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열씨, 오늘은 일 안나가요? 오늘 쉬는 날 아니잖아요.
이번주는 출근 안하니까 아침에 깨우지 마.
그럼 내일 나랑 같이 병원 갈 수 있어요? 병원에서 다음에 올 땐 꼭 찬열씨 데리고 오라고 했는데..
내가 거길 왜 가야되는데?
네? 아니..찬열씨가 아빠니까.
미친년아 내가 그딴 소리 집어 치우랬지.
...
어디서 몸 굴리고 와서는 나한테 그 애새끼 아빤지 뭔지 지랄하지마. 역겨워.
이제 막 임신15주가 되어가는 너는 아직까지 한번도 찬열이와 병원을 가본 적이 없어. 처음 초음파사진을 보여 줄 때도 가만히 보다가 갈기갈기 찢어버릴 정도로 너의 임신에 대해 부정적이였거든. 한번도 너에게 잘해주거나 걱정, 위로 따윈 없었어.
ㅇㅇㅇ산모, 3번 진찰실로 들어오세요-.
아,네!
산부인과에 들어가서 접수를 하고 혼자 소파에 앉아 기다리다가 너를 부르는간호사의 목소리에 아주 살짝 나온 배를 한번 쓰다듬고 진료실로 들어가.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각종 태아사진과 너를 향해 작게 미소짓고 있는 의사선생님께 가볍게 인사를 하고 초음파 침대위에 누워 설레는 마음을 안고 뱃속의 작은 아이와의 만남을 가져.
오늘도 혼자 오셨네요?
네..
저번에 아이아빠랑 같이 오시라고 말씀 드렸던거 같은데..
아, 아이아빠가 많이 바빠서요. 도저히 시간이 안난다고 해서,
..아이가 많이 작은건 알려드렸어요?
아니요,아직..
너의 배에 부드러운 젤을 바르고 기계를 배 이리저리 굴리며 아이의 건강상태를 살피던 의사선생님이 너를 향해 쓴 소리를 던져. 다른 아이와 달리 너의 아이는 아주 작고 외소했어. 이 사실을 찬열이에게 말해도 절대 좋은 소릴 못들을 걸 알기에 알리지 않았지.
후,ㅇㅇ씨, 계속 이렇게 안드시면 아이가 안자라서 위험해요.
네, 죄송해요.
저한테 말고 아이한테 미안하다고 하세요. ㅇㅇ씨가 많이 먹어야 아이도 많이 먹고 무럭무럭 자라니까.
...
다음주에 오실 땐 꼭 아이 건강하게 만들어 오세요. 그리고 아이 아빠도 같이 오시구요. 이맘때면 입덧도 심하고, 먹고 싶은 음식도 많아지니까 참지말고 다 드세요.
네, 그럼 다음주에 다시 올게요.
사실 너도 먹고싶은 건 한두가지가 아니야. 오렌지, 귤, 딸기, 복숭아.. 시고 단 과일들이 왜이렇게 땡기는지, 마트를 가면서도 눈앞에 아른거리는 과일들 때문에 군침을 삼켜.
오늘은 뭘 만들지..?
마트에 도착하자마자 카트를 끌고 유기농 채소코너로 가는 너야. 부잣집 도련님인 찬열이 임맛에 맞추려면 뭐든 좋은 재료만 사서 써야 했어. 신혼초엔 그저 네가 만든거라면 다 맛있게 먹어줬던 찬열이였지만 지금은 뭘 만들어줘도 싸늘한 찬열이 비위를 맞추기 위해 찬열이는 유기농, 너는 그냥 채소를 먹어.
당근이랑, 단호박이랑.. 아 여기있다!
그렇게 먹고싶었던 복숭아를 보자 한걸음에 달려가 복숭아를 잡는데 위에 적혀있는 가격을 보고는 아랫입술을 꼭 깨물며 내려놔.
..너무 비싸다. 찬열씨 먹을거 사서 돈 모자를 텐데. 그냥 다음에 먹어야 겠다.
몇 달전부터 생활비 입금이 들어오질 않아서 조금씩 아껴쓰고 있는데. 아무리 아껴 써도 병원비 때문에 장보는 것도 빠듯한 너는 결국 오늘도 복숭아를 포기해. 찬얼이 후식을 핑계로 사가고 싶어도 하필 복숭아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찬열이라 그마저도 못하는 상태지.
아가, 미안해. 다음엔 꼭 엄마가 복숭아 사줄게, 미안해..
네가 집에 오자마자 풍기는 담배냄새에 켁켁거리며 기침을 하고 집으로 들어가 샤워를 하는지 안보이는 찬열이의 재떨이를 비우고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켜. 그리곤 부엌에서 바로 저녁준비를 해. 한참 단호박을 손질 중인데 갑자기 소리를 지르면 화를 내는 찬열이 때문에 손을 삐끗해 손을 베이고 말아.
야, ㅇㅇㅇ!
아!네, 네..?
누가 문열어 놓으래, 씨발 진짜.
아, 미안해요, 담배냄새가 너무 심해서..
싫으면 쳐 나가던가 왜 문은 열어놓고 지랄이야.어?!
한참 소리를 지르다가 단호박주변으로 뚝뚝 떨어지는 너의 피에 인상은 더 찡그리고는 외투를 챙겨들고 밖으로 나가버리는 찬열이를 멍하니 보다가 그대로 주저앉는 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