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seven days(7일 동안) # Thursday15
쑨양이 흘리는 눈물을 삼키면서 직감했다.
어쩌면 그 또한 내가 죽을 날이 다가왔음을 본능적으로 깨닫고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서로의 눈물을 그것이 생명수라도 되는 것처럼 혀로 핥아 삼켰다.
그 눈물은 너무도 뜨거워서 열상을 입는 것 같았다.
마치 이별을 준비하는 것 같아서.
영원한 이별을 위해 심장이 흘리는 눈물 같아서.
몹시 슬펐다.
함께 절정을 맞이하고 기절하다시피 잠이 들었다.
잠결에 쑨양의 흐느낌을 들은 것 같아서 마음이 아팠다.
울지말아요. 쑨양.
당신이 울면 내가 아프니까. 내가 눈물을 흘리면 당신이 아프듯 나또한 마찬가지니까 울지말아요.
난 쑨양이 웃는게 좋아요. 그 다정한 미소가 좋아.
그러니까 울지 말아요.
마음속으로만 중얼거리는 외침은 쑨양에게 닿지 못했다.
그에게 말도 꺼내지 못하고 잠에 빠져들었다.
-
「형, 형은 나 좋아?」
「그럼! 햇님이가 제일 좋아! 햇님이는 형 좋아해?」
「응! 세상에서 가장 좋아! 엄청 좋아!」
「나도 그래. 하지만 부모님 앞에서는 꺼내지마. 슬퍼하시니까.」
작은 꼬마 둘이서 해맑게 웃으며 대화를 나누는 모습이 퍽 귀여웠다.
예뻐서 나도 모르게 쓰다듬고 싶어질 만큼 사랑스러웠다.
어디서 본 걸까? 나도 모르는 기억이었다.
전체적으로 흐릿했고 뚜렷하지가 않아서 알아볼 수가 없었다.
그저 그 분위기가 따뜻하고 사랑스럽다는 것만 알 수 있었다.
가슴 언저리에서 느껴지는 감정은 그리움인데, 그 그리움이 어디서 기인한 것인지 알지 못해서 답답했다.
부모님을 여의었던 그때의 상실감과 비슷했다.
저 두 꼬마는 누구일까.
무척 궁금하다.
이윽고 영화의 한 장면이 지나치듯이 꼬마들이 사라지고 다른 장면이 나타났다.
회색빛 하늘과 검푸른 바다가 보였다.
세번째 꿈이었다. 이 꿈을 보는 것은.....
하얀 포말을 일으키는 파도를 바라보다가 시선을 돌렸다.
혹시 그 사람이 있을까봐. 주위를 살피었다.
뒷모습이 외로워 보였던 그 사람이 있는지.
그러나 없었다. 차가운 파도만이 해변으로 다가올 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아쉬운 마음을 접으며 한숨을 쉬는데 누군가 다가오는 것을 느꼈다.
뒤를 돌아보니 어떤 사람이 걸어오고 있었다.
정면에서 걸어오는데 누군지 알 수 없었다.
모든 게 흐릿해서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러다 흐릿해지는 시야 끝에 사람의 얼굴이 뚜렷하게 들어왔다.
또다시 장면이 펼쳐졌다.
몹시 슬펐던 그날이었다.
처음으로 검은 옷을 입고 환하게 웃고 계시는 부모님의 영정사진을 꼭 잡고 엄청 울었던 날이다.
세상의 모든 것을 잃는 듯 했고 심장이 떨어져나갈 듯한 고통이 엄습했다.
하늘도 나의 슬픔을 동조하는 것인지 지독히도 비를 퍼부었다.
장례식장에서 상주로서 돌아가신 부모님의 명복을 빌러 찾아온 하객들을 맞이할 때는 거의 제정신이 아니었다.
가슴에 구멍이 뻥 뚫린 채 아무것도 잡히지 않는 공허함으로 기계적으로 움질일 뿐.
너무 울은 탓일까 눈물조차 메말라버려 한톨의 눈물도 흘리지 않았다.
주위 친척 어른들이 장례절차를 모두 처리하는 동안 난 지켜보기만 했다.
부모님의 영정사진만 놓칠세라 꼭 잡았다.
손가락이 저리도록 잡았더랬다.
「땅에 묻어야겠지?」
「그럼 어디다가. 그쪽에는 다 찼는데.」
「이서방. 거기 말고 다른데는?」
「자리에 없는데? 언제 자리를 비운거야? 이서방!」
장례는 3일장으로 끝냈다.
5일장은 너무 길고 수명이 다해 간 것이 아니라 사고로 죽었으니 빨리 묘소를 세워 영혼을 달래주는 게 좋겠다는 의견때문이었다.
한꺼번에 부모님을 잃은 나에게는 어떤 쪽이든 아무래도 좋았다.
슬퍼서 먹먹한 가슴을 주먹으로 때리다가 멍든 나보다 부모님을 우선시 해야되겠다는 생각때문에 부모님을 위한 결정이라면 무엇이든 좋았다.
발인을 앞두고 묘소 위치를 정하는 친척 어른들 앞에 다가갔다.
내일이면 발인인데도 못 정하는 그들의 좁혀지지 않는 의견들을 더이상 듣는 것은 무의미했다.
「태환이구나. 무슨 일이냐?」
「화장할래요.」
「뭐?
「무슨 소리하는거냐?」
「땅에 묻지 않고 화장하고 납골당에 모실거에요.」
「그게 무슨 소리야. 조상대대로 지내온 곳이 있는데, 당연 거기에 모셔야지.」
「아니요. 가까운 곳에 모시고 싶어요. 그러니까 그렇게 해주세요.」
고집스럽게 의견을 세웠다.
말도 안된다고 호통치는 친척 어른의 말도 듣지 않았다.
무릎을 꿇고 빌었다. 고향에 묻으면 찾아가기가 멀었고 부모님과 멀어지는 것 같아서 싫었다.
날이 새도록 고집을 꺽지 않았다.
결국에는 급하게 내 의견대로 화장을 하고 납골하는 것으로 정해졌다.
절차가 흐트러졌지만 모든 것을 잃고 혼자 남은 나는 개의치 않았다.
누군가 곤란해지든 신경쓸 감정조차 사라졌으니까.
「엄마...아빠...」
내손에는 작은 유골함 두개가 놓여졌다.
아주 작았다. 커다란 사람이 이토록 작아질 수 있는지 의문이 들만큼 아주 작다.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다.
말라서 더이상 흐르지 않을 줄 알았던 눈물이 무너진 둑처럼 후두둑 터져나왔다.
쉴새없이 쏟아져 내리는 눈물이 유골함을 적셨다.
그리고 드디어 인식했다.
이제 두분은 내 곁에서 영원히 사라지셨구나.
그 사실이 너무도 서글펐다. 세상이 무너지는 아픔이었다.
「태환아, 삼촌과 함께 갈래?」
아직 성년이 되지 못한 난 의탁할 곳이 필요했다.
그래서 먼저 말을 꺼낸 삼촌의 집에 머물렀고 성인이 되어 대학교에 들어갔을 때부터는 혼자살았다.
부모님의 유골은 가까운 서울근교에 납골했다.
처음에는 자주 갔지만 내 생활이 바빠서 방문 횟수를 줄어들었고 점차 드물어졌다.
내가 병으로 모든 것을 정리하고 찾아뵈기까지 찾아가지 않을 정도였다.
살기 위해서였다.
슬픔에 빠져 부모님만 생각하며 살아갈 수 없으니까.
나를 위해 그랬다.
하지만 나의 오만이었다. 그렇게 할수록 내부는 썩어문드러져갔다.
텅 빈 공허함이 외로워 여러 사람을 만나봤지만 육체적 포근함을 줄지언정 심적으로는 전혀 메울 수 없었다.
쑨양.
그를 만나기 전까지 난 죽어 있었다. 스스로 죽이고 있었다.
쑨양을 만나고 나서야 내가 살아 있음을 깨달았다.
그를 만나고 행복이라는 감정을 되찾았고 진정 웃는 법도 배웠다.
그를 사랑하면서 심장이 뛰는 것을 느꼈고 사람의 온기도 어떠한 것인지 알았다.
쑨양 그를 만난 것은 내 인생의 최고의 행운이었다.
불쌍한 나에게 하늘이 내려준 천사였다. 아주 다정한 천사.
-
"흐음....우웅..."
목구멍이 간질간질거려 잠에서 깨어났다.
촉촉함도 없이 메마른 입안도 까끌거려 더이상 잠을 자지 못할 것 같아서 눈을 떠버렸다.
"깼어요?"
"....양?"
잠에서 깨어나니 쑨양이 뺨에 키스를 하며 인사를 해왔다.
쑨양의 이름을 부르는데 평소와 달리 목은 더 쉬어버린 것인지 잘 나오지 않았다.
"...언제 일어났어요?"
"방금이요."
쑨양의 품에 파고들며 말을 이었다.
"꿈을 꿨어요."
"어떤 꿈이요?"
"쑨양을 처음 만난 날이요."
"...처음...?"
"네. 내가 가장 아팠을 때 만났던 그날...가슴이 너무 아팠던 날이었어요. 아주 많이."
"...그때 태환이 갑자기 쓰러져서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쑨양의 말을 들으며 그날을 되새겼다.
처음 만났던 그날을.
그날은 우리 둘에게 운명적인 날이었다.
그리고 쑨양이 날 받아준 날. 황당한 제안을 하는 나를 받아주었던 날이었다.
내가 말해놓고도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던 그 말을 쑨양은 너무도 쉽게 받아주었다.
내가 쑨양의 입장이라면 미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몰랐다.
"...쑨양."
"네?"
"왜 같이 살자고 했어요? 미친놈 취급해도 이상하지 않았는데..."
"그건 태환이 좋으니까요."
"그때 처음 봤는데, 어떻게요?"
"첫눈에 반한다? 후후. 그냥 놓치고 싶지 않았어요. 꼭 끌어안고 싶었어요."
"......"
"그러니까 우리는 운명이에요."
쑨양의 말에 난 또다시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그의 다정한 말에 위로된다. 이 멋진 사람을 점점 놓치기 싫다.
이미 이기적인 결정을 선택한 나는 그의 말에 더더욱 놓치기 싫어졌다.
그는 알까? 그가 말하는 모든 것이 나에게 위로가 되고 사랑이 된다는 것을?
그는 알까? 이런 나의 마음을.
아직 주말이 오려면 하루가 남았지만 쑨양은 출근하지 않았다.
왜 가지 않냐고 묻자 휴가를 냈다고 했다.
괜찮냐고 물었지만 대답없이 웃기만 했다.
혼자 집에서 그를 기다리지 않아서 좋았던 나는 쑨양과 보낼 하루가 기대되었다.
이날은 쑨양과 하루종일 집안에서 지냈다. 밖으로 나돌기에는 내가 많이 힘들었다.
그의 품에 안겨 영화를 보고 좁은 욕조안에서 씻는 본 업무를 잊고 애정행각하기 바빴다.
그래도 무척 즐거웠고 행복했다.
너무도 행복해서 이대로 평화로운 지금이 깨어지지 않을 것 같은 믿음마저 생길정도였다.
하지만 나의 소원은 말이 되지 않았던 것인지 얇은 유리와 같았던 평화가 산산조각 나버렸다.
잘개 부수어진 평화라는 유리조각은 무척 날카로웠다.
찔리면 큰일 날 것 같았다.
그러나 그 유리조각에 베인 나는 평화를 영원히 떠나보낼 수 밖에 없었다.
"태환."
"왜요?"
"잠깐 이리로 올래요?"
"어디있..."
소파에 앉아 있다가 쑨양의 부름에 자리에서 일어나던 난 그자리에서 꼼짝할 수 없었다.
급살맞게 지끈거리는 가슴과 통증이 나를 옭아맸다.
"윽! 하아...쿨럭쿨럭."
그리고 묵직한 기침과 함께 피를 토해내었다.
그치지 않는 기침은 끊임없이 피를 쏟아냈고 바닥을 더럽혔다.
허물어진 내장에서 떨어져나온 살점이 피속에 묻혀있었다.
자리에 주저앉아 손바닥으로 입을 틀어막았지만 소용없었다.
피로 더러워진 손으로 소파의 융단을 잡았다.
하얀 융단은 내가 쏟아낸 피로 붉게 물들어갔다.
"태환?"
방에서 나온 쑨양이 피를 흘리는 날 보고 놀라는 모습까지 본 채 난 의식을 잃었다.
그가 내 몸을 흔드는 것을 느꼈지만 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곧 그조차 느낄 수 없는 의식의 밑바닥에 곧두박질쳤다.
암호닉+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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