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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현의 기분은 제대로 다운되어 있었다. 그 이유는 더이상 말할 것도 없이, 온전한 찬열의 탓이었다. 지금 제 앞에서 자신의 친구들과 꽤 즐겁게 대화를 나눠가며 점심을 먹는 찬열때문에. 심지어는 그 많은 자리 중에 굳이 백현의 맞은 편에 앉은 채로 말이다. 원래는 비글같은 성격의 소유자인 백현이지만, 찬열이 눈 앞에 있으니 절로 말이 들어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 백현을 보며 종인은 무슨 일이라도 있느냐고 물어보았지만, 백현은 고개만 절레절레 저어댈 뿐이었다. 아무 것도 모르는 백현의 친구들에게, 어찌 그 과거를 털어놓을 수가 있을까. 물론 이와중에도 찬열은 싱글벙글 웃고만 있었다. 백현의 반응을 살살 살피면서 말이다.

 

결국 백현은 화를 억누르지 못 하고 숟가락을 내려놓고야 말았다. 어차피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알 수가 없던 참이었다. 식판을 두 손에 꽉 쥐어든 채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는 백현을 당황한 눈초리로 쳐다본 경수는, 백현의 옷깃을 잡아내리며 말했다.

 

 

 

" 왜 그래? 너 겨우 두 숟가락 먹었잖아. "

 

" 됐어, 입 맛 없어서 그래. 난 먼저 올라가볼게. "

 

 

 

백현이 급식실에서 나가자, 그제서야 찬열도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찬열 자신이 보아도, 이번에는 자신이 조금 오버를 한 것 같기는 했다. 단순히 백현을 놀릴 생각이었지, 백현의 친구마저 빼앗아 갈 생각까지는 아니었다. 어차피 백현의 친구들이라면 분명 찬열과는 살짝 다른 부류의 아이들일테니까. - 백현도 완전한 범생이라고는 해둘 수 없지만 - 딱 보아도 ' 난 반장입니다. ' 하며 광고를 하고 다니는 경수, 그리고 게임이나 운동, 걸그룹에 환장할 것 같은 평범한 고딩 세훈과 종인. 또 가정교육 잘 받은 도련님같은 준면까지. 백현도 학교에서는 나름 사리고 다니는 구나 - 하며 혼자서 작게 고개를 끄덕인 찬열은, 마지막 반찬을 입에 집어넣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번에는 찬열에게로 나머지 넷의 시선이 쏠렸다. 이에 찬열은 능청스럽게도, " 선생님이 부르셨는데, 잊고 있었어. " 라는 말을 흘린 채로 백현을 따라 급식실을 나섰다.

 

급식실에서 빠져나온 찬열은, 본관과 급식실을 이어주는 통로를 따라 빨리 걸어갔다. 절대 뛰지는 않았다. 이것은 백현을 오래 봐온 찬열의 습관이었다. 아무리 백현이 자신보다 앞서 걸어가고 있다고 해도, 보폭이 작은 백현이었기에 보폭이 넓은 찬열이 따라잡는 것은 식은 죽 먹기와 같았던 것이다. 그러므로 남은 문제는 하나였다. 백현은 대체 어느 방향으로 갔을까. 특별실로 향하는 계단과 반으로 향할 수 있는 복도를 앞에 두고 찬열의 걸음이 멈추었다. 백현의 성격으로 따지자면 곧바로 교실로 가지는 않았을 것이다. 찬열이 이렇게 백현을 바로 뒤따라 갈 것이라는 걸 백현도 알고 있을테니까. 서로를 오래 봐온 만큼, 위험하리만큼 서로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었다.

 

 

 

" 저 쪽에서 냄새가 나는데. "

 

 

 

찬열은 결국 계단에 올랐다. 희미하게나마 들리는 선율이 찬열을 그리로 이끌어 온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백현이 부르고 있었다. 찬열의 이름을 부르며 그곳으로 데려온 것은 아니었지만 그냥 백현이 느껴지고 있었다. 찬열은 제 입술을 말아넣은 채로 계단을 올라, 특별실로 가득한 복도에 들어섰다. 그렇게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딜 때마다 점점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자신이 가장 싫어하면서도 좋아했던 그 소리가, 그 선율이. 저절로 올라가는 입꼬리에 찬열의 걸음도 저절로 바빠졌다. 백현이 여기에 있음이 더 확실해지고 있었다. 그렇게 바쁜 걸음으로 복도를 활보하던 그때, 겨우 찬열의 발걸음이 멈춘 곳이 있었다. 백현과 찬열을 이렇게 만든 원인, 아니 어찌보면 연결고리와도 같은 그것이 이곳에만 존재하고 있었으니.

 

마음까지 편안해지는 그 소리가 찬열의 귀에 들려오자, 찬열은 저절로 숨이 막히는 듯한 기분이었다. 찬열과 백현이 서로를 보기만 하면 으르렁 거리지 않던, 서로가 순수했던 시절. 백현이 자주 찬열에게 들려주었던 곡이었다. ' Flower dance '. 찬열이 가장 좋아했고, 가장 듣고 싶어하던 곡. 사실 피아노를 배운 찬열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이 곡은 그리 어려운 곡은 아니었다. 즉흥환상곡까지 완벽하게 마스터한 찬열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곡은 찬열을 슬럼프에 빠지게 만들었다. 백현이 피아노를 그만 두었다는 소문이 들려올 때, 찬열은 잠시 자만에 빠졌었고, 그때 처음으로 이 곡을 연주해보았었다. 하지만 찬열은 그 곡을 백현만큼 소화해내지 못 했다. 감정이 실리지 않아서 그런 걸까, 수 십번을 재연주해보았지만 백현과는 달랐다. 백현의 연주에 실린 그 서정적인 분위기 그리고 어딘가 모르게 풍성하게 느껴지는 선율이 찬열에게서는 드러나지 않았다. 그게 찬열 인생의 첫 좌절이었다. 늘 백현보다 앞서 있다던 생각이 무너진 결정적인 계기였다.

 

그리고 백현은 지금 그 곡을 찬열의 앞에서 연주하고 있었다. 물론 백현은 지금 제 뒤에서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는 걸 모르고 있었지만 말이다. 점점 연주는 절정으로 치닫고 있었고, 백현도 곡에 완전히 심취한 채로 피아노 건반 위에서 춤을 추고 있었다. 하얀 손이 하얀 건반 위에서 하나의 그림을 그려내고 있었다. 웅장했던 선율이 끝을 향해 달려가고, 결국에는 곡이 끝나버리고 말았다. 백현은 아직도 찬열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한 채로 제 손을 가만히 내려다보고만 있었다. 아직까지 이 곡을 완벽하게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 또 손이 아직 굳지 않았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물론 간간히 피아노를 쳐보기는 했다만 이정도 일 줄은 몰랐던 것이다. 오랜만에 느껴본 건반의 차가운 온도는 백현을 더 따뜻하게 채워주고 있었다.

 

 

 

" 멋있네. "

" ... 박찬열? "

 

 

찬열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저절로 백현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뒤를 돌아보자마자 보이는 찬열의 조소. 오늘도 찬열은 백현이 가장 싫어하는 그 눈빛으로 백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백현은 굳은 얼굴을 한 채로 미련없이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찬열을 지나쳐 음악실을 빠져나가려고 했지만, 이 행동은 찬열에 의해 저지되고야 말았다.

 

 

 

" 뭐야, 놔. "

" 변백현. "

" ...... "

" 나도 피아노 관뒀어. "

 

" 그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

 

 

 

백현은 제 손목을 꽉 잡고 있던 찬열의 손길을 뿌리친 채로, 그를 지나쳤다. 완벽하게 얽혀버린 그들의 사슬은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찬열은 음악실에 덩그라니 남겨진 피아노를 바라만 보다, 결국 백현을 뒤따라 그곳을 떠나고야 말았다.

 

찬열도 자신이 왜 그랬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왜 그런 말을 백현에게 했을까, 다시 돌이켜보면 어쩌면 찬열은 백현이 다시 피아노를 시작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정말 어쩌면. 그 한 곡으로 인해 자신의 한계라는 것을 처음으로 인정한 것인지도 모른다. 몇 개월을 연습해도 백현의 감정 하나를 살리지 못 했던 찬열, 그리고 손 끝으로 사람의 마음을 울컥하게 만드는 백현. 그리고 피아노를 치는 내내 행복한 웃음을 내비추던 백현과 그런 백현을 따르기 위해 피아노를 시작한 찬열. 둘은 완전히 꼬여있었다.

 

 

 

 

데데한 놈

01

 

 

 

 

 

백현은 지금 심기가 매우 불편했다. 점심 때도 급식실에서 같이 밥을 먹어야 했는데, 저녁마저 찬열과 먹어야 한다니. 맛있게 구워진 스테이크를 썰어내는 백현의 칼질이 꽤 섬뜩하게 보였지만, 찬열은 그것을 굳이 내색하지 않은 채로 괜히 물만 마셔댔다. 워낙에 친분이 두터운 두 부모님들 덕에 백현만 좌불안석인 셈이었다. 찬열은 뭐 이런 자리는 익숙하다는 듯이 아무렇지도 않은데, 백현 혼자서 오버하는 것만 같기도 했기에 백현은 더 찬열이 아니꼽게 보였다. 백현이 찬열을 피하면 피할 수록 이런 식으로 꼬여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그렇게 찬열을 노려보던 백현에게 박 회장이 질문을 던졌다.

 

 

 

" 백현 군, 우리 찬열이 학교에서 잘 지내던가? "

" 네. 수업도 열심히 듣던 걸요. "

" 흠, 다행이군. 사실 내가 찬열이를 백현 군 반에 넣으려고 조금 애를 썼어. "

 

" 아... "

" 아는 얼굴이 있어야 더 쉽게 적응을 하지 않겠나. 게다가 백현 군은 영리하니, 여러모로 찬열이에게 모범이 될테고. "

 

 

백현은 억지 웃음을 지으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머리 자체는 백현보다 찬열이 좋았다. 수리적인 영역에서는 찬열이, 논술처럼 문학적인 부분에서는 백현이 앞서기는 했다만 전체적인 모습으로 따지자면 찬열이 더 영리하다고 해둘 수가 있다. 하지만 나이를 먹어갈 수록 찬열은 공부에서 손을 떼게 되었고, 아버지의 권력만을 믿은 채로 평범한 고등학생같은 생활을 이어왔더란다. 그와 달리 백현은 여전히 공부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다. 삶의 전부였던, 미래의 전부였던 피아노를 잃게 되고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오로지 공부 뿐이었다. 그게 확실히 이 바닥에서는 더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길이었을 뿐더러 유일하게 찬열을 꺾을 수 있는 기회를 쥐어준 것이었으니까. 그런 백현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찬열은 " 백현이 학교에서 엄청 인기 많던데요? " 와 같은 굳이 할 필요가 없는 얘기마저 늘어놓고는 했다. 절로 한숨이 나오는 듯한 기분에 백현은 고개를 떨구고야 말았다.

 

 

 

" 아, 박 회장 그리고 찬열 군. 우리 백현이 좀 축하해주게. "

" 음? 백현 군에게 좋은 일이라도 생긴 건가? "

" 이번에 백현이에게 예비 약혼자가 생겼다네. "

 

 

변 회장의 말에 찬열의 움직임이 뚝 - 멈추고야 말았다. 입으로 향하던 포크를 잠시 내려놓고 급하게 물을 찾지를 않나, 밝던 표정이 확 굳어버리지를 않나. 여러모로 찬열의 심리 변화가 확연하게 드러났다. 하기야, 예전부터 찬열은 포커페이스라는 것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기는 했었다 - 고 생각한 백현은, 그저 자신에게 먼저 애인과 같은 사람이 생겨 자신이 지는 듯한 기분이 들어 저러는 구나 싶었다. 백현이 찬열에게 지기 싫어하는 만큼, 찬열도 백현에게 꽤나 승부욕을 갖고 있었으니 말이다.

 

사실 백현의 예비 약혼자라는 아이는 백현에게는 친동생과도 같은 여자아이일 뿐이었다. 정말로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동생이나 누나, 형 없이 자라온 백현이었기에 친한 동생인 예림에게 잘해주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런 백현의 친절함에 중학생인 예림이 호감을 느낀 건지, 어린 마음에 백현을 좋아하게 된 것이다. 사실 백현은 이 역시 다 잠시의 헤프닝으로 끝나리라 생각하고 있었기에 큰 반응은 하지 않았다. 그냥 예림이가 날 좋아하는 구나 - 이 정도에 그칠 뿐, 호들갑을 떤다거나 정색을 한다거나 그러지도 않았다. 정말로 예림은 백현에게 있어서 아끼는 동생에 불과했으니까.

 

 

 

" 어이구, 공부도 잘 하고 연애도 하고. 백현 군도 참 대단해? "

" 아직 어린 동생이라, 사실 연애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

 

 

연한 웃음을 흘리며 말하는 백현에, 찬열의 얼굴이 뾰루퉁해졌다. 그것도 아주 대놓고 말이다. 그런 찬열의 표정을 본 백현은 피식, 하며 찬열을 비웃었지만 찬열은 그것마저도 대꾸하지 않았다. 정말 혼자만의 세계에 갇힌 듯이 가만히 앉아있을 뿐이었다.

 

 

 

" 찬열 군도 늠름하고 멋지기만 한데. "

" 덩치만 컸지, 머리는 아직 어려. 백현 군처럼 얼른 성숙해졌으면 좋겠건만. "

" 찬열이도 반에서 인기 많아요. 전학오자마자 여학생들이 다 찬열이 번호를 물어보더라고요. "

 

 

최대한 찬열과 가까이 지내는 척, 친한 척을 하며 말을 내뱉었다. 백현의 말에 박 회장이 크게 웃으며 " 에이, 그래도 백현 군을 따라잡으려면 아직 멀었네. " 와 같은 뻔한 멘트를 던졌다. 이에 백현도 희미한 미소를 내비추며 찬열을 쳐다보았다. 방금 전보다는 표정이 풀린 것 같기도 한데, 아직도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은 확실했다. 뭔가 방금 전과 역할이 바뀐 듯한 느낌이 들었지만, 아랑곳하지 않기로 했다. 여기 음식이랑 잘 안 맞나 보지 - 라며 백현은 단순하게 합리화 시켜버렸다. 그렇게 긴 대화를 나누다, 겨우 만남이 마무리 되었다. 박 회장과 변 회장이 서로가 계산하겠다고 다툼아닌 다툼을 하는 것을 지켜보던 백현이, 찬열에 의해 어딘가로 끌려가게 되었다. 백현의 손목을 잡아 이끈 채로 레스토랑의 테라스와 같은 곳으로 데려간 찬열은, 한숨을 내뱉으며 백현을 내려다보았다.

 

 

 

" 여긴 왜 데려온 거야. "

" 예비 약혼자는 또 누구야? "

" 알잖아, 건설 회사 쪽 막내 딸. 너도 본 적 있잖아. 예림이. "

" 예림이? 아주 가까운 사이인가봐, 성도 떼고 부르는 거 보니까 ?

 

" 예림이는 중학생이야. 이상한 생각하지 마. "

" 야, 변백현. "

" 유치해서 이런 말은 안 하려고 했는데, 너 나 좋아하냐? 만약에라도 예림이가 진짜 내 예비 약혼자라고 치자, 그렇다고 해서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인데? "

 

 

 

백현의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찬열의 입이 턱 막히고야 말았다. 아니, 왜 막힌 걸까. 평소 같았으면 정신 차리라고 주먹이라도 날렸을 텐데,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정말로 그대로 굳어버리는 듯한 기분에 찬열은 결국 백현의 눈을 피해버렸다. 정말 이해할 수가 없는 찬열의 행동에 백현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어버렸다. 오늘따라 찬열이 이상한 것 같았다. 낮에는 대뜸 자신이 피아노를 관뒀다는 쓸 데 없는 이야기를 하더니, 지금은 자신과 아무런 관계없는 얘기를 들먹이며 화를 내고 있으니... 백현은 제 머리를 헤집으며 말했다.

 

 

 

" 그리고 난 아직도 너 많이 불편해. 자꾸 이런 식으로 내 시간 낭비시키지 말아줬음 하는데. "

" 대체 아직도 날 싫어하는 이유가 뭐야? 피아노도 관뒀어. 네가 날 싫어하던 이유는 피아노였잖아. "

" ... 야. "

" 어차피 우리는 평생 이렇게 지낼 수도 없잖아. 둘 다 이 기업을 물려받아야 할 운명인데, 화해라도 해야 하지 않겠어? "

" 그래, 네가 알 리가 없지. 뭔가를 빼앗긴 그 더러운 기분을. "

 

 

백현은 끝까지 찬열을 노려보고 있었다. 단 한 번도 찬열의 시선을 피하지 않은 채로 말이다. 정말로 여기서 끝장을 볼 생각으로 내뱉은 말인데, 이상하게도 찬열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사실 찬열이 백현의 말에 욱해서 무어라고 소리라도 질러주기를 원했다. 그렇게 크게 싸워야 둘의 만남이 툭 끊겨버릴 것만 같았으니 말이다. 그렇게라도 백현은 찬열과의 연을 완벽하게 끊어내고 싶었다. 일방적으로 찬열이 이어가는 이 지독한 연을.

 

찬열이 백현의 말에 말문이 막힌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뭔가를 빼앗긴 기분이라고 했던가. 찬열은 그것을 완벽하게 느껴보았다. 백현때문에 좌절을 하기도 했고, 백현때문에 아버지에게서 늘 비교를 당하기도 했다. 그리고 방금 전에는 백현때문에 질투까지 해봤다. 이번에는 찬열이 백현을 둔 채로 먼저 자리를 떠나버렸다. 백현을 두고 먼저 걸어가는 찬열의 뒷모습이 유난히 위태로워 보였던 건 단순히 기분 탓만은 아닌 것 같았다. 그렇게 한참을 찬열의 뒷 모습을 지켜보던 백현은, 뒤늦게 찬열을 뒤따라갔다.

 

 

 

 

***

 

 

 

 

 

" 아니라니까, 아니라고! "

 

 

 

찬열은 지금 침대에 몸을 눕힌 채로, 또 한 손에는 폰을 쥔 채로 잔뜩 열을 내고 있었다. 그 이유는 바로 그와 현재 통화 중인 민석때문이랄까. 스트레스라도 풀 겸해서 민석에게 오랜만에 만나자고 했건만, 그새 찬열의 기분이 우울함을 캐치해내고 무슨 일이 있냐고 물어왔던 민석이었다. 여기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었는데, 오늘 하루 백현과 있었던 일을 민석에게 털어놓았더니 민석이 엉뚱한 소리 - 물론 찬열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만 - 를 늘어놓기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이런 상황이 벌어진 건데...

 

 

 

< 내 말이 맞다니까, 어떻게 너만 모르냐? 김종대한테 물어봐도 똑같은 대답이 나올 걸? >

 

" ... 아무리 그래도 내가 변백현을 좋아할 리가 없잖아! 그리고 애초에 너는 그런 말을 내뱉으면서 위화감도 안 느껴지냐? "

 

< 야, 사랑에 숫자와 성별이 무슨 상관이야. >

 

" 너랑 무슨 말을 하겠냐, 끊어. "

 

< 너 진짜 나중에 후회하지나 마라? 내 말이 백 번 맞다니까, 지금은! >

 

" 애초에 내가 변백현을 먼저 좋아한다니! 자존심 상하잖아! "

 

 

찬열은 마지막 말을 내뱉자마자 스스로 아차, 싶었다. 지금 내가 무슨 말을 - 이라며 변명하기에는 이미 늦었는지, 이미 건너편에선 민석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그것도 아주 깔깔 웃어대고 있었다. 찬열은 제 머리를 헤집으며 최대한 자신이 지금 절망스러움을 온 몸으로 표현해내고 있었다. 어떻게 이런 말 실수를. 이런 찬열의 속도 모르고 민석은 여전히 웃음을 멈추지 못한 채로 거의 울 듯이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겨우 정신줄을 잡았을 때는, 조금씩 새어나오는 웃음을 참아가며 또 이상한 말 - 이번에도 역시 찬열의 입장에서 봤을 때만 - 을 내뱉기만 했다.

 

 

 

< 자존심만 세우다가 나중에 진짜 고생할텐데. >

 

" 말 실수라니까! 그런 의도가 아니라고! "

 

< 원래 무의식 중에 진심이 나오는 법이지. 그렇고 말고. >

 

" ... 진지하게 너 때려도 되냐. "

 

< 어쨌든 넌 조금이라도 솔직해져야 할 필요가 있어. 너 사실 어릴 때부터 백현이 좋아했던 거 아니야? >

 

" 에이 - "

< 너 피아노 시작한 것도, 그만 둔 것도, 굳이 그 학교로 전학간 것도. 온통 백현이때문이잖아? >

 

 

 

민석의 말에 찬열의 눈이 크게 뜨이며 토끼 눈이 되어버렸다. 그러고보니 찬열은 늘 백현과 관련된 이유를 들곤 했었다. 피아노를 배우고 싶다며 부모님을 조를 때는, " 백현이도 한단 말이야 - " 라며 어리광을 부렸었고, 피아노를 그만 둘 때는 스스로가 백현을 이길 수가 없다며 좌절한 탓이 아니었던가. 그리고 부모님께 전학을 가고 싶다며 부탁드릴 때도, " 저도 이제 백현이처럼 학교에서 조용하게 지내고 싶어서요. " 와 같은 이유를 들었었다. 그렇게 백현은 찬열의 삶에서 꽤 많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렇게 무의식적으로도 백현의 이름을 꺼낼 정도였으니. 굳이 의도하지않고도 이런 말이 나온다는 건, 이미 찬열에게 백현은 너무나도 익숙해진 존재였기때문이 아닐까. 그렇다면 사람들은 이렇게 묻는다. 둘이 알고 지내 온 시간이 얼마나 긴데, 그건 당연한 것 아니냐고. 그렇다면 필자는 백현을 예로 들 수 있다. 백현은 사실 찬열과 마주치지만 않으면 찬열에 대한 생각을 1도 하지 않는다. 피아노를 칠 때, 혹은 찬열의 얼굴을 볼 때를 제외하고는 찬열을 떠올리거나 찬열을 경계할 일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그저 자신에게 트라우마를 가져다준 사람과 물건을 마주해야지 그를 떠올렸다. 이렇게 말한다면 찬열의 상태를 이해할 수 있을까.

 

 

 

" 그럼 나 이제 어떻게 해야 돼...? "

< 결국 인정하셨네, 결국. >

 

" 아니, 아직 인정까지는 아니야. 헷갈릴 뿐이지. "

 

< 그러시던가. 어쨌든 너 이제부터 백현이한테 엄-청 잘해야 해. 백현이가 너를 얼마나 싫어하는지는 아냐? >

 

" 잘 알지. "

< 그것보다 훨씬 싫어할 걸. >

 

 

 

백현이가 너때문에 뭘 포기했는데, 쉽게 풀릴 것 같냐.

 

뒤이어 들려오는 민석의 말에 찬열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둘을 더 가깝게 만들어준 것이면서도 둘을 더 멀게 느껴지게 만든 것도 피아노였으니. 찬열은 점점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여태 너무 자신을 속여가며 허무한 시간을 보냈다는 생각에, 또 너무 백현을 모질게 대했다는 생각에, 또 왜 이런 감정을 이제서야 그것도 다른 사람에 의해서 깨달았느냐에 대해서.

 

 

 

< 너희 학교에 오세훈있지. >

 

" 어, 변백현 친구. "

 

< 오세훈 아버지가 '오트 엔터' 대표 이사거든? >

 

" 그런 회사도 생겼냐. "

 

< 아니, 들어 봐! 어쨌든 일주일 뒤에 그 오세훈 생일이야. 아버지가 사업 대박나신만큼, 소속 연예인도 다 부르고 엄청 거하게 생일 파티를 할 모양인가봐. >

 

" 어쩌라고. "

 

< 거기에 백현이도 가고, 그 예림이라는 아이도 간다 - 이거지. >

 

 

 

예림이라는 이름이 들려오자 찬열의 얼굴이 다시 굳어들어갔다. 확실히 호텔을 운영하시는 민석의 집안답게 민석은 많은 집안의 자제들과 사이가 좋았다. 사실 백현이나 찬열도 마음만 먹으면 민석만큼이나 발을 넓힐 수 있지만, 귀찮은 것을 싫어하는 둘이었기에 먼저 누군가 다가오지 않는 이상, 스스로 다가가지 않았다. 아, 물론 한국 최고의 기업의 도련님이신 둘에게 다가가고 싶어하는 사람은 많았지만 둘의 성격이 워낙 까탈스럽다보니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그래서 찬열은 늘 무슨 일이 생기면 민석을 통해서 한 다리 건너 무언가를 듣거나, 무언가 부탁을 하거나 했는데 이번이 딱 그런 경우였다. 마침 그 파티도 민석 아버지가 운영하시는 호텔에서 한다니, 하늘이 도왔다. 마침 찬열은 세훈과 번호도 교환했고 나름 친해졌다고 해둘 수 있었다. 그래서 찬열은 이번을 기회 삼아 백현과 예림의 관계를 두 눈으로 확인한 다음에, 다음 계획을 민석과 상의하리고 마음 먹었다.

 

이렇게 된 이상, 찬열은 아주 완벽하게 백현을 붙들어잡기로 했다. 또 미꾸라지마냥 도망가기 전에. 또 자신을 피해가버리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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