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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븐틴/조슈아] 하지 못한 말 | 인스티즈

 

 

 

 

 

 

 

 

 

 

지독한 인연이라고 해야할까, 운명이라고 해야할까. 지금 내 눈에 앞에 있는 니가, 내 옆에 있는 내가 제일 사랑하는 남자랑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라면,

그 사실을 너와 이 사람이 알게 된다면, 너희 둘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어떤 눈빛을 나에게 보낼까, 무슨 말을 나에게 할까.

 

 

 

 

 

 

 

 

 

 

"기다려줄래? 내가 널 데리고 갈 수도 없고, 기다려달라고 무턱대고 부탁할수도 없어서 나 지금 묻고 있는거야. 어떻게 할래?"

 

 

"기약 없는 기다림이라고 했지 니가. 언제 돌아올지도, 돌아온다고 해도 아주 돌아올 수 있을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라며"

 

 

"응. 아무것도 장담 못 해. 그래서 나 너 못 잡고 있잖아 지금"

 

 

"그럼 나도 아무 말 안 할래. 기다린다는 말도, 끝내자는 말도. 그냥 난 내 할 일 하고 있을게. 돌아오고 싶으면 돌아와. 그 떄 내가

혼자일지 아닐지 지금의 나는 아무것도 모르겠어. 그냥, 이렇게 마음 비우고 갈 길 가자. 있을지 모르겠지만 운명이란 거에 맡기자"

 

 

 

 

 

그렇게 너랑 나는 헤어지지도, 그렇다고 서로를 그리워하지도 않는 애매한 상태로 끝이 났다. 너는 네 가족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 본격적으로

니가 하고자 했던 것을 하기로 했고, 난 내 가족이 있는 이 곳에서, 늘 했던 것처럼 내 꿈을 위해 계속 노력하기로 했다.

 

 

 

 

 

 

 

상황은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터졌다. 니가 떠나가고 두 달 뒤에 병원에서. 축하드린다는 의사님의 말씀이 전혀 축하로 들리지 않는 건 아마도

니가 내 옆에 없기 때문이겠지. 솔직히 핸드폰을 들어 니 번호를 찾지 않았다면 그건 거짓말이 분명하다. 아무리 그래도 네 생각이 나지 않을 순 없겠지.

 

하지만, 난 외워버린 11자리의 번호를 누르고도 끝끝내 통화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 그 때 내가 왜 그랬는지, 무슨 마음이었는지는 지금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내 마음을 내가 추측하건데 아마도 짐이 되기 싫었을거고, 널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겠지.

 

 

 

 

 

그 길로 바로 우리 집으로 갔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엄마는 아무것도 모른채로 드라마를 보며, 빨래를 개고 계셨다.

이제 와서 이런 말은 웃기지만, 만약 그 때 엄마가 없었더라면 지금쯤 난 엄마가 되지 않았을수도 있다.

 

해맑게 '웬일이야? 지 집에 꿀 발라놓고 일주일에 한 번 올까말까한 니가.' 하는 엄마의 목소리를 듣고서

'엄마, 내가 엄마처럼 한 아이의 엄마가 될꺼래. 걱정하지마, 아빠 모르는 애는 아니니까. 그리고, 나도 걱정하지마. 믿어줘' 라며

통보하듯이 엄마 가슴에 칼을 꽂고 나와서 그 후로 8개월을 누구보다 독하게 살지 못 했을테니까,

 

텅 빈 집을 그것보다 더 텅 빈 눈으로 바라보다 멍하니 소리 없는 눈물을 흘린 채로 다른 이유로 병원을 찾았을테지.

 

 

 

 

 

덕분에 다시 없을 내 보물을 만난 걸, 대신 당신의 보물이 조금 깎이고 다치는 걸 보게 만들어서 죄송한 마음뿐이지만, 감사하게 생각한다.

그 때 거기 있어줘서, 대못을 박고 떠난 딸도 당신의 딸이라며 받지 않는 전화를 20통 가까이 해 주셔서, 내가 이렇게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그렇게 지난 시간이 벌써 5년이었다. 차라리 날 닮은 딸이었다면 하고 바랬던 적도 있다. 이 아이를 보며 너를 조금이나마 덜 떠올릴 수 있기를.

어쩔 수 없이 배일 너의 향기와 모습이라면 그 양이 조금은 덜 하기를, 내 모습이 네 모습을 덮을 수 있기를 간절히 빌었다.

 

나는 둘째 치고 뱃속에 있는 내 아이를 불쌍하게 만들기 싫어서, 항상 병원에 순영이를 데리고 갔었다. 처음 순영이에게 모든 걸 털어놓았던 날,

그 때 들었던 잔소리와 맞았던 등짝 스파이크를 생각하면 아직도 정신이 멍해져 온다. 그래도 참 고마웠다.

 

왜 지우지 않았냐고 혼내지 않아서. 아이 아빠는 누구냐, 당장 데려와라 난리쳐주지 않아서. 그저 '아이구... 너 어떡할래?' '너 같은 앨 엄마로 둘

니 뱃속 아이가 불쌍하다' 등등, 분위기를 우울하고 무겁게 만들어주지 않았다는 것만으로도 참 좋은 친구라는 걸 느낄 수 있었으니까.

 

 

 

 

 

순영이랑 병원을 가서 아이의 성별을 처음 들었을 때 '어머님은 나중에 아이 크면 목욕탕 가실 때 외롭겠어요' 하던 의사님의 목소리를 듣고

한동안 멍했었다. 아들이구나... 너를 많이 닮았을까? 너의 어떤 모습을 닮았을까. 내가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그 모습들이 담겨있을까?

 

말한적도 없었던 것 같은데 언제부턴가 아이 아빠를 알고 있던 순영이는 병원을 나오면서 '각오는 하고 있어. 니 아들 홍지수 많이 닮았을거야' 하고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네면서 '결국 모든 선택은 니 몫이야' 라는 꽤 어른스러운 조언도 해 줬었다.

 

 

 

 

 

 

 

아이가 태어나고서는 정신이 없었다. 처음이라는 건 항상 서툴 수 밖에 없는데, 옆에서 도와줄 사람도 없는 나는 더더욱 아이를 힘들게 했었다.

혼자의 몸으로 부모의 몫 모두를 해 내야 하는 나라서, 더 강해지고 더 여려졌다. 하루가 다르게 자라는 아이를 보면서, 내 옆에서 새근새근 자고

있는 아이에게서 네 모습이 보일 때마다, 가끔씩 감당 안 되는 슬픔과 고통이 밀려들때면 핸드폰을 들었던 적이 100번은 넘었을거다.

 

그리고 그 100번 중 단 한 번도 너에게 닿은적은 없었다. 아이가 태어나서, 기고, 걷고, 말을 하고, 뛰어다니며 자라는 오늘 이 순간까지.

 

 

 

 

 

 

 

"Hello, 안녕, 아기야."

 

 

"나 아기 아니에요! 5살인데. 엄마 나 아기 아니지~"

 

 

"그럼~ 아기 아니지."

 

 

 

 

 

아이가 유치원에 입학할 때, 원장실 한 켠에 있던 사진 속에 널 보았던 게 헛것이 아니었단 걸 이제야 알았다. 어디서 뵌 것만 같던 원장선생님의 얼굴이,

예전 너와  내가 행복했을 때 자주 만났던 네 제일 친한친구의 어머님과 똑같았다는 걸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저 왠지 익숙하다는 생각만 했을 뿐

 

그리고, 곧 아들에게 모든 걸 다 가르쳐주고 나면 자리를 넘길거라는 이야기도, 니가 아이들에 대한 걸 부전공으로 공부했었다는 사실도 전부 잊었다.

 

 

 

 

 

 

 

"아저씨. 저는 아기가 아니라 다온이에요~"

 

 

"이름이 다온이야? 이름 예쁘다."

 

 

"아저씨 이름은 뭐에요?"

 

 

"아저씨 이름은.. 조, 홍지수에요. 지수"

 

 

"지수? 아저씨 이름도 예쁘네요. 홍.지.수. 어? 순영이 삼촌이 가끔 홍지수 하잖아. 아저씨, 순영이 삼촌 알아요?"

 

 

 

 

 

기억 못 할 줄 알았는데 가끔 얘기하던 너의 이름을 듣고 있었나보다. 바빴을 그 시간동안, 많은 일들을 머릿속에 넣느라 제발 그 이름을 잊었기를

간절히 빌어봤다. 그리고 잠시나마 아무 죄 없는 순영이를 탓했었다. 왜 하필 쉽게 잊혀지지 않을 이름을 가진 거냐면서

 

 

 

 

 

하지만, 그 기도는 이뤄지지 않은 것 같았다. 그 이름을 듣고 아이에게 맞춰져 있던 눈이 나에게로 올라오는 걸 보면. 예전처럼 내 눈을 바라보더니

다시 아이에게로 눈을 돌렸다. 다시 보면 어린 시절에 니가 보이겠지. 행동은 나를 많이 닮은 아이였지만 겉모습은 영락없는 어린시절에 너일테니까.

 

사실을 알게 된 지금, 아들에게서 듣는 '아저씨' 소리는 얼마나 아프게 들려올까? 첫 만남이 아픔으로 기억되게 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음... 그 삼촌, 아저씨가 아는 사람 중에도 그런 이름을 가진 사람이 있긴 한데, 그 사람이 같은 사람인지 잘 모르겠다. 혹시 그 삼촌 어떻게 생겼어?"

 

 

"우리 수녕이 삼촌은요~ 눈이 이-렇게 생겼고 또 춤 진짜 잘 추고 또... 우리 엄마랑 친해요! 어, 또 뭐 있지?"

 

 

"엄마랑 제일 친하고, 키는 요정도에 노래도 잘 하고... 맞지?"

 

 

"네! 아저씨도 우리 삼촌 알아요? 삼촌 친구에요? 친해요? 우리 엄마랑도 친구에요? 삼촌이 친구의 친구면 친구라고 막 그랬는데!"

 

 

"글쎄... 삼촌 친구는 아닌데, 아는 사이긴 한 좀 복잡한 관계야. 그리고.. 엄마랑 친한 친구 사이야. 사실 순영이 삼촌보다 아저씨가 엄마랑 더 친해"

 

 

 

 

 

이 상황에 내가 어떡하면 좋을까. 그냥 얼버무려 이 자리를 마무리 짓고 도망쳐버릴까, 아니면 그냥 지금 이대로 아무말도 하지 않고 너를

지켜만 봐야할까. 잠투정을 할 때면 가끔 찾던 네 아빠가 저 사람이라고 뛰어가 안겨보라고 얘기라도 해 줘야 할까. 난 모르겠다. 지수야

 

 

 

 

 

"우리 엄마랑 친한 친구에요? 근데 왜 나 못 봤어여?"

 

 

"아저씨가 멀리 다른 나라에 있다가 얼마 전에 한국을 와서 그래요"

 

 

"아~ 그렇구나. 좋겠다. 나는 나중에 미국 가 보고 싶어요"

 

 

"그래? 아저씨가 미국에 있다가 왔는데. 나중에 아저씨랑 같이 갈까?"

 

 

"진짜요? 아저씨 짱! 엄마 아저씨 좋은 친구같아. 나 미국 데리고 가 준다고 했어!"

 

 

"그래? 좋겠네. 그래. 아저씨 진짜 좋은 친구야."

 

 

"아저씨 짱이지? 다온이 5살이라고 했지. 동생은 있어?"

 

 

"아니요. 나 동생 없어요. 엄마랑 나랑 이렇게 둘이 있어요."

 

 

"...그래? 근데 우리 다온이 되게 잘생겼다. 여자친구들이 다온이 잘생겼다고 얘기 안 해?"

 

 

"사실 쪼금 해요. 아저씨가 보기에도 나 잘생겼어요?"

 

 

"그럼. 아저씨가 본 애기들 중에 다온이가 제일 잘생겼어."

 

 

"이건 비밀인데, 아저씨도 잘생겼어요. 원우 삼촌이 그러는데 넌 엄마 안 닮아서 잘생긴거라고 했어요. 근데 난 엄마 아들이니까

엄마를 닮았을건데. 원우 삼촌 이상한 말 하죠? 내가 엄마를 안 닮았으면 누굴 닮아요?"

 

 

"맞아. 그 삼촌이 이상한 말 했네. 삼촌이 보기엔 다온이 엄마 많이 닮았는데? 요기 코도 엄마 코고, 손도 엄마랑 똑같네"

 

 

"우와! 어떻게 알았어요? 할머니가 나한테 코는 엄마랑 똑같다고 했는데. 엄마 이 아저씨 완전 똑똑해. 엄마 친구 맞나 봐"

 

 

"그러게. 아저씨 완전 똑똑하시네. 이제 아저씨랑 인사 하고 우린 집에 가자. 가서 씻고 자야지. 너 오늘 너무 열심히 놀았어"

 

 

 

 

 

오래 있어봤자 떼기 힘든 정만 생길테니까. 피는 당기니까 나중에 만나게 된다면 꼭 조심하라는 말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왔었고 지금도 충분히

느끼고 있다. 누군가에게 쉽게 다가가지 않는 아이가 저랗게 경계없이 웃으면서 말을 거는 건 지수가 처음이니까.

 

 

 

 

 

"싫은데... 나 아저씨랑 조금만 더 놀면 안 돼? 아저씨! 나랑 조금만 더 놀아줘요"

 

 

"그럴까? 뭐하고 놀지? 다온이 하고 싶은 거 있어?"

 

 

"숨바꼭질이랑 술래잡기랑 또..."

 

 

"그건 다음주에 유치원 소풍 가지? 그 때 아저씨도 같이 가니까 소풍 날 하자. 그런 건 친구들이랑 해야 재밌잖아. 그치?"

 

 

"그럼... 나 이렇게 스카이콩콩이랑 헬리콥터랑 해 줘요"

 

 

"응? 그게 뭐야? 스카이 콩콩? 헬리콥터?"

 

 

"그거 몰라요? 삼촌들이 자주 해 주는건데. 엄마, 아저씨는 모르나 봐. 안 똑똑해"

 

 

 

 

 

그 때 그렇게 헤어지고 다시 만난 너와 나누게 된 첫 대화가 이런 내용일줄이야, 아이를 키우다보면 생각치도 못한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지만

그래도 이건 좀 아니지 않나? 잘 있었냐 하는 아련한 멘트도, 오랜만이라는 말도 아닌 아이 놀아주는 방법이라니.

 

 

 

 

 

"나중에 삼촌들 오면 해 달라고 해. 처음 보는 아저씨한테 부탁하기에는 다소 격하지 않아, 다온아?"

 

 

"아, 왜~ 알았어. 그럼 아저씨는 나랑 하고 싶은 거 없어요?"

 

 

"하고 싶은 거? 글쎄...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그리고 다온이 하고 싶다는 거 아저씨가 해 줄게"

 

 

"진짜요? 엄마 아저씨가 해 줄거래~ 거짓말 아니죠 아저씨?"

 

 

"그럼~ 어떻게 하는거야?"

 

 

"애기 잡고 공중에 붕 띄웠다가 다시 받고 하는 게 스카이콩콩, 애기 겨드랑이 밑 잡고 빙글빙글 돌면 그게 헬리콥터"

 

 

"아~ 알았어. 어려운 것도 아닌데 왜 말렸어."

 

 

 

 

 

곧 지수 품에 안겨서 공중에 몸이 붕 뜨고 어지러울 정도로 빙빙 돌아도 뭐가 그리 좋은지 계속 웃는 다온이랑 어느새 같이 웃고 있는

지수 모습이 눈에 담겼다. 어쩌면 내가 바라던 그림이 지금 내 눈 앞에 펼쳐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정하게 놀아주는 아빠와 세상 가장

행복한 웃음을 짓고 있는 아들. 같이 웃는 저 모습이 나보다 우리 다온이가 더, 바랬던 작은 소망 같은 거겠지.

 

5살 치고 속이 깊어 한 번도 아빠 얘기를 꺼낸 적이 없던 고맙고도 안쓰러운 내 소중한 애기였다. 옆에서 친구들이 도와주긴 했지만 그래도

어린 맘에 채워지지 않는 무언가가 분명히 있었을텐데도 내 앞에서 어리광 한 번 부리지 않았는데 지금 저렇게 행복해하면 엄마가,

엄마 마음이 찢어지잖아. 저렇게 예쁘게 웃는 아이에게 내가 지켜주겠다면서 상처를 준 건 아니였을까. 눈물이 날 뻔 했다. 

 

 

 

 

 

잠시 생각에 잠겨 있었더니 어느 순간 둘이 시야에서 사라졌다.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아빠가 자기 아들 납치한건가 라는 생각도 잠깐

하다가 멀리서 들리는 지수 목소리에 돌아보니 저 멀리서 지수가 뛰어오고 그 뒤를 다온이가 쫓고 있었다.

 

 

 

 

 

"내 새끼 데리고 도망이라도 간 줄 알았네. 뭐하는거야, 지금? 왜 다온이가 널 쫓아?"

 

 

"몰라. 분명히 처음엔 내가 잡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바꼈더라고. 어, 다온이 온다아아아~"

 

 

"아저씨 잡자~ 내가 잡을거야- 잡았다!"

 

 

"우와, 다온이 달리기 진짜 빠르다. 아저씨 잡혔네.."

 

 

 

 

 

아무래도 여자다보니 몸으로 놀아주는 데에는 한계가 많았다. 체력적인 문제도 그렇고, 챙겨야 할 것도 많고. 오랜만에 자기 페이스

맞춰 열심히 놀아주는 사람을 만난 덕인지 다온이는 오늘 하루 원없이 신나게 놀고 있다.

 

 

 

 

 

"다온아, 이제 진짜 가자. 좀 있으면 하늘도 깜깜해지고 추워. 엄마가 오늘 다온이 외투도 못 챙겨왔단 말이야. 빨리 가야 돼"

 

 

"진짜? 아저씨 들었죠? 우리 빨리 가야 돼요. 빨리 가요"

 

 

 

 

 

언제 안긴건지 편하게 포옥 안겨서는 당당히 집에 가야한다고 지수한테 말하는 아들. 당연히 아이를 받으려고 팔을 내미니까 이게 웬일,

새침하게 고개를 홱 하니 돌리더니 지수한테 안겨서는 '엄마 빨리 와' 하고 먼저 가 버린다.

 

이게 무슨 상황인가 싶어서 따라갔더니 왠지 모르게 주인을 닮은 지수 차 앞에 둘이 여전히 그 자세를 유지한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차마 아들을 혼내지는 못 하고 다온이가 안 보는 사이 몰래 지수 정강이를 가볍게 찼다.

 

 

 

 

 

"아!"

 

 

"아저씨 왜요?"

 

 

"응? 아, 아무것도 아니야. 빨리 타자"

 

 

"타긴 어딜 타. 다온이 빨리 엄마한테 와"

 

 

"아까 다온이랑 내기 했거든. 내가 잡히면 집까지 바래다주기로. 그래서 그런 거니까 의심하지 말고 타시죠"

 

 

"빨리 타시죠, 엄마님"

 

 

 

 

 

거절해봤자 이미 홀랑 타 버린 아들은 절대 내리지 않을테고 은근 고집 센 홍지수도 쉽게 보내주지 않겠지. 부자 합동 공격에

별 수 없이 뒷자리에 탔다. 조수석에 타는 건 그림도 좀 이상하지만, 시트도 없는 차에서 다온이만 혼자 뒷자리에 태울 순 없으니까.

 

경계와 긴장을 풀고 차 내부를 둘러보니 성격대로 참 깔끔하게 정돈되어있었다. 예전부터 즐겨쓰던 향수를 아직도 쓰는지 은은하게 냄새도

배여있었다. 어느 날 우연히 뿌리고 나왔을 때 내가 향기가 좋다고 하루종일 칭찬 한 뒤로 계속 쓰던 그 향수.

 

 

 

 

 

"아저씨 차에서 좋은 냄새 나요!"

 

 

"냄새 좋아? 이거 아저씨 향수 냄새야. 맘에 들어?"

 

 

"네! 엄마 우리 집에도 이거 사서 뿌리자. 내 방에 뿌려줘"

 

 

"안 돼. 너 이거 자주 맡으면 머리 아파."

 

 

"힝... 좋은데. 아저씨, 우리 엄마 나쁘죠! 근데 왜 친구해요? 아저씨 보고 안녕 친구야 도 안 해 줬잖아요. 엄마가 친구 만나면

인사하는 거라고 했는데 엄마는 안 했어. 왜 그래 엄마는?"

 

 

"그래, 엄마가 미안하다. 나중에 아저씨 갈 때는 우리 둘 다 인사 제대로 해 주자~"

 

 

"그러게. 아저씨가 착해서 엄마 친구 해 주는거야. 그래도 엄마 좋은 사람이야."

 

 

"맞아요. 사실 우리 엄마 안 나빠요. 착하고 좋은 사람이에요. 그렇지 엄마? 다온이 엄마 좋은 사람이에요~"

 

 

"둘 다 왜 이래. 벌써 다 왔네. 내릴 준비하자 다온아. 가방 챙기고. 아저씨께 안녕히 가세요, 오늘 감사했습니다 인사 드려"

 

 

"쓰탑! 오늘 하루 종일 놀아줬는데 난 아무것도 얻는 게 없잖아"

 

 

"다온이가 하루종일 있어준 게 얻은거지. 어디 가서 이런 애 쉽게 못 만나. 그치 다온아~"

 

 

"응~"

 

 

 

 

 

애 낳고 나면 뻔뻔해진다더니, 여태껏 한 번도 느껴보지 못 했는데 여기서 이렇게 발휘될 줄이야. 뭘 부탁할지 덜컥 겁이 나서 장난스럽게

방어를 했다. 더 이상 우리에게 들어오지 말라고. 우리 아이를 흔들지 말아 달라고 속으로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만 하자고.

 

 

 

 

 

"아하하하하 모자가 아주 자부심이 넘치네. 짱이다 너네..."

 

 

"원하는 게 뭔데? 집에 가서 차 한 잔이라도 줄까?"

 

 

"원하는 게 뭐냐! 당장 말해라!"

 

 

"다온이 보는 만화에서 주인공이 악당한테 하는 대사야 신경 안 써도 돼"

 

 

"일단 차 한 잔 마시면서 생각 좀 해 보고. 다온아 집에 가자~ "

 

 

 

 

 

이건 뭐지. 내리자마자 지수 손을 잡고 쪼르르 들어가버리는 아들 뒷모습에 당황해서 멍하니 서 있다가 문 앞에 멀뚱히 서 있는 둘을 보고는

다가가서 '아들! 엄마보다 이 아저씨가 좋으면 아저씨랑 가서 살아!' 하며 질투 한 번 해 주고 문을 열었다. 물론 뒤따라서 '다온아 그럴까?

아저씨 집 되게 좋아. 다온이 방 할 때도 있어' '진짜? 나 아저씨랑 같이 살아도 돼?' 하는 말에 다시 둘을 쫓아내고 싶었지만.

 

 

 

 

 

"집 되게 아기자기 하고 귀엽다~ 나는 늘 마시던 걸로"

 

 

"우리 집 예쁘죠? 우리 엄마가 다 꾸민 거에요"

 

 

"여기가 레스토랑이야? 늘 마시던 거는 무슨... 오미자차 줄테니까 마시고 가. 아들, 아들도 줄까요?"

 

 

"네! 나 오미자 좋아해요!"

 

 

"우와... 아들한테는 존댓말 쓰면서 나는! 나는!"

 

 

"너는 뭐! 그냥 나가실래요?"

 

 

"아니요, 아드님, 손 씻고 여기 와서 가만히 앉으세요~"

 

 

"네~ 근데 왜 아드님이라고 해요? 나 아저씨 아드님 아닌데?"

 

 

"...그렇지. 다온이는 엄마 아드님이니까 아드님 하는 거에요"

 

 

 

 

 

방금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의 말에 얼마나 속이 쓰렸을까. 따지고 보면 지수가 잘못 한 건 아무것도 없다. 나를 떠난 것도 버린 것도 아니니까.

오히려 숨기고 떠난 건 내 쪽이지. 아이가 있다는 것도 숨긴 채, 그게 네 아이라는 건 더 꽁꽁 숨긴 나쁜 사람.

 

아니나 다를까, 아이가 화장실에 들어가자마자 상처 받은 표정이 여실히 드러났다. 그리곤 나를 보더니 씁쓸하게 웃으며

 

 

 

 

 

"와... 방금 그 말 진짜 아팠다. 지금까지 다 괜찮았는데 이번은 좀 힘들었어"

 

 

 

 

 

금방이라도 울듯한 표정을 했으면서 손을 다 씻은 아이가 나오자 얼굴을 싹 지우고 해맑게 웃어보인다.

 

 

 

 

 

"손 다 씻었어?"

 

 

"네! 아저씨는 손 안 씻어요?"

 

 

"아, 그러네. 다온이 보고 씻으라고 하면서 아저씨는 안 씻었구나. 손 씻고 올테니까 기다려"

 

 

 

 

 

준비한 차를 다 마시고 집을 둘러보던 지수가 안방 화장대 위에 올려뒀던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들고 나왔다. 이게 왜 화장대에 있냐면서

혼자 웃더니 어느새 다온이랑 다정하게 붙어서 사진을 찍고 있다. 진짜... 참 잘생기기는 둘 다 지독하게 잘생겼다.

 

 

 

 

 

"다온이 치즈~"

 

 

"치즈~"

 

 

 

 

 

"다온아, 삼촌이 볼에 뽀뽀해도 돼?"

 

 

"네. 해도 돼요"

  

 

 

 

 

"이번에 다윤이가 뽀뽀!"

 

 

"뽀뽀!"

 

 

 

 

 

"야! 아들! 너 언제 봤다고 그렇게 쉽게 입술을 내 주고 그래~"

 

 

 

 

 

둘이서 사진 찍는 걸 구경하는데 은근 재미있다. 이상한 표정도 지었다가 브이도 했다가 서로 뽀뽀도 주고 받고.. 그나저나 저렇게 쉽게 입술 내 주고

그러면 안 되는데! 내가 분명 니 입술은 엄마만 줘야 돼 라고 단단히 얘기 해 뒀는데... 그래, 아까 그 멘트 사과쯤으로 치고 봐 준다 내가.

 

 

 

 

 

"엄마, 엄마도 같이 찍어"

 

 

"그래, 혼자 심심한 거 다 알아. 빨리 와"

 

 

"아, 진짜... 이 각도는 예쁘게 안 나와. 둘 다 이리 와"

 

 

 

 

 

가족사진이라고 하기엔 좀 많이 아쉽고 모자란 단체사진을 찍고 꽤 많이 찍힌 사진들을 거실 테이블에 쭉 펼쳐놨다. 뭔가 좀 이상하긴 했지만

지수가 손님 우대라면서 자기가 먼저 사진을 고르겠다며 몇 장을 가져갔다. 그 중에서도 다온이랑 뽀뽀한 사진을 같이 찍은 사진을 바라보더니

제 집인양 방에 들어가 펜을 가져와선 뭔가를 쓰기 시작한다.

 

 

 

 

 

"다온아, 다온이도 맘에 드는 사진 골라 봐"

 

 

"음.. 나는 이거!"

 

 

"이거? 오~ 이거 다온이 잘 나왔다. 사진 볼 줄 아는구나 다온이. 알았어."

 

 

 

 

 

이내 다온이가 고른 사진도 가져가더니 두 사진에 똑같은 문구를 쓰고서는 하나는 자기 주머니에 넣고 하나는 다온이에게 돌려줬다.

지수가 고른 나머지 사진은 자기 지갑 속에 넣어두었다.

 

 

 

 

 

"아저씨 이거 뭐라고 쓴 거에요?? 엄마, 아저씨가 영어로 막 뭐라고 썼어. 근데 나 이거 읽을 줄 몰라"

 

 

"영어로 썼어? 줘 봐. 엄마가 읽어줄게"

 

 

 

 

 

나도 내심 궁금했던터라 다온이에게 받아서 읽어보니까

 

"Joshua & Logan"

 

이라고 적혀있었다. Joshua 는 자기 이름이고 Logan은... 다온인가? 다온이가 왜 Logan 이지?

 

 

 

 

 

"홍, 이거 뭐야? 다온이가 Logan이야?"

 

 

"응. 내가 아가 영어 이름 지어 준거야. 앞으로 누가 영어이름 뭐냐고 물어 보면 Logan이라고 해"

 

 

"왜? 갑자기 뜬금없는 작명이야. 근데 왜 Logan이야? 무슨 뜻 같은 거 있어?"

 

 

"Logan이 작은 선물 이라는 뜻이래. 작은 선물 맞지. 너한테도, 나한테도..."

 

 

 

 

 

약간은 수줍은듯한 목소리로 말하고선 테이블에 남아있는 사진 중 둘이 찍힌 사진에 아까와 똑같은 문구를 쓰고 나한테 주더니

'이건 니 꺼.' 하며 손에 쥐어 주고선 다시 테이블을 눈으로 훑터니 우리 셋이 같이 찍은 사진들을 유심히 보다가 가장

맘에 드는 사진 하나를 골라서 이번엔 뒤에다 무언가를 쓰기 시작한다. 손으로 꽁꽁 가리며 쓰더니 다 쓰고 나서

 

"이건 나중에 나갈 때 줄게. 너 혼자 봐. 꼭 봐"

 

하며 제 손에 꼭 쥐고 있다가 나갈 채비를 다 하고선 소녀가 연애편지를 건네듯이 주고선 '다온아 나중에 보자'하며 수줍게 사라졌다.

연애할때도 내가 저런 모습을 못 본 것 같은데... 참 나이 들어서 귀여운 짓을 더 하네

 

 

 

 

 

 

 

지수에게서 받은 사진은 테이블에 올려두고 다온이를 씻겨서 재운 다음 어지러진 집 정리를 했다. 정리를 다 하고 나도 잘 준비를 하고 나서

잠시 잊고 있었던 사진을 찾아봤다. 아까 보니까 뒤에 뭘 쓰는 것 같던데... 그나저나 사진 진짜 잘 나왔네. 지갑에 넣어둬야겠다.

 

 

 

"뭐라고 써 놨으려나..."

 

 

 

 

 

 

 

 

 

 

 

 

 

 

 

"If you want to be, you can. Alw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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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회원31.222
와ㅠㅠㅜㅜㅠ 너무 아련해여ㅠㅠㅠㅠ잘보고갑니다!
8년 전
독자1
작가님 보는데 완전 재밌어요... 아련하기도 하고 ㅠㅠㅠㅠㅠㅠㅠㅠ 아가 이름도 예쁘고요... 잘 보고 갑니다♥♥♥
8년 전
독자2
ㅠㅠㅠㅠㅠ지수야ㅠㅠㅠㅠㅠ여주랑 이제 둘이 알콩달콩햐질일만남은거야ㅠㅠㅠ
8년 전
비회원81.205
ㅠㅠㅠㅠ장편각!!!!넘나 좋은거...작가님 오늘처음 뵙지만 사랑합니다♡♡
8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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