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한 김팀장 15
김종대의 모시겠다는 말이 거짓말은 아니었는지 김종대는 정말로 내 옆에서 나를 상전 모시듯 하고 있었다.
그런데 사실,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아침 일찍 집을 무작정 찾아오는 김종대는 조금 짜증났다.
한참을 따뜻한 이불 속에서 꿀같은 잠을 자고 있을 때, 누군가 방 문을 똑똑 두드리고는 들어왔다. 지
금 들어올 사람은,
"여주야아...아직도 자...?"
...김종대 밖에 없는데.
갑자기 들어온 김종대에 이불을 확 뒤집어썼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집 비밀번호 안 알려주는건데, 저번 김종대의 사과 이후로 김종대와 몇 번 술을 마시는 일이 있었고, 그 때마다 매번 나를 집에 데려다 주는 김종대에 그냥 비번을 알려준 내 잘못이었다.
"아씨, 진짜."
"ㅇ,왜...?"
이불을 뒤집어쓰고는 아씨, 하고 짜증을 내자 바로 팍 쫄아가지고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까지 더듬거리는 김종대다. 그런 김종대가 안쓰럽기도 했지만, 뭐, 김종대도 찔리는게 있으니까.
"나 피곤해."
"...좀만 있으면 출근 해야되는데에."
"어쩌라고."
"그리고 오늘 우리 퇴근하고 데이트도 하기로 했는데에..."
"무슨 데이트는 데이트야, 우리가 무슨 사이라고."
그 말에 김종대는 픽 소리를 내며 웃었다. 그 소리에 이불에서 고개를 빼꼼 내밀어 김종대를 보자 그는 의자를 끌고와 내 침대 맡에 앉아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이불 밖으로 살짝 나온 내 손을 부드럽게 잡고는 깍지를 끼기 시작했다.
"...무슨 사이긴,"
아까 그 나한테 쫄던 모습은 어디갔는지, 내 손을 잡던 김종대가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슬금슬금 내 위로 올라오는 것이 보였다.
"겁나 찐한 사이지, 안그래?"
김종대는 내 귀에 입술을 가져다대더니 저렇게 속삭였고, 한참 우리 사이에는 정적이 흘렀다.
"갑자기 왜 이렇게 자신감이 넘쳐-으, 악! 야! 미쳤냐?"
내 말을 듣던 김종대가 갑자기 내 귀를 콱 깨물었고 그에 몸을 움찔 떨며 그를 퍽퍽 때렸다. 김종대는 그런 나를 보며 재밌는지 고개를 숙이고는 큭큭댔다.
"남자는 자신감 빼면 시체라잖아."
김종대의 말에 인상을 쓰다 그를 세게 밀어 넘어드렸다. 김종대는 쿵 소리를 내며 침대에서 떨어졌고, 나는 몸을 일으켜 김종대를 쏘아보았다. 한참 아...하고 아픈듯 끙끙대던 김종대는 내 눈빛에 또다시 움찔했다. 아까 그 자신감은 어디가고 저러는건지.
"너 앞으로 나한테 스킨십하지 마."
"뭐? 왜?"
"하지 마."
"왜! 왜애애애!!"
그의 시끄러운 찡찡거림에 귀를 틀어막았다. 벌떡 일어나 내 손을 귀에서 땐 김종대는 무척이나 다급한
표정이었다.
"어떻게 참아, 내가!"
"ㅊ,참긴 뭘 참아?"
"뭘 참긴! 너만 보면...!"
김종대는 여기까지 말하고는 온 얼굴이 새빨개졌다. 그래도 할 말은 따박따박 다하는 김종대였다.
"그럼 뽀뽀는!"
"안돼."
"키스는!!"
"뽀뽀가 안되는데 되겠냐?"
"그 다음은-악!"
"이 변태새끼가, 진짜!!"
김종대에게 베개를 집어던졌다. 김종대는 그 베개를 정통으로 맞았지만 그닥 신경쓰지 않는듯 비명을 지르고는 바로 그 베개를 내던졌다.
"그럼 나보고 뭐 어쩌라고오!!!"
"니가 알아서 해!"
"그럼 우리 뭐해!! 우리 성인이야!"
"손까지는 허용해줄게."
"아씨!!!"
"뭐? 아씨?"
"야, 솔직히 우리 십년을 그렇게 살았는데, 그거 보충하려면 며칠 밤을 새워도-"
"아, 이 변태야!"
김종대와 나는 둘 다 얼굴을 붉히고는 서로에게 소리를 지르느라 여념이 없었다. 한참 목소리를 높히던 우리는 아무 말도 없이 숨을 고르며 서로를 째려봤다. 그러다 김종대가 먼저 표정을 풀고는 한숨을 푹 쉬며 고개를 숙였다.
"...너가 그렇다면, 그러는거지 뭐."
"..."
"내가 조금 더 좋아하니깐."
"..."
"여주야, 빨리 씻고 준비해. 나가자."
자기가 나를 조금 더 좋아한다는 말에 입을 꾹 다물었다. 김종대는 부드럽게 웃어보이고 방을 나섰다. 그에게서 나는 옅은 향수 냄새가 방을 채웠다. 그가 거실에서 내 이름을 빽 부르며 칭얼대는 소리가 들렸다.
"빨리이!! 우리 나가자니까!"
아닌데...
"김여주! 그만 일어나서 빨리 옷 입어라!"
나도 너 많이 좋아하는데....
***
김종대와 차를 타고 출근하는 길은 둘다 말이 없었다. 김종대는 핸들을 잡지 않은 손으로 내 손을 만지작 거리며 운전을 하고 있었고, 나는 멍하니 창밖 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대박."
"왜?"
그 때 창 밖에 보이는 가게에 나는 의자에 기대고 있던 몸을 일으켰다.
"티라미슈 먹고싶어."
"...?"
"우리 회사 1층에 파는데...
내 말에 멍하니 나를 보던 김종대는 풉, 하고는 웃었다. 왜 웃어? 하자 손을 뻗어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돼지야?"
"...죽을래?"
"넌 돼지여도 귀여워!"
김종대는 그렇게 말하며 내 볼을 쭉 잡아당겼고 나는 그 손을 만지지 말랬지, 하며 떼어냈다.
"...이것도 안돼?"
"응. 안돼."
"...그냥 볼 꼬집는건데..."
"스킨십이잖아."
"..."
김종대는 입술을 쭉 내밀더니 소심하게 내 손등을 만지작거렸다. 시무룩해져서도 내 말은 잘 듣는 그가 귀여워 작게 웃었다.
"그리고 회사에서는 더더욱 하지 마."
"왜?"
"그냥, 이상한 소문 돌잖아."
"..."
내 말에 김종대는 나를 무표정으로 응시했다.
***
"김종대, 너 점심-"
"미안, 나 약속있어."
"...? 약속?"
"오늘은 백현씨랑 먹어, 알겠지?"
그리고 김종대는 곧장 급하게 사무실을 나갔다. 도대체 무슨 약속이길래 저래?
"백현씨, 점심 같이 먹어요."
"어? 왠일이에요? 팀장님은?"
"오늘 약속있대요."
"아아-"
알겠다던 백현씨는 내 옆을 나란히 걸으며 물어왔다.
"팀장님이랑은 요즘 어때요?"
"어..."
"여주씨 일주일 동안이나 안 나왔을 때 우리 다 엄청 걱정했어요."
"..."
"이젠 싸우지 마요, 알겠죠?"
그의 말에 괜히 부끄러워 고개를 숙였다.
"커피나 한 잔 할까요?"
백현씨와 1층의 카페로 향하던 걸음을 멈추었다.
"어, 오늘 쉬네요?"
"그러게요. 무슨 일 있나?"
백현씨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다 어쩔 수 없이 그냥 사무실에 들어왔다. 김종대는 아직 돌아오지 않은건지 자리가 비어있었다. 별로 신경쓰지 않고는 내 자리에 앉아 일을 시작했다.
김종대가 사무실에 급하게 들어온건 거의 점심시간이 삼십분이나 지나서였다. 김종대는 손에 웬 쇼핑백을 들고는 다급한 표정으로 사무실에 들어섰다.
쯧, 팀장이 시간 하나 못 지키고 말이야. 그런 김종대를 바라보다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는 시선을 돌렸다.
***
잠시 화장실을 다녀왔는데 내 책상 위에는 낯선 박스 하나가 올려져 있었다. 백현씨를 보며 누가 준거냐고 물었지만 백현씨도 모르는 듯 고개를 저었다.
"저도 잠깐 휴게실 갔다왔어요."
"...?"
내 주변 사람들에게 다 물어봤지만 모두 다 본인들은 모른다고 했다. 일단 그 상자를 조심조심 열어보았다.
"어...헐?"
상자 안에는 내가 오늘 그렇게 먹고 싶었던 티라미슈가 들어있었다. 진짜 누구, 아...
그제서야 오늘 아침에 김종대에게 흘리는 말로 했던 티라미슈 먹고싶다. 라는 말이 떠올랐다. 그럼 김종대 아까 이거 사느라...
마침 나를 보고있던 김종대와 눈이 마주쳤다. 김종대는 내 눈을 피했다.
잠시후 쉬는시간, 나는 김종대의 옆에 슬쩍 다가갔다.
"김종대."
"왜?"
"저거 니가 준거지?"
"아닌데?"
"거짓말."
"진짜 아니야."
계속해서 하는 거짓말에 나는 웃음이 나왔다. 그럼 아까 그 쇼핑백은 뭔데?
"너 아까 들어올 때 쇼핑백 가지고 들어왔잖아."
"ㄱ,그건 그냥 선물받은거야...!"
김종대는 동공지진을 일으키며 말했다. 그래, 그냥 그러라고 하지 뭐. 그런 김종대를 남겨놓고는 내 자리로 돌아왔다. 김종대 맞겠지?
***
복도를 지나다 비상구에서 들리는 소곤대는 소리에 말걸음을 멈췄다.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 나도 모르게 귀가 쫑긋해졌다.
"...김여주 있잖아,"
긜고 들려오는 내 이름에 벽에 붙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김종대와 김민석이었다.
"....오늘 오는데 여주가 티라미슈 먹고싶다고 하는거야."
"응."
"그래서 점심시간에 겁나 돌아다니면서 사왔다."
"1층 문 닫았던데?"
"그니깐, 하필 내가 저번에 티라미슈 봤던 카페도 오늘 쉬는 바람에 진짜 온갖 곳을 다 돌아다니다 왔어."
"그래서, 결국은 준거지?"
"응. 아까 여주 좋아하는거 보니까 나도 좋더라."
김종대의 낮은 웃음소리가 계단을 울렸다. 김민석은 우스운지 콧방귀를 꼈다.
"여주가 그렇게 좋아?"
"김여주."
"응?"
"그렇게 다정하게 여주라고 하지 마."
"...아, 네~"
김민석은 잠시 동안의 정적 끝에 떨떠름 하게 대답했다.
"도대체 김여주 어디가 그렇게 좋아?"
"그냥, 다 좋아."
"...중증이네."
"진짜 뭘 해도 예뻐, 설레."
"..."
"사실, 아까 아침에 여주가 나한테 이런 말을 하더라고."
"..."
"회사에서는 제발 티 좀 내지 말라고, 다른 사람들이 안다고."
"..."
"말은 안했는데, 되게 미안했어. 나는 불안해서 내꺼라고 막 알리고 싶었는데..."
"..."
"전에도 다른 여사원들이 여주 욕하는거 듣긴 들었는데, 별로 신경은 안 썼었어. 그런데 생각해보면 다..."
"..."
"다, 나 때문에 그런거잖아."
"..."
"앞으로 여주가 부탁하는거면, 정말 그냥 다 들어주려고."
"..."
"여주가 그냥 그런 욕 듣는것도 싫지만, 나 때문에 그런건 더더욱 싫어."
"...어휴, 아주 영혼이라도 팔겠네."
그 말에 김종대가 잔잔하게 웃는 소리가 퍼졌다.
"영혼만 파냐?"
"..."
"그냥 다 바쳐도 상관없어, 김여주라면."
그 말에 김민석이 오글거린다며 난리를 치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문 앞에서 조용히 얼굴만 붉혔다. 그에대한 확신이 점점 더 커지고 있었다.
***
"여주야! 데이트! 데이트!"
"어디갈건데?"
김종대는 다른 사원들이 퇴근하자마자 내게 쪼르르 달려와 손을 맞잡고는 데이트를 외쳤다. 그 모습이 귀여워 웃으며 어디갈거냐고 묻자 헤헤 하고 웃는 김종대였다.
"영화관!"
"뭐야, 무슨 특별한 데 갈줄 알았네."
"난 너랑 가면 특별한데?"
김종대의 멘트에 할 말을 잃었다. 당황한 내 표정을 보더니 김종대는 귀엽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김종대가 예매한 영화는 요즘 큰 인기를 끌고 있다는 로맨틱코메디였다. 마침 보고 싶었던 영화라 표를 받아들고는 오~ 김종대~ 하고 말하자 김종대는 기분좋게 웃었다.
"십구금 보려다가 이거 끊어왔어."
"..."
"잘했지."
변태새끼 진짜...
김종대는 내가 정색하는걸 보자 더 재밌는지 큭큭대며 웃었다. 그런 김종대를 무시하고는 상영관으로 향했다. 그러자 양손에 팝콘과 콜라를 든 김종대가 서둘러 나를 쫓아왔다.
"너 앞으로 그 딴 야한 말 하기만 해봐."
"..."
"진짜 상종도 안 해줄거니까."
그 말에 김종대는 삐졌는지 입술을 내밀었다. 그러더니 작게 궁시렁대기 시작했다.
"자기도 이런거 좋아하면서."
"ㄴ,내가 좋아하는지 안 좋아하는지 어떻게 알아?"
"그냥 좋아할 것 같았어."
"..."
"정곡을 찔렸나보네에에-"
김종대는 히죽거리며 나를 내려다보았다. 저 능구렁이 같은 놈, 진짜.
***
"나 보지 말고 영화나 봐."
"싫어."
김종대는 영화보러 왔는지, 나를 보러 왔는지. 영화에는 집중을 안하고 내 손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아까 팝콘 집다가 손이 겹쳤는데, 그 때부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짓더니 내 손을 꽉 잡고는 놓아주지 않았다.팝콘먹어야 된다고 했더니, 겹친 손으로 팝콘을 집어 내 입 안에 넣어주더라.
나를 바라보는 김종대의 눈길을 무시하고는 영화에 집중했다. 영화는 슬슬 후반부에 접어들었고, 서로 삽질만 하던 여자주인공과 남자주인공의 격한 애정씬이 나오고 있었다. 진한 키스신에 김종대와 눈이 마주쳤다. 원래 김종대라면 지금쯤 자기도 다가와야 정상인데,
"여주야."
"...응?"
"사랑해."
"...어?"
갑작스러운 그의 말에 아무 말 없이 눈을 깜빡였다. 내 손을 부드럽게 쓸어주던 김종대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그의 말과 영화에서의 대사가 겹쳐 들리기 시작했다.
'사랑해요.'
"사랑해."
'내 모든걸 걸고 말이에요.'
"내 모든걸 걸고."
'평생 당신만을 바라볼게요.'
"평생 너만 바라볼게."
한참 눈을 마주치던 김종대가 눈웃음을 지었다. 머리를 귀 뒤로 넘겨주며 웃던 김종대가 잡고있던 내 손을 들어올렸다.
"...솔직히, 스킨십 하고 싶은데."
"..."
"너가 준비될 때까지 기다려줄게."
"..."
"대신, 지금은-"
그리고 그는 내 손등에 짧게 입술을 댔다. 심장이 요란하게 뛰어댔다. 그런 나를 보며 김종대는 계속해서 미소를 지었다.
"여주야."
"..."
"결혼할래?"
"...응?"
"아니, 결혼하자."
"...보통은 연애 한 다음에 결혼하자고 하지 않아...?"
"지금은 그냥 구애고."
"...?"
"진짜 프로포즈는 나중에 멋있게 해줄게."
"..."
"내가 너 이렇게 좋아, 아니 사랑하는데..."
"..."
"이제는 좀 받아줘라, 응?"
김종대의 애교섞이면서도 절절한 말에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였다. 내가 아무 반응이 없자 김종대는 내심 애가 타는 듯 했다.
"...여주야."
"..."
"지금 부끄러워서 그런거지...?"
"..."
"왜 대답 안해줘..."
김종대는 소심하게 내 손등을 만지작거렸다.
"여주야."
"..."
"지금 부끄러워서 그런거라고 생각 할테니까,"
"..."
"나 좀 그만 불안하게 해줘, 응?"
나도 나름대로 떨려 내 손만 꼼지락 거렸다. 김종대가 낮게 한숨을 쉬는 소리가 들렸다. 그 사이에 영화는 막을 내리고 있었고, 김종대는 그만 가자, 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먼저 앞서 나가는 김종대의 뒷모습은 답지 않게 쳐져있었다. 그런 그를 보며 나는 부끄러우면서도 미안했다. 김종대는 저렇게 표현하면서 안 불안하게 해주는데, 나는 항상 김종대에게 어려운 존재였을지 모른다.
그런 그에게 이제는 내가 먼저 다가가야겠다고 결심했다.
***
김종대는 나를 집에 데려다주는 길 내내 말이 없었다. 그 와중에도 차를 타고 가는건 싫었는지 꼭 굳이 걸어서 데려다주겠다 했다.김종대도 김종대 나름대로 생각이 많은 듯 했고, 나도 나 나름대로 생각이 많았다. 최근 들어서는 김종대에게 너무 틱틱대기만 한터라 이제와서 들이대는것도 조금 어색했다.
그렇게 한참을 멍을 때리고 길을 걷고 있을 때였다. 김종대의 야! 하는 다급한 소리와 함께 그의 향기가 내 주위를 감쌌다.
"괜찮아?"
"어...?"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자 오토바이가 내 옆을 빠른 속도로 지나갔다는 사실을 알았다. 김종대는 걱정스러운 낯빛을 하고는 나를 감싸안고있었다.
"조심해야지."
"..."
"딴 생각하면서 걷고 있으면 어떡해."
"..."
"안되겠다, 너 안 쪽으로 걸어."
"..."
"내가 깜빡했네, 미안해."
김종대는 여전히 나를 안고 있었다. 그런 그와 한참 눈을 마주치고 있었다. 그의 눈은 마치 별을 박아 놓은 듯 빛났다.그러다 그는 깜짝 놀랐는지 나를 급하게 떼어냈다.
"아, 미안해."
"..."
"스킨십 안하기로 했는데..."
민망한 듯 머리를 긁적이는 그였다. 그는 멋쩍게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미안해. 너 다칠 것 같아서, 나도 모르게..."
그가 두 눈에 걱정을 가득 담고 있는것이 보였다.
"...진짜 깜짝 놀랐어."
이런 그라면,
"내가 앞으로 더 조심할게, 진짜."
내가 믿고 기대도 되지 않을까.
이제는 완전한 확신이 생겼다. 나에 대한 걱정만이 가득한 그의 눈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은 온 바다를 담고 있는 듯 맑았다.
***
"잘가."
김종대는 내 집 앞에 서서 두 손을 흔들었다. 그런 그를 바라보다 무작정 그의 손목을 잡고는 깜깜한 골목으로 향했다.
"...뭐야, 우리 여주 박력있다?"
"가까이 와봐."
"...?"
나의 가까이 와보라는 말에 김종대가 나에게 한걸음 더 가까이 와 간격을 좁혔다. 그의 표정에는 의문이 가득했다.
"더."
"ㄷ,더?"
나의 더,라는 말에 김종대는 당황한듯 말을 더듬었다. 그가 소심하게 내게 조금 더 가까이 왔다. 아니, 왜 이렇게 소심해?
"야."
"으,응?"
"좀 더 팍 가까이 와 봐."
그 말에 김종대는 다시 소심하게 꾸물꾸물 다가왔다. 내가 고개를 들자 바로 앞에 김종대의 얼굴이 보였다. 김종대는 숨을 흡, 하고 들이켰다.
"김종대."
"..."
"종대야."
"어,어."
"..."
"ㄴ,내 얼굴 바로 앞에서 얘기하지 마!"
"왜?"
김종대는 괴로운 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내 손만 초조한듯 만지작거렸다.
"왜 이렇게 손만 만지작 거려."
"..."
"애타?"
내 말에 김종대는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지금 이렇게 기회 주는데."
"..."
"이렇게 손만 만지작거리면 어떡해."
그의 손에 깍지를 끼웠다. 그는 여전히 놀란 표정으로 목석같이 굳어있었다. 그런 그를 보다 내가 먼저 가볍게 입을 맞췄다.
"종대야."
"..."
"오늘 케익 준거 너잖아."
"..."
"왜 비밀로 했어."
"...ㄱ,그냥 비밀로 하면 더 기분 좋으니까-"
"그리고, 왜 계속 이상한 말 해."
"뭐...?"
"너가 나 더 좋아한다고."
"..."
"아닌데, 내가 너 더 좋아하는데?"
내 말에 김종대는 다시 급하게 내 입술을 찾았다. 금방 내 입을 파고들 줄 알았는데, 그는 여전히 나와 입술을 마주치고만 있었다.
"여주야."
"..."
"키스해줘."
그가 입술을 댄 그래도 입술을 스치며 말했다. 그의 목소리가 다급해 보여 웃음이 나왔다.
"왜 너가 안하고."
"너가 해주면 나 진짜 좋아서 죽을것 같아."
그의 말에 작게 웃다가 그의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그가 으, 하는 소리를 내더니 장난하지 말고오...하고 중얼거렸다.
이내 먼저 그의 입술 사이를 내가 먼저 파고들었다. 그도 어지간히 급했는지 뜨겁게 나를 맞았다. 한참 골목에는 끈적이는 소리만이 가득했고, 어느새 나는 벽에 몰아붙여있었다.
숨이 찬듯 잠시 입술을 뗀 그가 사랑해, 하고 속삭였다. 그의 입김이 내 입을 통해 들어왔다. 그 마저도 야해 그를 꼭 끌어안았다. 그러자 그도 나를 꽉 품 속에 안았다. 다시 그가 입술을 마주치고는 진하게 키스를 하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나누었던 어떤 키스보다 깊고, 농밀했다.
한참을 그렇게 키스만 했다. 얼마나 오래 그러고 있었는지 가늠을 못할 정도로 말이다. 그는 잠시 숨을 고르기 위해 입술을 뗐을 때도 사랑한다며, 평생 나만 보겠다는 등의 말을 속삭였다.
그렇게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마지막으로 부끄러운 소리를 내며 떨어진 우리는 잠시동안 밭은 숨을 내쉬었다.
조금 진정된 후, 김종대는 나를 으스러질듯 꼭 안고는 내 머리를 그의 어깨에 묻게 해 토닥거렸다. 그의 어깨에 고개를 묻고는 웅얼거리며 말했다.
"...입술 다 붓겠다."
"섹시할것 같은데?"
"뭐래애..."
다시 둘 다 아무 말 없이 서로를 꼭 끌어안고 있다 내가 먼저 그를 밀어냈다.
"나 이만 들어갈게."
"자기 전에 전화 해!"
"알겠어."
그에게 손을 한번 흔들어 보이고는 현관 문을 열었다. 막 문을 닫으려는데 그가 급하게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여주야!!!"
내가 뒤를 돌아보자 그가 환하게 웃었다.
"자기야!! 잘자!!"
그의 호칭에 얼굴이 붉어졌다. 나도 대충 그에게 손을 흔들어주고는 서둘러 집에 들어왔다.
문을 닫자마자 바로 쓰러지듯 주저앉았다. 김민석은 김종대보고 중증이라 했지만...
정말 나도 말도 안되게 중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