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GM ; Love me like you do, Ellie Goulding
엄마 심부름 때문에 동네 슈퍼에 가서 야채들을 샀다. 총 8800원, 엄마가 주신 돈은 만원. 남은 돈으로 아이스크림을 샀다.
추운 겨울인데도 아이스크림이 그렇게나 먹고 싶었다.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고, 검정색 비닐 봉지를 손에 들고는 어슬렁어슬렁, 슬리퍼를 끌고 아파트 건물로 들어서는 길이였다.
왠 동네 양아치들의 모임인지 골목에서 담배 연기를 뿜어대고 있었다. 몇 살쯤이나 되었을까, 하면서 골목을 바라보다가,
지져스. 제일 무섭게 생긴 여자랑 눈이 마주쳐버렸다. 여자는 입에서 담배를 떼더니 입꼬리를 올렸다.
내 눈을 정확히 보면서, '너, 거기, 딱, 멈춰라.' 라고 입 모양을 벙끗거렸다.
여자는 저 멀리서 내게 다가왔고, 나는 그대로 굳어버렸다. 짧은 치마에 눈을 어디둬야할지 몰라 동공을 굴리고 있었다.
"너, 나 되게 같잖게 봤잖아. 방금."
여자는 내게 담배 연기를 뿜었다. 자동적으로 기침이 나왔다. 뒤의 양아치들은 그러려니 하면서 자기들끼리 이야기를 하거나
핸드폰을 두드리는 듯 했다. 눈이 따가워서 눈물이 나올 것 같았는데, 익숙한 음성이 귓가에 울렸다.
"그만하지."
"태형아, 얘가 우리 지금 엄청 병신같이 바라보고 있었다니까!"
"그렇다고 애 눈에 담배 연기를 뿜어? 병신아, 얘 실명되면 책임질 거야? 상식도 없냐?"
"ㄱ,그래도…!"
"닥치고 골목에 들어가. 왜 애꿏은 애한테 지랄이야."
여자는 김태형에게 뭐라뭐라하는 듯 했는데, 태형이는 그걸 모두 욕으로 되받아쳤다.
따뜻한 손이 눈을 비비고 있던 내 손을 떼더니, 손으로 눈 비비면 안돼. 꽤나 다정한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눈 떠져? 존나 미안해…"
"으, 좀 따갑긴 한데. 괜찮아."
김태형, 나랑 여덟 살 때부터 만나온 10년지기 친구였다. 그런데 중학생 때 잠시 다른 길로 빠지더니
내가 주체 할 수 없을 정도로 자유 분방해진 김태형 되시겠다. 고등학생 되면 좀 되돌아올까,했더니 아니였다.
"너 근데 담배도 펴?"
"아니, 안 펴."
"구라치지마."
"진짜 안 펴. 이제 눈 떠져?"
"응, 너 담배 피지마."
"안 핀 다니까, 걱정은."
흐릿한 시야에 들어온 건 나를 웃으면서 보고 있는 김태형이였다. 김태형은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더니,
잘 가. 라고 말하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강아지 같은 모습에 웃음이 나왔다.
저럴 때 보면 평범한 고딩 남자애 같은데 말이야. 어찌됬건 어서 집에 가서 눈을 씻어야겠다고 생각했다.
***
새벽 2시쯤이였을까, 단편 소설을 열심히 파고 있던 나에게 문자가 왔다. [내일 주말인데 뭐해?] 발신자는 김태형이였다.
[아무 약속도 없는데. 아, 공부랑 약속하긴했음.] 정말이였다. 시험 끝난지 얼마나 지났다고, 또 책상에 앉아있어야했다.
[그럼 나랑 놀까?] 김태형은 곧 바로 답이 왔고, 나의 대답은 긍정이였다. 그리고 온 김태형의 문자는 나를 미소짓게 만들었다.
[오빠 꿈 꿔라, 돼지.]
***
분수대 앞 벤치에서 핸드폰을 보고 있는 김태형이 눈에 들어왔다. 쟨 뭘 먹고 잘 생긴 건가, 싶었다. 김태형을 놀래키기 위해 벤치 뒤에서 왕, 하니까
소름끼치는 표정을 지으며 넘어졌다. 그 모습이 꽤나 웃겨서 몇 초를 웃고 있으니 김태형은, 그만 웃어라. 라며 나를 째려보았다.
김태형은 자연스럽게 내 어깨에 팔을 얹어 어깨동무를 하더니 어디갈까요, 돼지씨~.라고 내게 말했다.
"참치 오빠 보러가자."
"참치…?"
"응, 얼마 전에 영화 새로 개봉했는데 이게 그렇게 재밌대."
"아, 설마 강동원 말하는 거?"
"어, 내 친구들은 무서운 거 다 못 본단 말이야."
"어휴, 너는 잘 보는 것처럼 말한다?"
김태형이 자주 하는 버릇이 있다면 내게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것이였다. 기분 좋은 쓰다듬에, 나는 김태형과 함께 영화관으로 들어섰다.
마침 10분 뒤에 영화가 상영한다길래, 빠르게 팝콘을 사고 표를 끊었다. 3관이였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자리에 앉자 마자 영화가 시작되었다. 김태형은 꽤나 긴장한 모습이였다. 이게 뭐라고.
코웃음을 치며 스크린으로 시선을 고정했다.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라던 악령 연기씬이 나오자, 김태형은 으악! 거리며 내게 붙었다.
정말 웃겨서 스크린에서 시선을 떼고 김태형을 보면서 비웃어주었다. 김태형은 그런 나를 노려보더니 고개를 돌렸다.
***
영화가 끝나고, 정말 혼이 나간 김태형은 멍하니 천장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웃겨, 정말. 내가 손바닥을 휘적거려주자 김태형의 눈에 초점이 맞춰졌다.
김태형은 가슴을 쓸어내리더니, 정말 무서웠다고 했다. 그래, 너 좀 무서워보이더라.
"이제 내가 하고 싶은 거 해도 되지?"
김태형은 내 손을 잡아들더니 기분 좋게 어딘가로 들어갔고, 그 곳은 오락실이였다.
자신 있게 총을 쥐더니 내게도 쥐어주는 김태형이였다. 그리고 게임은 순식간에 시작되었다.
의외로 재밌었다. 나는 오락실 같은 곳은 어두침침한 것 같아서 못 왔는데, 이렇게 보니까 재밌는 거 같기도 했다.
여러가지 게임을 한 후에 오락실을 나오는 길이였다. 무서운 언니 무리들이 디스코 팡팡을 타려는 것인지 짧은 치마에 담요를 두르고 있었다.
그런데, 의외로 언니들은 김태형을 보면서 아는 척을 하였다.
"오, 태형아! 왠일이야?"
김태형을 보며 팔짱을 끼더니 나를 밀어내버린다. 그렇게 나와 김태형의 어깨동무는 풀려버렸다.
김태형의 인상이 조금 찌푸려지는 것을 발견했다. 하긴 저렇게 향수 냄새가 짙은데, 인상이 안 찌푸려지겠어.
"아, 씨발."
"어, 어?"
김태형은 욕을 내뱉고 팔짱을 풀더니 여자를 노려보았다. 뭐하냐, 너. 여자는 좀 당황한 것인지 어? 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리고 갑자기 불려지는 내 이름에 나는 먼저 오락실을 큰 보폭으로 나가는 김태형을 따라 나왔다.
"야, 너 그래도 갑자기 욕하는 건 너무했다."
"뭐, 그럼 싫은 걸 싫다고 하지 좋다고 하리?"
김태형은 다시 웃으면서 내 어깨에 팔을 올렸다. 하여튼, 못 말려요. 고개를 저으며 가고 있었는데, 앞에 예쁜 카페가 보였고 나는 김태형의 손을 잡아채며 들어가자고 그랬다.
나는 카푸치노를 시키고, 김태형은 아메리카노를 시켰다. 뭔가 간지 나보인다며 시키는 모습이 웃겼다.
진동벨을 받아들고 커피를 기다리고 있는데, 김태형이 내게 물어왔다.
"너는 욕하는 남자 싫어?"
"음, 별로 좋진 않지."
"공부 못 하는 남자는?"
"무식해보여서, 별로이긴해."
"그럼 나 싫어?"
"너는 나한테 욕 안 하잖아, 그리고…공부는 안 하는 거고."
"그럼 나 좋아?"
"누가 좋다냐."
이상한 걸 연달아 물어오는 김태형에 이상하다고 느꼈다. 얘가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나? 진동벨이 울렸고, 김태형은 자기가 가지러 간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말 좋아하는 사람이 생긴건가? 왠지 씁쓸한 느낌도 들고, 김태형이 다 컸구나. 뭐, 그런 느낌도 함께 들었다.
왜 씁쓸한 느낌이 드는 건 의문이긴 하지만.
***
김태형은 나를 집까지 데려다주었고, 나는 고맙다며 다 컸다고 김태형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러자 김태형은 내 손을 자신의 머리에서 떼더니 그대로 멈춰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갑자기 올라오는 화끈함에 나는 고개를 돌렸고, 이내 김태형은 피식,하고 웃더니 간다며 손을 흔들었다.
그렇게 김태형이 놀이터를 지나, 내 시야에서 사라지자 가만히 김태형의 동선만을 보며 멍을 때리던 내 생각이 깨졌다.
아…나 오늘 왜 이러지.
***
왠일인지 김태형이 제 시간에 맞춰서 나왔다며, 나와 함께 등교를 하고 싶다고 하길래 같이 가는 친구가 없던 나는 알겠다며 카톡 답을 해주었다.
그리고 7시 20분, 김태형이 잠에 덜 깬 얼굴로 동그란 안경을 끼고 내 앞에 나타났다.
오늘 컨셉 모범생인가, 싶어서 비웃어주니 웃지말라고 협박하는 김태형이였다.
"오늘부터 공부할거야."
"미치겠다, 네가?"
"응, 정신 차렸어."
김태형은 뿌듯한 표정을 짓더니 나와 함께 버스에 올라탔다. 그리고 교문을 제시간에 통과하고, 김태형이 반에 들어서자 남자아이들은 오오, 거리며 김태형을 반겨주었다.
그래, 김태형이 이 시간에 온다는 건 해가 서쪽에서 뜨는 일이니까. 그렇게 김태형을 제법 뿌듯한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다가 가방 안에서 교과서를 꺼내고 있는데,
우리반에서, 어쩌면 학교에서 제일 예쁘다던 아이가 내게로 와서 말을 걸었다. 이름아.
갑작스레 불려지는 내 이름에 나는 고개를 들었는데, 여자 아이는 나를 보며 반달 웃음을 짓더니 말을 이었다.
"너 김태형이랑 친하지. 그것도 엄청."
나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둘이 사귀는 건 아니지? ㅇ,어. 그렇지. 나의 대답은 찌질하고 느려터졌다.
여자아이는 자신이 김태형을 좋아하는데, 내가 좀 이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여자 아이는 꽤나 무섭게 나를 노려보면서 말했기에 나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
하루 종일 김태형을 피해다녔다. 여자 아이가 내게 말하길, 김태형을 피해달라고 그랬다.
나랑 김태형은 정말 아무 사이 아닌데…오늘 하루 종일 밥도 혼자 먹고, 이동 수업도 혼자 가고, 마치 왕따처럼 지냈다.
마지막으로 하교 시간, 나는 종례가 끝나자마자 특별실 청소를 가고 없는 빈 김태형의 자리를 바라보다가 락커에서 신발을 꺼냈다.
그리고 빠르게 계단을 타고 내려왔다. 내가 진짜…이게 뭐하는 짓이야. 중앙 현관에서 신발을 신고 있는데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등 뒤에서 들렸다.
"야, 성이름."
제발, 안돼. 김태형만은 아니길. 생각하면서 뒤를 돌았으나, 내 뒤에 있던 건 김태형이였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눈빛을 하면서 나를 위 아래로 스캔하고 있었고, 옆에서는 아까 그 여자아이가 김태형의 팔에 팔짱을 끼면서 웃고 있었다.
내랑 집 같이 안 갈꺼가. 김태형 특유의 억양이 묻어나왔다.
나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는데 옆의 여자아이가 태형이에게 좀 더 가까이 붙으면서 눈웃음을 지었다.
"에이, 태형아. 그러지말고, 나랑 가자. 이름이가 바쁜 일이 있겠지."
김태형의 팔을 붙들며 계단 쪽으로 이끄는 여자 아이였다. 나는 고개를 숙이며 현관을 나섰다.
애꿏은 땅을 쾅쾅, 밟고 안 좋아진 기분에 버스를 타고 곧장 집으로 들어왔다.
집에 와서 아무 생각 없이 천장만을 바라보고 있다가 그대로 잠이 들었다.
그러다가 깼는데, 엄마가 경비실에 택배 좀 가져오라고 그러시길래 슬리퍼를 신고 집을 나섰다.
으아, 하루 종일 우울했다.
***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리자 나를 기다린 건지 나를 발견하자마자 빠르게 내게 걸어오는 김태형이였다.
난 순간적으로 당황해서 뒷 걸음질 쳤는데, 김태형은 내 쪽으로 계속해서 걸어왔다.
그러다가 스텝이 꼬여서 쿵,하고 넘어졌는데 그걸 본 김태형은 입꼬리를 올리며 웃더니
내게 손을 내밀었고 그걸 잡고 나는 일어섰다.
"야, 나 고백 받았어."
김태형은 거침없이 말했다.
그 여자애가 진도가 엄청 빠르다고 생각이 들었다.
무슨 짝사랑 7일하고 친하게 지내려고 한 지 하루 만에 고백을 하냐.
당연히 받았겠지, 김태형은 예쁜 여자 애들이라면 사족을 못 쓰니까. 조금 시무룩해질려고 했다.
태태가 나말고 다른 여자친구가 생기다니, 그것도 이성적으로.
시무룩한 마음을 숨기고 아, 그래? 축하해. 라며 딱딱한 대답을 해주었다.
"그런데, 이 고백. 받을까, 말까."
"그걸 왜 나한테 물어."
"네가 사귀라고 하면 사귀고, 아니면 걷어찰게."
"…"
"말해봐, 성이름. 나 사귈까, 걷어찰까."
빠르게 답을 하지 못 했다. 나는 그저 내 슬리퍼 끄트머리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자, 김태형은 내 볼을 잡고 고개를 들어올리더니 말을 했다.
…고백 안 받았어, 왜 그런지 안 궁금해? 의외의 대답이였다. 말로 표현하진 않고, 눈을 초롱초롱하게 떠서 바라보니 김태형은 웃으며 대답했다.
"우리가 언제 만났더라, 8살 때 만났었지. 그리고, 16살 때부터 널 좋아했어."
"어…어?!"
너무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김태형의 말에 나는 눈을 크게 뜰 수 밖에 없었다.
너, 너 방금…
"바보 같은 성이름이는 내가 그렇게 티를 냈는데도 모르더라."
"…헐."
"난 너 때문에 하루 종일 기분이 좋다가도 슬퍼져.
그런데 넌 내가 어때, 좋아? 싫어?"
"어…ㄱ,그게…"
"빨리, 차여도 안 창피하게. 빨리 말해봐."
"그…존,나 좋아해. 김태형."
김태형은 나를 보며 씨익, 웃더니 나를 끌어안았다. 욕하는 남자 싫대놓고는 네가 하고 있네.
훅, 다가온 김태형에 나는 얼굴이 달아올라서 고개를 들 수 없었다.
"좋아해, 성이름. 미친 것처럼. 사겨줘. 나랑."
나는 대답대신에 김태형의 품 속으로 더 들어가는 수 밖엔 없었다.
김태형은 내 머리를 기분 좋게 부드럽게 쓰다듬어주었다.
고마워, 정말.
그리고 나는, 양아치 태형이와, 아니 이제 양아치 짓 안하기로 약속했으니.
그렇게 나는 그 날부터, 내 오래된 친구 태형이와 사귀게 되었다.
*
* *
"그런데 말이야, 성이름."
어느새 여름이 코 앞으로 다가왔는지, 부채질을 하며 나에게 묻는 태형이였다.
나를 바라보는 눈빛이 아기같아서 뭘 묻고 싶어하는 건지 몹시 궁금해졌다.
"너 그 때, 내가 고백했던 날에 왜 나 피해다녔었어?"
단순한 질문이였다. 그러고보니…내가 그 때는 조금, 아니 어쩌면 많이 소심하고 찌질했지.
나는 그 생각이 나서 입에 미소를 짓다가, 태형이의 말에 대답해주었다.
"너를 좋아하는 여자들이 많아서, 이게 다 네 얼굴 탓이야. 반성해."
태형이는 나를 바라보다가 웃긴 것인지 피식, 거렸다. 나는 그에 뭐. 라는 표정을 지어주며 웃어댔다.
태형이는 그런 내 모습이 웃긴 건지 웃다가 갑자기 멈춰서더니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너도 예뻐."
뜬금없는 외모칭찬에 당황하고 있을 때 쯤, 태형이는 갑작스럽게 내 볼에 가볍게 뽀뽀를 했다.
당황한 내 얼굴은 빨개지기 시작했고, 그런 나를 놀리는 것인지 태형이는 비아냥거렸다.
아, 진짜 싫어. 김태형.
"걱정마, 이 세상에서 난 너 뿐이거든."
저런 오글 거리는 멘트를 하고도 멀쩡한 게 너무 신기했다.
내 팔을 끌어당기더니 사랑해,라고 내 귀에 작게 속삭였다.
바보 같은, 김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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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형아. 보고 싶다. (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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