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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KON/준환] 심해 05 | 인스티즈 


 

 

 

 


 

 

 


 


 

 

심해 속을 헤매던 소년들 


 

05 





척척하게 피부에 달라붙는 교복의 감촉이 선연했다. 물에 젖어 갈라진 머리칼에선 아직까지 뚝뚝 차가운 물이 떨어지는 중이었다. 한기가 온 몸을 에워쌌다. 얼음처럼 시린 물을 뒤집어 쓴 탓에 온 몸이 덜덜 떨렸다. 켈록켈록 파편같은 잔기침이 간헐적으로 터져나왔다. 송민호의 짓이었다. 


빌어. 갇히는 거 무섭다고. 하지 말라고 빌빌 기어. 싫다고. 무섭다고.


성량 낮은 목소리가 화장실 안을 웅웅 울렸다. 으르렁거리며 낮게 씹어뱉는 말. 이래도 안 해? 철썩. 아찔한 파열음이 일었다. 뺨을 후려치는 손으로는 폭압스러운 악력이 실려있는 채였다. 커다랗고 단단한 손아귀와 맞닿은 뺨에서 확확 열이 끼쳤다. 충격의 여파로 벽에 부딪친 척추께가 시큰했다. 우악스럽게 머리칼을 잡아채 뒤로 한껏 젖힌 송민호가 한 글자씩 씹어뱉었다. 말해. 빌어 보라고. 

송민호는 내 굴복을 보고싶어했다. 점증적인 붕괴를. 철저한 복종을. 겁에 질려 파들거리는 희멀건 낯을. 그게 제 맘대로 되지 않는 탓에 송민호는 근래 들어 분에 겨워 하는 날이 많았다. 퍼렇게 서린 안광이 분노의 여파로 파드득 구겨졌다. 여전히 입 밖으로는 아무런 말도 꺼낼 수가 없다. 할 말이 없는 탓이었다. 너에게 이해를 바라지 않는다. 우리는 아마 평생을 서로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너에게 해 줄 말이 없었다. 나는 이보다 더한 것을 평생 당하며 살아왔기에 이런 것으로는 이제 울음을 터뜨릴 수가 없었다. 

송민호의 날이 선 감정이 텅 빈 화장실의 기류에 스며 오싹함마저 느껴질 지경이었다. 추위에 흠뻑 젖은 몸이 바르르 떨렸다. 몹시 피곤했다. 준회가 해 주는 밥을 먹고 침대에 누워 한참을 무언가에 몰두하는 준회의 등허리께를 멍하니 시야에 담은 채로 서서히 잠들고 싶었다. 쳇바퀴 돌리듯 똑같은 하루 일과 중 가장 안온함을 느끼는 시간. 그 시간으로 가고 싶었다. 

팽팽한 기류가 흘렀다. 맞부딪히는 시선. 먼저 시선을 떼어내고 고개를 돌렸다. 성취욕과 정복감에 점철되어진 송민호의 눈 속이 쨍그랑, 깨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오만에 가득 차 여유를 부리며 지긋하게 웃어보이던 송민호는 없었다. 악에 받친 눈이 매섭게 번뜩였다. 짓씹듯 속된 욕지기를 뱉어낸 송민호는 꾹 다물린 입매를 꿈틀거리다 좁은 화장실 칸 안에 나를 넣어두고 문을 쾅 닿았다. 송민호를 따르던 무리 중 한 명이 낄낄거리며 화장실 문 앞에 대걸레를 걸쳐 놓아 문을 열지 못하게 막아놓은 것도 순식간이었다. 목구멍 안쪽 깊은 곳에서부터 메마른 기침이 와르르 터졌다. 폐부 깊숙히 시린 한기가 몰려들었다. 


매미가 우는 소리가 찌르르 귓가를 찔러왔다. 밖은 여름이고 뜨거운데 나만 시렸다. 추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추위가 서러워서 눈 앞이 한참을 뜨거웠다. 



*



화장실에서 나온 건 종례시간이 다 되어서였다. 청소를 하러 온 주번이 화장실 문을 열어주었다. 오랜 시간 물에 젖어 있었기 때문인건지 자꾸만 몸이 바르르 떨렸다. 학교는 조용했다. 텅 빈 교실에서 가방을 찾아 등에 둘러멨다. 벌써 날이 저물고 있었다. 유달리 긴 날이었다.

집에 들어서자 약약한 열기가 눈 앞에 일렁였다. 자맥질하는 혈류를 따라 감도는 미열에 머리가 아득해졌다. 감기에 걸리기라도 한 모양이었다. 바닥을 지근지근 밟으며 움직이는 발바닥까지 뜨끈뜨근했다. 교복을 벗을 힘도 없어 간신히 가방만 내려놓고 침대로 가 풀썩 엎어졌다.

급작스럽게 들려온 엄마의 씨근덕대는 비명이 여음처럼 남아 귓바퀴를 후려쳤다. 엄마가 집에 있는 모양이었다. 두려움에 일순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넝마처럼 너덜해진 이불을 보호막이라도 되는 양 몸에 감싸고 주섬주섬 구석으로 몸을 구겨넣었다. 곧이어 방 문을 부술 듯 쾅 열어제낀 엄마가 미친 사람처럼 씨근대며 준회의 책상을 뒤엎어 놓았다. 중간중간 추잡한 욕도 함께였다.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방 안의 물건들을 이리저리 던지고 부수어 놓는 꼴에 몸이 바들바들 떨렸다. 엄마는 아직도 약에 취해 있는 것 같았다. 희멀건하게 풀린 눈이 혼곤하게 헝클어져 있었다. 목에서 맵싸한 피비린내가 났다. 무릎 사이로 고개를 묻었다. 날카로운 비명처럼 터져나오는 목소리가 고막을 콱콱 찍어내렸다.

약에 취해서인지 엄마는 침대에 숨을 죽이고 앉아있는 나를 보지 못한 것 같았다. 다행이라면 다행인 일이었다. 악에 받친 비명이 머릿속을 장악하고 이내는 웅웅 이명처럼 울려왔다. 무엇이 그렇게 광폭한 분노를 이끌어내는지는 몰랐다. 엄마가 분에 겨워 집 밖을 뛰쳐나갈때까지 나는 완연한 죽음을 맞이하는 것 마냥 숨을 죽였다. 그것이 내게 있어 최선의 방법이라는 것이 씁쓸했다.



"생명, 보험 계약서…"



준회가 오기 전에 서둘러 방 안을 정리해야겠단 생각이 퍼뜩 들었다. 늘상 반듯한 저의 모습처럼 단정하게 정리되어 있던 책상이 난잡하게 헝클어져 엉망이 되어 있었다. 엄마의 손에 의해 방 안에 흩어진 종이 중 하나를 손에 들고 빠르게 읽어내렸다. 보험에 관한 서류였다. 빽빽한 글씨 사이사이로 준회가 여기저기 줄을 쳐놓은 흔적이 보였다.

문득 새아버지의 죽음이 스쳐지나갔다.

물증은 없었지만 새아버지의 죽음은 엄마와 엄마의 조력자가 꾸민 짓일 것이다. 새아버지가 가진 재산을 노렸겠지. 어쩌면 그의 생명이 가진 가치를 돈으로 환산해보며 손을 꼽았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추잡한 행위였다.

새아버지가 죽기 몇 주 전부터 엄마는 새아버지에게 생명보험을 비롯해 여러 보험을 들기를 권유했었다. 의아하고 강압적인 채근에도 새아버지는 그러마, 하며 사람좋게 웃었었지. 지병이 있어 원래 몸이 좋지 않다고 했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나쁠 건 없다며 새아버지는 엄마의 권유대로 따랐던 것을 기억한다. 그게 다 엄마의 추악한 속내였음을 왜 새아버지는 알아차리질 못했을까. 엄마는 당신의 삶을 앗아갈 올가미일 뿐이었는데.


준회가 무엇을 위해 이토록 노력하고 있는건지 어렴풋이 감이 잡혔다. 그때서야 무언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증식하는 균사처럼 마구잡이로 퍼져나가는 불안감. 가슴께로 커다란 추가 쾅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저녁을 정갈하게 차려놓은 뒤 작은 메모를 남겨두고 일을 갔을 준회였다. 유달리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방에서 이질감이 들었다. 무언가를 크게 놓친 것 같았다. 고개를 들어 방 안을 이리저리 훑었다. 준회의 가방이 없었다. 준회가 보물처럼 소중히 여기던 새아버지의 사진이 담긴 액자들도 사라져 있었다. 정갈하게 개여진 준회의 옷가지들이 들어차 있던 낡은 옷장은 텅 비어 있었다. 몇 벌 되지 않는 내 옷가지들만 덩그러니 있는 채였다. 난잡해진 책상을 덜덜 떨리는 손으로 마구 휘저었다. 없었다. 아무런 메모도. 반듯한 글씨도. 그 어떤 흔적조차도. 


준회가 집을 떠났다.


좁고 더러운 방을 끝내 혼자 나선 거였다.




*




준회는 며칠이 지나도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많이 아팠다. 학교엔 나가지 못했다. 열이 심하게 올랐다 가라앉았다를 반복하는 동안에도 준회 생각이 많이 났다.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에 대한 걱정보다 질펀하고 부박학 원망이 먼저라는 사실이 구역질이 났다. 준회가 없는 집은 지옥이었다. 나는 오롯하게 혼자였다. 더이상 준회의 마른 어깨죽지로 내려앉던 스탠드 불빛을 볼 수 없을까 겁이 났다.

준회가 없다는 사실이 나를 극명하게 찢어발겼다. 준회는 아마 제 아버지의 죽음을 밝혀내기 위해 고군분투를 하고 있을 것이다. 준회는 똑똑했다. 아마 지금껏 모아둔 돈으로 소송을 걸거나 변호사를 선임하거나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가 그토록 분노하고 절망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새아버지가 죽은 1년 동안 숨을 죽이며 준회는 그 날의 재앙을 되갚기 위해 그토록 노력했던 걸까. 잊기 위해서가 아니라 잊지 않기 위해. 아버지의 죽음을 밝혀내기 위해.

희미한 의식 속에서도 온통 준회 생각으로 가슴이 먹먹했다.

준회가 없던 1년 전의 삶이 얼마나 더욱 암울하고 처참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질 않았다. 준회라는 가족이 생긴 날부턴 기댈 곳이 있어 좋았고, 위로받을 곳이 있어 좋았다. 지독한 이기심이었지만서도 이 진창 속에서 나와 같이 호흡하는 어떤 존재가 있다는 점이 그토록 감사했다. 내가 그토록 이기적이었다.

가족이라서 괜찮을 줄로만 알았다. 절대 내 손을 놓지 못할거라 생각했다. 준회가 어떤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버텼을지 전혀 생각조차 해보지 못한 내 자신이 한심했다. 너는 어떤 표정으로 밤마다 속으로 울었을까. 잠든 날 뒤로한 채. 너른 등을 들썩이며 막아도 막아도 터져나오는 분함과 먹먹함에 얼마나 치를 떨었을까. 새까만 어둠 속으로의 추락이 얼마나 지긋지긋했을까. 얼마나.

버석하게 말라 허옇게 부르튼 입술을 짓씹었다. 애초에 없던 사람이었다. 금방 부서지고 떠나갈 허상이었다. 애초에 혼자였던 삶에서 가족이라는 존재가 생긴 것이 내게 있어선 지나친 행복이었던 건지도 모른다. 내가 누리기엔 버거운 행운이었는지도 몰랐다. 준회가 있던 1년을 꿈같은 시간이었다고 그저 그렇게 치부하며 기억 속에서 덮어야 했다.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 죽을 것 같았다. 눈을 떠도 감아도 혼자라는 사실이 지독하게 공포스러웠다. 이질적인 고요함이 와작와작 발 끝부터 온 몸을 씹어먹는다. 여러 겹으로 얽히며 암전하는 시야로 텅 빈 방이 휘감겼다. 여과없이 쏟아지는 외로움에 속이 울렁거렸다.




*




내리 일주일 간을 심하게 앓았다. 며칠간 아무것도 먹지 못해 빈 속이 쓰라렸다. 와중에 허기가 져 헐떡이는 자신이 우스웠다. 간신히 자력으로 걸음을 옮길 수 있을만큼 몸이 나았을 땐 울음을 속 깊은 곳으로 우겨담으며 죽을 끓였다. 준회는 항상 제가 늦을 것을 대비해 밥과 죽을 냉동실에 보관해 놓았다. 준회가 만들어 놓았던 죽이 냄비 안에서 뭉근하게 끓어오를 때마다 채 아물지도 못한 깊은 상처가 마구 헤집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사방이 준회였다. 준회가 스미지 않은 곳이 없어서 그것이 서러웠다. 앞으로 나는 어떻게 네가 없는 이 텅 빈 집에서 살아가야 한단 말인가.

절대 부서질 리 없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처참히 붕괴되는 기분은 끔찍했다.

죽을 어거지로 우겨넣고 나면 욱욱 토기가 일었다. 쑤셔넣듯이 약을 먹고 죽은 듯이 누워있었다. 엄마도 오랫동안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차라리 다행이었다. 머릿속에서 무언가 팽창해 깨질 것 같은 두통이 밀려왔다. 미말한 열기가 전신을 훑는다. 서러웠다. 혼자라는 사실이 사무치게 서러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

서러움이 복받쳐 올라 울음이 터질 것 같을 때마다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 쓰고 잠을 잤다. 준회가 슬픔을 참아내던 방법이었다. 눈을 뜨는 것이 고역이었다. 잠에서 깰 때부터 시작되는 악몽. 꿈에서 깨지 않는 기분이 들었다. 나는 며칠간을 그렇게 지냈다. 준회가 해놓고 간 죽을 간신히 삼키며 허기를 달랬고, 준회가 있던 방 안에 틀어박혀 준회가 슬픔을 참아내던 방법으로 슬픔을 참아냈다. 그렇게 지냈다.

혼몽처럼 옅은 의식 새로 현관을 열어제끼는 소리가 고막을 찔러올렸다. 또각거리는 구두소리가 나지 않는 걸 보니 엄마는 아닌 모양이었다. 혹시나 준회가 돌아온 것을 아닐까. 정신이 번쩍 들었다. 버석하게 마른 다리가 후들거렸으나 순간이었다. 온 몸에 너르게 퍼진 근육과 신경으로 거짓말처럼 힘이 들어갔다. 힘겨운 걸음을 옮겨 문고리를 향해 손을 뻗기 직전에 방문이 덜컥, 둔탁한 소리를 내며 제껴졌다. 문 앞의 사람이 누구인가를 확인하기도 전에 낮고 거칠게 갈린 낯선 목소리가 먼저 면전을 질타했다. 순간이었다.







"오랜만이야."







면식도 없는 남자. 근력 없는 무른 몸이 무게가 실린 두 팔에 떠밀려 바닥으로 곤두박질 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쾅, 하고 바닥에 세게 부딪친 머리가 웅웅 울렸다. 비릿한 웃음소리가 귓가를 콱콱 찍어내렸다. 먹은 것 하나 없는 터라 몸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망치로 머리 한 쪽을 얻어맞은 듯 깨질듯한 통증이 일었다. 눈 앞의 남자가 수없이 많아졌다 좁혀졌다 이내 어룽거린다. 시야는 캄캄해진다.






"많이 컸구나. 피붓결은 아직도 야들야들하네."






누구였더라. 어디서 본 사람이었나. 사고의 흐름은 이내 정지된다. 다짜고짜 바지를 찢어낼 듯 거칠게 제끼는 척척한 피붓결의 감촉이 온 몸을 휘감았다. 소름끼치는 살결이었다. 안광이 형형히 번뜩이는 눈이 뱀 같았다. 끔찍하게 지겨운 눈. 들끓는 욕정. 짐승의 그것과 진배없는.

단단한 팔이 손목을 붙잡아 머리 위로 결박했다. 상황을 아직 이해하지 못한 몸이 제멋대로 움직일 리 없었다. 잔뜩 경직된 몸을 아무렇게나 주무르고 쓰다듬는 커다란 손이 역겨워 구역질이 났다. 그제서야 덜컥 겁이 나 온몸을 비틀고 겹쳐지는 몸뚱이를 필사적으로 밀어냈다. 얌전히 있으라며 남자가 철썩 소리가 나도록 거세게 뺨을 몇 번 후렸다. 아릿한 고통. 입 안에서 씁쓸한 피맛이 났다. 덫에 걸려든 짐승처럼 푸드덕거리는 몸짓이 일순 멈췄다. 표피의 세포 하나하나가 비명을 지르며 온 근육을 긴장시켰다. 무참하게 짓밟히는 몸. 와르르 무너지는 시야. 차라리 정신을 잃고 싶었다.






"그래. 이래야지. 더 쳐맞기 싫으면 예전처럼 얌전히 있어."






끔찍한 목소리가 귓가를 꿰뚫는다. 손발이 마구 떨렸다. 남자의 몸이 무게를 실은 채 저를 내리눌렀다. 바닥에 쓸린 뺨이 따가웠다. 사타구니를 무식하게 주무르던 손이 이내 팬티마저 벗겨냈다. 경악에 몸서리치며 진환이 마구 발버둥쳤다. 남자가 흥분에 젖어 제 바지버클을 끌르는 틈을 타 옆의 탁자로 눈을 돌렸다. 다 낡아빠져 시든 자그마한 선인장 화분이 보였다. 죽은 새아버지의 것이었다. 생각할 새도 없이 팔을 뻗어 화분을 움켜쥔다. 퍽. 몸을 뒤틀어 잔뜩 힘을 실은 화분을 내리치자 둔탁한 비명소리가 터져나왔다. 무언가 찐득한 것이 잔뜩 묻어난 것을 알아차릴 새도 없이 바지를 추켜올리고 몸을 짓누르는 육중한 무게를 간신히 밀쳐냈다. 후들거리는 다리로 기어가다시피 해 어두컴컴한 현관으로 향했다. 문고리를 붙잡고 있는 힘껏 돌렸다. 비릿한 쇠냄새에 잠식당한 몸이 무거웠다.





아, 지긋지긋한 집. 이 어둠.




*




바람이 제법 찼다. 무작정 앞만 보고 내달렸다. 두 손은 역한 피냄새에 젖어있는 채였다. 온 몸에 힘을 주고 있던 탓인지 묵직한 통증이 전신을 훑었다. 뭉텅뭉텅 이리저리 끊겨 엉망인 호흡이 마구잡이로 내뱉어졌다. 호흡하는 법조차 잊은 것 같은 어설픈 들숨과 날숨에 갈비뼈가 팽창하며 가슴팍이 크게 울렁인다. 진정이 되지 않는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소름이 가시지 않은 등줄기로는 식은땀이 흥건했다. 극도의 공황상태. 

호흡과, 밤공기와, 점멸하는 가로등의 빛. 모든 것이 뒤엉킨다. 

몇 분을, 몇 시간을 걸은 건지는 알 수 없다. 막연하고 거대한 두려움이 도무지 씻겨나갈 생각을 않는다. 온 몸에 기름처럼 엉겨있는 시커먼 촉감과 역겨운 체향. 휘청이는 걸음에 목적지는 없었다. 그저 조금이라도 더 멀리. 그들이 나를 찾을 수 없는 곳으로. 



"…김진환?"



의아한 목소리가 문득 귓가를 후벼팠다. 왁자지껄한 소음 속에서부터 웅웅 울려오는 목소리였다. 문득 고개를 드니 부옇게 흐려지는 시야 사이로 쟁쟁한 네온사인 불빛이 여러 겹상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집이 있는 곳으로부터 꽤 멀리 떨어진 시내 쪽일 것이라 막연하게 짐작했다. 시끌시끌하게 웃고 떠드는 제 또래의 아이들. 그 사이로 커다란 인영이 저를 향해 다가왔다. 위압적이고 단단한 몸. 맹수 같은 눈을 번들거리는. 

송민호였다. 



"너 꼴이 왜 그 모양이야."



친구들과 함께 있었던 모양인지 시끌벅적한 웃음소리가 귓가를 마구 후벼팠다. 그제서야 뼈마디 어딘가가 어긋난 것처럼 아릿한 통증이 불길처럼 온 몸으로 번져나갔다. 얇고 날카로운 슬리퍼의 단면이 발등을 자극해 피부가 너덜해지다 못해 피투성이가 된 것도 그때서야 깨달았다. 산산조각이 난 화분의 파편들은 손바닥에 박혀 있어 여전히 피가 잔뜩 고여있는 채였고, 붙잡힌 채 끌려다닌 탓에 머리칼은 엉망으로 이리저리 뻗쳐 있었다. 바닥에 쓸린 뺨은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밤공기를 그대로 맞으며 한참을 걸어온 탓에 손가락으로 툭 치기만 해도 맥없이 그 자리에 무너질 것 같았다. 늘상 전혀 흔들림 없던 송민호의 눈매로 설핏 당혹감이 서렸다. 이상한 안도감이 들었다. 어차피 집에서 저를 강간하려던 남자나 송민호는 그 의도가 다를 바 하나 없는데도.

무슨 말을, 어떤 말을 해야 되는 건지 몰랐지만서도 목구멍 안쪽을 콱콱하게 막고 있던 응어리를 토해내기 위해 겨우겨우 입을 뻐끔거렸다. 마구 구멍이 나고 뚝뚝 토막난 어휘들이 문장을 구성하지 못한 채 하나 둘 허공으로 흩어진다. 의미를 제대로 전달하지 못한 채 꾸역꾸역 뱉어지는 일련의 단어들 사이로 언뜻 울음기가 스몄다. 갈 곳이 없어. 집에는 이제, 못 가. 겨우겨우 쥐어짜내지는 의미있는 문장. 형형한 조명이 메마른 송민호의 얼굴 위로 어른어른 흔들린다. 송민호의 미간이 일순 어그러졌다. 무엇을 뜻하는 지는 알 수 없다.



"나 오늘 먼저 집 간다. 니들끼리 놀아."



김진환 넌 나 따라와.

붙잡힌 손목이 아팠다. 머리칼 사이로 얼핏설핏한 빛이 흘러들어왔다. 빛. 두려움은 분쇄되어진다. 콱 억눌려 속에서 썩어가고 있던 길고 희미한 울음이 터져나왔다. 








더보기

이번 화는 평소보다 분량이 약 2배 가량 길어요! 끊을 부분이 애매하다 보니 조금 길어졌네요 ㅜ_ㅜ 

원래 저녁에 찾아오려다 일이 생겨서...T▽T 미리 올려보아요!  

6화는 3일 혹은 더 뒤에 찾아올 것 같아요! 슬슬 개강 준비를 해야될 것 같네요... 윽 제 방학... 도대체 어디로 사라진 건지^^... 

세이브 분량과 대강의 플롯으로 봐서 심해는 아마 15화에서 20화 전후로 끝날 것 같아요! 이제 약 1/3~ 1/4 가량 달려온 셈이네요! 

그치만 전 항상 분량조절에 실패하기 때무네...ㅎ 어떻게 될지는 잘 모르겠어요 ㅎ (노답) 

그동안 댓글 달아주신 [지난우디]님, [진환아]님, [뿌글렛]님, [뿌장]님 그리고 다른 독자분들! 

부족한 글을 읽어주시는 걸로 모자라 피드백까지 해주시다니... 여러분은 가브리엘.... 

다들 감사하구 다음 화에서 또 보아요! 다들 개학, 개강 준비 파이팅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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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뿌글렛
8년 전
독자2
결국 준회가 가버렸네요.. 느낌상 이 집이 지긋지긋해서 나간거같진않아요 진환이말대로 무언가와 싸우기위해서 나간것일까요..솔직히 저같아도 자신의 아버지를 죽음으로 몰아놓은 여자와 살고싶지않을거에요 유일한 구원이자 안식처였던 준회가 떠났으니 진환이가 얼마나 원망스럽고 괴로울까요. 그 낯선 남자는 어릴때 진환을 거쳐갔던 남자들중 한명인가요? 집까지 찾아온거보면 엄마와 관계가 있는사람인거같은데 정말 답네요..진환이 몰골을 발견한 송민호는 어떤기분이였을까요 평소의 시체같이 아무 표정없던 모습과 다르게 울것같은 표정과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모습에 쾌감을 느꼈을까요 아니면 또다른 이상한 느낌이 들었을까요. 재밌게 잘읽었어요 ㅠㅠ 신알신 뜨자마자 달려왔어용 다음편 기다릴게여~
8년 전
정새벽
꺄 반가워요 뿌글렛님! 첫댓이네요8ㅅ8 (감동) 와... 정말 글을 자세하고 꼼꼼히 읽어주신 것 같아 너무 뿌듯해요...ㅜㅜㅜ 오늘 하드 정리하다가 세이브 분량들이 통째로 날라가서 너무 슬펐는데^^... 뿌글렛님 댓 보고 힐링....♡ 맞아요 낯선 남자는 징ㄴ환이가 어릴적 엄마를 따라 사창가에 나갔을 때 진환이를 거쳐갔던 남자들 중 하나에요! 나중에 또다시 등장할 것 같아요 ㅎ_ㅎ! 최악... 글을 쓰면서 인상이 찌푸려졌던 부분이에요 ㅜ_ㅜ 송민호는 지금 많이 혼란스러운 상태겠죠? 그토록 굴복하는 모습을 보려고 애썼던 자기의 노력이 허무하리만큼 바닥에서 벌벌 떠는 진환이를 정면으로 마주했으니 말이에요 T▽T 흑흑... 이제부턴 민호의 비중이 더 커질거에요! 진환팬픽인데 송민호가 제일 많이 나오는 것 같네요^^... 주륵.... () 너무 꼼꼼히 피드백 해주시고 같이 글을 느껴주셔서 정말정말 감사해요!!! 세이브 분량을 전부 날린 슬픔에 글이 더이상 안 써졌었는데 다시 힘이 나요@'O'@!!!! 너무너무 감사하구 다음 편에서 또 보아요 뿌글렛님! 항상 감사하구 사랑합니당 제 사랑 받으세여 ♡>v<♡
8년 전
독자3
그 다음 편에 송민호 대처가 궁금하네요 ㅠㅠ 괴롭혀도 안 울던 애가 우니까 어떤 마음이었을지 글을 읽는 내내 진환이한테 감정이입이 막 되서 글썽글썽 8ㅅ8 표현이 너무 섬세해서 먹먹하네요 진짜 이런 멋진 글 아이콘으로 써주셔서 감사해요 특히 제가 사랑하는 준환에 민호 와 ㄷ 사랑해요 아 저 암호닉 뿌장이요 (부끄)
8년 전
정새벽
헉 뿌장님 반가워요 @'v'@!!!! 앞으로는 민호의 비중이 더 커질 것 같네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진환팬픽인데 왜 송민호가 제일 많이 나오는건지^^... 의문...ㅎ 민호야 미아내..!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이 감정 이입을 해주시고 같이 글을 느껴주시는게 글을 쓰면서 가장 힘이 되고 뿌듯한 부분이라 뿌장님 댓글을 보니 저 정말 감동에 눈물 글썽.... o<-< 쥬금.... 글의 개연성이나 문장력이 좀 딸리는 편인데 멋진 글이라고 해주시다니 몸둘바를 모르겠어여 흑흑... 넘 감격쓰...T▽T.... 저도 준환에 민호 사이드 엄청 좋아하는데 취향이 비슷한것도 너무 반가워요 뿌장님... 러브...♡ 더 좋은 글로 찾아오겠습니당 감사하규 댜랑해엿...! ♡>v<♡
8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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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전
정새벽
헉 맞아요 예리하세요..! 저 남자에 대한 이야기는 후에 또 나올 거에요 ㅎ_ㅎ! 꼼꼼히 읽어주시고 피드백 해주시니 정말 너무 감사하네요ㅜ_ㅜ 재밌게 읽어주신것만으로도 감사한데 이렇게 댓글까지 달아주시다니 와타시 너무 감격해서 기절.... 저두 너무 댜랑해여 독짜님 ♡TvT♡ 더 좋은 글로 찾아오겠습니당 좋은 밤 보내세요~~~~♡
8년 전
독자5
ㅠㅠㅠㅠ새벽님 진짜 글 잘쓰시네요 ㅠㅠ 1화부터 봤는데 쓰찬이라 댓달지도 못하구 ㅠㅠㅠㅠ저는 푹 빠지지 않는 이상 잘 안읽거든요 근데 새벽님껀 ㅠㅠㅠ♡ 너두 암호닉(지난질주)할래요!!브금도 너무 좋고 즐겨듣던게 나와서 깜짝놀랬어욬ㅋㅋㅋㅋㅋㅋㅋ 좋은 스토리 기대할게용
8년 전
정새벽
헉 아녜요 과찬이세요 ㅠ_ㅠ 재밌게 읽어주신 것 같아 너무 감사하네요 정말ㅜㅜㅜ흑흑 암호닉 신청두 진짜 감사함미당..♡'-'♡ 1화부터 읽어주셨다니ㅜㅜ 더 좋은 글로 보답할게요! 다음화에서 보아요~
8년 전
독자6
[진환아] 에요 ㅠㅠㅠㅠㅠ 시골에 다녀와서 못 읽었던 작가 님 글을 다시 읽고 또 읽는 중이에요 이 5화도 한번 쭉 훑어읽은 다음 한번 더 뜯어읽었어요 역시 작가님 문체에 감동하고 가요 ㅠㅠ ♡ 진환이는 늘 그래왔듯이 안쓰럽고 안아주고 싶네요 정말 그 낯선 남자 부분을 읽을 땐 치가 떨리는 것 같았어요 윽 진짜 ㅠㅠ 떠나간 준회도 보고싶고... 민호는 진짜 혼란스러울 듯 싶고... 다음 6화도 차근차근 잘 읽겠습니다 좋은 글 감사드려요! ♡
8년 전
독자7
헐 대박ㅋㅋㄱㅋㅋㅋ 정주행중이에여 꾸르
8년 전
독자8
남자뭐엥요ㅜㅠㅠㅠㅠ진환아ㅠㅠㅠㅠㅠㅠㅠㅜ미노ㅠㅠ진환이 좋지 그치 이 이우ㅏ얻구거ㅏ우ㅜㅠㅠㅠㅠ진환아ㅠㅠㅠㅠ행벅하자ㅠㅠㅠㅠ
8년 전
독자9
어뜩해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그 남자뭐야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초ㅣ악의 상황에는 안갔으면...ㅠㅠㅠ그럼 우리 죄없는 진환이가 더 불쌍해지니깐ㅠㅠㅠㅠㅠㅠ
8년 전
독자10
흠.. 준회는 왜 나간걸까요 그 이후에 다시 진환이를 찾으러 올까요? 민호는 무슨 생각으로 진환이보고 따라오라 한건지.. 아직까진 의문투성이네요!
8년 전
독자11
ㅠㅠㅠ준회가 나가다니........다시 돌아오길 바라며 다음 편을 마저 읽으러 갑니다!
8년 전
독자12
준회가 아빠의 죽음을 밝히고 엄마와 조력자를 처벌하고 빨리 진환이 한태와서 행복해졌으면 좋겠다ㅜㅜ 민호도 진환이 안괴롭히고 진환이랑 준회 만나게 해줬으면ㅜㅜ 민호야 너의힘을 보여줘!!
8년 전
독자13
헐...어떻게...힘들게 한 상대한테까지 도움을 청할정도면...
8년 전
독자14
헐 준회가 사라지고 송민호!! 그래 애초에 송민호는 진환이를 혐오하거나 그런건아니었어 뒤틀린 관심이지
8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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