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이 점점 나른해져간다
두 눈은 점점 풀려가고 눈을 뜨고 무언가 바라보는것조차 힘들어진다
점점 눈앞이 희미해져가는 와중에
스탠드 빛 아래에서 넘쳐 흐르고있는 그 핏빛은 쉴세없이 손끝에서 떨어진다
아무도 잡아주지 않아 사람의 온기를 잊을때쯤
권순영이 아마 마지막으로 온기를 전해준것같다
마지막 온기를 되새기듯
흘러나온 피는 손을 어루만지는듯 손 여기저기를 타고 떨어진다
멈추지않는다
나의 가쁜 숨소리도 흥분에 미쳐 멈추지 않는다
작게나마 허락된 내 세계를 그려갔던 이 책상위로
눈을 감음과 동시에 머리가 떨어진다
아프지않다
편하다
얼마만에 느껴보는건지 모르겠다
새롭고 눈물이 날정도로 황홀하다
태아의 상태가 된것같았다
몸이 점점 가벼워지는것같고 내몸이 내몸이 아닌것같지만
나른함은 여전하다
`띠리링`
"....어머, 누구왔어? 수아야? 왜벌써왔어 학교안갔어?"
안돼..
제발....엄마...제발 오지마..
"왔으면 왔다고 말을해야지 왜 대답이없니"
엄마는 문을 열려다 잠겨진 문을 보고는 열쇠를 찾으러 간듯했다
그틈에 나는 침대속에 들어가 자는첫을 하려했다
근데 이미 내몸은 내몸이 아니었고
힘을 낸다는것자체가 우스운상황이었다
어떻게든 일어나보려 애쓰는 내 자신이 혐오스러웠다
저 몇마디에 겁을 먹고 죽음을 내보이려하지 않는 내자신이
비겁해보였다
고개를 침대쪽으로 돌리다 아직 굳게 닫혀있는 문을 보았다
내심 안심하고 진정하고싶었으나
밖에서 들려오는 점점 커지는 열쇠꾸러미가 짤랑짤랑 거리는 소리에
그나마 온전했던 신경들이 일제히 곤두서는 느낌이었다
사람은 죽을 때 뇌가 가장 늦게죽는다고 한다
이미 경험해본바 있기에 무슨 느낌인지 안다
그때나 지금이나
이상황에 마지막까지 긴장되는건
똑같다
떨리는 손과 전혀 지탱되지 않는 다리로 책장과 침대 헤드를 겨우겨우 짚어가며
침대 근처까지 왔다
헨젤과 그레텔이라도 된냥 내가 움직인 자리엔 핏자국이 흥건하다
누군가 그랬다
핏자국은 잘 지워지지도 않는데....
이젠 앞도 보이지 않는다
눈은 뜰 힘조차 없이 겨우겨우 실눈으로 앞을 내다보고 있고
그 보는 시야마저 뿌옇다
내앞에 침대가 있는지 없는지 알고싶지만
지금 만지는게 침댄지 벽인지 분간도 되지 않는다
그순간 나는 어디에 걸려 넘어져버렸다
근데 아프지않았다
침대에 잘 넘어진걸까
"수아야..."
그 후로 들린소리는
열쇠꾸러미가 바닥에 떨어져 들리는 쨍그랑 소리
엄마의 비명소리
가식적이다
그후로 정말 모든게 깜깜했다
나는 침대에 잘 누워있던걸까
"비켜나세요 위급환자입니다! 비키세요! "
큰일없이 잘 지내던 아파트단지에 미심쩍게도 구급차가 들어왔다
들것에 실려나가는 저 흰천은 점점 붉게 물들어갔다
"어머어머 왠일이야 무슨일이야 이게!"
"저기 실려가는애, 쟤가 뭐 자살시도를 했다나봐 어우...입에 담지도 못하겠네 "
"뭐~? 세상에...어쩌다 그런짓을했대 아유.."
"아 그니까 내말이..!"
"가만있어봐.... 쟤 걔아냐? 그.. 학교에서....아닌가? 암튼 그 유명한애 아니야? 걔가 여기살았어? "
"세상에.... 걔가 걔야? "
"이야.... 세상 참 잘돌아간다!"
"아 그럼 이제 어쩌나.... 집값 떨어지겠네 아유.... 팔아봤자 얼마 나오지도 않겠다"
"아 그러네! 나 참 대체 왜저런거래....쯧쯧"
그 후 어느날
내가 눈을 뜬날
푸르고 푸른 4월의 막바지였다
긴잠에서 깨어난 잠자는 숲속의 공주는 얼마나 개운했을까
나 역시 얼마나 개운한지 모르겠다
얼마동안 눈을감고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렇게 잠을 잘자고 깬것에대해 만족스럽다
몸을 일으키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저 앞에 커튼으로 앞을 가리고싶었다
근데 커튼으로 앞을 가리려면 몸을 일으켜야 한다
어떡하지....라며 나름 진지하게 고민하는 도중
반만 가려져있던 커튼이 확 열렸다
"아 일어났네 안녕? 혈압좀 재고갈게~ 여기 임수아환자 혈압좀 재줘요"
처음보는 사람은 형식적인 인사를 끝내곤 바로 본론을 실행에 옮겼다
내 팔을 들더니 자기 알아서 혈압을 재고선 옆 침대로 시선을 옮겨갔다
내가 이렇게 오랜시간만에 깨어났는데
의사한테는 그냥 남들과 똑같은 환자인가보다
하긴 병든사람들은 그렇게 많이 보는데 지겹겠지....그치..
아 그러고보니 난 살아있다
살아있고 살아있다못해 병원에 입원해있다
아 살아있으면 안되는데....
또 실패했다
이젠 죽지못해 산다는 말이 어울릴지경이다
뭔가 억울하다
성공을 눈앞에 두고 모든게 한순간에 허물어졌다
아까 그 의사와 몇몇 간호사들이 나갔다
아까 일어난 직후에는 몰랐는데 적막하고 어색한 공기가 여지없이 흐르고있다
아니....나만 그렇게 느끼고 있는건지도 모르겠다
이미 다른사람들의 표정은 넋이 나가보이는데 그냥 모든것을 내려놓은듯한 표정이었다
나도 곧 그표정이 되겠지
끔찍한 상상에 맞서기위해 이불을 다시 정돈했다
아무도 오지 않을것이다
전에도 그랬다
그전에도 그랬고
병원이아니더라도
아무도 오지않았다
아무도
내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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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왔지요 데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