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본 남자랑 키스하면 생기는 일
예상보다 민윤기의 화력은 엄청났다. 방송 전부터 천재작곡가가 드디어 방송에 얼굴을 비춘다는 기사들은 끊임없이 쏟아졌고, 민윤기와 작업을 했던 아이돌들이 sns에 본방사수한다며 글을 올렸다. 걱정이 앞섰던 것은 사실이었다. 저런 기대에 못미치는 프로그램이 된다면.. 한숨부터 나왔다. 다음날 아침에, 무의식적으로 켠 초록창의 실시간 검색어에는, 민윤기와 우리 프로그램의 제목이 떡하니 1,2위를 다투고 있었다.....???뭐지?? 마지막 점검할 때까지 이상한거 없었는데, 설마...사고났나?
다급한 손길로 눌렀더니, 잠시 멈췄던 화면 끝에, 우리 프로그램이 떴다. 기사, 기사가..
[천재 작곡가 민윤기, 첫 방송임에도 굉장한 호평]
[....프로그램, 최대 시청률 기록]
[민윤기 효과? ...프로그램 시청률 대박!]
헐, 민윤기 효과를 제대로 본건가...
독하기로 소문난 댓글들 역시 프로그램에 대한 긍정적인 반응들이었다. 와, 대박,
방송은 계속해서 민윤기의 덕후들을 생산해냈다. 오죽하면, 민빠답이라는 용어가 나왔을 정도니까. 솔직히 잘생기긴 했다. 하얀 피부와, 뭔가 묘하게 색기가 있는 눈빛이며, 느긋하지만 뭔가 크게 와닿는 한마디한마디가, 아니다. 그냥 민윤기 자체가 설렘포인트인 것 같기도 하고...
방송촬영이 있는 날이면, 민윤기는 항상 심부름을 하는 내 옆에 서서 오늘 프로그램에 대해 물어봤다. 그런건 메인작가님이나 피디님이 더 잘 아신다고요, 여러번 말했지만 민윤기는 그때마다, 자신은 아직 그 정도로 친하지 않으니 니가 알려달라는 말을 되풀이했다. 민윤기가 그렇게 붙어올 때 마다, 나는 설렘사로 죽을 것 같아서, 오늘도 그런 민윤기를 피해 도망다니고 있었다. 문제는, 내가 선을 밟은 그 순간부터 시작이었던 것 같다.
민윤기를 피해다니던 나는 음향선을 실수로 밟았고, 빨리 발을 떼려던 내 움직임은 결국 무게중심을 잃게 만들었다. 생각할 틈도 없이 나는 눈을 감았고, 누군가 나를 세게 끌어당겨 다행이 넘어지지는 않았다. 방금 민윤기가 내 팔 잡아준 것 같았는데... 뒤에서 날 끌어당긴 누군가 때문에 나는 그 사람에게 안겼다.
"누나, 괜찮아요? 조심 좀 해요."
"아, 미안해.."
"내가 아니라 누나 몸한테 미안해 해요. 진짜, 맨날 넘어.. 갈께요"
전정국은 나를 떼어내고는 자신 옆의 민윤기를 바라보다 등을 돌렸다.. 민윤기는 아니꼽다는 표정으로 전정국을 봤고, 나는 그런 민윤기의 표정에 가만히 있었다.. 전정국이 다시 몸을 돌려, 나에게 조심하라는 말을 한번 더 한 뒤에야 갔다. 전정국이 사라지자 민윤기는 타겟을 바꿔서 나를 쳐다봤다. 아, 저렇게 기분 나쁜 표정도 잘생길 수가 있구나...
"좋냐?"
"예?"
민윤기는 뭔가에 단단히 화난 듯이 나를 등지고 돌아갔다. 민윤기는 그 이후 하루종일 나를 귀찮게 하지 않았다. 뭔가 있다가 없으니까 괜히 서운한 마음이 들었지만, 바쁜 촬영장에서 나는 그런 것을 느낄 여유조차 없었다.
촬영이 시작되자, 스텝들은 일제히 패널들을 바라봤다. 나 역시 바닥에 앉아, 민윤기를 보고 있었다. 민윤기가 잠시 나와 눈이 마주치더니, 고개를 돌렸다. 삐진건가, 왼쪽 눈이 따가웠다. 계속 눈을 깜빡이자니 의도치않게 민윤기에게 윙크하는 꼴이 되어버렸다. 민윤기는 다시 고개를 돌리다, 나를 보고 멈췄다가, 다시 고개를 돌렸다.
"누나, 눈에 뭐 들어갔어요?"
전정국이 뒤에서 나를 잡았다. 귓가에 속삭이는 목소리에 왼쪽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였다.
"봐요,"
전정국이 내 눈을 자신의 입 앞으로 가져다 대고, 살짝 바람을 불었다. 눈을 몇 번 더 깜빡이자, 먼지가 빠진 듯, 괜찮아졌다. 내가 고맙다고 말하자, 전정국이 뭘 그런걸 가지고 그러냐며 웃었다. 전정국에서 다시 민윤기에게 시선을 옮겼다. 나를 빤히 바라보는 민윤기가 느껴졌다. 몇 초간 눈을 마주쳤을까, 민윤기는 다시 고개를 돌려서 촬영에 집중했다. 뭐지,
촬영이 끝나자 민윤기는 휴대폰을 바라보며 빠르게 사라졌다. 급한 약속이라도 생긴건가 싶을 정도로, 나는 집으로 가기 위해 버스에 올라탔다. 멍하니 버스가 정류장을 지나치는 것을 보다가, 휴대폰을 켰다. 정호석한테 문자가 와있었다.
'야 우리 술마시는데 와'
'어딘데'
'우리 아파트 맞은 편에 술집 새로 생긴거'
'감'
'ㅇ'
술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김남준은 없었다. 정호석이 있는 테이블로 가자, 옆에는 익숙한 뒤통수가 있었다. 민윤기. 내가 정호석 옆의 의자를 끌어 앉자, 시선이 나에게로 꽂혔다. 정호석은 생각보다 멀쩡해보였고, 민윤기는 눈이 약간 풀려있었다. 테이블은 이미 맥주병들이 쌓여있었다.
"얼마나 마신거야"
"아, 나도 방금왔고 저거 다 김남준이랑 윤기형이 마신거야"
가만히 술잔을 툭툭 건드리는 민윤기를 바라봤다. 진짜, 얼마나 마신거야. 민윤기가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봤다. 살짝 풀린 눈과, 붉은 기가 도는 얼굴이 술을 얼마나 마신건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옆에 앉아있던 정호석이, 갑자기 일어났다. 어디가냐.
"김남준 데려와야지, 이 새끼 화장실 간지 삼십분이 넘었어"
뭐가 그리 신나는지 화장실로 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다, 내 앞의 민윤기로 고개를 돌렸다. 야,
"네?"
민윤기는 깊은 한숨을 쉬었다. 머리를 쓸어넘긴 민윤기는 술잔에 남아있던 술을 털어 넣었다. 마른 세수를 한 민윤기는 입을 열었다.
"넌 대체 얼마나 나를 힘들게 할꺼냐. 내가 얼마나 더 기다려야해."
"..."
"칠년동안, 너를 기다렸어."
잠시 무슨 생각을 하 듯, 말이 없던 민윤기는 다시 말을 이었다.
"김남준을 받아주면 한번이라도 찾아올까 했던 네가 한번을 안와도 언젠간 오겠지 하면서 일년을 기다렸어. 군대에서 이년, 작곡가가 되서 사년. 난, 김남준 휴대폰 잠금화면인 너의 뒷모습도, 방송국에서 일하던 너도, 보자마자 알았는데, 너는.."
"김남준이랑 만나는 날에, 네가 내 옆에 앉아 있어서 좋았고, 술에 취한 네가 나한테 스킨십하는 것도 좋았어. 내가 방송 왜하는지는 알고있냐, 너 한번 더 보려고. 나랑 더 자주 보면, 네가 옛날 생각이 나서 나를 기억해주지 않을까하고. 별걸 다했는데.."
"전정국인가 뭔가 하는 놈은, "
민윤기의 말이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민윤기는 언제부터인지 모르겠지만, 울고 있었던 것 같다. 그건, 나역시 마찬가지였다. 병신같이 민윤기라는걸 몰랐다. 나는.
칠년 전 그 날, 나는 김남준이 그렇게 갈망하던 크루의 공연을 보러 갔었다. 공연을 다 보고 기다렸다가, 크루의 수장분께 말씀드릴 생각이었다. 김남준이라는 애가 오면, 크루에 절대 넣지 말아달라고. 남준이의 미래가 걱정됐었다. 그 당시의 나는, 김남준은 공부도 잘해서 좋은 대학에 갈 수 있고, 더 나은 직업을 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있었다. 김남준이 이렇게 하루 벌어, 하루 사는 이런 직업을 하지 않았으면 했고, 크루에 들어가는 것을 실패하면 다시 공부로 돌아오지 않을까라고 생각했었다.
이상한 일이 많이 벌어진 날이 있었다. 생각보다 일찍 학교에 도착할 것 같아서, 간단히 먹을 아침을 사러 간 패스트푸드점에 있던 알바생이, 학교가 일찍 끝나서 먹으러간 카페에도, 친구들과 헤어진 뒤 만난 김남준과 김태형과 간 고깃집에도 있었다는 것이다. 김남준은 아쉽게도 오늘은 크루형들 공연을 못볼 것 같다며 우울해있었다. 어디서 하는데? 오늘이 기회인 것 같던 나는 대신 보러 가겠다며 김남준과 약속을 한 뒤, 고깃집에서 나왔다.
공연을 시작하기 전, 그 알바생을 또 봤다. 음향준비를 열심히 하던 알바생은, 아마도 막내쯤 되지 않을까 싶었다. 공연을 보다가 알았다. 처음 시작할 때, 뻔뻔하게 팬들 보다 앞자리에서, 팔짱을 끼고, 재수없다는 듯이 공연을 보던 나는 알바생이 랩을 시작하자, 그대로 굳었다. 멋있다. 그냥 그게 내가 느낀 것이었다. 남자는 굉장히 신나고 행복해보였다. 알바를 하던 남자에게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뭔가, 그런게 있었다.
생각해보면, 김남준은 랩을 할 때 꽤나 행복해 보였던 것 같다. 공연이 끝났을 때, 내 마음은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김남준은 하고 싶은 걸 해야하는구나. 내가 뭔데 김남준의 인생을 막으려고 했을까. 뒷정리를 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다가, 먼저 출발하는 아까 그 알바생을 붙잡았다.
"죄송한데, 시간있으시면 잠깐 얘기 좀..."
남자가 떠난 이후로, 나는 아무생각이 없었다. 이름도, 나이도 아는 것이 없었다. 공연을 본 그 순간부터, 지금까지 나는 아무생각이 없었다. 정말로,
공연을 봤다는 것을 인증하려고 찍어둔 몇 장의 사진을 김남준에게 보여줬다. 김남준은 이런걸 다 준비했냐며 웃었다. 김남준은 크루에 들어갔고, 나는 괜히 뿌듯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자신은 아직 아무것도 아니지만, 공연을 보러 오라던 김남준에, 그 남자를 다시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설레였었다. 그날 야자를 몰래 빼려던 나는, 학년부장 선생님께 걸렸고, 일년 내내 김남준의 무대를 볼 수 없었다.
그렇게 그 알바생은, 기억 속에 묻어 뒀었다. 언젠가는 만날 일이 있지 않을까, 운명처럼.
대학생이 된 내게 김남준은 친한친구를 소개시켜주겠다며 신나했고, 그게 정호석이었다.
대학생이 되자, 남자친구는 자연스럽게 생겼다. 물론 오래간 사람은 없었다. 정호석과 김남준의 존재를 마음에 안들어하는 사람도 있었고, 김남준의 거지같은 타이밍 때문에 헤어진 남자친구도 많이 있었다. 그때마다, 마음 아파한 적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난, 운명처럼 만난 너를 이제야 기억했다.
암호닉 |
#원슙 낑깡 비비빅 정성 애플릭 복동 자몽타르트 쪼쪼 비키트박뿡 여하 현지짱짱 무리 젱둥젱둥 거창아들 정국아블라썸 쀼르륵 버블버블 희망 감귤쓰 ㅈㅈㄱ 펄맛 설탕 쿠쿠 민윤기 두둠칫 태태요정 인연 강아지 요2 동도로딩딩 칸쵸송이 경쨩 방토토 연화 아이쿠야 스무살의봄 0418 늉기 후후 맴매때찌 자몽에이드 또토로 어만군이
암호닉은 항상 최근 글에서 [암호닉]으로 신청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가 직접 타자치는거라서 누락되거나, 오타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꼭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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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적인 이야기 + 투표이야기 |
3화를 보면 윤기가 여주에게 묻지 않고 캬라멜마끼야또와 크린티를 시키게 되죠, 저번화에서는 윤기와 만난 여주가 윤기에게 묻지않고 그린티와 캬라멜마끼야또를 시키는데요. 그래서 윤기는 여주가 자기를 기억해주기를 바라면서 자연스럽게 같은 주문을 한 것 입니다!
쓰고 보니까 제 말이 여러분을 더 어지럽게 만든 것 같네요.. 굳이 이해하지 않으셔도 되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글쓰는 것에 대해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밑에 투표와 관련해서) 제가 이 글을 쓸때는 일부로 ㅋㅋㅋ ㅇㅇ 이런 류의 말을 안쓰려고 노력하고 있거든요 음, 현실에서는 발음되지 않는 말들이잖아요? 그래서 글이 되게 웃긴 부분인데 안 웃기게 느껴지는 것도 있고 그렇더라고요, 그래서 혹시 다른 문체? 같은걸 원하시지 않으실까 궁금해서요
1번 같은 경우는 "야, 이 김남준 미친놈아" 내가 말하자, 정호석과 김남준이 일제히 나를 바라봤다. 나는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김남준에게 달려갔다. 김남준은 의자에서 일어나 도망쳤고, 나 역시 그런 김남준을 좇았다.
2번 같은 경우는 "야, 이 김남준 미친놈아" 내가 소리지르면서 문을 여니까 김남준이랑 정호석이 나를 보는거야. 진짜 그 때는 너무 화가나서 김남준한테 달려들었거든? 근데 김남준 이게 또 도망가더라고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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