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사친의 정석
w. 정국학개론
BGM ~ 우연히 봄 - 로꼬,유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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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형과 알게 된 지 벌써 12년이 지났다. 나를 좋아한다며 따라다니던 애기 때 모습은 어디 버리고 왔는지 완전히 애기 티를 벗어버리고는 교복을 껄렁히 입고 다니는 저게 내 불알친구라니 수치스럽다. 김태형의 얼굴만 봐도 한숨이 푹푹 나오는데 그건 김태형의 어머니도 마찬가지신 건지 등교 시간마다 나를 불러 잠에서 덜 깬 김태형을 나에게 넘기신다. 오늘도 그랬다. 두 눈은 퉁퉁 부어서는 말리지도 못한 머리를 축 늘어뜨린 채 왼손에 가방을 들고는 내 뒤를 천천히 따라오는데 잠시 뒤를 돌았다가 한숨을 깊게 내쉬고는 걸음을 옮겼다.
" 야. "
" 아, 왜. 부르지 마라. "
" 오늘은 또 왜 지랄이고. "
그 느린 걸음으로도 다리는 제법 긴 탓에 금방 내 뒤를 바싹 따른 김태형의 큼지막한 손이 내 머리를 누른다. 여자 치고는 작은 키가 아닌데도 남자 치고 큰 키가 아닌 김태형에게 눌리는 기분이 얼마나 더러운지 보기만 해도 한심한 남사친을 둔 여자라면 누구나 알 게 분명하다. 오늘 아침 거울을 보며 예쁘게 정리해 두었던 머리를 잔뜩 흔들고 나서야 김태형의 손이 떨어졌다. 개새끼. 오랜만에 왁스도 바르고 왔는데. 야자 시간이면 삐치는 머리를 떠올리며 다시 한 번 한숨을 쉬었더니 무슨 고민이라도 있냐며 내 팔을 아프게 친다. 아프게! 아프게!!!!!
" 아는 척 하지 마라. 니랑 다니는 거 쪽팔린다. "
" 그건 어디서 배운 개소리. "
" 아, 좀! 떨어져서 걸으라고! "
" 가시나, 오늘 겁내 말 많네. 아, 알았다. 가삐라. "
기분 더러워. 김태형이 내 뒤에서 걷는다는 걸 상상만 해도 기분이 더럽다. 내 뒤에서 나를 보는 것도 기분이 더럽고. 분명 뒤에서 하품을 쩍쩍 해댈 건데 그것도 역시 상상만 해도 기분이 더럽다. 그냥 저 새끼는 내 인생에서 아무런 도움도 안 되는 새끼가 분명했다. 내가 저 새끼 때문에 앙심이 얼마나 많은데. 너무 많아서 일일히 읊기는 어렵고 딱 하나만 말하자면 김태형이 남자 새끼들한테 내 얘기를 하는 걸 몰래 들은 적이 있다. 입에 담기도 수치스러운 말들을 막 해대는데 그걸 말리기는 커녕 좋다고 웃으며 저도 나에 대해 맞장구를 치더라. 그때부터 김태형은 그냥 내 인생에서 아웃이었다, 아웃. 진짜 저 새끼랑 상종하면 내가 여자도 아니고 사람도 아니다.
01
요 며칠 김OO의 기분이 안 좋아 보인다. 예전에는 가끔 매점에서 사온 거라며 쉬는 시간에 엎드려 있는 내게 빵을 던져주고 가질 않나, 아무튼 꽤 귀여운 모습을 보여주더니 요즘엔 말을 걸어도 무시하고 아주 그냥 나를 없는 사람 취급한다. 오늘도 그래. 내가 뭘 했다고 나랑 다니는 게 쪽팔린대. 투덜대며 김OO 뒤에서 입을 가리지 않고 하품을 쩍쩍 하는데 무슨 가시나가 저렇게 치마가 짧은지 눈살이 찌푸려진다. 지나가던 남자 새끼들이 보지는 않을까 주변을 둘러보는데 다행히 일반 등교 시간보다는 약간 이른 시간에 남자 새끼들 눈알 돌아가는 소리는 안 들린다. 아무튼 여자애가 조심성이 없어요, 조심성이.
저도 신경은 쓰이는지 치마 끝을 부여잡고는 내리는데 저럴 거면 자르기는 왜 잘랐는지 한숨만 나온다. 내 친구들이 저에 대해 무슨 말을 했는지 알면 난리 날 게 뻔한데. 안 그래도 지가 제일 세다고 알고 있는 멍청한 가시나가 어디 가서 뭣도 아닌 드센 척을 하다가 성희롱이나 당하진 않을런지. 내가 없으면 안 된다니까. 나니까 받아 주는 거다, 가시나야.
01-1
" 야, 야 김OO 다리 봤냐? 존나 매끈해. "
" 볼 게 없어서 다리를 보냐. 볼 거면 어? 여길 봐야지, 여길~ "
어디서 야동이나 처보고 온 건지 평소에도 좀 더럽게 노는 것들이 오늘도 반 여자애들을 희롱하나 싶었는데 이번에는 우리반이 아니라 다른반, 그것도 다름아닌 김OO를 희롱한다. 내가 그 가시나랑 얼마나 오래된 친구 사이인지 알면서도 내 앞에서 저딴 더러운 말을 지껄이는데 한 대 줘팰까 하다가 주먹만 꽉 쥐고 그만두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해서 더러운 입이 계속 나불대는데 이번에는 나를 향해 질문이 쏟아진다.
" 야, 니 김OO랑 친하잖아. 뭐 없나. "
" ……. "
" 아니, 야 그런 친구가 있으면 가끔 속옷도 훔쳐보고, 어? "
보자보자 하니까 내가 진짜 보자기로 보이나. 온갖 더러운 말로 김OO를 더럽힌 것만으로는 부족했는지 저 돼지 새끼가 뭐라냐. 잔뜩 굳어있는 얼굴로 보았더니 그제서야 내 눈치를 보는 건지 내 눈을 피하며 다른 주제로 넘어가려고 하는 걸 웃으며 붙잡았다.
" 존나 섹시하지. 샤워도 했어, 걔랑. "
" 미친, 와, 야 어때. 와. 이 새끼 선수 아니야? 잤냐? "
" 잤지. "
흥분해서는 전보다 더 더러운 말을 내뱉는 새끼를 빤히 쳐다보며 웃음기 가득하던 얼굴을 굳혔다. 새끼가 뭐라냐, 진짜.
" 7살 때. 손만 잡고. "
" 어? "
" 좋냐? "
" ……. "
" 새끼야 재미있냐고~ "
입이 딱 다물려지는 게 생각이 빤히 보여 웃음이 나왔다. 이 새끼 왜 말을 안 하지? 의자 끄는 소리를 내며 일어나서는 그 새끼 머리를 주먹으로 통통 치는데 그게 또 아픈 건지, 뭔지 고개가 점점 내려간다.
" 입 뚫렸는데 왜 말을 안 하냐고~ "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다 나와 눈이 마주치고는 홱 내리까는데 이 새끼 원래 이렇게 비굴한 새끼였나, 신나서 입을 나불대던 아까와는 확연히 다른 모습에 허리를 굽혀 그 새끼와 눈을 맞추며 뺨을 두드렸다. 잘 좀 하자. 옆에서 이 새끼와 같이 대화를 주고받던 또다른 새끼가 어쩔 줄 모르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는 게 느껴져 고개를 돌렸다.
" 너도, 새끼야. "
" …아, 김태형 그게… "
" 누굴 씨발 호구로 아나. "
" ……. "
" 뒈지고 싶으면 계속 지껄여 보든지. "
연재 중인 전남좋은 생각해야 할 게 많아서 여전히 잠시 생각 중이고 머리 식히는 겸으로 태형이 글을 써봤어요 공을 들이지 않은 글이라 구독료는 당연히 무료! 가볍게 읽어주셨으면 좋겠어요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