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을 들고 나가면 살릴 수 있지 않을까."
"탄약이 없는데. 지금 나가버리면 같이 죽는 거나 다름 없어요."
"그럼 이렇게 고민만 하다가 저 사람 죽으면."
"……."
"줘봐."
탄약이 없는 총을 들고있는 남자의 손에 들린 총을 겨우 뺏었다. 너무 무거운 총을 들고 문을 어깨로 밀고 나가면.. 총을 들고 있는 남자들을 총 맞은 남자를 확인하자마자 고갤 돌려 나를 보았다.
총을 들고 나온 내 모습을 보고 놀란 사람들은 총을 내게 겨누었고, 창고에서 총을 든 안효섭도, 떨고있는 아린이도 나온다.
어정쩡하게 처음 들어보는 총을 들고서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너무 떨려왔다. 나도 잃을 걸 다 잃어버렸으니 죽어도 상관 없다는 생각으로 영어로 총을 내려놓으란 말을 했고.
내 앞으로 안효섭이 서서 날 막아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자들을 내게 다가와 머리채를 잡았고, 아린이가 비명을 지른다.
안효섭이 무슨 말을 하며 남자들을 말리려고 했을까.. 곧 안효섭의 머리에 총을 겨눈다. 위협하려고 하는 건지 하늘을 향해 총을 쏜 남자에 안효섭은 총을 남자들에게 겨누지만, 쏘지를 못 한다.
총알이 없다는 걸 알았는지 웃는 남자들을 내 배를 힘껏 걷어 찼고, 바닥에 주저앉은 나에게 다가온 아린이가 울음을 터뜨린다.
남자들이 또 총 맞은 남자에게 다가가 발로 총상 입은 곳을 건드리기에 나는 안 된다고 소리치며 다가갔고, 남자는 내 뺨을 때린다. 그러다 탕- 하고 큰 총소리가 들린다.
"……."
총을 맞은 남자는 놀란 눈으로 나를 보았다. 내가 총에 맞은 줄 알고 놀란 듯 했다. 하지만.. 총을 맞은 건 내가 아니었다.
내 앞에 총을 들고 서있던 우크라이나 사람 한명이 쓰러지고, 이어서 탕-하고 두 번의 총소리가 들려오면서 나머지 사람도 쓰러진다.
"느낌이 싸해서 돌아왔는데. 나 돗자리 필까보다."
총을 들고있는 남자는 쓰러진 우크라이나 사람들에게 다가가 발로 툭- 건드린다. 그리고 쭈그리고 앉아서 그들에게 말을 건다.
"형 괜찮아요?"
"…어."
"대단하네. 유나름 저 기집애 오자마자 요즘 잠잠하던 새끼들이 갑자기 나타나지를 않나. 아니면 저년 몸속에 뭘 심어놨나? 그래서 여기 납치된 거 알고 사람 풀었나."
"……."
"쓸데없이 감정 버릴 때 아닌데. 일단 우도환 부터 살리고 봐야지."
이럴 때 만큼은 억울했다. 나는 정말 모르는 일이고.. 나도 저 사람을 살리려고 노력을 했는데. 그치만.. 저 여자에게 그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나도.. 내가.. 아니? 우리 아빠가 지은 죄가 있기에 저 여자에게 쓴 소리를 할 수가 없었다. 그저 말 없이 바닥만 보고 있을 뿐.. 나는 오늘도 죄인이 되어야 한다.
총을 맞은 남자는 다행이도 총알이 깊게 박히지 않아서 금방 치료를 할 수 있다고 했다. 박서준이라는 남자가 의사이기에 치료가 가능했다고 한다.
이렇게 다들 많이 다친다고 하는데.. 그럴 때마다 박서준이 치료를 한다고 한다.
"걱정 마요. 도환 오빠도 몸이 너무 튼튼해서! 괜찮을 거래요. 곧 깰 거예요."
치료를 받고 잠에 들었다고는 하는데.. 나는 이상하게 눈치가 보였다.
"미안해.."
"뭐가 미안해요..! 언니가 잘못한 건 없는데.."
"다 나 때문인 것 같아서."
"절대 아니에요..! 원래 이런 일 자주 일어났었거든요..! 저희 마을을 탐내는 사람들이...많아..서..."
"…다 미안해. 다 아빠 때문에 일어난 일이잖아. 내가 정말.. 미안해."
"미안하단 말도 아까 했음 그만해요. 당신 아버지한테 듣는 게 아니면.. 저희한텐 의미가 없어요."
"……."
불이 약해지면 이재욱이 불에 나뭇가지들을 던져 넣는다. 아린이가 이재욱의 눈치를 한 번 보고선 곧 내게 웃으며 말한다.
"언니! 내일은 마을 구경 시켜줄게요..! 어차피 장 보러 마을로 나가야 돼서.. 같이 가요!"
"…아, 아냐.. 나는.."
"같이 가요오~!!"
"…응."
"재욱아 너도 같이 가자!!"
"먹기나 해. 군고구마 먹고 싶다며."
"다 익었나아..? 아니 아니! 이게 문제가 아니지! 내일 같이 갈 거냐고!"
"안 가."
"왜!!!!"
아린이가 풀이 죽어서 이재욱을 바라보면, 이재욱은 여전히 차가운 표정으로 아린이를 바라본다. 그러다 나와 눈이 마주치고, 나는 이재욱에게 조심스레 말을 건넨다.
"같이 가요."
"……."
"장 보러."
"……."
"마을에 위험한 사람도 있다고 들었는데. 아린이랑 저랑 둘이 가기엔.."
"…알겠어요."
아린이가 정말!? 하며 이재욱의 팔을 잡으면.. 이재욱은 귀찮다는 듯 아린이를 밀어낸다. 그래도 아린이가 좋다며 애교를 부리자, 이재욱은 화를 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린이는 익숙한지 더 달라붙었고.. 이재욱은 아이씨! 하고 또 밀어낸다. 둘의 모습이 귀엽게 보였다. 아린이는 재욱이를 정말 많이 좋아하는구나.
새벽이 되었을까. 아린이는 옆에서 잠꼬대를 하고 있고.. 나는 잠이 안 와서 한참 천정을 보다가 침대에서 내려온다.
혹시나 아린이가 깰까봐 조심스레 내려왔고.. 천천히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장작에 아직 불씨가 남아 있었고.. 나는 그 앞에 앉았다. 그리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별들은 너무 많았다. 그리고 너무 예뻤다.
이상하게 눈물이 흘러 나왔다. 뒤늦게 아빠의 죽음이 떠올랐다. 너무 슬프지만.. 현실이 떠올라 너무 괴로웠다.
믿었고, 존경스러웠던 아빠였는데. 아빠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는 사실이 내겐 너무 충격을 주었다.
여태 정신을 못 차렸어서 슬프지도, 괴롭지도 않았었는데. 이제서야 마음이 진정 되면서 정신을 차릴 수 있게 되었다.
"지금 시간에 혼자 나와있다가 잡혀가면, 아무도 못 구해주는데."
갑자기 나타난 남자에 나는 놀래서 손등으로 눈물을 먼저 닦았다. 나같은 건 이 사람들 앞에서 울면 안 되니까.
우는 내 모습을 봤는지 남자는 말 없이 내게 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서 꺼져가는 불을 키운다.
나도 아무 말 않고 눈물을 다 닦고선 가만히 불만 바라보고 있다가.. 남자의 눈치를 보다가 천천히 입을 연다.
"…괜찮아요?"
"괜찮아."
"…미안해요."
"내가 총 맞았는데. 그쪽이 왜 미안해?"
"……."
"겁도 없이 왜 나왔대."
"…그래도 살려야 하니까요."
"그쪽이 죽을 수도 있는데."
"그쪽 살리는데 제 목숨은 안 아까워요. 진 빚이 있으니까.."
"말은 똑바로. 당신이 진 게 아니라, 그쪽 아버지가 그런 거지."
"…죄송해요. 죄송하고.. 미안합니다."
"아빠 잘못 만난 그쪽만 가엽지."
"……."
"고마워."
"…네?"
"아까 구해주러 나와줘서 고맙다고. 목숨 건 거잖아."
"…아니에요. 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내가 살았는데 뭐가 고마운 건데."
"그냥요.. 그냥 고마워요."
"……."
"…이름.. 물어봐도 돼요?"
"우도환."
"나이는요?"
"스물아홉."
"아아.. 근데 이름 되게 멋지다.."
"별로."
"멋진데..! 그.. 소설에 나올 것 같은 이름ㅎㅎ.."
"그래."
"……."
"가끔은 그렇게 좀 웃어."
"…제가 감히 어떻게 그래요. 저는 그럴 주제가 되지 않잖아요."
"……."
"…혹시 지금 몇시예요?"
몇시냐는 말에 우도환은 손목시계를 확인한다. 그리고 나지막히 '3시 20분'한다.
아, 새벽 3시.. 벌써 그렇게 됐구나.
"저는 시계가 없어서.. 이틀동안 지금 처음 시간을 봤어요."
"……."
"불편하긴 한데.. 그래도 나쁘지는 않네요."
내 말에 대답도 없이 일어나는 우도환에 '가시게요?'하면 우도환은 '어'하고 매정하게 가버린다.
그럼 나는 무릎을 모아 앉아서 불을 본다. 훨훨 타오르는 불은 마치.. 며칠 전에 나 같았다. 지금은 꺼져버려 불씨 마저도 사라질 것 같은데.
언니! 일어나요- 아린이의 목소리에 눈이 떠졌다. 잠이 깨고 나서는 아린이랑 장 보러 갈 준비를 한다.
그리고 안효섭도 같이 가자며 우리에게 붙었고, 부담스럽게 안녕 안녕! 잘 잤어? 하는 안효섭에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갤 끄덕였다.
"얘네 끼리 마을 갔다오면 쓸데없는 것도 다 쓸어와서 안 돼. 내가 가야 돼. 그취~ 시와니 형~~"
"네가 가도 똑같아."
"아, 그건 아니죠 형!! 그때 최아린이랑 이재욱 둘이서 장 보러 갔다가 과자만 사왔잖아."
"너는 가서 과일만 사왔잖아."
"아, 맞네."
"멍충이 ㅋㅋ."
"암튼! 나도 따라갑니다요!"
"어유.. 그래요, 갔다오세요. 나름이가 고생 좀 하겠네. 효섭이랑 아린이 옆에 끼고."
"아, 하하..네..."
"야 너 지금 네- 라고 했어??"
네- 라고 했냐며 콧방귀를 뀌는 안효섭은 키는 멀대처럼 커서 하는 짓이 강아지 같아서 귀엽고 웃겨서 웃음이 나왔다.
그래도 바로 표정을 굳히긴 했지만... 의자에 다리 꼰 채로 앉아 있던 여자가 나를 아니곱게 바라보다가 곧 화가 난 듯 성큼 성큼 다가와 내 목을 조르며 말한다.
"웃어? 너 지금 웃었어?"
"……!!"
"누나 미쳤어..!? 뭐하는 거야!"
효섭이가 여자의 손을 잡아 풀어주었고, 나는 목을 부여잡고 기침을 하기 시작했다. 너무 세게 잡은 탓에 숨 쉬기가 힘들었다.
"주제도 모르고 웃잖아, 저년이! 누군 이렇게 슬프고 괴로운데! 어떻게 웃을 수가 있어? 어떻게?"
"…그래도 너무 심하잖아!"
"…됐어. 너넨 정말 다 미친 거야. 나랑 이 기집애랑 둘이서 장 보러 갈 테니까. 너넨 따라 오지 마. 따라와. 유나름."
따라오라며 내 손목을 잡고 걷는 여자에 나는 힘 없이 여자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누군가의 목소리로 인해.. 여자는 내 손목을 놓아준다.
"둘이 장 보러 간다고? 사람 없는 곳에 가서 패기라도 하려고?"
"……."
"유나름. 이리와."
"가기만 해. 진짜 죽여버릴 거니까."
"일로 오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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냠냠 냠냠 냠냐아아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