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왕의 매력 episode 12 - K and R
(blame oneself)
(브금필수!)
"가자."
한참의 시간이 흐른 뒤 도착한 내게 정국이 건넨 말은 딱 저 한마디였다.
눈조차 마주치지 않는 그는 옆에 걸쳐져있던 자켓을 집어들었고, 그의 손목을 부여잡은 내 손에 그제서야 그의 눈이 나를 내려다봤다.
"..왜그래?"
"..."
"혹시 화났어?"
조심스레 꺼낸 내 말에도 그는 아무런 반응 없이 그저 잡힌 손목을 풀어냈다.
"화내기 싫어."
"뭐?"
"화내기 싫으니까 제발 그냥 가자고."
딱딱하게 굳은 목소리가 나를 향했고, 나는 그저 얼이 빠져서는 그를 바라봤다.
서로의 마주친 시선 속에 낮은 한숨을 끼워넣은 그가 다시 한번 발걸음을 돌리고,
그런 그를 붙잡으려 그의 손목을 잡자마자 거세게 뿌리친 그가 나를 노려봤다.
"제발..!제발 좀!"
"...전정국!"
"진짜 나, 너한테 소리 높이기 싫어, 그래서 그러니까 제발.
제발 이번만이라도 내 말 좀 들어, 응?"
"..."
그를 바라보는 나의 눈빛에 깊은 한숨을 내쉬며 머리를 쓸어넘긴 그가 거칠에 자리에 다시 앉고,
무슨 말이라도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그를 바라봤지만, 그는 아무런 대답없이 굳은 표정으로 앞에 놓인 샴페인을 만지작거렸다.
혹시나 취한건가싶어 그를 봤지만 그건 아니라는 걸 쉽게 알아챌 수 있었다.
정국이 취할만큼의 도수를 가진 술은 그의 주변에 있지 않았다.
"전정국."
다시 한 번 울려퍼진 내 목소리에 샴페인을 따라 빙글빙글 돌아가던 그의 손가락이 멈추어서고,
그의 가라앉은 눈이 나를 마주했다.
"...항상 넌,"
"..."
"나 따윈 안중에도 없지?"
인상이 찡그려졌다. 낮게 그르렁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가 화를 내는게 아니란 것 쯤은 알 수 있었다.
분명 그의 날카로운 시선이 나를 노려보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배가 되는 슬픔이 그를 적시고 있었다.
당황한 내가 그의 손을 붙잡으려 다가서자, 내 손을 피한 그가 입술을 깨물었다.
둘 사이로 어두운 거리가 깊게 깔렸다.
"너 걱정할 거란 생각은 못하지?"
"..."
"그냥 넌 너 할 거에 바빠서,"
"..."
"병신같이 또 버림받을까봐 벌벌 떠는 나는 보이지도 않지?"
한껏 격양된 목소리가 파티장을 울리고, 거친 숨을 내쉬던 그가 손을 들어올려 자신의 얼굴을 쓸어내렸다.
이해할 수 없었다. 그가 왜 이렇게 화가 난건지, 왜 내가 그에게 이런 말을 듣고 있어야하는지.
내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나도 할 일이 있어서 그런건데, 그보다 우리가 이런걸 일일히 보고해야 할 정도로 사이가 깊었던가?
왜 항상 주체할 수 없는 그의 성격을 내가 다 받아줘야하는건데?
그를 잡으려 올라갔던 손이 한 순간에 뚝- 떨어지고, 주먹을 꽉 쥐었다.
"그냥 말 한마디 해주는 거, 그게 그렇게 어려워?"
"..."
"그냥 좀 늦을거라고, 걱정하지 말라고.
그 정도 말은 해줄 수 있잖아."
"..."
"그래도 우리가 그 정도 사이는...,"
"야, 전정국."
목까지 붉어져서 울분을 토해내던 그의 말이 나로인해 멈춰서고, 머릿 속에 의문이 떠돌았다.
우리 사이, 그게 도대체 뭔지 알 수 없었다.
고작 며칠 같이 지냈다고 우리 사이를 들먹이는 정국이 웃기기도 했고, 그렇게 생각하다보니 정국의 화르 받아주고 있는 이 시간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너 너무 오버하는거 아냐?"
"...뭐?"
"내가 너한테 일일히 다 보고해야되고, 우리가 언제부터 그런 사이였어?"
"..."
"우리 사이, 언제부터 너랑 내가 우리라고 칭할만큼 가까워졌는데?"
멍하니 굳어있던 정국의 표정이 한순간에 일그러졌고, 그의 입 속으로 허탈을 웃음소리 하나가 튀어나왔다.
나를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가 아픔을 자아냈고,
슬픔에서 아픔으로 변한 그 눈동자가 나를 깊고 또 깊게 그 안으로 담았다.
"그래. 뭐, 그런 사이라고 치자."
"..."
"뭔진 모르겠지만, 우리 사이가 그렇게 깊다고 쳐."
"..."
"그럼 너야말로 내 말 좀 믿어줘야 하는 거 아냐?"
"..."
"내가 말했잖아, 나 믿으라고."
"..."
"난 사람 안버린다고,"
"..."
"그러니까 나 믿으라-"
쨍그랑-
그가 앞에 있던 유리잔을 바닥으로 집어던진 순간, 다다다 그를 쏘아 부치던 내 말이 멈춰섰다.
발 바로 옆에 박힌 유리조각들에 놀란 몸이 멈춰서고, 동그랗게 커진 눈으로 그를 바라보자,
조금은 지친듯한, 그리고 금방이라도 눈물을 터뜨릴 것 같은 눈을 한 그가 나를 바라봤다.
"전정국 너 미쳤-!!"
그를 향해 날아가던 비명이 순식간에 잦아든건, 붉어진 눈을 하고 나를 노려보는 그의 모습에서 나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남준에게 버려져 비참한 표정을 짓고 있던 내 모습,
그로인해 참지 못할 슬픔이 화가되어 제 자신도 견디지 못할 분노로 온 몸을 벌벌 떨던 내 모습.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던 모습을 한 정국이 나를 노려봤다.
"...믿으라고,"
"...정국-"
"내가 너를 믿으라고?"
"..."
"하-"
"..."
"야."
싸늘히 식은 그의 목소리가 나를 부르고, 처음보는 그의 모습에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화를 참고있는 듯 부들부들 떨리는 손이, 그의 심정을 대변해주고 있었다.
"내가 널 왜 믿어?"
"뭐?"
"내가 어떻게 널,"
"..."
"내가 어떻게 널 믿어."
"...전정국."
"난 너 못 믿어."
"..."
"왜?"
그의 차갑게 식은 눈동자가 나를 마주하고,
무언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분위기에 덜컥 겁을 먹은 내가 그제야 너에게 다가서려하면,
"이미 버려졌었으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내게 맞추려 했던 네가
처음으로 내게서 등을 돌렸고,
허공 속에 혼자 남겨진 손만이 초라하게 너의 뒤를 쫒았다.
*
그 아이를 처음 만난건, 아빠가 돌아가신 날이었다.
세상의 더러움을 알아버린 날이기도 했고.
'아저씨, 그냥 뺑소니가 아니라니까요?'
'시끄럽데도.'
'운전자가 일부로 치고 가는 걸 사람들이 봤대잖아요!!!
저희 아빠 타살이에요, 네? 제발 다시 한 번만 자세히 알아봐줘요.'
'어허-진짜! 어린 게 알긴 뭘 안다고.
자꾸 그러면 진짜 불리한 상황 만들어주는 수가 있어, 응?'
누가봐도 명백한 타살이었다.
차가 지나갈 수 없는 곳까지 범접한 운전수가 피를 흘린채 숨을 헐떡이는 아빠를 내려다보던 그 눈빛을 나는 잊을 수 없었다.
분명 큰 사고였고, 어렸던 내가 보기에도 이상한 그 사건을 경찰들 중 아무도 입 밖에 내지 않았고,
모두 암묵적으로 그 일을 묻어버렸다.
내 바람을 무시하는 그들을 보며, 죽을듯한 비참함을 느껴야했다.
내가 약해서, 약하고 또 약해서, 우리 아빠는 저렇게 억울하게 죽어가는구나.
아빠의 눈물어린 얼굴이 생각나서 며칠을 경련과 함께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두운 하늘을 보며 엉엉 눈물을 터뜨리고, 새벽이 돼서야 지쳐 잠드는 날들이 비일비재했다.
그렇게, 정말 내가 완전히 시들어버렸을 때,
더 이상 살 의지를 느끼지 못했을 때.
그 때였다. 내가 그 아이를 만난 건.
조금 길다싶은 검은 앞머리 사이로 비치는 상처받은 듯한 두 눈동자가 인상깊은 아이였다.
나와 닮은 그 아이에 나도 모르게 이끌렸다.
그 아이를 위로해주며, 사실 난, 나 자신을 위로하고 있는지도 몰랐다.
괜찮아, 괜찮아. 네가 나쁜게 아니야.
네가 잘못한게 아니야, 어쩔 수 없었던 거야.
그에게 속삭이며 나를 달래고 또 달랬다.
그래야 내가 살 수 있었으니까.
그리고 며칠 안돼서였다. 조촐하게 차려진 아빠의 장례식장에서 남준을 만났다.
그는 아빠와 함께 일을 하던 사람이라했고, 나를 도와줄 수 있다고 했다.
곁에만 있어준다면 아빠의 사건을 처리해주겠다고, 내 억울함을 다 풀어주겠다고 했다.
그래서 망설임 없이 그를 따랐고, 그 후로부턴 그 아이를 볼 수 없었으며 점점 기억 속에서 지워갔다.
남준의 약속에 따라 나를 무시하던 경찰들이 모두 사라졌으며,
그렇게 나는 점점 더 위로 향했지만,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
그래, 잡힐 수 없었던 거겠지만.
*
너에게 조차 버려진 내게 남은건 지독히도 쓸쓸한 고독감이었다.
너의 마지막 뒷모습이 나를 아프게 찌르고, 그제서야 느껴진 모두 다 내 잘못이라는 죄책감들이 내 숨통을 조이는 듯 했다.
모두가 떠난 뒤 남겨진 파티장 안은 생각보다 더 외로웠다.
밝게 빛나던 조명이 짙은 어둠으로 변했고, 웃음소리가 터져나오던 그 공간엔 싸늘한 정적만이 맴돌았다.
딱딱한 벽에 기대어 무릎을 끌어안았다.
헛웃음이 입술을 비집고 튀어나왔다.
정국을 보낸 뒤, 어디로 가야할지 생각했었다.
어디든 가면 될 거라는 내 생각과는 다르게, 내가 갈 수 있는 곳은 아주 적었고 또한 한정적이었다.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누가 있더라? 내가 친구라고 부를만한 사람이 있었던가?
누군가를 떠올리면 그 사람들은 모두 남준의 돈과 얽힌 사람이었고,
또 다른 누군가를 떠올리면 모두 내 약점을 잡아 부를 가지고 싶어하는 괴물들이었다.
나를 위로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걸 인정했을 때 든 감정은 슬픔보단 허탈감이었다.
나 왜 이렇게 됐지, 나 왜 이렇게 바보같이 살아왔지.
점차 붉어지는 눈에 괜시리 하늘을 바라봐도, 흘러나오는 고통은 참을 수 없었다.
"아빠 말 좀 들을걸,"
"고집 엄청 부리더니 이렇게 됐어 아빠 딸."
눈물을 참으려 뱉어진 말이, 답 없이 허공을 맴돌았다.
김빠진 웃음을 터뜨리며 무릎에 얼굴을 묻었다.
답지 않게 높은 구두를 신었던 발이 물집과 피로 엉켜져 엉망이 돼있었고,
그 옆에 벗어놓은 붉은 구두가 왠지 멀리 동떨어져 보였다.
큰 파티장 안에 왠지 내가 불청객이 된 느낌이었다.
높은 곳에 올라가기 위해 노력했는데, 정작 나는 내 자리마저 잃어버렸다.
더욱 더 다리를 끌어안으며 몸을 파묻었다.
실내가 따뜻했음에도 불구하고 온 몸이 파르르 떨려왔다.
무섭고 또 외로웠다.
이기적인 속으로 누구든 와줬으면 했다.
누구든 제발 와서 나 좀 여기서 꺼내달라고, 더 이상 끝도 없는 고독함 속에 빠지긴 싫다고.
속으로 외치고 또 외쳐도 돌아오는 답은 없었다.
그렇게 머리카락 사이로 비치는 얼굴이 일그러지고,
다시는 반복하고싶지 않던 외로움 속으로 끊임없이 파고들 때 쯤,
그 때였다.
피로 얼룩진 두 발에 따뜻한 손길이 스며든 것은.
"...전정국."
고개를 들어 바라본 곳에 있는건 그 누구도 아닌 정국이었다.
내 발 밑으로 쪼그려 앉아 더럽혀진 발을 아무렇지도 않게 잡아 채 조심스레 닦아내고 있는 그의 모습을 보니 울컥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미안."
묵묵히 상처난 발을 만지작거리던 그의 입에서 어울리지 않는 사과의 말이 튀어나왔다.
고개를 푹 숙였다.
왜, 도대체 왜.
잘못은 모두 내가 했는데, 도대체 네가 뭘 잘못했다고 항상 너는 내게 잘못을 비는 걸까.
도대체 왜 항상 너는 아무렇지도 않게 내 발 밑에 서길 자초하는 걸까.
"...혼자둬서 미안."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던 그가 어떻게 알고 챙겨온건지, 들고있던 신발을 조심스레 내 발에 끼워 넣고
"...아프게 해서 미안."
딱맞게 신겨진 운동화 뒤로 보이는 그의 맨발이 피로 젖었다는걸 깨달았을 때,
"...좋아해달라고,"
나를 위해 아무 생각 없이 뛰어왔을 그의 꽁꽁 숨겨진 마음이
어쩌면 나보다 훨씬 더 아플지도 모른다는 걸 깨달았을 때,
"강요해서 미안."
나는 결국 참을 수 없는 울음을 터뜨렸고,
젖은 얼굴의 그는 아무 말 없이 조심스레 나를 품에 안고 울먹이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미안,
미안하다고.
힘들게해서, 좋아해서 정말 미안하다고.
*
제가 도대체 뭘 적은건지...하이고.
처음에 쓰던 글이 마무리 단계에서 날라가서 오늘 참 힘든하루였어요ㅠㅠㅠ
다시 쓰려니까 그 느낌이 나지도 않고 계속 끊기고ㅠㅠㅠ
올릴까 말까 하다가 전 편 나온지 12일이나 지났길래 독자님들에게 죄송해서라도 어쩔 수 없이 질러요ㅠㅠㅠ
오늘 정말ㅠㅠ늦게 온 데다가 글도 이상해서 정말 지금까지 중에 제일 죄송한 편이 될 것 같네요ㅠㅠㅠ
포인트 5로해놨는데..그마저도 아까운 느낌...
정말 죄송하고 다음 편에선 제발 글이 잘써지길 바라며,
아직 시험 남으신 분들은 더 파이팅 하시고!
다른 독자님들도 모든 일에서 파이팅 하시길!!
안녕히계세여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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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부턴 새글에 받도록 하겠습니다ㅠㅠ진짜 모든 독자님들 다다다다 사랑합니다 정말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