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맨틱 스트리트 1번지
w. 정국학개론
" 그거 씻어야 한다니까. "
" 나도 안다니까. "
주방 안에서 투닥대기만 열 번째다. 다들 노는 데 바쁜 것 같길래 그렇게 많은 인원도 아닌지라 주방에서 혼자 먹을거리를 준비하고 있는데 인기척도 없이 들어온 김태형이 시키지도 않은 일을 하고 있길래 나가라며 언성을 높인 것을 시작으로 사사건건 부딪히고 있는 중이다. 요리도 못하는 게 굳이 왜 여기까지 와서는 나를 괴롭히는지. 답답한 마음에 칼질은 내가 하겠다며 너는 채소나 씻으라며 오이를 몇 개 던져 주었더니 차분히 씻다가도 씻지 않은 오이의 껍질을 까고 있길래 핀잔을 주었더니 곱게 듣지를 않는다.
" 야 너 그냥 나가. 엄청 방해되거든? "
" 엄청 도움된다는 소리로 들리거든. "
속에서 열불이 터진다, 터져. 차라리 다른 사람들처럼 주방에 발이라도 들이지 않았으면 지금 이렇게 쓰레기가 늘어나진 않았을 텐데. 하고 있는 꼴을 보아하니 집에서도 그닥 부엌을 많이 이용해 본 것 같지도 않은데 여기서 싱크대를 더럽히고 있으니 속이 답답하지 않을 수가 있나. 내가 졌다며 한숨을 쉬고는 할 일에 매진했다. 버섯을 자르고, 마늘을 자르고, 온갖 칼질을 끝낸 후에 대충 일회용 그릇에 담고 있는데 김태형의 낮고도 작은 목소리가 나를 부른다. 나밖에 없으니 아마 나일 것이다.
" 야. "
" 왜. 심심해? "
" ……. "
" 왜. "
" 미안. "
" 어? "
버섯을 담던 손을 멈추고 김태형 쪽으로 고개를 들었다. 김태형은 여전히 씻지 않은 오이를 깎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씻고 깎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했을 텐데 웬걸, 머리가 하얘져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무언가를 집어넣을 수 있을 정도의 상태가 아니었다. 김태형이 무슨 말을 했었더라, 다시 곱씹어봐도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 그 충격적인 한 단어에 뭐라 말도 못하고 입을 오물거렸다. 그렇게 오이를 한참 깎던 김태형이 빨간 대야에 오이를 툭 하고 떨어뜨리며 내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 미안하다고. "
" …어…, 뭐…… "
갑작스레 마주친 눈을 피하며 다시 분주하게 손을 움직였다. 당황스럽긴 했는지 겨우 음식을 그릇에 담는 일에도 손을 벌벌 떨다 그만 치우지 못했던 칼에 손가락을 살짝 베였다. 신음을 낼 새도 없이 새어나오는 피에 베인 손가락을 붙잡았다. 나를 쳐다보던 김태형이 급하게 달려왔고 손가락을 붙잡고 있는 내 손 위에 제 손을 겹쳐 올렸다. 나보다도 놀란 듯한 그 눈을 멍하니 올려다보았다. 아는지, 모르는지 나보다도 급한 몸짓으로 주방 한 구석에 놓인 키친 타올로 급하게 내 손가락을 두르고 누른다. 아픈데. 정말 아픈데 신기하게도 아프지 않았다. 내 손가락을 꼭 쥐며 걱정스럽게 쳐다보던 김태형이 나와 마주친 순간, 그 눈이 당황하더라. 무의식에서 나온 행동임을 알리는 듯 그 당황한 눈빛이 한동안 나와 마주하고 있었다. 곧 김태형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 그러게… 조심 좀 하지… 병신이냐? "
*
" 전정국이 이따 저쪽에서 보자더라. "
" 네? "
" 저기 산 조금 올라가면 큰 나무 하나 있거든. 그 앞에서 보재. "
" 걔가요? "
하 선배가 고개를 끄덕였다. 씨걸과 하 선배가 말을 섞는 걸 본 적이 없는데. 나를 골탕먹이려는 속셈이 아닌가 싶어 의심스런 눈빛으로 하 선배를 쳐다보다 씨걸 쪽으로 고개를 돌리는데 씨걸이 나와 눈을 마주치고는 자연스럽게 윙크를 던진다. 아, 내가 요리하는 동안 하 선배와 씨걸이 친해진 건가, 싶기도 하고. 설마 이 저녁에 그런 심한 장난을 칠까 싶기도 하고. 답을 기다리는 듯한 하 선배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따 언제요? 한 아홉 시쯤인가? 알았어요. 웃으며 씨걸을 보았다. 씨걸이 고기를 먹으면서 나를 향해 웃어 주었다.
설거지는 호석 오빠네가 하겠다며 주방을 점령하기에 따뜻한 숙소에서 뒹굴거리다 시간이 어느새 아홉 시를 가리키는 걸 확인하고는 옷을 껴입고 신발을 신었다. 큰 나무가 있는 곳이라고 했으니까 하 선배가 가리킨 방향 쪽으로 계속 걷다 보면 큰 나무가 나오겠지. 캄캄하게 산을 덮어버린 어둠에 몸을 으스스 떨었다가 폰과 이어폰을 챙겼다. 무서우니까 노래라도 들으면서 가야지. 씨걸은 먼저 가 있으려나? 이어폰을 귀에 꼽고 제일 신나는 노래를 틀어놓고 발을 빠르게 움직였다. 주변을 덮어버리는 기분 나쁜 어둠에 고개를 푹 숙이고 노래를 따라 불렀다. 그리고 금세 도착한 큰 나무 앞에서 쪼그려 앉았다. 씨걸이 보이지 않는 걸 보면 아마 도착하지 않았나 보다. 고개를 끄덕이며 휴대폰을 확인하는데 아무래도 숙소가 깊은 산 속에 있는 탓인지 막혀 있다. 그냥 기다리는 수밖에 없나, 싶어 자켓 주머니에 손을 넣고 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렇게 앉아 있기를 십 분이 지났을까, 도저히 씨걸이 올 분위기가 아니어서 하 선배가 정말 장난이라도 친 걸까, 얼굴을 찡그리며 이어폰을 뺐다. 귀에서 시끄럽게 흐르던 노래가 사라지자마자 적막감에 휩싸였다. 기분 나쁜 고요함. 이어폰에서는 여전히 노래가 흘러나오고 있었고, 그리 크게 틀지 않았음에도 밖으로 새어나오고 있었다. 무서웠다. 귀를 틀어막았다. 세상에서 제일 싫어하는 걸 꼽으라면 아마 나는 밤을 꼽을 정도로 어두운 것을 싫어했다. 씨걸이 정말 오기는 오는 걸까, 하 선배가 정말 장난이라도 친 거면 어쩌지, 혹시 이 곳에 씨걸이 아닌 다른 사람이 오면 어쩌지, 온갖 나쁜 생각을 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 익숙해져야지. 어둠에 익숙해져야지. 익숙해지고나서 왔던 길로 되돌아가면 없던 일로 만들 수 있는 거야. 그러니까 익숙해져서 이 곳을 빨리 벗어나야지. 벗어나면 다들 밝게 나를 반겨 줄 거야.
힘겹게 나무에 손을 올리고 몸을 일으켰다. 긴장해서였을까, 다리에 힘이 풀려 털썩 주저앉았다. 어렵게 먹었던 마음이 다시금 흔들렸다. 무서웠다. 정말 다른 누군가가, 우리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여기 있으면 어쩌지. 그날이 떠올랐다. 그때도 그랬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나는 귀를 틀어막았고, 눈을 질끈 감았다. 손목을 붙잡혔고, 옷이 흐트러졌다. 지금도 그랬다. 누군가가 꼭 내 손목을 붙잡고 있는 것 같았다. 금방이라도 흘러내릴 것 같은 옷을 부여잡았다. 눈물이 났다. 우는 소리를 듣고 누군가가 오지는 않을까, 새어나오는 울음을 애써 틀어막았다. 빨리 이 밤이 지나갔으면.
그때였다. 손목이 붙잡힌 건. 김규태의 소름끼치는 목소리가 들려왔고 동시에 몸을 부르르 떨었다. 내 손목을 꼭 붙잡은 그 손이 김규태와는 다르게 너무 따뜻했지만 그 온기를 느낄 정신 따위 없었다. 억센 그 손을 벗어나기 위해 몸이 흐트러졌고, 곧 김규태의 목소리가 아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누나, 저예요. 누나. "
" …전정국? "
" 괜찮아요. 저예요. "
전정국이었다. 내 어깨를 감싸안는 전정국의 옷을 붙잡으며 얼굴을 파묻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잘 됐다. 정말 잘 됐다. 너라서 정말 다행이다. 등을 두드리는 그 손이, 코끝에서 느껴지는 향이, 나를 달래주는 목소리가 어쩐지 너무도 익숙해서 잠시 고개를 들어 얼굴을 확인했다. 전정국인데. 내가 아는 씨걸인데. 꼭 잊고 있는 것들이 있는 것만 같았다. 전정국이 겉옷을 벗어 내 어깨에 걸쳐 주었다. 역시 익숙했다. 이 장면, 이 모습, 그리고 이 사람. 내 어깨를 감싸며 조심스럽게 발을 딛는 전정국을 올려다 보았다. 어둠 속에 있는 이 얼굴이 낯설지 않았다.
나는 숙소에서 그리 멀리 있지 않았다. 전정국과 함께 숙소 근처로 돌아오자마자 뿔뿔히 흩어져 있던 사람들이 내게 달려왔다. 그 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건 눈이 빨개진 호석 오빠였다. 눈은 왜 빨개진 건데. 꼭 펑펑 운 사람처럼 나를 보자마자 품에 안아버린 호석 오빠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얼마나 뛰어다녔는지 몸에 열이 가득했다. 조심스럽게 손을 올려 호석 오빠의 등을 두드렸다. 나 괜찮아요. 호석 오빠가 코를 한 번 들이마시고는 나를 놓아 주었다. 그리고는 양 볼을 붙잡고 좌우로 흔들며 얼굴을 확인하는데 웃음이 나오더라.
" 괜찮아? 다친 덴? "
" 진짜 괜찮아요. "
" 누나 발목 삔 것 같던데. "
" 아니야! 저 진짜 괜찮아요. "
눈치도 없이 아무렇지 않게 말을 내뱉는 전정국의 옆구리를 쿡 찌르고는 환하게 웃었다. 오빠, 나 진짜 괜찮아. 내 웃음에도 쉽게 웃지 못하던 오빠가 곧 호기심 가득한 표정으로 내게 물어왔다.
" 근데 거긴 왜 간 거야? 너 밤에 돌아다니는 거 별로 안 좋아하잖아. "
" 아, 얘가 불러서. "
" 뭔 소리야. 얘도 우리랑 같이 너 찾아다녔는데. "
" 어? 아닌데 아까 지연 선배가 전정국이 나 부른…… "
저 멀찍히 서 있던 하 선배 쪽으로 모두의 시선이 옮겨졌다. 물론 내 시선도. 호석 오빠도, 전정국도. 그냥 정말 모두의 시선이. 하 선배의 옆에 있던 김태형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하 선배의 얼굴이 빨개졌다. 잔뜩 당황한 낯빛이 나를 더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설마 거짓말이었어요? 내 물음에 하 선배가 입만 오물거리다 곧 더듬더듬 말을 내뱉는다.
" 아, 아니… 난 그냥 장난 좀…… 나는, 그냥, 네가 내려올 줄 알고…… "
말문이 막혔다. 나에 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사실 불과 몇 달 전에 제가 무슨 일을 겪었는데요, 제가 그것 때문에 밤을 엄청나게 싫어해요, 라고 구구절절 말할 수나 있을까. 한숨을 쉴뿐, 입을 꾹 다물고 그저 하 선배를 노려보고 있는데, 김태형 옆에서 가만히 서 있던 박지민의 장난스런 목소리가 들린다.
" 와, 쓰레기네~ "
" ……. "
" 안 글나? 태태, 뭐라고 말 좀 해 봐라. "
박지민이 팔꿈치로 김태형의 몸을 쿡 찔러댄다. 딱히 쓰레기까지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정작 피해자인 나는 입도 못 열고 있는데 주변인에 불과한 박지민이 격한 단어를 내뱉으니 내가 더 당황한 채 눈을 도르륵 굴려댔다. 다들 김태형의 답을 기다리는 듯 모두의 시선이 다시금 김태형 쪽으로 쏠렸고, 아마 내 시선도 그랬으리라. 김태형이 고민하는 듯 초점 없이 아래를 물끄러미 쳐다보다 내쪽을 한 번 보고는 하 선배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하 선배가 젖은 눈으로 김태형과 눈을 마주했다.
" 알지, 박지민. "
" 뭐, 인마. "
" 내가 싫어하는 사람의 두 종류. "
" 알지~ "
" 그 중 하나가 재활용도 안 되는 쓰레기거든요. "
" 옳지~ "
" 누나처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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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리 올 거라고~ 빨리 오겠다고~ 그렇게 급하게 달려오더니 이렇게 똥을 투척하고 갑니다! BGM ~ 스탠딩 에그 - Nobody Know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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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총 의견을 종합했을 때 남주를 밝히지 않고 가는 것도 다들 좋아해 주시는 것 같아서 일단은 남주 없이 가겠슴다!
물론 독자님들이 어떤 캐릭터를 좋아해 주시냐에 따라서 남주가 결정이 나요! (제 사심도 가득)
사실 정국이를 남주로 쓴 글이라 막판에 정국이 위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 미리 말씀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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