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출근해야 하니까 적당히 마시고 갈 줄 알았는데 몇시간이지나도록 다들 취하지도 않고 집에 갈 생각이 1도 없어 보였음
맥주병은.. 셀 수도 없고 일인당 두세병 정도씩 마신 것 같은데 원래 이정도 마시면 안 취하는 건가.. 대학교 다닐 때 동아리나 엠티같은거 아니면 술자리를 가질 일이 별로 없어서 이런 분들은 드물게 봄. 아주
박대리님이 한 두배쯤 귀여워진 것 빼고는 다들 별다른 반응도 없었음
나는 그냥 대충 눈치껏 요령껏 마심
10시 11시쯤 됬을 때 차장님이 계산하시고 가게를 빠져나옴
"2차는 어디루 가요~~? 차장님?"
"아, 너무 우리만 마셨나 미안하네 이사원 환영횐데"
"그러고 보니 그러네요 주인공을 모셔놓고"
"아니에요 말씀 편하게 하시고 저는 내일 출근때문에 먼저 들어가봐도 될까요..?"
다시생각해봐도 환영회가 아니라 술파티였던듯 함
내가 주인공 맞지?
"내일봐 이사원"
"잘가요 ~~ 이사원~~"
"그래요. 조심히 들어가요"
끝까지 존댓말하시는 차장님
술이 들어가셔서 말 놓아달라는 내 말은 자체 생략 하신건가
뒤에서 술집이름이 나오고 돌아보니 자기들끼리 신나서 걸어가는게 보였음
나는 다행히 집가는 버스가 있어서 버스타고 집에감
-
다음날 출근했는데 박대리님은 나보다 먼저 와계셨고 이대리님은 딱 시간맞춰서 오심 차장님도 출근하심
너무나도 신기한것이 다들 얼굴에서 전날의 흔적은 찾아볼수도 없었음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슬쩍 옆을 쳐다봤는데 넥타이 풀고 미간 지푸릿 한 차장님이 열일을 하시다가 나랑 눈이 마주침
민망시러워서 다시 나도 내 일함
좀 뒤에 회의실에서 회의를 한다고 하셔서
커피를 타서 회의 준비하러 회의실로 가던중에 안면 없는 선배분이랑 부딪혀버림
뜨거운커피는 내 옷에 다 쏟아졌고 순간 뜨거운것도 잊고 진짜 사과만 함
"죄송합니다 괜찮으세요? 제가 조심했어야 하는데 정말 죄송합니다"
옷에는 별로 튀지 않은 것 같아 보여서 다행이었음
"네 앞 잘 보고 다니세요"
"네.. 정말 죄송합니다"
내가 바닥에 쏟아진 커피를 보며 안절부절하는 사이에 대리님들이랑 차장님은 회의실로 오시고 계셨음..
"ㅇㅇ씨 왜 거기 앉아 있어~"
"커피를 좀 쏟았는데요.."
"괜찮아 ~괜찮아"
내가 종이컵이랑 쟁반을 들고 쭈뼛쭈뼛 일어났는데
가만히 계시던 이대리님이
"이리줘"
무심하게 말하시고는 내 손에서 컵이랑 쟁반 가져가셔서 나 대신 다시 탕비실로 가심
박대리님은 뭐야뭐야~ 젠틀맨인척~깐족가리시면서 그런 이대리님을 따라가심
"괜찮으신가"
"네"
"옷이 젖었는데"
"괜찮아요~"
"손이 빨간데"
"아니에요 ~"
"아이스커피를 탔나?"
"아니요"
"잠시"
그러더니 어디선가 얼음뭉치를 가져와서 내밈
"감사합니다"
자리가서 자켓에서 지갑을 꺼내 카드도 슬쩍 내밈
내가 ㅇㅅㅇ? 이러고 쳐다보니까
"옷"
"아니에요 괜찮아요~~"
무반응
"진짜 괜찮아요!"
하고 나는 카드를 다시 차장님쪽으로 밈
그랬더니 다시 집어넣고 회의실로 가심
회의실에 넷이 모였는데
박대리님이
"ㅇㅇ씨가 탄 커피도 못 마셔보고 ㅠ"
"아... 오다가 어떤 분이랑 부딪혀서'
"부딪혀? 누구랑"
자료보시던 이대리님도 물어보심
그 후 자초지종을 털어놨더니 누가그랬냐, 그래서 어쨌냐, 그사람 누구냐, 부둥부둥 내새끼 우쭈쭈하면서 대리님들이 달래주시고 그분 얼굴말곤 아무것도 모르니까 종이에 그림그려서 설명하고 그랬음 ㅋㅋㅋㅋㅋㅋㅋ
^이런상황이 파워어색^
차장님은 옆에서 듣고만 계시다가 회의를 시작함
회의중엔 또 미간 찌푸릿 ㅋㅋㅋㅋㅋ
회의마치고 화장 고치러 화장실에 잠깐 갔다 나오려는데
남자화장실앞에서 차장님 목소리가 들림
"신입한테 까탈스럽게 굴지마 너 무섭게 생겨서 겁먹어 우리애"
알고보니 아까 부딪혔던 그 분이 차장님이랑 좀 친하셨나봄 ㅋㅋㅋㅋㅋ 차장님 가신 거 확인하고 슬금슬금 나옴
ㅡ
점심시간이 되어 갈 때 쯤 박대리님이 쇼핑백들고 들어오심
"ㅇㅇ씨 이거 입어요~~"
"아 진짜 괜찮은데 감사합니다 ㅜ"
"비밀인데 이거 차장님이 사신거에요 ~"
"차장님은 저기 계신데요??"
"저한테 카드주시고 아무거나 하나 사오라고 하셨는데 맞을지 모르겠다 ~ 제 눈썰미를 믿어요"
덕분에 다행히도 점심은 깨끗한 옷 입고 먹을 수 있게 됨 ㅜㅜ
우리회사가 밥이 진짜 맛있음 .. 진짜 이거 ㄹㅇㅍㅌ..
그래서 항상 구내식당은 꽉꽉참 하필 직원 제일 많은 시간을 잘못 골라서 모르는 분들사이에서 혼자 밥만 꾸역꾸역 먹어뎀
그래도 맛은 있었음
다 먹고 남은시간 회사앞 카페에 감
거기 차장님이 주문하고 계심
아까 옷도 그렇고 얼음도 그렇고 감사해서 이거라도 계산해야겠다 싶어서 차장님이 지갑 꺼내시는 틈에
"같은거 두잔 주세요 !"
하면서 만원을 내밈
"내가 신입사원한테 커피를 얻어마시나 어떻게"
"옷도 그렇고 감사해서요"
"그거 내가 산건 아닌데 이건 잘 마실게"
하고 둘이 서서 뻘쭘하게 나오기를 기다림 ㅋㅋㅋ
커피가 나왔고 같이 가게를 나옴
같이 걷기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내빼기도 뭐하고
긴 다리로 성큼성큼 걸어가시는 차장임 뒤를
쫄래쫄래 잘도 따라 걸어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