕분이지 그럼 누구 덕이야. "
" .. 전회장님?.. "
" 전회장님 회사에서 자주 마주치니? 워낙 바쁘신 분이라 힘들겠지?
보면 감사하다고 매일 말씀드려.. "
" 엄마.. 지금 무슨 말 하는거야.. "
" .. 전회장님이.. 아빠 빚 정리해주셨잖아.. "
엄마의 말에 머리가 핑 돌았다. 오늘 하루는 알 수 없는 일들의 연속이였다. 내 머릿속에 생각나는 단 한사람은 정국이뿐이였다. 낮고 무섭도록 차가웠던 정국이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함참을 맴돌았다.
' 누나가 직접 나 찾아와요. '
' 누나가 직접 나 찾아와요. '
' 누나가 직접 나 찾아와요. '
' 누나가 직접 나 찾아와요. '
보통의 말
안녕하세요.
보텅이에여!!
네 제 머리 텅텅 비엇슙..ㅠㅠ
1일 1글이 아닌..1주일 1글이 되고 잇습죠..
죗옹해요ㅠㅠ
본격 서브남주(정국)가 분량 쩌는 글을 보고 계십니다!
원래 태형이가 남주고 정국이가 서브였는데..
이젠 어찌될지 저도 모르겠네요..ㅎ
이거 그래서 언제 완결난대영?????
늘어가는 댓글수와 암호닉수로 인해 매일 심쿵사 당하는 접니다.
저란 여자.. 심장이 남아나질 않아요!!!
독자님들ㅠㅠ
진짜 너무너무 사랑해요. 내가.
BGM은 이건 빼박 정국이 얘기다 싶어서 넣어봤어요.
가사에 집중해주세요!
물론..글에도..집중을..(애잔)
암튼, 주말 잘 보내세요!!!!!!!!*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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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천도 감쟈합니당(넙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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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암호닉 빠졌으면 꼭!! 말씀해주세요!!)
[ 사랑합니다/ 암호닉 ]
소금/현지/알비노포비/쿠야/쿠키/낭자/윤아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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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나/꾸꾸/민트/홍이/후니/꾹꾹이/슙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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