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ihanna - Take A Bow
21세기 대한민국, 뿐만 아니라 세계는 현재 여성의 수가 현저히 줄어들고 있다. 그 때문인지 남녀의 성비가 남성으로 너무 치우쳐져있었고, 그런 성비를 해결 할 방안으로 일처다부제라는 제도가 도입되었다. 이는, 여성이 여러명의 남성과 결혼이 가능하며, 여러명의 남편을 둘 수 있다는 의미이다. 그리고, 지금 내게는 세 명의 남편이 있다.
***
아침은 세 명의 남편을 깨우는 것으로 시작된다. 먼저, 태형이. 태형이는 겨울이라 그런지 요즘 엄청 늘어지던데 그 때문에 깨우는 데는 시간이 아주 오래걸린다. 나는 태형이의 침실로 들어갔고, 태형이가 뒤적거리면서 아주 이상한 자세로 잠을 자고 있었다. 한숨을 푹,쉬고 나는 그런 태형이의 등짝을 세게 쳤다. 일어나, 태형아! 내 말에 태형이는 인상을 찌푸리면서 나를 바라보았다. 아, 뭐야아. 김태형은 퍽 졸린 것인지 꽤나 세게 때렸다고 생각했는데, 그는 등을 문지르며 다시 눈을 감았다. 이불을 저 멀리로 던져버리자, 이번엔 아예 내 손을 잡아버린다. 나 너랑 이러고 있을 시간 없는데, 태형아. 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태형이는 내 손을 잡은 손에 힘을 주더니 날 끌어당겨 안았다.
"…조금만 더 잘래."
"안돼, 학교 늦어."
"안 가면 되지."
"누구 마음대로."
"내 마음대로."
"조용히하고 일어나."
태형이는 까치집처럼 부스스해진 머리를 몇 번 넘기더니 나를 째려보았다. 힝, 태형이 좀 더 자게 해줘요. 귀엽게 애교섞인 목소리로 말을 하니 도저히 일어나라고 말을 못 하겠다. 나는 그런 태형이에 웃음이 나왔고, 태형이는 눈을 감고 있으면서도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그래도 안되는 건 안되는 것이다, 싶어서 나는 태형이의 팔을 붙잡아 상체를 세우게했다. 좋은 아침이네요, 여보? 내 말에 태형이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여보라고 했어? 성이름? 이라며 재차 물었다. 그런 태형이에 나는 빈정대면서 어서 일어나,라고 머리를 쓰담거려주었다.
다음은, 지민이. 지민이는 그래도 능청이라도 안 부리지 싶어 침실 문을 여니 안 부리긴 무슨, 코까지 골면서 자고 있었다. 방 문을 두드리며 그래도 예의는 지켜야지 싶어서 기다려주니 절대 일어나질 않는다. 박지민을 어쩌면 좋아…어김없이 나오는 한숨에 지민이의 볼을 당겨주자 으으으, 거리면서 눈을 떴다. 강아지 같아. 귀여워. 왜 우리 집엔 강아지 밖에 없지? 싶어서 괜히 웃음이 나왔다. 내 웃음에 지민이는 따라 웃더니 몸을 일으켜 내 볼에 뽀뽀를 해버린다. 좋은 아침이에요, 둥이야. 으, 뽀뽀해준 자리가 붉어지는 느낌이다. 둥이, 어디서 나온 말이냐 하면 연애하던 시절에 지민이가 나를 보면서 항상 귀염둥이라고 했었는데 그 귀염을 빼버리고 둥이만으로 부르게 되었다. 지민이는 그대로 일어나더니 기지개를 쫙,폈다. 우리 산책하고 오면 안돼? 이 말에 나는 고개를 저었다. 밥도 해야하고, 정국이도 깨워야하는데? 지민이는 조금 실망스런 표정을 짓더니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마지막 대망의 정국이, 정국이는 여전히 성장기이신지 잠이 엄청 많다. 하긴 아직 워낙에 어리시니, 그런데도 의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있다. 세 명의 남자 중에서 가장 바쁘기도 바쁘고 여유롭기도 여유로운 정국이, 그런 생각에 문득 기분이 급해져서 방 문을 열었는데 이불을 끌어안고 침대도 아닌, 바닥에서 자고 있는 정국이였다. 가관이다. 정말. 정국이를 깨우기 위해서 정국이를 발로 몇 번 쿡쿡, 찌르니 간지러운 느낌이 든 건지 눈을 뜨는 정국이였다. 물론 인상을 찌푸리는 건 누구에게나 옵션. 정국이는 갑작스레 일어서더니 나를 슥, 한 번 쳐다보았다. 그리곤 내 손을 잡았고 그대로 바닥에서 침대로 누워버린다. 헐, 갑작스러운 행동에 정국이를 밀려고하니 정국이가 안밀려났다.
"누나."
"어?"
"우리 조금만 이러고 있어요."
"싫어, 너 빨리 일어ㄴ…"
"밤에 해버릴 거 지금 해버리기 전에 쉿."
있다, 우리 집에 강아지 말고 늑대 한 마리가 있었는데 내가 몰랐을 뿐. 당황스러움에 동공만 굴리고 있자 정국이는 어느새 눈을 뜬 것인지 내 볼을 감싸고 있었다. 이 여자야, 왜 이렇게 아침부터 귀엽고 난리야. 그 말에 괜히 귀가 달아오르는 느낌이였다. 나는 정신을 차려 정국이를 노려보며 손을 떼라고 했고 정국이는 싫어라며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뭐가 싫어야, 어서 일어나. 병원 늦겠다."
"괜찮아, 오늘은 오전부터 계속 수술 일정이라 10시부터거든."
정국이는 말을 끝내더니 내게 물었다. 나 지금 엄청 부었어? 그에 고개를 끄덕여주니 시무룩해진다. 못생겼겠구나,정국이는 일어나서 나를 놔주더니 그럼 네가 뽀뽀해줘. 라는 괴상한 말을 뱉어놓는다. 미친 거 아냐? 순간 반사적으로 말이 나왔다. 싫어싫어. 몇 번을 싫다고 해주니 정국이는 나를 노려보았다. 다른 형들이랑 모닝키스 했어, 안 했어. 묻는 정국이에 나는 안 했으니까 너랑도 안 해줄거야. 라고 말을 덧붙였다. 그럼 나랑 하면 되겠네? 그 말에 위기감을 느껴 방에서 나와버렸다. 변태. 방에서 나오니 맛있는 냄새가 집 안을 가득채우고 있었다. 지민이가 앞치마를 매고 열심히 요리를 하고 있었다. 맞아, 지민이는 나보다 요리 잘했었구나.
"뭐야, 내가 할 텐데…"
"너 힘들까봐, 어서 출근 준비해."
그 말에 나는 웃으면서 고맙다고 했고, 지민이는 별 거 아니라며 웃었다. 그런 모습이 너무나도 가정적이고, 멋있어서 까치발을 들어 몇 번 머리를 쓰다듬어주니 지민이가 뭐냐며 웃어보였다. 칭찬. 나는 그 말을 끝으로 욕실에 들어가 씻고 머리를 감고 나왔다. 여유로운 아침이였다.
***
"뭐? 안돼, 나 지금 집에 태형이랑…어? 나 빼고 다 있네?"
- 그럼, 엄마랑 혜미랑 지금 집으로 간다. 비밀번호는 니 생일?
"아, 엄마!"
엄마는 그런 내 절박함을 가볍게 무시하시더니 전화를 끊어버리셨다. 앞으로 퇴근까지 2시간이나 남았는데…골치 아프다. 일찍 퇴근해야하나…하지만 분명 저 부장이 나를 가만 두지 않을 거야. 그 생각에 나는 노트북을 키고 다시 열심히 타자를 쳐내려갔다. 6시, 퇴근 시간이였다. 부장이 오늘은 일찍 퇴근을 해준 덕분에 나는 빠르게 핸드백에 물건을 넣었다.
"과장님, 어딜 그렇게 바쁘게 가세요?"
"아, 집에 좀 빨리 가야할 거 같아서 쉬엄쉬엄하고들 와!"
"네, 수고하세요!"
나는 몇몇 사원들에게 인사를 하고 재빨리 밖으로 나왔는데, 그 때 마침 정국이에게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 누나, 어딘데?
"나 지금 회사 건물 앞!"
- 기다려봐, 나 지금 코 앞이라 픽업해줄게.
"너 집 아니야?"
- 장모님께서 마트에 장 좀 보고 오라고 하셔서.
"아, 알겠어."
전화를 끊은지 5분 뒤에 정국이의 차가 내 앞에 멈춰섰다. 나는 조수석의 문을 열고 차를 탔고 정국이가 웃으면서 행복한 저녁이네, 성이름씨. 나는 다급한 마음에 정국이를 보챘고, 정국이는 알겠다며 최대한 빨리 움직여주었다. 엄마랑 성혜미가 저번에 왔을 땐 장난 아니였다고…!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정국이와 나는 엘리베이터를 탄 후에 빠르게 집으로 들어왔다. 이럴 줄 알았다. 엄청난 크기의 상에 다리가 부러지도록 많은 반찬들을 지민이가 나르고 있었고, 고등학생인 내 동생 혜미가 태형이의 옆에 앉아서 수다를 떨고 있었다.
"아…엄마!"
"어머, 우리 딸 왔네?"
"…뭐해!"
"그냥 너 요새 안쓰러워서 이것저것 엄마가 집에서 만들어왔지."
순간 마주친 지민이의 눈에는 나 좀 살려달라는 소리없는 아우성이 담겨 있었다. 머리가 아파지는 느낌이였다. 엄마는 정말…! 전서방, 왔으면 옆에서 같이 튀김옷 좀 튀겨주지? 비아냥 거리는 엄마의 말투에 정국이는 아, 알겠습니다! 마치 군대에 있는 것처럼 기합이 담긴 목소리로 대답했다. 엄마는 집이 더럽더라, 라는 말과 함께 웃으셨고 나는 그 의미가 뭘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다. 방 안에서 코트를 벗고, 핸드백을 걸어둔 후에 청소기를 들어 청소를 시작했다. 거실에서 태형이를 당황하게 하고 있는 성혜미의 말을 우연히 들었는데 정말 가관이였다.
"오빠는 학교 쌤이시니까 인기가 엄청나시겠어요! 생일 때 선물 많이 받았어요? 오빠 방탄소년단에 뷔 알아요? 판박이에요!"
한심스럽게 내 동생을 바라보고 있는데 엄마가 어느샌가 소파에 앉아 티비를 키시더니 말씀 하셨다. 아이고, 우리 딸 돈 벌고 왔는데 집에서까지 움직이나! 태형이를 저격한 말인 걸 태형이는 눈치를 챘는지 일어나더니, 하하. 아닙니다. 제가 해야죠. 앉아서 쉬어.라며 내 손에 들려있던 청소기를 빼앗아서 자기가 청소를 한다. 이게 뭐람…강제적으로 앉혀진 나는 너무 당황스러워서 헛웃음이 나왔다. 지금 집 안에 있는 남자 세 명이서 한 명은 청소하고, 한 명은 음식 나르고, 한 명은 요리하고…정말 이게 시월드인가. 안쓰럽게 바라보며 도와줄려고 일어선 내 손목을 잡아내리는 박력터지는 우리 엄마다. 내가 노려보니 네 동생이랑 얘기 좀 하렴. 니네 아빠가 곧 도착한다고 전화가 와서. 라며 엄마는 집을 나가버렸고, 나는 덕분에 더욱 더 멘탈이 파괴되었다. 망했네.
"공부는 잘 하고 있냐?"
"언니만큼은 하거든."
"야, 나 그래도 고딩 때 전교 10등 안에는 들었었어."
"먹고 살 정도로만 하면 되지. 근데 너 저런 남자들은 다 어떻게 만났냐?"
"언니한테 말투봐라. 그냥. 대학에서랑 여기저기에서…"
가장 먼저 만난 건 고딩 때부터 친구였던 태태, 그리고 다음은 대학교에서 과제하다가 만난 지민이, 그리고 정국이는…글쎄, 나 예전에 이상한 술마신 사람한테서 못 빠져나올 때 도와줬었다. 그 때 만났고. 셋 다 비슷한 시기에 만났던 것 같다. 갑자기 든 뿌듯한 마음에 미소를 짓고 있는데 집 비밀번호를 치는 소리가 들려오더니 엄마가 아빠와 함께 데리고 오셨다. 그리고 아빠의 손에 들린 것은 술. 아…하나 언급을 하자면, 우리 집안은 대대로 술고래 집안이다. 물론 나도. 술이 굉장히 쎈 편이다. 많이 들어가면 4병 정도. 아빠는 나보다 더. 그런데 중요한 것은 우리 집 남자 셋은 전부 못 마신다는 거.
반찬을 나르다가 아빠를 본 지민이, 앞치마를 풀다가 아빠를 발견한 정국이, 청소기를 끄다가 아빠와 눈이 마주친 태형이. 모두 얼음이 되고 어색한 웃음만이 가득했다. 아빠가 워낙 근엄하시긴 무슨 장난끼가 많으신데, 그거 때문에 문제인 것이다. 결혼 초기에도…말을 말아야지. 다리가 휘어지게 차려놓은 상 앞에 아빠가 앉으셨고, 정국이, 태형이, 지민이 순으로 다다다 붙어 앉았다. 왜 저렇게 귀여운지 모르겠다. 나는 아빠의 옆에 앉았고, 혜미에게는 포도 주스를 부어주었다. 아빠는 씨익, 웃으시더니 그동안 잘들 있었나? 우리 사위들. 이라며 호탕하게 웃으셨다.
"어찌 우리 사위들은 하나 같이 잘생겼는지, 오랜만에 만났으니 얼마나 늘었는지 한 번 볼까?"
"아빠! 무슨…다들 못 마시는 거 알잖아."
"아닙니다. 한 잔 주십시오. 장인어른."
태형이의 말이 허공을 갈랐다. 저런 미친…! 그냥 가만히 있으면 내가 쉴드 쳐줄 텐데 왜 굳이 나서는지 모르겠다. 태형이의 말에 아빠는 웃으시더니 전서방이랑 박서방은 어떤가.
"전 가장 어리니, 그만큼 잘 들어갈겁니다."
"그래도 이 아이들 보단 제가 잘 마시지 않겠습니까, 아버님."
정국이와 지민이의 말이 잇따랐다. 갑자기 두통이 오는 느낌이였다. 쟤네 누가 좀 말려봐. 나는 한숨을 푹, 쉬고는 내가 다 마셔야지. 안되겠네. 하고 검은 봉지 안의 술 병을 세아렸는데, 장난 아니였다. 대략 열댓병은 되는 느낌이였다. 나 저거 다 마시면 죽겠지? 우울해졌다. 망했네, 망했어.
***
5병째, 세 명의 정신이 모두 헤롱헤롱한건지 태형이는 되지도 않는 애교를 부리며 있고, 그걸 찍고 있는 혜미를 발견한 나는 혜미의 핸드폰을 빼앗아 삭제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지민이는 내게 달라붙어서 안고 있었고, 술냄새가 가득했다. 마지막으로 정국이, 가장 정상적이게 보였는데 곧 있으면 쓰러질 느낌이였다. 머리 아파. 정국이는 정자세로 아빠가 주는 술을 계속 마시고 있었는데 나를 바라보더니 더 이상 못 먹겠다는 표정을 짓는다. 난 정국이의 침실로 들어가 베개 하나를 꺼내와서 해탈 직전인 정국이의 머리 밑에 베개를 넣어주었다. 수고 했어. 그에 정국이는 편안한 미소를 짓는다. 무슨 전쟁 영화 찍는 줄 알겠네. 내게 떨어지지 않는 지민이를 밀어내려했는데, 여전히 스킨쉽을 퍼붓는다. 아빠는 웃으셨다. 어느샌가 사라지신 엄마는 피곤하시다며 술을 조금 드시더니 내 침실로 가서 누우신지 오래였다. 태형이는 누가누군지 구분이 안 가는 것인지, 혜미에게 붙어서 애교를 부리고 있길래 다가가서 떨어트려놓았다.
"으앙! 우리 여부다, 여부…여부 태형이, 더 마실 수 있쪄!"
"그냥…들어가서 자라. 태태야."
"시러시러, 태형이 더 마실래에."
"하, 아빠 좀 도와줘요."
"아니, 우리 딸은 장군감 아니였나? 그런 것도 처리 못 하면 우리 딸이 아닐텐데~."
아빠는 술을 따르시면서 말씀하셨다. 아빠…한숨이 푹푹, 나왔다. 나는 태형이에게 다가가 손을 잡았고 태형이를 일으켰다. 그나저나 내 뒤에서 떨어질 생각을 안 하는 지민이는 어떻게 하나. 지민아, 지민아. 몇 번 이름을 부르니 으응, 이라며 투정을 부린다. 맞아, 우리 집 남자들은 다 강아지였지. 먼저 태형이를 끌고 침실로 들어왔다. 감옥 수용수처럼 태형이를 밀어넣었고, 태형이는 강아지 앓는 소리를 냈다. 너도 참 술버릇 특이하다.
"태형이 두고 갈 거야?"
애교 섞인 목소리에 나를 초롱초롱하게 바라보는 눈빛 덕에 귀가 빨개지려고 했다. 으, 진짜. 내가 두 번 다신 술 안 먹여. 태형이에게 웃으면서 두고 갈 거야. 라며 손을 잡아 일으키곤 다시 침대에 눕혔다. 태형이, 자야지? 협박조인 내 목소리에 태형이는 그래도 눈치는 조금 남아있는 건지, 여보 잘자. 라며 내게 가볍게 입을 맞춘 후에 떨어져나가 눈을 감는다. 태형이의 술기운이 전해지는 느낌이였다. 바보야, 진짜. 우리 태형이. 앞머리를 정리해주고는 방문을 닫고 나왔더니 지민이가 나를 삐딱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자기, 나랑 안 놀아줄 거에요? 자꾸 그렇게 김태형만 신경쓰면 나 질투나서 못 참는데?"
발음이 정확했다. 술에 취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에? 당황스러운 표정을 몇 번 지어주니, 지민이는 나를 안았다. 자꾸 그러면 나 실망할 거야, 지민이는 내게 이렇게 말하면서 내게 떨어지려고 하질 않았다. 아, 정말…얕아진 숨소리에 지민이를 바라보니 내 어깨에 고개를 파묻고 자고 있었다. 귀여워. 나는 지민이의 침실 문을 열어 온도를 맞춰준 후에 침대에 눕혔다. 그런데도 여전히 내 손을 놓아주질 않았다.
"자야지, 내 손 놔줘."
"이름아."
"…어?"
"여기, 뽀뽀해주면 잘게. 어서."
지민이는 자신의 볼을 가르켰고, 귀여움에 나는 지민이에게 짧게 볼뽀뽀를 해준 후에 떨어졌다. 잘자. 내 말에 지민이는 눈웃음을 지으며 으으…잘자아, 꼬인 발음으로 내게 말했다. 정말 사랑스러울 정도네. 모든 일을 끝내고 나왔는데 대자로 뻗은 정국이와 정국이 옆에서 변태스럽게 웃으며 사진을 찍고 있던 성혜미가 보여 혜미의 핸드폰을 뺏었다. 지금 자는 사람 옆에서 뭐하는 거야. 머리를 꾹, 누르니 혜미가 아둥바둥거리며 핸드폰을 뺏으려고 했다. 왜 사진을 찍어.
"정국이 오빠 잘생겼잖아."
"그럼 맨정신일 때 찍어달라던가."
"이 오빠 너무 철벽이란 말이야, 어떻게 시동생한테까지…"
"그럼 정국이 닮은 남자랑 연애해서 사진 많이 찍으세요~."
모든 사진을 삭제한 후에야 핸드폰을 돌려주었다. 아빠는 이제 다 마신 것이였는지, 언제 나온지 모를 엄마와 함께 티비를 보고 계셨다. 티비에는 야구 중계가 방송되고 있었다. 녹화해둔 건가보네. 엄마, 아빠 옆에 앉아서 같이 티비를 보니 엄마가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수고했다고 웃어주셨다. 편하다, 정말.
"엄마 시대 때도 이 제도가 도입됬으면 너처럼 재밌게 살았을 텐데."
"여보, 나로도 부족하단 말이요?"
"충분해요, 충분해. 됬죠?"
그렇게 그 날밤은 엄마랑, 아빠랑, 바보 같은 혜미랑 같이 잤다. 정말 모든 피곤이 녹아버릴 듯이 편안했다. 가끔 이렇게 찾아와주시는 것만으로도 너무 고맙고, 즐겁네. 나는 눈을 감고 생각했다.
***
주말이였다. 오늘 아침은 태형이 밖에 집에 없었고, 그 덕에 조금 더 자려고 했었다. 자기야, 일어나요. 태형이의 목소리에 감긴 눈을 간신히 떠서 흐릿한 형체를 바라보았다. 웃고 있던 태형이였다. 좋네, 오늘은 성이름이랑 나 밖에 없고. 일어나서 우리 소풍갈까? 태형이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가까운 공원에 와서, 태형이와 함께 만들었던 샌드위치를 입에 물었다. 돗자리 위에서 태형이의 무릎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데, 태형이가 갑자기 고개를 내려 내 시야를 막았다. 아, 뭐야. 인상을 찡그리니 태형이가 내 미간을 펴버린다.
"너보다 하늘이 더 예쁘거든, 김태형?"
"이걸 어째, 나는 네가 훨씬 더 예뻐서 널 꼭 봐야겠는데?"
"…바보같아."
"바다의 보배?"
"장난쳐?"
"아, 왜."
태형이의 말 장난을 받아주면서 투닥거리고 있었는데, 어디서 왠 목소리가 들려왔고 태형이가 고개를 들었다.
"어, 쌤!"
여자아이 무리들이 우리에게 다가왔고, 나는 당황해서 태형이의 무릎에서 일어났다. 여자아이들은 태형이에게 다가오더니 웃으면서 인사했다. 헐, 쌤. 대박. 결혼했었어요? 그 말에 태형이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아깝다, 내가 쌤 채갈려고 했는데."
"뭐래, 김태형쌤 내꺼거든."
웃기지도 않는 태형이의 내꺼 주장이 오고가는데 내 눈치를 슬쩍 보던 태형이가 진지한 표정으로 여자 아이들에게 말했다.
"미안한데 난 평생 얘꺼라, 다음 생을 노려. 아, 다음 생도 안되겠다."
"너무해. 근데 쌤. 달달한 말도 할 줄 아네요? 워낙 철벽이라 나는 또 고잔 줄…"
"너 학교 아니라고 쌤한테 막말한다?"
"미안해요! 그럼 저흰 이만 갈게요. 행복한 부부 생활 되시길."
아이들이 손을 흔들며 멀리 사라졌다. 괜히 그 말에 얼굴이 붉어졌었다. 한 번 달아오른 얼굴이 쉽게 차가워지질 않는다. 그리고 내 볼을 감싸는 차가운 손에 놀라고 있을 때쯤, 태형이가 웃으면서 말했다.
"우리 이름이, 설렜어요?"
"아, 누가 설렜대."
"자꾸 그렇게 거짓말 치면 안되는데."
"뭘…"
"자꾸 그러면 오빠한테 혼난다."
"누가 오빠야, 됬거든."
태형이가 크게 웃어댔고, 괜히 창피해진 나는 손을 떨어트리려고 했더니 태형이는 내 이마에 길게 입을 맞췄다.
"걱정마, 나는 평생 네꺼 할 예정이라서. 그러니까 너도 평생 내 여보해야해. 성이름."
***
집에 돌아오니, 어느새 점심이였다. 정국이와 지민이가 어느새 집에 들어온건지 신발이 놓여져있었고, 지민이가 폐인차림으로 티비를 보고 있었다. 정국이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뻗었다고, 지민이가 내게 말을 전해주었다. 태형이에게 점심을 챙겨먹으라고 말하기 위해서 침실로 들어가니 그새 잠이 들어버린 태형이였다. 하긴, 잠만보가 그렇게나 일찍 일어났으니. 나는 그렇게 거실에 나와 지민이 옆에서 티비를 바라보고 있는데 지민이가 갑자기 고개를 돌리더니 눈을 접으며 웃었다.
"둥아, 우리 나가서 밥 먹을까?"
"어…? 그래, 뭐. 그럼 네가 사는 걸로."
"그래, 뭐. 기다려봐."
지민이는 그렇게 다시 방 안으로 들어갔다가 5분 뒤에 정상적인 사람처럼 하고 나왔다. 사복 진짜 귀엽네, 항상 정장만 입다가 오랜만에 사복을 보는 느낌이였다. 지민이가 차 키를 돌리면서 내 손을 잡고 엘리베이터 버튼을 눌렀다. 근처 식당에 가는 줄 알았더니, 무려 레스토랑까지 가시는 지민이 되시겠다. 예약제 레스토랑에 들어가서 뭘하자는 건지, 지민이는 레스토랑에 들어서더니 이름을 말하곤 바로 안내를 받았다. 헐, 뭐야. 미리 예약해뒀던 거야? 조금 감동먹은 마음에 지민이를 바라보니 굉장히 뿌듯하게 나를 바라보길래, 그냥 시선을 거뒀다.
"둥아, 너는 무슨 여자애가 그렇게 스테이크도 잘 써냐?"
"…왜, 못 썰어야해? 으앗! 못 썰겠어!"
"하여간, 누구 닮아서 저렇게…"
"너 닮아서 그래, 좋아하면 닮는다잖니."
웃으면서 말했다. 나는 잘 썰려진 스테이크 한 점을 썰어 입에 집어넣었다. 맛있다, 내 모습에 좀 웃긴 것이였는지 지민이는 소리 내어 웃었다. 그렇게 밥을 다 먹고 나와서 소화시킨다는 이유로 차를 타기 전에 가로수 길을 걸으며 친구이야기를 할 때도, 아이스크림이 맛 없다고 말할 때도 계속해서 웃는 지민이에 답답해진 나는 지민이를 노려보았다.
"왜 계속 웃어."
또 웃었다. 이젠 짜증이 나서 정말 열폭 좀 해야겠다, 싶어서는 지민이를 노려보고 걸음을 멈추었다. 아, 왜. 너 내 얘기 듣고 있어? 그 말에 지민이는 당연하지, 라며 입꼬리를 올려 미소를 띄었다. 아, 쟤 오늘 왜 저래.
"컨셉이야, 멍청이컨셉?"
"아니."
"그럼 왜…"
"좋아하는 사람이 계속 그렇게 귀엽게 이야기하는데 웃음 안 나오는 사람이 이상한 거 아닌가."
지민이는 그 말을 끝으로 나를 앞질러서 차 앞으로 갔고, 그 말에 멍해진 나는 멀리 가있던 지민이를 바라보았다. 지민이는 차 문을 열으며 나에게, 빨리 와, 우리 둥이! 라며 크게 말했고 나는 괜히 아이스크림을 크게 베어물며 지민이에게로 다가갔다.
***
집에 돌아오니 조금 몸이 피곤했는데, 정국이가 언제 일어난건지 지민이 옆에서 들어오던 내 손목을 낚아채더니 곧 바로 집에서 나왔다. 아, 나 지금 좀 많이 피곤한데. 말을 잇지도 못하고 정국이를 따라 나왔다. 정국이는 주차장으로 내려와 아무 말 없이 나를 조수석에 앉히고 운전을 했다. 아, 왜. 뭔데. 나 뭐 잘 못 했어? 이렇게 물어도 반응이 없었던 정국이에 내가 뭘 잘 못 한건가 싶어서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차가 멈췄다. 정국이가 먼저 나가길래, 따라 나갈려고 했는데 문이 알아서 열리고 정국이가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뭔진 몰라도 미안해."
"뭐라는 거야, 가자."
그리고 내 눈 앞에 보이던 건 형형색색의 다양한 불빛이 반짝이던 놀이공원이였다. 뭐야…왠 놀이공원? 표를 끊고 나오는 정국이에게 물으니 정국이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어제 꿈에서.
"너랑 같이 놀이공원 가는 꿈 꿨거든. 같이 가고 싶어서."
"이거 납치인 거 알지?"
"잘됬네, 안 그래도 성이름 납치해서 나랑만 살게 하고 싶었는데."
정국이는 웃으면서 내 손목을 이끌고 빨리 들어가자며 재촉했다. 그리고 놀이공원에 들어온 나는 지친 몸을 이끌고 체력이 풀인 정국이를 뒤따르며 바이킹에, 롤러코스터에, 회전 목마에, 한 10개 쯤 탔다싶을 때 정국이는 마지막으로 내게 관람차를 타자며 관람차 안으로 들어갔다. 시간이 어느새 9시였다. 정국이가 사온 츄러스를 입에 물고 야경에 감탄하면서 바라보는데 정국이가 말했다.
"좋아?"
"좋아, 이렇게 늦게 놀이공원 오는 것도 좋네."
"그럼 됬네, 성이름. 나봐봐."
정국이의 말에 고개를 돌리니 어느새 내 코 앞까지 와있던 정국이였다. 여보. 정국이와 어울리지 않는 애칭에 나는 깜짝 놀라서 당황스러워했더니 정국이는 진짜 귀엽다, 라며 내 볼을 꼬집었다. 아, 아파! 라고 말하니 정국이는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눈을 못 마주치면서 고개를 돌리니 정국이는 다시 내 고개를 돌리면서 말했다.
"너 왜이렇게 예쁘냐, 형들 눈 다 막아버리고 싶게."
"……"
"너 만나서 결혼한 건 정말 내 생애 최고의 선택이였던 거 같아요. 누나."
"갑자기 왠 존댓…"
"한 번만 말할테니까 잘 들어요."
"어…?"
"사랑해요, 이름이누나."
***
그렇게 정국이와 집에 들어오니 거실에 불이 환하게 켜져있었고, 부시시한 얼굴의 태형이와 에이드를 마시고 있던 지민이가 나를 반겼다. 그 둘은 무작정 정국이에게 달려들더니 소리쳤다.
"야, 너 지금 몇 시야!!"
"너 5시에 나갔지, 지금 11시야! 6시간 동안이나 이름이를 독점하다니…"
"왜요, 부러우면 형들도 그랬어야죠."
저 세 남자의 대화가 오고가는 걸 보면서 웃음이 나왔다. 항상 이렇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평생동안, 영원히.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하고 마침표를 찍을 만한 날까지.
♡
읽느라고 수고했어요♥작가 사심으로 이건 2편까지 쓰고 싶은 심정.. ★☆
우리 예쁜 독자님들 늦었지만 올해도 새해 복 가득 받으시길 바랄게요!
♡ 암호닉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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