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어나요, 집에 가야지"
자켓을 챙겨 일어나며 한손으론 내 머리를 헝클어뜨리고 카운터로 걸어가심
꽤 오래잔 듯 했음 자고 일어나니 그래도 어느정도 정신도 들고
박대리님이랑 이대리님은 가시고 나랑 차장님만 남음
무심하게 올린 머리를 몇번 쓸어 넘기고
"내가 술을 해서, 차는 못 태워 주는데"
"버스타고 가면 돼요 들어가보세요 "
"그래 그럼 내일 봐요"
차장님께 인사하고 버스정류장으로 걸어가고 있었음
한 20분쯤 기다렸는데 글쎄 갑자기 내가타야할 버스가 목록에서 사라짐 ^망했어요
망연자실중에 차장님이 언제오셨는지 정류장 기둥에 기대서 콜택시를 부르고 계심
총알같이 택시가 왔고 타라고 문열어주시고 머리 안 부딪히게 그 일명 지성 매너손이라고 불리는 그것 ㅇㅇ
그러더니 내 좌석쪽으로 고개를 불쑥 들이밀어 기사님께 돈을 건내심
날 보고 눈썹 씰룩 하시곤 차문을 닫으심
"ㅇㅇ아파트요"
하고 택시타고 집에 가고 있었는데
5분쯤 뒤에
[34바 9061]
[도착 문자]
흐뭇해 할 새도 없이 문자가 또옴
흐뭇해...죽음
택시에서 잠깐 졸아서 까마득히 잊고 집에가서 씻고 바로 잤는데
진동으로 해 놓은 휴대폰이 시간차로 계속 울려서 깸
[도착?]
[집이 먼가]
[답장]
난 편히 자고 있는데
괜히 자기가 태워준 택시 타고 무슨 일 날까 하절부절하는 차장님이 너무 귀여웠음. 죄송하기도
[까먹고 자버렸네요 도착 잘 했어요 쉬세요~]
저 뒤로는 답장 안 옴
다음 날 결국 늦잠을 자버림..
대충 씻고 나가서 버스에서 대충 쿠션만 몇 번 찍어바르고 눈치 슬금슬금보며 허리숙여 사무실로 들어감
툭
차장님이랑 부딪힘
"내 자리에 시말서 올려둬요"
시무룩하게 네.. 하니까
"농담농담"
하시곤 입꼬리 씰룩씰룩하고 지나가심
그제서야 나는 대리님들께 좋은아침을 알리며 자리에 착석함
그러다가 문뜩 피부만 한 얼굴이라는 게 생각남
잠깐 짬이 나서 급하게 폭풍화장
오늘은 다같이 나가서 점심을 먹게 됨
가장 먼저 해장국을 다 드시곤 박대리님에게 무언가를 달라는 손짓을 하시곤 계산하고 먼저 나가심
법카 ㄴㄴ해
다 먹고 대리님들이랑 같이 나갔는데
가게 옆 골목 에서 차장님이 나오심
ㄷㅂ스멜 살짝
폐 시꺼매지는거 아닌가 걱정 됨
업무보는 중이었는데 차장님 안계실 때 회사전화로
전화가 왔길래
"네 ㅇㅇ네트웍스 영업관리2팀 입니다"
"네 ㅇㅇ마트인데요 사무실이 몇 층이죠?"
"17층인데요 어떤거 배달 오셨어요?"
"일단 올라갈게요 안 계시면 직원분들이 대신 받을거라 하시던데"
배달 온 박스를 들고 가고 있었음
차장님이 들어오시더니 박스 뺏어서 탕비실로 가져가심
알고보니 헛개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도대체 몇 개를 주문하신 건지. ^^
차장님이랑 같이
한 뭉치는 그대로 두고
한 뭉치는 뜯어서 냉장고에 진열 해 둠
ㅡ
며칠 뒤에 내 실수로 팀에 피해를 입히게 됨
문서때문이었는데, 작은 오류도 아니라 얼굴도 잘 못 들고 다님
대리님들도 괜찮다고는 하시는데 썩 마음이 편하진 않았음
어딘가 다녀오신 차장님이 조금 불편한 표정으로 들어오심.. 나 대신 쓴 소리를 듣고 오신 듯 했음
자리에 앉아 자켓을 걸고 넥타이를 조금 푸시더니
연거푸 한숨을 쉬며 마른세수만 하심
그 모습에 나는 더 안절부절 못 함
저 정도로 화난 차장님의 모습은 또 처음이라
초조 불안 죄송 ..
"ㅇㅇ씨 나 좀 봐요"
차장님 자리앞에 가서 섰음
"중요한 거라고 말 안 했나"
"대충대충 하면 되나요"
"이러라고 뽑았어요?"
평소 다정한 말투나 행동없이
진짜 표정없이 차갑게 말하시는데
내 잘못이 실감나서 더 괴로웠음
대리님들도 슬쩍 한 번 보시고는 다시 각자 일 하심
"죄송합니다"
대답 뒤엔 대답없이 컴퓨터 타자만 두드리시는 차장님임
"계속 서 있을 건가, 일 안 해요?"
다정했던 반존대도 쌀쌀하게만 느껴졌음
다시 내 자리로 돌아가서
손에 잡히지도 않는 일을 풀어보려 애썼음
그 일 때문에 우리팀은 급격히 바빠졌고
팀 분위기도 별로 안 좋아짐
날이가면 갈 수록 피곤과 스트레스가 얹히는 대리님들, 차장님 얼굴과 나에 대한 자책으로 한 일주일 넘게 점심도 안 먹고 온갖 풀이 죽어 소리소문없이 출근, 퇴근 함
점심시간에 옥상 휴게실 구석에 서 있었는데
차장님이 불을 붙이며 들어오심
다 피워 갈 때 쯔음 고개를 돌리다 나랑 눈이 마주치심
그냥 그대로 내려가심
공허하고 허무한 느낌때문에 멍 때리고 있었는데
차장님이 다시 올라오심
양치를 하고 오신 듯 싶었음
"ㅇㅇ씨"
"네"
"회사 재미 없죠?"
"아니요"
"힘들어요?"
"능력이죠 뭐"
짧은 한숨을 한 번 뱉으시고는
"내가 잘못했어, 내가"
...
"내가 여직원 맘을 너무 모르나? 그래요?"
...
"괜찮아, 어깨펴고 다녀요 밥 좀 먹고"
그러더니 한 쪽 팔로 끌어당겨 안아 투박한 손길로 두번 토닥토닥 하시고는 다시 내려가심
안도감이 밀려오며
괜찮다는 한 마디에 온갖 감정을 다 느끼게 됨..
원래 눈물을 잘 안보이는 성격이지만
진짜 또르륵 흐를 것 같았음
박대리님도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아이고 우리 막내 하셨고
이대리님은 마주칠 때 마다 소리없이 끄덕끄덕
다행히 무거웠던 분위기도 곧 나아짐
ㅡ
야근이 잡혀 17층엔 우리팀만 남게 됨
늦은시간에 다들 피곤하실테니 커피를 사러 지갑을 챙겨 나감
"같이가요 이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