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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병자리 전체글ll조회 495l 1

​블로그에서 동시 연재 중입니다:)

 

 

 

 

트라이앵글.02

 

 




불가지 눈
불가지(不可知) : [명사] 알 수가 없음

 

 




 

 



어제 날씨가 좋았던 이유는 오늘 비가오기 위함 이었다. 날씨는 다시 쌀쌀해졌고 바깥엔 추적추적 내리는 비가 바닥에 꽂혔다. 두꺼운 빗방울들은 바람을 타고 경수의 방 창문을 세게 두드린다. 듣기 싫게 울려대는 알람소리에 경수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잡고 신음을 터트리며 일어났다.




"어! 씨 깜짝이야"




옆에 이불도 덮지 않고 말려 올라간 티에 배를 반 정도 내민 채 자고 있는 백현을 보고 경수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무래도 어제 얘한테 내 방에서 자라고 했던 거 같은데 라는 생각을 채 다하기도 전에 관자놀이가 쿡쿡 찌르는 듯이 아파왔다. 원래 같으면 벌떡벌떡 일어났을 텐데, 술을 많이 마신 탓에 더 자고 싶다는 생각만이 머리를 가득 채운다. 알람시계를 들고 고개만 숙인 자세로 눈을 감고 있던 경수는 안돼안돼 하며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부엌에서 나는 치지직하는 소리에 투명한 계란흰자가 하얗게 익어간다. 경수는 오늘도 평소와 같이 똑같은 시간에 일어났지만 어제 먹은 그릇과 소주병을 치우느라 시간이 조금 지체됐다. 계란후라이를 하기 직전 백현을 흔들어 깨웠지만 어느새 거실 쇼파에 누워서 자고 있다. 밥을 다 차려낸 경수가 방으로 가 가방을 들고 나왔다.




"백현아 저기 밥 먹고 학교 가. 그리고 빨리 일어나서 준비해 그러다 지각하면 나도 몰라! 난 병원간다"

"어..어으...음.."




시계바늘은 7시2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형형색색 우산을 들고 등교를 한다. 얼굴엔 피곤한 기색이 역력하다. 아이들은 경수가 병원을 가는 방향에서 걸어온다. 혹시라도 찬열을 마주치면 모른 척 지나갈 생각에 오늘도 어김없이 이어폰을 꽂은 경수의 고개는 푹 숙여져 있다. 병원 앞에 도착한 경수는 우산을 접고 문을 당겼다. 끙- 힘을 주어 이번엔 문을 밀어보는데 문에 쓰여 있는 영업시간이 눈에 들어온다. 젠장.

"하..."​


평일 영업시간은 9시~ 라는 걸 본 순간부터 좌절감이 솟구친다. 병원을 와본지 오래여서 병원이 여는 시간도 까맣게 잊은 채 집 밖으로 나온 것 이다. 좀 더 잘껄..하는 생각이 든 경수는 접은 우산을 든 채 애꿎은 병원 문을 발로 차버렸다. 쭈그려 앉아 시간을 확인하자 9시가 되려면 아직 한 시간은 족히 더 있어야 한다. 다시 집으로 갈까 했지만 그것도 귀찮았다. 숙취에 편두통이 심해져 속도 미식거리고 약국 또한 지금은 문 열 시간이 아니고 기다리는 게 최선책이다. 폰을 만지작거리며 한참을 쭈그려 앉아 있는데 비가 와서 그런지 자신 말고 오는 손님도 없어 보이고 지나가는 인적도 드물다. 드문드문 보이는 가게들도 아직 문을 열지 않았고 근방에 고등학교는 경수가 다니고 있는 남고 하나뿐 이라서 교복을 입은 아이들도 이제 보이지 않을 시간이다.



다리가 저렸는지 자리에서 일어난 경수의 눈앞에 갑자기 어디서 나타난 건지 모자를 푹 눌러쓴 남자가 서 있다.

멈칫한 경수는 뭐야, 하고 한 발짝 옆으로 물러났다. 그러자 앞에 서 있던 남자도 같이 한 발짝 옆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겠는가. 다시 한 번 반대로 움직이자 같이 움직이는 남자의 반응에 경수는 다시 반대로, 또 반대로, 경수가 내딛는 그대로 남자도 같이 움직였다.  쎄-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순간적으로 온 세상에 정적이 흐르는 듯한 소름끼치는 느낌에 경수는 자기도 모르게 침을 소리나게 삼켰다.

우연이겠지 라며 자신을 다독였다. 살은 없어 보이지만 큰 체격과 큰 키의 남자는 얼굴까지 올려다 볼 엄두도 안 나게 위압감이 든다. 경직된 자세로 서있던 경수의 등줄기에선 땀 한 방울이 흘러내리고 이마에는 어느새 식은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점점 뒷걸음이 쳐지는 건 왜 일까. 손에 잡고 있던 우산을 더 세게 움켜잡자 손바닥에도 땀이 흥건하단 게 인지됐다. 긴장했다는 걸 몸이 반응하고 나니 이 상황은 아무 것도 아니다 아무렇지도 않다 라고 자신을 위안하던 경수는 다가오는 공포감에 어쩔 줄 몰라 했다. 아무 말 없이 서 있는 이 남자가 움직이기 전에 도망가야 한다는 생각은 이미 아까부터 머리를 가득 메웠는데 마치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이 정지되고 이 이름 모를 남자와 경수 단 둘만 있는 기분 이다. 치닫는 공포에 사실 경수의 발이 꿈쩍도 안 한진 오래다. 눈동자를 굴려보지만 어떻게 이 시간에 아무도 없을 수 있나 싶을 정도로 개미새끼 한 마리 안 보인다. 그때 경수를 가로막고 있는 남자의 뒤로 건너편 건물에서 휘파람을 불며 나오는 중년의 남자가 보인다. 힐끗 이 쪽을 쳐다본 중년 남자는 멈칫하며 다른 곳으로 시선을 피했다. 자신의 앞에 있는 남자도 뒤에 누군가 있다는 걸 알아챘겠지 하며 속으로 나마 한숨을 돌렸다. 경수는 침을 한 번 삼킨 후 앞만 보고 그대로 달려갈 생각이었다.

뜨겁게 달궈진 막대기가 왼쪽 배를 통과하는 고통과 함께 정신을 잃기 전 까진.









바쁘게 울려대는 사이렌소리가 계속해서 머물고 있는데도 이 동네엔 그 흔한 구경꾼들이 거의 없다. 목격자는 정신없이 본 것들을 경찰에게 얘기했다. 집이 아닌 상가에서 나온 이유를 묻는 경찰의 질문에 남자는 이 동네가 재개발에 들어간 후로 요즘 계속해서 땅값이 올라 기분이 좋아져서 거의 사무실에서 살다시피 한다고 말한다.



"학생들 등교하고 나면 여기 인적 거의 없지 이쪽 재개발되면서 사람 다 빠져 나갔어 여기 건물도 다 허물 텐데..뭐. 학교있는 저쪽 동네야 좋아져서 모르겠는데 이 동네는 나도 한 번씩 담배 피러 나오면 소름 돋을 때가 있다니까 무서워"



살짝 과장하는 듯한 남자의 말이었지만 경찰은 끄덕였다. 거의 일 년 전 쯤부터 재개발에 들어간 이 동네에 인적이 드물 수밖에 없다. 땅만 사놓아도 개발만 되면 크게 이득을 볼 수 있다는 말에 하나 둘 씩 옆 동네로 이사를 갔고 개발이 다 되기 전까지 돌아오지 않는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이 동네에 땅 값이 치솟아 일을 안 해도 될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경수가 오늘 가려던 병원도 그 중 하나였다. 어릴 적 경수가 감기를 걸릴 때나 엄마 손을 잡고 오던 이비인후과였다. 사실 코뼈는 백현과 술을 마시기 전 부터 나은지 오래였다. 조금씩 욱신거리긴 했지만 정형외과까지 갈 정도가 아닌 건 자기가 알았다. 병원까지 온 건 그냥 시간 떼우기 용이었던 것 이다.



"내가 오토바이 타려고 딱 하는데 건너편에서 뭐가 철퍼덕 하는 거야 분명히 덩치 큰 사람 밖에 없었는데.. 그 남자 앞에 애가 있었더라고…"



중년남자는 엎어진 경수를 보고 앞으로 뛰어갔다고 한다. 키 큰 남자가 자신에게 다가오자 뒷걸음칠 쳐 옆에 보이는 벽돌을 들고 덤비려했는데 벽돌을 집어 들어 고개를 든 순간엔 남자가 사라졌고 차 소리가 나길래 그 쪽으로 다시 고갤 돌리자 은색 세단 한 대가 멀어져 갔다고 말했다. 번호판을 봤는데 눈이 안 좋지만 허 라고 된 걸 언뜻 봤다고 말했다.

 

 




“렌트..?”



흥미로운 눈빛으로 준면이 말했다.



“그렇지......작정하고 온 게 아닐까 싶더라고.”



숫자는 잘 기억이 안 난다고 말한 목격자는 경수에게 뛰어가는데 좀 떨어져서 봐도 피가 흥건해서 어떻게 조치도 취하지 못 하고 전화만 계속 해댔다고 한다.



"휴대폰번호 알려주시고 제가 연락드리면 바로 받아주셨으면 합니다.  CCTV판독 결과 나오면 연락드릴게요..그리고 이 동네에 되도록 계시지 마세요."



준면은 남자의 명함을 받아든 채 번호를 받은 전화기를 주머니에 넣으며 생각했다.

불과 아직 열여덟 아이에게 직접적인 원한이 있진 않을 것이라는 것을..



 

 



-



 

 



"네?"


   


아랫집 남자가 왔나, 부지런하네 하며 슬리퍼를 직직 끌며 주머니에 손을 꽂고 교무실로 향한 백현이었다. 그러나 곧이어 선생님이 꺼낸 말에 백현은 당황 그 이상의 것을 경험한다. 쌤 뻥치지 마세요..라고 하는 백현의 동공이 정처 없이 흔들린다. 어제까지만 해도 아니 오늘 새벽까지만 해도 함께 술을 마신 경수가 괴한에게 칼을 찔려 대학병원으로 실려 갔단 소식이 말이 되질 않는다.


 

 

 

 


지난 주 주말

밤 9시쯤 찬열이 공원으로 백현을 불러냈다.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보였지만 입술을 깨물며 말을 잇지 못 했다. 결국은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렸지만 붙잡을 수 없는 눈물은 찬열의 볼을 타고 쉴 새 없이 흘렀다. 울다가 내뱉은 찬열의 말이 백현 귓가를 맴돌았다.

「도경수 엄마가 우리 새 엄마였어..」

「어??」

「우리 새 엄마가..도경수엄마가 맞았어..그래서 싫었는데 죽도록 싫었는데...사실이었어..난 왜 이제서야 깨달았지..」

 

백현은 머리가 띵 해졌고 그동안 경수한테 그래서 그랬구나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그리고 찬열은 안절부절 못 하며 입술을 부르르 떨었다.

 

 




2학년에 올라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교실에 들어섰을 때 어색한 분위기 속에서 조용하지만 제일 눈에 띄는 건 경수였다. 잘 생기고 중요한 건 남자가 봐도 예뻤다. 그래서 친해지고 싶은 마음에 먼저 다가가 인사도 했지만 먼저 슬슬 피하는 경수가 이해된 건 백현을 조용히 불러낸 반 아이의 말 때문 이었다. 너가 다가가면 경수만 더 힘들어진다고 그냥 잠자코 있으면 그나마 찬열이가 경수를 덜 미워할 거라는 말이었다. 그랬다. 다들 경수와 친해지고 싶었다. 하지만 마치 실세와도 같은 찬열이 모두 내색하진 않았지만 이유 없이 무서운 존재였다. 경수와 거리를 두게 하려는 듯 막아서는 찬열도 그제야 이해가 갔다. 경수에게 대하는 태도와 자신에게 대하는 찬열의 태도는 현저하게 달라서 백현은 다가오는 찬열과 멀어지려는 경수 두고 그 사이에서 찬열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같이 괴롭힌 건 정말 잘 못 한 일이었다. 경수도 진심이 아니었단 걸 알고 있어 주리라 믿는다. 그리고 다행이었다. 이제라도 사과할 수 있게 되어서.. 찬열을 진정시키기 위해서 공원벤치에 앉혀 찬열이 하는 얘기를 놓치지 않고 들었다. 말을 하다 목이 메어 어린아이처럼 소리 내어 흐느끼는 찬열의 어깨를 다독여 주던 백현이 말했다.

 

「그만 울어 박찬열. 진심으로 사과하자..이해해줄거야」

「괜찮을까..

「어떤게?

 

​어떤 게 걱정인지 알 수 없는 백현은 입을 다문 채 찬열이 하는 말에 귀를 귀울였고 다음에 나온 찬열의 말을 듣고 잠시나마 말을 잇지 못 했다..












친해지고 싶어서 다짜고짜 갔던 경수의 집이었다. 술을 먹지 말았어야 했나, 어디서부터 잘 못 된 걸까. 선생님은 교무실에 드나드는 학생들의 눈치를 보며 백현에게 말을 이어갔다.

"선생님도 들은 지 얼마 안 됐어, 경수 부모님도 연락이 안 되시구..다름이 아니구 선생님 폰에 문자가 왔는데 어제 너랑 경수랑 같이 가는 걸 본 아이가 있다고 해서 불렀어..혹시 요즘 경수한테 무슨 다른 일 없었니?"



 

백현은 입을 열어 당장이라도 뭐든 대답하고 싶었다. 하늘이 무심하게도 경수와 백현이 친해질 수 있는 기회는 바로 어제 뿐 이었다. 백현은 고개를 떨구며 없습니다. 저도 어제 친해 졌거든요…라며 말끝을 흐렸다. 눈물이 나올 뻔 한 것을 참으며 가보라는 선생님 말에 대답도 못 한 채 교무실 밖으로 나왔다. 숨을 크게 들이셨다 내쉰 백현은 교무실 문 앞에 부동자세로 서서 넋을 놓고 있다가 이내 반으로 올라가 찬열을 찾았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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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경수가 괴한에게 . 헐 , 백현이가 찬열이를 찾은 다음 뭐라고할지 진짜 궁금하네요. 금손 짱!
8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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