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는 마음이 약하다. 내가 기억하는 누나의 첫 모습은 길고양이를 바라보는 모습이었다. 작은 손으로 고양이를 쓰다듬는 모습을 계속 지켜보았지만 누나는 모르는 듯 했다. 누나는 엄마가 가르치는 학생들 중 하나였다. 다른 누나들과 함께 와서 웃고, 문제풀고, 혼나고, 울고. 그런 사람이었다. 누나는 강아지보다 고양이를 좋아한다. 반려동물에 대해서 엄마랑 누나들이 이야기를 나누는데 여주누나가 그랬다. 저는 강아지보다 고양이가 더 좋아요. 수업이 끝나고 나는 엄마에게 엄마 우리 고양이 키우자, 라고 말했고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반려동물을 키우고 싶다하니 엄마는 웃으며 그러자고 했다. 엄마 친구분이 키우는 고양이가 얼마전에 새끼고양이를 낳았다며 작은 솜뭉치를 나에게 주셨다 - 잘 키우렴. 내가 처음으로 품에 안은 작은 동물은 하얀 고양이였다.
“고양이 귀엽다. 이름이 뭐야?”
“…쿠키”
“정국이 별명이랑 비슷하다 그지?”
누나는 먼저 다가와 고양이를 쓰다듬어주었다. 누나가 좋아하는 고양이었기에 더 애정이 갔는지, 나는 쿠키를 애지중지했다 - 엄마가 책 안읽으면 쿠키랑 놀지 못하게 한다고 말할 정도로 말이다. 고양이덕분인지 - 아니면 때문인지 - 누나는 나에게 더 관심을 가지는 거 같았다. 물론, 그 관심의 대상이 내가 아니라 쿠키였을 수도 있지만. 누나는 왜 고양이 못키워? 내 물음에 엄마가 동물 알레르기가 있어 집 안에 동물을 들일 수 없다며 누나가 웃었다. 누나가 웃으면 나도 웃는다. 누나가 울면 나도 울었다. 과외선생님이라지만 바쁜 엄마와 해외 출장이 잦은 아빠 사이에서 유일하게 내가 웃는 이유는 누나때문이었다. 누나가 좋아.
***
유치원에서, 학교에서 많은 친구들이 생겼다. 애들은 나와 단짝이 되고 싶어했고, 그런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았다. 그런데 나에게는 딱 한 친구밖에 없어 - 쿠키밖에 없어. 쿠키가 하늘나라로 갔다. 화단에 묻어주자고 엄마는 말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상하게 눈물이 나지 않았다. 쿠키가 영원히 잠에 빠졌다는 말에 누나는 오랫만에 우리 집에 왔다. 숨을 가쁘게 내쉬며 괜찮아? 하고 묻는 누나를 보자 눈물이 나왔다. 누나는 아무 말도 없이 나를 품에 안고 토닥여줬다. 쿠키야 미안해 - 하나뿐인 친구라고 믿으며 한편으로 누나를 만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한거 같아 미안했다. 내가 우는 이유가 쿠키의 죽음때문이라 확신한 누나는 나와 눈을 맞추며 말했다. 누나는 정국이 곁에 항상 있어줄께, 약속할께. 다시 말하지만 누나는 마음이 약하다.
쿠키가 없어도 나와 누나는 멀어지지 않았다. 그렇다고 가까워진거도 아니었다. 집에 혼자 있을 내가 걱정이 되었는지 엄마는 여주누나네 집에 가서 있으면 엄마가 저녁에 데리러 올께 하고 말했고, 누나는 항상 내 손을 잡아주었다. 누나 친구들은 그렇게 감싸고 돌면 애가 나중에 너만 찾게 될지도 모른다며 어른처럼 이야기를 했지만 누나는 그럴때마다 말했다. 난 정국이에게 약속했어, 라고 말이다. 누나는 친구인 수정이에게 남자친구가 생겼다며 말해주었다. 남자친구가 뭐야? 내 물음에 누나가 답했다. 항상 너의 곁에 있어줄 사람이야, 남자는 여자친구가, 여자는 남자친구가 항상 손을 잡아줄꺼야.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순수한 대답이다. 누나에게 남자친구가 생기면 누나는 나와의 약속을 져버리는거냐고 묻자 누나는 말했다. 누나는 정국이를 절대로 혼자 두지 않을께.
학교가 끝나고 오늘 하루만 부탁해, 라며 누나는 나를 배주현에게 맡겼다. 배주현은 여주가 남자친구가 생길지도 모른다며 들뜬 모습으로 나와 놀이터에서 놀아주었고, 여섯시가 되자 누나는 놀이터로 돌아왔다. 배주현이 인사를 하고 뒤를 돌자 나는 누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누나가 웃었다 - 그런데 나는 울었다. 나의 울음에 누나는 당황한듯이 왜그래 정국아, 라며 내 등을 토닥였다.
“누나도 날 떠나갈꺼야?”
누나를 내 곁에 있게 하기 위해 할 수 있는 최고의 말. 누나도 날 떠나갈꺼야? 이 물음에 누나는 안그럴꺼야 내가 미안해, 라며 나를 껴안아주었다. 그 다음날, 배주현은 정여주가 고백받은거를 거절했다며 나에게 말해주었고, 그제서야 나는 웃었다. 누나는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다.
-
갑자기 어렸을 적이 왜 떠올랐는지 모르겠다. 2반과 7반의 축구경기는 무승부로 끝났고 - 물론 선생님들이 연장을 시키고 프리킥으로 정하자고 했지만 말이다 - 다들 반으로 돌아가라고 했다. 박지민이 누나를 보고 웃었다. 누나는 내껀데. 야, 윤아미. 내가 부르자 윤아미는 웃으면서 다가온다 - 가식 웃음이 정말 웃겼다. 너 박지민 형이랑 같이 학생부 가야하지 않냐. 내 말에 윤아미는 아 맞아, 라며 박지민을 향해 뛰어갔다. 박지민이 누나에게 다가가기 전에 윤아미는 박지민의 팔을 끌며 건물로 들어가기 시작했고, 두리번거리던 누나는 나를 보고 손을 흔들었다. 누나가 웃는다 - 그러면 나도 웃어. 반 친구들이 안들어가? 라고 물었고 나는 누나랑 할 말이 있다며 먼저 들어가라 했다. 누나도 친구들에게 먼저 들어가라는 손짓을 했고, 내 모자를 들고 나에게 다가왔다.
“수고했어 정국아.”
“누나.”
“응?”
“누나.”
누나라고 부르자 여주누나는 웃는다. 누나 미안하지만, 정말 미안하지만 난 이렇게밖에 할 수 없나봐, 생각하며 누나에게 물었다. 누나도 날 떠나갈꺼야? 내 물음에 누나 얼굴의 미소가 사라지기 시작했다. 고개를 숙이고 누나에게 물었다. 나 요즘 너무 불안하고 무서워. 누나도 날 떠나갈꺼야? 아니지? 내 물음에 누나가 나를 안아주었다 - 물론 내가 키가 더 커서 내 품에 누나가 안긴 꼴이 되었지만. 미안해 정국아, 누나가 잘못했어. 등을 토닥여주는 누나의 모습에 안심되었다. 고개를 들자 나를 바라보는 박지민이 보였다. 박지민, 넌 절대 누나를 붙잡을 수 없어 - 누나의 처음과 끝은 나여야해. 누나의 곁에 있을 사람은 나여야해.
“스치면 인연 스며들면 사랑” 믿으면 내가 바보다! 그래 내가 바보다.
EP 07: 너 그리고 나
정국이의 말에 심장이 쿵 내려앉는 느낌이었다. 누나도 날 떠나갈꺼야? 정국이가 하는 말중에 가장 숨이 막히는 말이다. 누나도 날 떠나갈꺼야? 그 말을 하며 정국이는 고개를 숙였다. 나 요즘 너무 불안하고 무서워. 누나도 날 떠나갈꺼야? 아니지? 그 말을 듣는 순간 정국이를 예전처럼 안아주었다. 등을 토닥이자 정국이의 떨림이 잦아드는 듯 했다. 도데체 무엇이 너를 불안하게 만드는 걸까. 입술을 깨물었다. 도데체 왜 너는 나를 놓지 못하는 걸까 - 그리고 나는 어째서 너를 떠나지 못하는 걸까. 미안해 정국아, 누나가 잘못했어. 나는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른다. 다만, 너가 불안해하는 이유가 나 때문이라면 너에게 사과하는게 맞는 거겠지. 정국이의 등을 쓸어주었다. 정국이도 손을 들어 나를 안는다. 누나 나 버리지마. 정국이의 말에 그냥 고개를 숙였다. 빨리 들어가봐야겠다며 우리 들어가자, 하고 내 손을 잡는 정국이를 뿌리칠 수가 없어 그냥 아무말도 안하고 따라갔다 - 사실 끌려갔다고 보는게 맞는거 같다. 누나 수업 잘 듣고 오늘은 우리 따로 가자. 나 먼저 갈께. 인사를 하고 멀어지는 정국이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미안해 정국아 내가 미안해.
***
“와 대박 전정국이랑 정여주랑 포옹함.”
“헐 사진찍은거봐라. 대박이네 진심.”
“그 와중에 그걸 찍는 너도 대단하다 진짜.”
“우리 애기 드디어 연애를 하는겁네까? 아따 참말로 오래 걸렸다 진짜.”
너네는 왜 너네반 안가고 여기와있냐, 하고 태형이 묻자 수정이 말했다. 막냉이 보고 가려는데 애가 저기서 전정국이랑 로맨스 찍고 있으니 다 보고 갈려구. 슬기가 와 첫연애 축하한다고 해야하나? 하고 묻자 호석은 웃었다. 뭘 사겨 사귀기는, 전정국하고 정여주하고 사귀면 내가 전재산을 너네에게 뿌린다. 호석의 말에 승완은 말 바꾸면 김태형이다 하고 말했고 태형은 다시 아 왜 자꾸 나가지고 그러는데! 라며 찡찡거리기 시작했다.
“…어”
“요 침침 와썹! 오늘 잘하던데?”
“야 무승부 진짜 심장 쫄리는 줄.”
“박짐니 인기 짱이겠다?”
지민이 문을 열고 들어오자 다들 지민에게 수고했다며 인사를 건넸다. 지민은 웃으며 자리에 앉았고 승완은 지민에게 물었다. 여주랑 같이 온다며 왜 혼자 와? 승완을 태형이 툭툭 치며 말했다. 정여주가 로맨스드라마를 찍는다는데 거기에 불청객이 끼면 안되지. 태형의 말에 지민이 씁쓸한 웃음을 보였다.
***
“나 너 응원했는데.”
“아 봤어. 고마워 진짜.”
“무승부라니 아쉽다.”
박지민은 응원해줘서 고맙다며 웃었다. 망할놈의 심장은 박지민만 보면 쿵쿵거린다 - 무슨 매일 마라톤을 하는 것만 같다. 빨리 반티를 정하자는 윤기쌤의 말에 다들 자리에 앉아서는 아이디어를 내기 시작한다. 가오나시, 슈퍼맨, 19금 20토, 몸빼바지, 농경생활, 유치원복 등등. 반티도 반티였지만 내 머릿속을 현재 가장 많이 차지하고 있는 거는 정국이의 누나도 날 떠나갈꺼야? 라는 말이었기에 머리가 아팠다. 결국 책상에 엎드리자 옆에 있던 박지민이 내 머리카락을 만지며 실실 웃는게 느껴졌다. 지금 이 상태에서 고개를 든다면 얼마나 얼굴이 빨개졌을지 상상이 가서 모르는척 계속 엎드려있었다.
“거기 박지민, 정여주 연애질은 그만하고 빨리 반티나 고르지? 박지민 이제는 김태형이 아니라 정여주냐, 능력이 대단하구만.”
“아 쌤 ㅋㅋㅋㅋㅋㅋㅋ 진짜 ㅋㅋㅋㅋㅋㅋㅋ”
“뭐, 나 잘생긴거 알아. 야 빨리 골라. 우리가 선주문해야 다른반이 못고른단 말이야.”
윤기쌤의 말에 자세를 금방 고쳐앉자 박지민이 웃는다. 반티 그냥 커플로 하면 안되요? 누군가가 묻자 윤기쌤은 남자 여자 짝으로 있는거? 그러면 쌤은 솔로잖아 하고 말하며 절레절레 고개를 저었다. 아 근데 쌤 모쏠이라 상관없지 않아여? 김태형의 말에 윤기쌤은 정색하며 너 끝나고 교무실이라 말했고 반은 웃음소리로 가득차버렸다. 너는 뭐 입고 싶어? 박지민이 나에게 물었고 나는 볼이 빨개진 채로 말했다. 글쎄. 내 말에 박지민은 또 웃으며 내 볼을 꾹 눌렀다. 너 지금 얼굴 되게 빨개서 복숭아같아. 제발 내 심장아 나대지좀마.
“야 그러면 여자는 미니, 남자는 미키다.”
“쌤은요?”
“난…”
“쌤은 구피해여!!!!!!!!”
“…이놈들이…ㄴ...나는 미키할꺼야!!!”
“아 쌤은 구피하라구여!!!”
“미키할꺼라고!!!”
박지민과 마주보는 사이 반티는 미키와 미니로 결정되었고, 선생님에게 구피옷을 입히려는 애들과 미키옷을 입고 싶은 윤기쌤 사이의 2차반티대전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나 체육대회때 너랑 사진 많이 찍어야겠다. 박지민의 말에 멀뚱히 박지민 손에 들린 펜을 바라봤다. 그러니까 너 번호 좀 알려줘. 심장아 지금은 나대도 괜찮아.
도데체 체육대회와 반티 그리고 내 핸드폰 번호의 상관관계가 무엇인지 - 그것은 중요치 않았다.
가장 중요한거는 박지민이 내 번호를 물어봤다는 거다.
##작가사담##
앞부분은 정국이였습네다!!!
여주가 정국이에게 꼼짝을 못해요. 다들 읽으시면서 여주가 왜 정국이를 내치지 못하지 하고 보셨을 텐데
정국이가 다 말해버렸네요... 야레야레.... (물논 정쿠키 과거는 다 나오지 않았다만, 여주 과거도 다 나오지 않았단..!!)
그나저나 박지민 너 왜 아무렇지도 않게 번호따냐......
저도 저렇게 번호따줄 사람 없어여? ㅠㅠㅠㅠㅠ 너무하다ㅠㅠㅠㅠㅠ
너네둘이 잘 사겨라ㅠㅠㅠ 흥흥 칫칫
암호닉은 계속 받습니다. :)
ㅈ..정국아 울지마... ㅈ...정국가ㅠㅠㅠㅠㅠㅠㅠ으아유ㅠㅠㅠㅠㅠㅠ
박지민 번호따서 좋냐...흥칫뿡.....
어제 너무 길어서 (오늘 새벽이군요) 오늘편이 짧게 느껴지실 수도 있어요
죄송합니다....분량조절 실패.....ㄸㄹㄹ.....
@너를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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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진 암호닉이 있다면 꼭 알려주셔야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