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lgem
w. 임시저장함
태민은 오랜만에 진기와의 데이트에 아침 일찍부터 눈을 떴다. 어젯 밤 진기가 선물 해 준 분홍색 토끼 인형을 품에 끌어 안고 이리저리 뒹굴며 뭐 하지? 뭐 할까? 설레여서 늦게 잠이 들었어도 전혀 졸리지 않는 태민이였다.
“잘 잤어? 토끼야.”
진기랑 똑닮은 인형에 태민이 인사를 건넸다. 그리고 시간을 확인 했다. 형이랑 약속 시간은 11시, 아직 시간이 꽤 남았네. 하지만 얼른 진기를 만나고 싶은 생각에 태민은 무겁지만 가벼운 몸을 움직여 화장실로 들어갔다. 형은 깨어났으려나. 태민이 히히 웃으며 몸에 거품칠을 하면서 생각했다.
아! 얼른 보고 싶다. 우리 형, 내 꺼, 내 애인, 내 이진기.
기분 좋게 샤워를 한 태민이 수건을 목에 걸고 머리를 털고 나오자마자 폰에서 전화가 울렸다. 민호다.
“여보세요.”
-오늘 시간 있어? 나 오늘 노는데.
“미안해 민호야. 나 오늘 진기형이랑 약속 있어.”
-그래? 그럼 어쩔 수 없고.
다음에 놀자. 싱글벙글한 태민의 목소리에 민호는 왠지 마음이 언짢았다. 하지만 그런 민호를 눈치 못 챈 태민은 오랜만에 진기 형을 봐서 너무 신난다느니, 일 때문에 전화만 했다느니, 그래서 저번 달 전화 비가 장난 아니였다는 둥 쫑알 쫑알 작은 입으로 말 하다가 빨리 나갈 준비를 해야겠다고 자기 할 말만 하고 전화를 냉큼 끊어버렸다. 팔불출 이태민에 이미 끊겨버린 전화에 민호는 자신도 얼른 애인이나 만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
“야 어디가.”
신나게 민호와 전화를 하다가 오래 통화를 할 수 없을 것 같아 끊었는데 요즘따라 싸가지를 어따 버리고 온 이태연이 방문을 벌컥 열며 말을 건다. 주말이래도 엄마 아빠는 돈 벌러 일하러 가셨고 이태연이 남아있었다. 눈 밑에 그늘이 진 게 어젯 밤에 또 팬픽인가 뭔가를 읽느라 늦게 잤나보다.
“놀러. 오늘 집에 늦게 들어올꺼야.”
“몇 시?”
“몰라.”
그럼 올 때 맛있는 것 좀 사와. 머리를 여자애 답지 못 하게 긁으며 이태연이 방을 나갔다. 저런 게 어떻게 남친이 있지? 태민은 진심으로 궁금해졌다.
그리고 어느 덧 시간은 11시에 가까워져 태민은 자신이 먼저 약속 장소에 나가 몰래 진기를 기다릴 생각으로 집을 나왔다. 항상 조금 늦게 장소에 도착하는 나 때문에 기다리는 건 항상 진기 형 몫이였는데. 형이 좋아하겠지? 그리고 만나기로 한 공원에 도착한 태민이 털썩 벤치에 앉아서 폰을 열었다.
“형이 곧 오겠지?”
그리고 카톡으로 민호 외에 애들이 있는 단체 대화로 대화를 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갑자기 화면이 바뀌면서 소리가 울렸다. 화면에는 ♥♥♥♥♥ 진기 형 번호를 저장한 이름이 떴다. 형!
“형 지금 어디예요? 제가 어딘 줄 아시면 형..”
-태민아 그래서 말인데, 약속 아무래도 못 갈 것 같아.
“...네?”
-꼭 약속 지키려고 했는데.. 미안해. 일이 그렇게 됐네.
다음에, 다음은 꼭 지킬께. 형이 지금은 바빠서 끊고 나중에 전화할께. 미안. 주저없이 전화가 끊긴다. 태민은 자신이 진기를 만나려고 오늘 아침에서 지금까지의 모습이 눈 앞에 보이는 듯 했다. 허무하고 너무 너무 속상하다. 다음에도 안 지킬 거 잖아요.. 작게 중얼 거리던 태민이 다급하게 통화 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중저음의 남성 목소리가 들린다.
“민호야..”
나 약속 깨졌어. 속상한 마음을 달래줄 사람이 필요했다. 곧이어 어디야. 민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태민이 울먹거리는 목소리로 장소를 말했다.
-기다리고 있어.
응. 그리고 전화가 끊겼다. 태민은 혼자 청승맞게 공원 벤치에서 울고 싶지는 않아 고개를 떨구며 최대한 울지 않으려고 애썼다. 나쁜 이진기, 세상에서 제일 미운 이진기. 아마 진기는 지금 쯤 귀가 간지러울 거라고 태민은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