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어디로 먹는지 모르게 먹었다.
오늘 점심은 분명 내가 좋아하는 미트볼이었음에도 어딘가 자꾸 부대끼는 듯한, 아니 잘못 먹은 듯 하다.
분명 자꾸 신경쓰이는 3교시 때 상황 때문일 것이다
친구는 아랑곳하지 않고 주저리 주저리 그애 얘기를 늘어놓는다.
저번에 쓰레기통 청소일을 도와줬다나.
나는 적당히 고갤 끄덕여줬지만 반응이 탐탁치 않은 듯하니 친구 녀석이 어깨를 툭 쳐온다.
"너 오늘따라 리액션이 왜 그 모양이냐."
"...컨디션이 안 좋아서."
"너 어디 아파?"
"....그래.......컨디션이 안 좋아서 그럴 거야..."
나의 중얼거림에 친구는 고개를 기울여 내 상태를 살핀다.
생각에 잠겨 눈을 내리고 있던 나는 친구와 눈을 맞춘 후 웃으며, 자연스럽게 팔짱을 꼈다.
"여기 벌점 리스트니까 확인해서, 푸른 교실 갈 애들은 보충 시간에 중앙으로 집합해라.
...튀면 곤장 맞는다."
7교시 쉬는 시간, 담임 선생님께서 칠판 옆 게시판에 부착물을 가리키시면서 말씀하시고는 나가버리셨다.
일제히 앞으로 모여드는 반 아이들로 들끓어서 나는 천천히 앞으로 나간다.
...어디보자.
"오예, 상점으로 다 지워짐!"
"...그래도 보충듣는 것보다 푸른 교실이 나아."
부착물 앞에서 떠드는 아이들 목소리에 나는 속으로 '그건 아닌 것 같은데.' 하며 한숨을 쉰다.
아, 참고로 푸른 교실이란, 벌점을 기준 점수 이상 받은 학생들이 학교를 위해 봉사하는 것으로
수업 대신 교내 청소를 하게 되는 제도이다.
난 부지런하게 지각과 잠으로 기준 점수를 1점 넘겨 버렸다.
'...아, 잠깐만. 그럼 혹시....'
"야 너네 똑바로 좀 서봐!
.....여기 이줄, 선도부장 따라가."
망했다.
아마 내게 경고를 날린 것이 이거였나보다.
그렇지만 단체 활동인데 뭔일을 어떻게 저지를까 싶어 난 마음을 다잡고 숨을 고른다. 하지만 그건 곧 말짱도루묵이었다.
"너희들은 여기서 빗자루랑 걸레질하면 돼."
내가 안도하는 사이, 선도부장은 미술실에 발을 디딘 애들에게 뭉뚱그려진 지시를 내리고 내 손목을 붙잡는다.
당황한 고갯짓으로 앞뒤를 살피다, 나를 묘한 눈빛으로 쳐다보는 여자애와 눈이 마주친다. 잠시 뜨끔했던 내가 싫다.
"특별 교실이라고 생각해."
"장난 그만해. 나 이러다 또 벌점 받으면 네가 책임질 거야?"
"......"
그애는 말없이 뒤돌아서 당찬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순간 그애 기에 눌려 멈칫하다가, 다시 나를 어디론가 끌고 가는 그애의 등을 뒤에서 째려본다.
나를 질질 끌고 온 곳은 다름 아닌 음악실이었다.
열쇠는 어디서 난건지 어느새 문을 열었고, 나는 들어오자마자 그애의 손을 뿌리친다.
"......"
그애는 말없이 나를 밀어 넘어뜨린다.
철푸덕 넘어간 내가 일어나려 하니 발로 내 가슴을 살포시 짓누른다.
그리고는 몸을 숙여 자신의 넥타이를 푼다.
목을 조이는 부분을 늘리더니 나를 눕힌채로 뒤집는다. 또 버둥대지 못하도록 발로 누르며 내 두손을 묶는다.
그리고는 내 하복 상의 단추를 직접 하나하나 푼다.
그앤 그대로 일어나,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고 있다.
"질러봐. 음악실 방음이 어느 정도인지 한 번 보지, 뭐."
치밀하다.
그 좋은 머리를 이런데에 쓰고 있냐고 비아냥 거리려다, 그애가 핸드폰을 내게 겨누는 탓에 입이 꽉 다물린다.
"뭐, 뭐하는 거야..?!"
연속적인 셔터소리가 음악실 내에 울린다.
나는 고갤 푹 숙였지만, 그애는 만족한듯이 발을 치운다.
"너 무슨 작당이냐고...!"
그애는 곧 나의 등을 털어준다.
손을 묶었던 넥타이도 풀어준다.
어리둥절한 상황에, 내가 머뭇거리며 일어난다.
나를 삐딱한 고개로 바라보던 그애는 내 상의 앞면에도 자국이 남아있었는지, 서슴없이 내 가슴에 손을 대 털어낸다.
나는 몸을 움츠리며 뒷걸음질 친다.
그애가 재수없게 웃는다.
"...이대로 한 번하고 싶지만, 지금은 선생님이 돌아다니고 계실테니까 참을게."
"...뭔 개수작인데."
"...앞으로 내 말 잘 들으라고."
"...뭐?"
"그러니까 이건 입막음용 인거지."
"..누가봐도 내가 묶여있는 거잖아."
"...(웃으며) 다른 애들 생각도 그럴까?"
"....?"
"애들이 누구 말을 믿을 것 같아?"
"......"
순간적으로 아까 나를 불편하게 쳐다보던 여자애의 눈빛이 떠오른다.
반 아이들에게 그런 말을 하는 나를 상상해보았지만 저애 말이 맞다.
녀석이 당한 쪽으로 말한다면 난 승산이 없다.
선생님들에게도 절대적인 신뢰를 얻고 있는 녀석에게, 나는 상대가 될리 없다.
입술을 깨물며 그애를 바라보니, 손에 핸드폰을 들고 흔들거리는 것이 몹시 불쾌하다.
일단은 아무런 짓도 당하지 않았으니 재빨리 옷을 대충 여미고 달려가, 무거운 음악실의 문고리를 잡는다.
"....웃기지마."
"안 그럼 푸른 교실 째고 놀러다녔다고 찍히고, 벌점이나 실컷 받을걸?"
"......"
"..벌점으로 안 끝날지도 모르지."
"......"
나는 문앞에서 정지한 후, 옷의 단추를 마저 잠군다.
옳은 말만 하는 녀석의 주둥이를 확 걷어차고 싶다.
조용히 내 옆으로 와서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음악실 문을 활짝 열어준다.
내가 먼저 앞서서 걸어가니, 뒤에서 말투가 변한 목소리가 들린다.
"일단 양호실로 가자."
"...거길 왜."
"둘이 빠져나간 이유가 필요하잖아."
"......"
이거 충동적인 장난이 아니다.
나는 언제부터 이런 계획을 짠 걸까 생각하려다 무서워져서 입을 앙다문 채, 녀석의 걸음을 뒤따른다.
일부러 뱅 돌아 중앙 계단을 이용하지 않고 옆 계단으로 내려가는 녀석에게 난 묻는다.
"야, 어디가..!"
"...조용히 해. 선생님께 윗층에서 내려오는 꼴 보이고 싶어?"
"......아."
"......"
1층에 도착해서 양호실에 문을 열자마자 그애는 표정이 싹 바뀐다.
조금 소름이 끼쳤다.
"...머리가 아프다고 해서요 두통약 좀..."
"그래? 어떻게 아프니..?"
"..아...... 그냥 어지러워서..."
어느 새 나도 장단을 맞춰버렸다.
당연히 열이 높게 나오지 않은 내게 선생님께서 두통약 2알을 주신다.
내가 받아들고 정수기 앞에 서니, 녀석이 다가와서 조용히 속삭인다.
"이리줘. 먹을 필욘 없으니까."
"......"
"물만 마시고 나와."
내 약을 몰래 챙겨가고는 조금 떨어져서 내가 물 마시는 것을 기다리고 있다.
선생님께 들켰을까 난 조금 긴장되었는데, 녀석은 태연하게 인사까지 하며 나온다. 대단하다 정말.
양호실 문을 닫자마자, 표정이 싹 바뀐 녀석이 내게 입을 연다.
"이제 알리바이가 만들어졌으니까 선생님께 가면 돼."
"......"
"아, 어지러운 척하면 더 좋고."
재수없게 웃는 얼굴로 말하는 녀석의 얼굴에 원펀치 쓰리강냉이를 날리고 싶다.
그래도 일단은 이번 장단만 끝까지 맞춰주기로 생각하며, 조용히 녀석의 뒤를 따른다.
그때 저편에서 걸어오시는 선생님이 보인다.
"야, 너네 둘이 어디갔었어."
"아까부터 어지럽다고 해서, 제가 양호실에 같이 다녀왔습니다. 죄송합니다."
"...음, 그래?
...그럼 넌 청소하지 말고 수업 들어가라."
"......"
"대신 넌 다음이야. 그냥 넘어가는 거 아니니까 그땐 너 혼자 청소해."
"...네."
난 선생님께 꾸벅 인사를 하고는 터덜터덜 교실로 발걸음을 옮긴다.
무심코 돌아본 뒤에, 녀석이 웃는 얼굴로 손을 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