씩씩대며 집에 가서 자려고 누웠는데 차장님께 전화가 왔음. 안 받으려고 했지만 무의식적으로 그냥 받아버림
"여보세요"
-여보세요
"네"
-무슨 일 있어요
"아니요"
-...
"할 말 있으세요?"
-...
"좀 피곤하네요"
-그래요 잘 자요
-
다음날 회사에 가서도 차장님을 대하는 내 태도 말고는 변한 게 하나도 없었음. 그동안 다퉜었던 다른 때들과는 달리 아무리 입맛이 없어도 회사 근처에서 샌드위치나 김밥같이 간단한 것을 사먹으며 점심을 때웠고 원래도 업무에는 열심이었지만 두 배 더 집중해서 일을 했음. 차장님이 가끔 해주시던 말씀이었지만 일을 하면 의외로 생각정리가 잘 됨.
같은 부서이기 때문에 마주할 상황은 굉장히 많았음. 가끔 눈을 마주친다거나, 점심을 먹으러 가야 할 때, 업무 관련해서 대화를 나눠야 할 때에 어색하고 찬 기운이 조금 맴돌았지만 서로에 대해 생각 할 시간을 굳이 가지지 않아도 될 만큼 일 하기에 바빴음
또 그렇게 일주일 정도 한바탕 휘몰아치고 나니 그 끝엔 평소와 같이 회식이 있음. 우리가 사귄다는 사실도 연인사이이지만 지금은 싸운 상태라는 것도 모르시는 대리님들에 의해 자연스래 또 술자리가 만들어짐. 나도 굳이 팀 회식자리에 빠져야겠다는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함께 감. 평소같이 차장님 옆자리에 앉았음. 마주보는 것 보단 나을까 싶어서
무의식 중에 옆자리에 앉아있는 차장님을 의식해서인지, 왠지 모르게 술이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정신이 더 맑아지는 느낌이 듦. 연인과 다퉈서 불편한 감정보다는 일이 끝나고 난 후 보상받는 그 느낌이 너무나 좋아서 차츰 마음이 풀어짐
"어~ 박서준대리~"
서대리님 팀원 분들도 우리와 같은 식당으로 회식을 하러 오셨나 봄. 우리 테이블로 다가와서 너무 밝은 표정, 목소리로 차장님께 인사를 하고 사소한 얘기를 주고 받는 것을 보니 순간 정신이 탁, 하고 흐트러짐
"회식하러 오셨나봐요~"
"네, 뭐"
"어제 흔쾌히 태워주셔서 감사해요"
"방향이 같아서"
"에이~"
순간 어제 피곤에 쩔어 밤 늦게 버스를 타고 터덜터덜 힘 없이 집에 걸어가던 내 모습이 떠올라 표정이 굳어졌고 이게 뭔가 싶음. 그 때 부터 그냥 술이 채워지면 채워지는 족족 마심 취하기 보다는 한잔, 한잔 비울수록 아픔. 속상하고 쓸쓸하고 서러웠음. 다음날에 출근을 해야 했기에 술자리는 1차에서 마무리되었고, 식당에서 나와 대리님들과 인사를 하고, 차장님께도 인사를 드리고 집 쪽으로 발을 돌림
"데려다 줄게요"
"괜찮아요"
"내가 볼 땐 이사원 주량 두 배는 마신 것 같은데"
"안녕히 가세요"
"정류장까지만 같이 갈게"
"아니에요 뭐, 서대리님이랑 같이 가시던지"
"나랑 가는 게 불편한거면 콜 택시 부를게 그거 타고 가요"
"안녕히 계세요"
"이사원"
평소에는 굳이 이름이나 애칭을 불러주지 않아도 이사원. 하고 부르는 차장님 목소리가 그렇게 다정하게 느껴졌는데 갑자기 짜증이 남
"아ㄴ.."
"차장님 집에 가세요~?"
나는 아직 할 말이 많이 남아있는데 서대리님이 또 툭하고 대화에 낌
"네 집에갑니다"
"어느 방향으로 가세요~? 오늘도 같은 방향으로 가시나?"
"아니요 ㅇㅇ은행 쪽 사거리 지나 갑니다"
왠일로 단호하게 대리님을 떨쳐내고, 조용한 곳으로 가서 대화를 이어감
"계속 해요"
"..."
"할 말 있잖아"
"그만 해요 우리"
"..."
"제가 뭐라고 너무 욕심을 냈네요"
"..."
"그냥 같은 팀 동료로 지내요 예전처럼"
모진 말을 뱉은 것도 나였고 끝내자는 말도 내 입에서 나옴. 수습하지도 못할 말을 해놓고 차장님 얼굴을 똑바로 쳐다 볼 용기가 안나서 도망치듯 버스 정류장으로 향함
어쩌자고 그런 말을 해버렸을까. 버스에서 내려서 주변에 사람 하나 없이 혼자 걷게 되자마자 울어버림. 씻으면서도 울었고 자려고 침대에 누워서도 눈물이 남
-
다음날 출근을 해서는 차장님과 나 모두 아무런 내색이 없었음. 내가 처음 마음을 정리하기 시작했을 때의 모습과 지금의 차장님이 겹쳐 보였음. 철저히 일 얘기만 했고 점심시간에는 혼자 변기에 앉아 시간을 보냈음. 다음날도 그랬고, 그 다음날도 그랬음
사일 째 되던 날 퇴근을 하려는데 너무 아무렇지 않게 대리님들과 농담을 주고받는 차장님 모습을 보니까 갑자기 눈시울이 더워져서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사무실을 나옴
엘레베이터에 타서도 눈물이 나오려 했지만 같이 탄 직원들이 있었기에 입술 물어 삼킴. 그렇게 눈시울을 적셨다, 말렸다 반복하며 집으로 감
나보다 먼저 우리 집에 도착한 익숙한 차 한대가 세워져 있었음. 무시하고 그냥 집으로 들어가 버릴까 생각도 했지만 이미 무의식중에 그 앞으로 가 멈춰 서있었음
"이제 우리 얘기 할 수 있는거에요, 내 얘기 들어줄 수 있는 거에요"
차라리 그냥 끝까지 모른척하지 집에는 왜 찾아왔는지, 무슨말을 해야 내가 최대한 상처받지 않을 대답을 들을 수 있을지 열심히 머리만 굴림
"이사원 말대로 그냥 회사 동료로 지내니까 괜찮은 것 같아요"
"네 지낼만 해요"
"이제, 내가 없어도 괜찮아"
"네 괜찮아요"
"정말로"
"..."
"알겠어 그럼 갈게"
마음에도 없는 소리였는데 갈게, 라는 대답만 짧게 남기고 돌아선 차장님 뒷 모습을 보니 무슨 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음
난 그냥, 하고 입을 뗀 내 목소리에 차장님이 발걸음을 멈추고 다시 돌아서서 그냥? 하고 되물으심
"어떻게 사람이 그렇게 이기적이에요 연인 사이에 자존심 세우는 게 그렇게 중요해요?"
"..."
"그냥 말 한 마디면 아무것도 아닌 사이가 될 수 있을지 몰랐네, 내가 어려서 쉬워요? 그정도 생각도 못할 것 같아요?"
"..."
"내 애인이 다른 여자랑 둘이 웃고 떠드는데 내가 그냥 모른척 무관심해야 해요?"
"..."
"끝내고 나서도 나 혼자 힘들었잖아 내가 잘 못 한것도 아닌데 왜 차장님은 아무렇지도 않고, 나는, 어? 나는"
정말 서운하고 화가 나서인지 필사적으로 차장님을 잡기 위해서인지 모를 말을 쏟아내다, 결국 울음이 터져버림
"그래, 가요 이제 진짜 헤어져요"
"이사원"
차장님 말에 대답 못하고 돌아서서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삼킴
"이ㅇㅇ"
"..."
"난 끝내자고 한 적 없어 그 여자한테 마음있다고 한 적도 없고"
"..."
"회식날 전까지는 우리가 틀어진 이유가 그 대리 때문인지도 몰랐어요"
"..."
"그정도로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으니까"
"..."
"괜찮지 않았어 내가 더 힘들었어, 정말이야"
"..."
"내가 싫어졌나 속으로 생각했어, 처음 끝내자고 했던 날 진짜구나 확신했고"
"..."
"그렇다고 매달리고 힘든 티 내고 하는 거 잘 못하는 성격인 거, 잘 알잖아"
"..."
"나 지금 사과하는 거에요.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대답도 안하고 울기만 하는 나에게 다가와서 한손은 머리에, 한 팔은 등에 세게 안으심
"자존심 상해, 짜증나"
"연인끼리 자존심 세우는 거 아니라면서요"
"..."
"밥은 또 안먹었구나, 마른 거 봐"
"..."
"내일 시간 있어요? 아니, 없어도 얼굴 보자"
"..."
"여기가 제일 잘 어울려 그러니까 어디 가지 말아요"
저런 간지러운 말을 하고나니 자기도 부끄러웠는지 내 머리를 헝클이심
울어서 화장이 번지고 난리도 아닐 것 같아 어영부영 차장님을 보내고 집으로 들어감
씻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쇼파에 앉아 쉬는데 전화가 옴
"여보세요"
-자요
"아니요 아직"
-아 그래
"무슨 일 있어요?"
-그냥 그동안 많이 못 들었으니까
"앞으로 많이 들으면 되지, 그렇죠?"
-응, 잘자요 내일 봐
-
즐거운 금요일이지만 회사에 출근해서도 기운이 없고 축 쳐지는게 왜 이러나 싶음. 입맛이 없어서 점심은 그냥 넘어가려 함
"오늘 이사원 못 먹는 거 나와요. 나갈까?"
"아니요 괜찮아요"
"왜요"
"그냥 생각이 없어서, 대리님들이랑 드시고 오세요"
아, 그냥 배부르다고 할 걸. 먹기 싫다 소리를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시는데.
역시나 갑작스럽게 심기가 불편한 얼굴로 변해선 나를 노려 보심
"그냥 좀 먹으면 안되나. 왜 이렇게 말을 안 들어요"
"간식을 너무 많이 먹어서 그래요, 진짜 배 불러서"
"나랑 종일 같이 있었잖아. 내 자리에서 거기 다 보여. 아주 잘"
반박불가
"그래요 이제 알아서 해. 나 혼자 맛있게 먹고 올테니까"
그렇게 차장님도 나가시고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 잠깐 엎드려 있다가 일어나 보니 이과장님이 이쪽으로 오고 계심
"어, 커피 밥 안 먹어?"
"먹었어요~"
"아 그래, 우리 그럼 커피가 타 준 커피 한 잔 할까?"
"전 괜찮아요, 그냥 하나 타다 드릴게요"
내 옆자리에 앉아 서글서글 웃으시며 커피, 커피, 하시는 과장님을 모른 척 할 수 없어 탕비실에서 과장님 드릴 커피를 들고 자리로 와서 건넴
"오, 되게 못 타게 생겼는데. 괜찮네 자주 올게~"
한 모금 하시고는 나에게 하이파이브를 청하시길래 손을 가져다 대려고 조금 가까이 갔는데 자주 오긴 뭘 와. 하시며 차장님이 갑작스래 나타나셔선 하이파이브 하려던 내 손을 툭 치고 가심. 무안하여라
"밥도 못 먹은 애 커피 심부름이나 시키고, 이 과장 그렇게 할 일이 없어요?"
"먹었다고 그러던데"
니가 어려워서 우리 막내가 거짓말 했나보네. 하시곤 내 자리에 초밥이 든 종이가방을 올려 놓으심
"야 나도 먹고 간다"
고개를 돌려 차장님께 말을 걸었지만 차갑게 무시당하시더니 정무룩 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심
"드세요 진짜 괜찮아요 같이 먹어요 ~"
"역시, 우리 회사가 놓쳐선 안 될 인재야. 누가 뽑았어"
"내가 뽑았어요 이과장님. 너 서른 다섯 맞으세요?"
내가 저번에 밥도 샀는데, 이러기야? 하시며 또 시무룩해 하시길래 젓가락을 건네드리고 고개를 돌려 차장님을 봤는데 새침하게 눈을 돌리시더니 다시 나가심. 아마 옥상에 가신 듯
퇴근 할 시간이 돼서 차장님 차 타고 집에 가고 있었는데, 이왕 같이 탄 김에 드라이브를 하기로 함. 드라이브를 하자니 어지러워서 멀미가 날 것 같았지만 요즘 따로 같이 보낼 시간이 없었기에 티 안내고 잠자코 있다가 집에 도착하자마자 나른한게 으슬으슬 춥고 기운도 없고 해서 기절하듯 잠듦
-
일어나서 이불을 싸매고 누워 있는데 전화가 울려서 골골한 목소리를 한 번 가다듬고 전화를 받음
"여보세요"
-목소리가 왜 그래요
"자서 그렇죠,,"
-진짜
"네"
-아픈 거 아니고
"네~ 정말"
-맞잖아
"그냥 조금 피곤해서"
-밥은, 약은
"그냥 한숨 자면.."
-병원 가. 데리러 갈게요 천천히 내려와 기다릴게
평소에 하도 말에 토를 다니까 대꾸도 못 하게 전화를 끊으심
진짜 얼굴이고 옷이고 신경 쓸 수가 없어서 편한 차림으로 차장님 차를 타고 병원에 들렀다 약을 타 옴. 원래 링거를 좀 맞으라고 했는데 바늘이 무서워서 그냥 나옴
"집에 누구 있어요"
"혼자"
"그럼 밥은 누가 챙겨 줘"
아파 죽겠는데도 와중에 얼굴을 보니 또 좋음. 어차피 집에 가도 아무도 없고 해서 밥을 먹어야 해. 밥. 하시는 차장님 잔소리를 들으며 차장님 집으로 옴
죽을 먹고, 약도 챙겨먹고 차장님 설거지 하시는 동안 잠깐 쇼파에 앉아있다가 약 기운에 슬며시 잠이 들어, 차장님 방에서 눈을 뜸. 이마에는 물수건이 얹어져 있었고 불편한 자세로 바닥에 앉아 내 팔 소매를 살짝 쥐고 침대에 기대어 주무시고 계시는 차장님이 보임. 내가 일어나자 기척이 느껴지셨는지, 슬며시 고개를 드심
"이제 좀 나아요"
"네 좀 괜찮아요. 죄송해요 귀찮게 해서"
"내가 오자고 했잖아, 내가 옆에 두고 챙기고 싶어 그랬어요. 얼굴만 봐도 좋아서"
"..."
"난 그냥 좀 더 편해졌음 해, 막 기대고 그래도 미안할 필요 없는 사이잖아요 우리"
차분히 말투로 하나, 하나 말씀하시는데 한마디 한마디에서 진심이 느껴짐. 믿음이 간달까
"아니 그런 뜻이 아니ㄹ.."
"아픈 거 다 내가 떼어가면 좋겠다"
살짝 웃으며 진짜냐고 물으니 나를 올려다 보시며 응, 하고 대답하심. 내가 먼저 몸을 숙여 두 손으로 차장님 얼굴을 잡고 쪽, 하고 뗌
서로 마주보고 빤히 보다, 가끔 회사에서 보던 우리 막내 맞나 싶어. 하시더니 몸을 살짝 들어 내 목에 한 팔을 두르시고 다시 입을 맞추심. 진하고, 따뜻한 키스를 함
-
출근을 했는데 내가 콜록, 하면 차장님도 콜록 차장님이 콜록, 하면 나도 콜록. 서로의 기침에 화답을 하며 일을 하다 서류를 제출하러 차장님 자리로 감
이런 저런 일 얘기를 하다 갑자기 '떼어가려고 했는데 나눠가졌네.' 하시길래 무슨 뜻인지 한참을 생각 하다 어제 일이 생각나 나도 살짝 미소지음
"쉽게 안 떨어지는데?"
"그러게요"
서류 파일을 탁, 닫으시더니 책상 아래로 내 손에 비타음료를 하나 쥐어주시고 가 봐요. 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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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확실히 대화보단 줄글이 많네요.. 8ㅅ8
암호닉은 빠른시일안에 정리해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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