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seven days(7일 동안) # Thursday4
한 소년이 있다.
어슴푸레한 공간에서 홀로 서 있다.
경계가 모호한 탓인지 그 소년의 모습은 뚜렷하게 보이지 않았다.
흐릿한 형상에서도 난 그 소년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그러나 느낌이 그러할 뿐 정확히 누군지는 몰랐다.
궁금해서 기억해내려고 하면 두통이 일어났다.
눈물이 찔끔 날만큼 너무도 아프게 두통이 일었다.
소년이 입을 열어 말했다.
그러나 그 소리는 나에게 닿지 않는다.
모르는 소년을 계속 보고 있으니 그리움이 밀려 왔다.
참 보고 싶은 아이였던 것 같은데 아무것도 모른다니 이상하다.
이윽고 눈 앞의 장면이 바뀌었다.
그제서야 내가 꿈을 꾸고 있구나 생각이 들었다. 흔히 말하는 자각몽인 것일까?
바뀐 꿈속의 장면은 예전에 꿈을 꾸었던 겨울 바다였다.
여전히 무채색 느낌이 드는 회색빛 하늘과 검푸른 바다가 보였다.
뼛속까지 시린 바다는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해변을 애무한다.
그리고 그곳에는 한 사람이 서 있었다.
두번째 보는 것이지만 누군지 알 수 없었다.
그저 그 사람의 뒷모습이 몹시 외롭게 보여서 안아주고 싶었다.
-
"깼어요?"
"...으음...쑨?"
쑨양의 목소리가 귓전에 들려와 아직도 무거운 눈꺼풀을 힘겹게 들어올렸다.
미소를 그리고 있는 쑨양이 보였다.
그리고 쑨양의 품에 안겨 그의 심장소리를 들으면서 잠들었던 것이 생각이 났다.
그 고동소리가 무척 편안해서 그대로 잠이 들었었다.
꿈을 꾸웠는데...오늘은 조금도 기억 나지 않았다.
"잘 자던데요?"
"그래요?"
"네."
쑨양도 잠든 나를 끌어안은 채로 잠이 든 모양이었다.
그의 가슴에 얼굴을 뭍고 엎드려 있었다. 무거웠을텐데.
쑨양의 몸 위에 엎드려 있다는 것을 알아챘지만 따뜻한 그의 체온을 더 느끼고 싶어서 더욱 끌어안았다.
"무겁지 않아요?"
"아니요. 가벼워요. 공주님은 언제나 왕자님께 깃털같은 존재인걸요."
"아니, 좀! 그만해요. 쑨양."
"왜요? 태환공주님?"
"공주 아니라니까요."
"큭큭."
모든 것을 고백하고 한참을 울었던 날.
눈물로 온몸을 샤워하듯 흘렸던 그 날 이후로 쑨양은 매번 공주님이라고 불렀다.
짧게는 공주님, 길게는 눈물나라의 공주님.
부를꺼면 난 남자니까 왕자님으로 차라리 불러달라고 했지만 왕자님은 자신이라며 어쩔 수 없이 공주님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그런 그에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뽀루퉁한 얼굴로 투덜되는 것 뿐이다.
어쩐지 그의 전매특허 표정을 따라하는 기분.
이렇게 삐진 그를 달래주는 사람이 나였는데, 반대가 된 것 같다.
왠지 심통이 나서 입술을 삐죽삐죽 거리는 나를 본 쑨양은 소리내어 웃었다.
너무 귀여워서 웃음이 나온다나 어쩐다나.
"태환, 괜찮겠어요?"
"괜찮아요. 그러니까 가요."
음식을 제대로 먹지 못해서 몸이 많이 안좋아진 나를 두고 출근하는 것이 걱정된다는 쑨양을 겨우 배웅했다.
휴가내고 같이 있을까요? 그렇게 묻는 쑨양을 어르고 달래었다.
많이 괜찮아졌으니 걱정말라며 다독였다.
꼭 밥도 잘 챙겨 먹겠노라고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을 했다.
물론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조금이라도 쑨양의 걱정을 덜고 싶었다.
나를 생각해주고 사랑해주는 그가 아픈 나때문에 피해보는 것이 싫었다.
그런 나를 잘 아는 그라서 결국 고집을 꺽고 회사에 나갔다.
몇번이나 되돌아보면서 무던히도 걱정스럽게 보며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겨우 떼었다.
그런 쑨양의 마음을 잘 알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많이 없었다.
몸이 조금 괜찮아진 틈을 타 꽤 오랜만에 화실에 들어갔다.
몸이 많이 안좋아진터라 이곳에 두문불출했었다.
나 외에는 쑨양도 들어오지 못하게 엄금했던터라 손을 타지 않은 화실은 먼지가 쌓여 있었다.
캔버스 위에 덮어놓은 천을 천천히 벗겼다. 나풀나불 먼지가 공기 위로 흩어졌다.
이젤 앞에 놓인 스툴도 손바닥으로 쓸어 먼지를 털어냈다.
한번은 청소해야될 것 같은데 그것이 언제가 될지 모르겠다.
까끌해지는 입안을 움직여 침을 꼴깍 삼켰다.
스툴에 앉아 천이 벗겨져 모습을 온건히 드러낸 캔버스가 눈에 보였다.
내가 마지막으로 작업했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화구를 꺼내 하나씩 작업을 했다.
이미 작업해둔 캔버스에 좀 더 살을 덧붙이는 격이라 금세 끝이 났다.
완성된 캔버스를 보며 감상에 젖었다.
"예쁘다..."
내가 그렸지만 참 아름답게 그려진 것 같아 만족스러웠다.
색색의 물감의 겹쳐지고 겹쳐져 나오는 색깔도 예뻤고, 온전한 그 물감 색 또한 아름답다.
《띠링》
감상에 젖어 있는 나를 깨우는 소리가 들려왔다.
점심 식사 시간을 알려주는 알람 소리였다. 제대로 먹지 못하는 지금도 알람을 없애지 않았다.
익숙한 그 느낌을 지우고 싶지 않았다.
언제와 다름없이 화구를 정리하고 캔버스 위에 먼지를 털어낸 천을 씌운 후 거실로 나왔다.
부엌으로 가지 않고 거실 소파에 드러누웠다.
냉장고 문을 열거나 하는 순간 냄새때문에 밀려오는 토기로 화장실로 갈 것 같았다.
그게 싫어서 쑨양이랑 한 약속과 달리 먹는 시늉조차 하지 않았다.
평온한 지금 이 상태로 있고 싶었다.
쑨양이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무척 걱정할 것이란 것을 알지만 현재를 깨뜨리고 싶지 않았다.
그의 냄새가 배인 포근한 소파에 누워 눈을 감았다.
"쑨양...보고 싶다."
언제나 그립다. 이렇게 홀로 있을 때면 매일 보더라도 쑨양이 그리워졌다.
그의 온기도 그립고 그의 목소리도 그립고 매끄러운 하얀 피부의 촉감도 그립고 거칠면서도 부드러운 입술도 그립다.
몸이 더욱 아프니까 더 심해지는 것 같다.
우울해지는 마음을 다잡아보아도 나아지지 않았다.
"하아..."
한숨을 내쉬었다. 토해진 한숨은 공기중으로 흩어져 금세 사라졌다.
"...아!"
누웠던 몸을 일으켜 거의 달리다시피 침실로 들어섰다. 방 한켠에 개어놓은 쑨양의 옷이 보였다.
세탁바구니에 넣어어야지 하고 방치해두었던 옷이였다.
옷을 펼쳐자 쑨양의 커다란 몸에 맞을만큼 큰 티셔츠가 모습을 드러냈다.
옷가지에 배인 그의 냄새가 코끝을 간지럽혔다. 그리워서 우울해졌던 마음이 해사해진다.
남의 옷의 냄새를 맡고 있으니 꼭 변태같았다.
그래도 허전한 마음을 달래기에는 충분해서 그따위 감상쯤은 무시할 수 있었다.
"흐음...내가 입어보면 많이 클려나?"
쑨양과 키나 덩치가 차이가 났지만 나 또한 꽤 큰 편이었기 때문에 호기심으로 쑨양의 티셔츠에 몸을 꿰어넣었다.
입으니 생각보다 많이 컸다. 품도 많이 커서 헐렁했다.
쑨양이 입었을 때는 엉덩이쯤 오던 길이가 내가 입으니 엉덩이는 고사하고 허벅지까지 내려왔다.
아담한 여자아이가 덩치 큰 남자아이 옷을 빼앗아 입은 모습 같았다.
"무식하게 덩치만 커서는...."
나보다 힘이 더 쎄고 큰 그가 괜시리 짜증났다.
같은 남자로서 질투난달까.
병으로 인해 근육과 살이 빠져서 더욱 쑨양의 옷이 크게 느껴지는 바람에 더욱 그런 마음이 들었다.
이렇게 투덜투덜 입술을 삐죽이면 쑨양은 웃겠지.
다정하디 다정한 그는 귀엽다며 나를 품에 껴안을 것이다.
쑨양의 얼굴을 생각하자 모난 돌 같았던 기분이 좋아졌다.
그를 생각할 때면 나빴던 기분조차 행복해졌다.
이런 내가 바보같지만 사랑에 빠진 사람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렇게 나를 위로했다.
쑨양의 옷을 입은 채로 거실로 나와 소파에 다시 드러누웠다.
소파의 포근한 융단과 쑨양의 옷때문에 쑨양이 나를 안아주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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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챕터 네번째 이야기....
언제 불꽃을 쓸려나~ 두편정도 더 쓰면 나올려나요~'ㅅ')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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