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r seven days(7일 동안) # Thursday10
하나. 둘. 셋. 찰칵.
휴대폰으로 나의 모습을 찍어보았다. 휴대폰 액정 위로 찍힌 내 모습이 고스란히 떠올랐다.
홀쭉한 뺨과 두드러지는 쇄골이 눈에 띈다.
마른 눈가를 쓸고 뺨도 쓸어내렸다. 손바닥에 광대뼈가 선명히 느껴졌다.
점점 말라가는 나와 그런 나를 못내 걱정하는 쑨양.
그런 그를 안타깝게 바라보는 나.
우리 사이를 가로막는 '암'이라는 지독한 병.
의사도 포기한 나의 몸은 시일이 지날수록 달라지고 있었다.
신기하다. 의사가 말했던 나의 목숨 기한 <한달>을 넘기고 있으니까.
병을 고치는 의사가 만능일 수는 없다. 그러니 이정도로 기뻐할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조그만 더 조금만 더 라고 외치는 나의 바람을 들어 준 것 같아서 좋았다.
병이라는 존재는 행복할 수록 멀어진다고 했다.
몸 속에 좋은 기운이 맴돌아서 병이 다가오기 힘들다고 했다.
쑨양과 함께 있는 것이 즐겁고 행복한 나라서 <한달>이라는 시간을 넘겼어도 살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정말로 조금만 더 그와 함께 할 수 있기를.
그와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좀 더 주어지기를 바라고 바란다.
휴대폰 액정 위에 뜬 현재의 나의 모습을 손가락으로 만져보았다. 예전에 찍은 사진도 보았다.
건강해보이는 예전의 나와 아파보이는 지금의 내가 뚜렷하게 대비된다.
씁쓸하다. 까끌한 입안과 메마른 목이 아파온다.
"언제 죽을까..."
일반 암환자들과 다른 내가 좋았다.
그러면서 그들과 달리 치료할 수 없는 내가 미웠다. 보통 사람들은 쉽게 초기때 발견해서 금세 치료한다던데, 난 죽을 때가 되서야 발견하는 꼴이라니.
한숨을 내쉬어보아도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멍청하게 병을 키어온 내 몸이 밉다. 몹시 미웠다.
그리고 마지막 희망을 걸고 치료조차 거부한 내가 다행이기도 했고 멍청해보이기도 했다.
죽더라도 치료를 받는게 좋았을까? 라는 물음과 항암의 고통을 받으며 죽는 것보다 이렇게나마 살고 있는게 행복한 것이라고 말하는 대답이 출구없이 소용돌이쳤다.
거기다 치료를 했다면 쑨양을 만나지 못했을 거다.
우연히 만난 길에서 만난 그를 어떻게 만났을까. 병원에서 어쩌면 쓸모없을 치료를 받고 있었다면 만나지 못했을거다.
쑨양과 내가 인연이라면 만났을지도 모르지만 지금까지 그와 쌓았던 추억은 없었겠지.
그저 소독 냄새를 줄기차게 맡으며 방사선에 맡긴 몸이 점차 말라가고 뼈를 드러내는 나만 보여주었겠지.
그리고 연인은 고사하고 아무사이도 아니었을지도 모르는 그저 연민과 동정으로 점철된 그의 눈빛을 받았을지도 몰랐다.
"날씨 좋다...어디 놀러가면 좋겠다."
창 너머로 구름 한점 없는 새파란 하늘이 보였다.
하얀 구름조차 없는 하늘은 파란 물감을 짙게 풀어놓은 것 같이 선명한 푸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그 사이에 빛나는 눈부신 태양.
따뜻하다 못해 태워버릴 것 같은 뜨거움을 간직한 그 빛의 덩어리는 쑨양을 닮았다.
따뜻하고 뜨거운 쑨양은 차갑게 얼어붙은 나를 쉽게 녹였다. 그래서 닮았다.
얼어버린 심장을 녹여 두근거리게 만들었고 텅텅 빈 마음을 사랑으로 가득 채웠다.
얼굴을 떠올리기만해도 웃게 만들었고 우울함마저 날려버리고 행복하게 만들었다.
"그러고 보니..."
닮았다. 어렴풋이 떠오르는 누군가와 쑨양은 닮았다.
찌릿하게 찾아오는 두통때문에 생각하기 힘들었지만 쑨양과 비슷했던 사람을 알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기억이 나지 않지만 닮았다는 생각만 난다. 누군지도 모르면서 이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이상했지만 그냥 납득이 되었다.
기억나지 않는 사람을 떠올리려고 할 때마다 머리가 아팠다.
꼭 열면 안되는 판도라의 상자처럼 생각할때마다 머리가 아파왔다.
어쨌든 기억조차 남지 않는 그 사람과 닮았기 때문에 쑨양을 처음 보고 익숙한 느낌이 들어서 그를 붙잡았는지도 몰랐다.
무의식 중에 닮은 쑨양을 꼭 잡았을지도 몰랐다.
한숨을 토해내고 머리를 절래절래 흔들어 백지의 과거를 잊으려고 했다.
무슨 이유가 되었건 건에 곁에 있는 사람은 쑨양이었다.
내 모든 것을 사랑해준 사람이자 내가 사랑하는 사람도 쑨양이었다.
아파오는 머리를 꼭 잡고 존재하지도 않는 누군가를 떨쳐냈다.
다정한 나의 쑨양만 생각했다.
점차 아픔이 가라앉는 이마를 쓸어올렸다. 조금의 열기가 느껴졌다.
《삐로로》
"어?"
휴대폰 소리가 들려왔다. 손안에 든 휴대폰 액정에는 아무것도 떠올라 있지 않았다.
좀 전에 찍었던 사진만 있을 뿐. 어디서 나는 소리더라 곰곰히 생각하다가 쑨양의 문자메세지 소리와 같다는 것을 떠올렸다.
"휴대폰을 놓고 갔나?"
출근할 때 휴대폰을 두고 간 모양이다. 집안 어디에선가 들렸는데 라고 중얼거리며 거실에서 찾아봤지만 없었다.
침실에 있나 싶어서 방문을 열고 들어가는데 마침 또 '삐로로'하고 문자메세지 도착음이 들려왔다.
아까와 달리 선명하게 들려서 이 방에 있었구나 싶어 고개를 끄덕끄덕거렸다.
침대 위에 올려진 쑨양의 휴대폰이 보였다. 휴대폰을 들어올려 액정을 확인 하니 미리볼 수 있게 설정되지 않아서 번호만 떴다.
발신 번호만 찍혀 있는 것이 등록되지 않는 번호 같았다.
쑨양의 장금 패턴을 알고 있어서 쉽게 해지하고 도착한 문자 메세지를 확인했다.
비록 연인이라도 남의 것을 보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을 알지만 왠지 오늘따라 확인하고 싶었다.
나쁜 짓을 하는 것만 같아 침을 꼴깍 삼켰다. 삼킨 침때문에 목울대가 울렁인다.
《답장 안주시네요. 기다릴테니까 말씀해주세요. 아니면 직접 찾아가서 말씀드릴까요?》
어투가 왠지 부드럽고 나긋한 느낌이 들었고 문자를 보낸 사람은 여자같았다.
지금의 문자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내용이었지만 왠지 이상한 기분이 들어 그 전에 온 문자까지 확인해버렸다.
버튼을 누르는 손가락이 조금 떨렸다.
《안녕하세요. 팀장님^^ 저 김주연이에요. 기억나시죠? A프로젝트때 같이 일했던...》
같은 회사 사람인 것 같았다. 그게 아니라면 협력업체쪽 사람이거나.
프로젝트 과제를 같이 일했다고 하니까. 예전에 회사에 다녔던 나도 여러 사람들과 함께 일한 적이 많았다.
그러나 문자의 윗글부터 읽어내려가는 내 눈은 점차 흔들렸다.
아래로 내려갈수록 단순한 일 동료가 말할 내용이 아니었다.
《...사실 팀장님 마음에 들어요. 처음에는 키도 엄청 크고 무서웠는데 프로젝트를 함께 하는 동안 유머있고 친절한 모습을 보고 좋아졌어요.》
물론 좋아할 수 있었다. 쑨양은 그만한 매력이 있는 남자였으니까.
여자뿐만 아니라 같은 동성의 남자인 나도 사랑에 빠질만큼 멋진 남자임에 틀림없으니까.
《팀장님은 어떠세요? 저를 좋아하셨으면 좋겠는데...저랑 사귀실래요? 애인이 있다고 들었지만 골이 있다고 해서 문도 못 두드리는 건 아니잖아요?》
무척 당돌하고 자기 자신에게 자신이 있는 여자같다.
《전 자신 있어요. 저를 사랑하게 만들 매력이 충분하다고 생각하거든요. 팀장님도 저 마음에 들어하셨잖아요?》
마음에 들어했다는 문구가 선명하게 뇌리에 꽂혔다.
《저랑 교제할 마음이 계시거나 아니라도 답장을 주시면 좋겠어요. 기다릴게요 - 010 XXX9 XXX8 》
문자 내용을 모두 읽은 나는 휴대폰을 침대에 올려놓고 거실로 나왔다.
손끝부터 차가워지는 것을 느끼며 손을 꽉 쥐었다. 힘이 빠져 후들거리는 다리에 힘을 주어 소파로 걸어갔다.
소파에 털썩 앉으며 깍지를 끼고 생각에 잠겼다.
쑨양은 외향적으로도 눈에 띌 만큼 멋진 남자였다. 훤칠한 키에 잘생긴 얼굴, 다정한 성격과 설레이게 만드는 매너. 어느 것 하나 빠지지 않는 남자였다.
사람에 따라 단점을 볼 수 있지만 이미 깊이 사랑에 빠진 내 눈에는 완벽한 사람이었다.
나 뿐만 아니라 그를 좋아할 사람은 충분히 많았다.
방금 본 문자메세지의 발신자처럼 아주 많을 것이다.
또한 저런 문자를 받거나 고백받은 것이 처음이 아니겠지. 난 처음 보았지만 많았으리라 짐작되었다.
같은 남자인 나조차 사랑에 빠졌을 만큼 멋진 남자를 여자들이 안좋아할 수 있을까.
"하아..."
속이 답답해졌다.
죽을 병이 걸려 그가 떠날까봐 고백도 못하고 끙끙되며 혹여 곧 죽을 나때문에 힘들어할 그를 위해 놓아주려고도 했으면서 왜 이럴까.
병들어 곧 죽어도 신기하지 않을 나보다 젊고 건강하며 예쁜 여자들이 쑨양에게는 더 이로울 것이다.
그 중에서 평생 함께 하며 살아갈 수 있을테지.
그런데도 답답하고 짜증나고 슬픈 이유가 무엇일까. 그를 사랑하기 때문에?
내가 죽고 나때문에 힘들어하고 슬퍼할 쑨양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죽도록 아팠다.
하지만 금세 나를 잊고 다른 사람과 사랑에 빠질 그를 생각하면 싫었다.
그런 내가 야속하고 미우면서도 절대 나를 잊지 않고 나만을 사랑해주기를 바란다.
비겁한 내가 너무도 싫어졌다.
사랑스러운 그는, 다정한 쑨양은 누구에게나 사랑받을 자격이 넘치는 사람이다.
죽을 내가 죽어서도 그를 옭아매려는 것은 잘못된 것이었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집착이다.
하지만 쉽게 놓아주기 싫다. 그가 행복하기를 바라면서 나를 언제나 사랑했으면 했다.
지독하게 이기적인 생각이 나를 괴롭혔다.
예전에 사랑했던 사람이라고 엷은 추억만으로 기억되기 싫었다.
눈물이 났다. 그 눈물은 내 얼굴을 적셨다.
입안으로 들어온 눈물은 무척 차가웠고 매우 짰다.
이기적인 나를 탓하는 것 같아서 몹시 슬펐고 안타까우며 아팠다.
"아파..."
가슴이 지끈거렸다. 나를 괴롭혔던 통증보다 더한 괴로움이 아픔을 불러왔다.
띵동.띵동.
초인종 소리가 정적에 휩싸인 거실을 시끄럽게 두드렸다.
자괴감이라는 늪에 빠진 나는 그 소리에 빠져나왔다. 멍하게 몇번이고 울리는 초인종소리를 듣다가 겨우 몸을 일으켜 인터폰의 수화기를 들어올렸다.
LCD화면에 비친 쑨양의 모습이 보였고 내가 좋아하는 중저음의 목소리로 말한다.
《태환. 나왔어요.》
"...열어줄게요."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평소와 다름없는 톤으로 말했다.
처음 의사에게 병명을 들었을 때처럼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그것은 내가 생각하여도 손색이 없을만큼 멀쩡한 목소리였다.
현관으로 걸어가면서도 수많은 생각이 오고갔다.
그 여자는 문자에 온 것처럼 답장없는 쑨양에게 직접가서 고백했을까? 그러면 고백받은 쑨양은 무엇이라고 답했을까?
마음에 든다고 했을까? 애인이 있어서 안된다고 했을까?
어쩌면 그 여자는 아픈 애인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지도 몰랐다.
그러면 아픈 내가 죽으면 사귀자고 했을까?
생각의 꼬리는 최악의 최악만 떠올리며 나를 괴롭혔다. 숨이 턱턱 막혔다.
쑨양과 키스라도 하면 막힌 숨통이 트일 것 같았다.
서둘러 문을 열었다. 그 앞에는 나의 사랑 그가 서 있었다.
아주 멋진 모습으로 미소 짓고 있는 그에게 다가가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추었다.
숨 쉴 틈도 없이 키스를 퍼부었다.
놀란 쑨양의 눈이 보였지만 나의 키스에 그 또한 응해주었다.
그래도 답답한 숨통은 쉽게 트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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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차 절정에 치닫는 이야기 시작!
아무래도 오늘의 독자님들 반응을 알 것 같아요.
슬프다고 하실것 같고 저 문자의 여자분 욕할듯...=ㅅ=;;;
암호닉+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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