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본 남자랑 키스하면 생기는 일
"안녕하세요, 두번째네요? 우리"
눈앞에, 빨간 후드를 입은 민윤기가 유난히도 흰 얼굴을 하고 웃고있었다.
시선은, 민윤기의 쇄골로 먼저갔다. 아까와는 다르게 감춰진 쇄골 위로, 아직도 자국이 남아있을까, 멍하니 생각하고 있었다. 민윤기는 자연스럽게 내 앞자리에 앉았다.
"일단, 커피 먼저 시킬까요?"
"캬라멜 마끼야또 한잔이랑, 그린티요."
내가 돈을 내려 지갑을 뒤적이자, 민윤기는 그 사이에 카드를 내밀었다. 아니, 제가 내도, 올라갈까요? 민윤기의 말에 내 말이 끊겼다. 사람이 없어서인지 금방 나온 커피를 들고, 민윤기는 앞서 걸었다. 캬라멜 마끼야또를 건넨 민윤기가 그린티를 입에 담았다. 느긋하게 다리를 꼬고 바라보는 눈길에 괜히 말을 버벅였다. 선배들과 연예인을 섭외하러는 자주 다녔지만, 막내라 그런지, 가만히 보고있는게 대부분이었다. 내가 직접 누군가를 섭외하려 말을 꺼내는 것이 처음이라 손이 떨렸다.
"그니까, 저희 프로그램에 고정패널로 출연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출연료는 어느정도 생각하고 있고, 목요일에 촬영이 진행되며, 어떤 식으로 촬영이 진행되는지에 대한 설명 끝에, 말을 마쳤다. 민윤기는 속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나를 빤히 봤다. 갑자기 의자를 끌어 당긴 민윤기가 나와 눈을 맞췄다. 유명 작곡가, 방송출연 한번 한 적이 없어서 얼굴이 하나도 알려지지 않은 자신이 어째서 너희 프로그램에서 얼굴을 공개해야하고, 작곡하기에도 벅찬데 목요일에 한시간도 아니고 몇시간이나 너희를 위해 빼야하냐며 민윤기는 비어버린 그린티 컵을 내려놓았다. 어떻게든 잡아야한다. 머릿속에는 그 생각 밖에 없었다.
"이번주 금요일에 작업실로 와요"
민윤기는 그 말을 끝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민윤기가 앉아있던 의자를 멍하니 바라보다, 휴대폰을 들어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떻게, 섭외했냐며 호들갑을 떠는 언니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먼저 전했다. 아마, 안될 것 같아요.
'확실하게 말해봐, 아마는 뭐야'
"금요일까지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언니와의 통화가 끝나고, 김남준의 작업실 앞이었다. 정 안된다면, 김남준이라도 섭외해야하나... 마른세수를 하며 다시 작업실로 들어갔다.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목요일, 크리스마스 이브임에도 불구하고 촬영장의 분위기는 싸늘했다. 이번주를 마지막으로 음악평론가가 프로그램에서 하차한다. 어떻게든 대체할 사람을 구해야했다. 작은 파티를 준비했지만, 거창한 송별회는 하지 않았다. 피디님은 안타까운 마음을 뒤로한체 작가님들에게 진행상황을 물어보셨다. 선배들이 조용하게 말하자, 피디님은 굳는 표정을 숨기시지 않으셨다. 그 표정이 나에게 굉장한 압박감으로 다가왔다. 내일, 어떻게라도 민윤기의 마음을 돌려야했다.
걱정되는 마음에 입술을 물어 뜯자, 누가 내 입을 아프지 않게 때렸다. 고개를 돌리자, 신입 조연출 전정국이 서있었다. 누나,누나, 하는게 귀여워서 자주 챙겨줬던 아이였다. 해맑게 웃는 전정국은 촬영이 끝나자, 나에게 집에 같이 가자며 다가왔다. 방송국에서 나오자, 검은 밤이 우리를 맞이했다. 시간은 열한시 오십분, 오분 뒤면 크리스마스였다. 전정국은 나를 잡아끌었다. 급하다며, 시간을 보더니 뛰어가는 전정국에게 이끌려 매장 앞에 도착했다. 오십오분 이었다. 아이스크림집에 들어갔다.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사람들이 몇 없었다. 전정국은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주문하고 받아왔다. 전정국이 내 앞에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놓고 초를 하나 꽂았다.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이자, 초가 빠르게 타들어갔다. 전정국이 갑자기 휴대폰을 꺼내더니 나에게 시간을 보여줬다.
열두시, 크리스마스였다. 전정국은 불어요, 누나. 라는 말과 함께 카운팅을 시작했다. 3,2,1 촛불은 힘없이 꺼졌다. 초를 뺀 전정국은 나에게 핑크색 수저를 주며 입을 벌렸다. 아기새같이 입을 벌린 것이 귀여워 웃자, 전정국은 아, 맞다. 하면서 자신의 수저를 집어 들었다. 무슨 맛이 맛있을까, 고민하며 체리쥬빌레를 찍었다.. 전정국도 때 마침 엄마는 외계인을 찍어 내 앞에 가져다 댔다. 무슨 연인처럼 내 손이 전정국에게, 전정국의 손이 내게 다가서 있었다.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기어코 다 먹은 전정국은 가자며 내 손을 잡았다.
눈을 떴을 때는 아침 여덟시였다. 지금 준비해서 가면, 같이 점심 먹을 수 있겠지. 빠르게 준비를 마치고, 김남준에게 전화했다.
"야, 너 어디야"
"지금? 정호석네"
"정호석 출근 안했어?"
"크리스마스다 친구야"
"어휴, 여자라도 만나던가"
"왜 전화했는데"
맞다, 민윤기 작업실이 어디냐는 물음에 김남준은 안알랴줌.이라는 말도 안되는 말을 하면서 끊었다. 깊은 빡침에 가만히 있었더니, 화난 걸 아는지 김남준에게 주소를 찍은 문자가 왔다. 민윤기 만나고 나면, 너부터 죽었어 진짜로.
김남준이 찍어준 주소로 찾아왔지만, 문을 두드려도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여기가 맞긴 할까, 진지하게 고민을 하던 중에, 계단에서 전화소리가 들려왔다.
"아, 안오는거 아니야? 그냥 하겠다고 할껄"
'그럼 왜 튕긴건데'
"아니 뭐, 얼굴 한번이라도 더 보려고 그런거지."
'미쳤냐.'
"넌 몰라 임마, 촬영장에서 보는 것 보다 이렇게 보는게..."
전화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찰랑이는 열쇠 소리가 들리고, 나는 앉아있던 몸을 일으켰다. 민윤기는 날 보며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민윤기는 급하게 전화를 끊었다.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을 줄은 몰랐다며, 작업실을 여는 민윤기를 뒤에서 바라봤다.
민윤기는 작업실 문을 열고 나에게 들어오라고 했다. 밖에 나갈 것이니, 잠시 그 쇼파에 앉아있으라고 말한 뒤 민윤기는 작업실을 몇 번 돌아다녔다. 그러고는 나가자며, 나를 끌었다. 뭐, 먹을래요? 파스타집에 자리를 잡은 민윤기와 나는, 신속하게 메뉴를 정했다. 크림치즈파스타와 토마토스파게티를 입에 넣으며 심심한 안부를 물었다. 원래 섭외를 이런식으로 했던가, 의문이 들었지만 민윤기를 섭외하는게 목적이라 일단은 민윤기를 따랐다.
민윤기는 나에게 밥 먹고 영화를 보자고 했다. 근처 극장으로 들어가 예정에도 없던 영화를 보고 나온 나와 민윤기는 생각보다 잘 맞았다. 영화 볼 때, 팝콘을 안먹는다던가, 그런 사소한 것들이 잘 맞아 떨어졌다. 굳이 민윤기에게 맞춰주려고 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우리는 서로 잘 맞았다. 대화 주제도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김남준 옆에 있으면서 듣게되는 여러가지 음악 용어들도, 시사 상식도, 민윤기와의 대화거리가 되었다.
밥먹고, 영화보고, 커피 마시고, 이야기를 하다보니, 밖은 벌써 저녁노을이 지고 있었다. 그저, 재미있게 논 것 같은 하루를 뒤로하고, 나는 민윤기의 대답이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민윤기는 일요일의 그 때처럼 의자를 끌어 내 가까이 다가왔다.
"아직도 내가 왜 그 프로그램을 해야하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아..."
"근데, 내가 너를 왜 만나야하는지는 잘 알겠네요"
"네?"
"할께요, 그 프로그램."
굳어있던 입꼬리가 다시끔 올라갔다. 감사하다며 민윤기의 손을 잡고 인사를 했다. 민윤기는 그런 나를 바라보다가 이번 촬영 계획을 물었다. 신난 내가 설명하자, 민윤기는 알았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는 집이 아닌 김남준의 작업실에서 내렸다. 메인작가님께 민윤기의 섭외 소식을 알리자, 한참 말이 없으시던 작가님은 고맙다는 문자를 연신 보내셨다. 뿌듯함에 김남준의 작업실 문을 열자, 김남준이 없었다. 내 벨소리가 들려 전화기를 꺼내자, 정호석에게 전화가 오고있었다.
"여보세요?"
'야! 너 어디야'
"김남준 작업실"
'와, 다행이다...'
"왜 무슨 일 있었어?"
'아니, 김남준이랑 작업하다가 술마시러 왔는데, 깜빡하고 작업실 문을 안닫고 간거야.'
단 1초 동안이라도 김남준을 걱정했던 나 자신이 한심했다. 짜증을 가득 안고, 작업실에서 나오자, 폭죽터지는 소리와 함께 김남준과 정호석의 노랫소리가 들렸다. 캐롤을 발랄하게 부르며 케이크를 한사람당 하나씩 들고오는 둘을 보며 그냥 웃었다. 왜 케이크를 두개나 샀냐는 말에 김남준은 뒷머리를 긁었다.
"내가 파리바게트 케이크가 맛있다고 했는데, 저 새끼가 뚜레쥬르가 더 맛있다고해서 먹어보고 판단하자고,"
다시 작업실로 들어가, 케이크를 열었다. 받은 초를 다 꽂은 다음, 눈을 감고 소원을 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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