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세요?"
"어.ㅇㅇㅇ 너 연락받았어?"
"무슨 연락?"
"동창회 말이야. 이번주 금요일. 연락 못받았어?"
"아, 받았어. 너도 오려고?"
"어. 너는?"
"나는 당연히.. 근데 니가 왠일이야? 동창회를 다 나오고."
"그냥. 궁금해서. 다들 잘 살고있나, 또 인기쟁이 김종대님이 어떻게 사나 다들 궁금할거 아냐?"
"싱겁긴, 그래. 그럼 금요일에 보자."
"어. 아 그리고 이번에 찬열이도 나온다더라."
"응? 박찬열?"
"응. 완전 오랜만이지."
"..그러게. 그래 종대야. 그때 보자."
종대와 나는 초등학교 동창이다. 박찬열 또한 우리와 같은 반 이자 내가 짝사랑했던.. 아 또 얼굴이 달아오르는것같다.
어느 순간부터 '박찬열' 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이리 부끄러워 하게 되었는지.
초등학교때 찬열이는 반에서 인기가 많던 남자 아이였다. 아, 물론 남자애들 사이에서만.
키 크고 유머러스하고 잘생기기까지 해서 찬열이는 많은 남자아이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치만 이상하게도 반장 선거를 할때면 찬열이는 항상 떨어졌다. 왜냐하면 여자애들이 찬열이를 뽑아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 그런게 있지 않은가, 어릴적엔 괜히 남자 여자 편을 갈라 놀던 시기가 말이다.
그래도 찬열인 항상 빛나는 치아를 드러내며 웃어넘기곤 했고 남자아이들은 '역시 남자' 라며 찬열이를 더욱 더 좋아했다.
미술시간, 여느때처럼 시끄럽게 교실을 뛰놀던 남자애들이 장난을 치다가 그만 찬열이의 그림에 물감통을 쏟았다.
순간 정적이 일었고 아이들은 당황해서 누구도 선뜻 나서지 못했다.
이번일은 찬열이도 조금 당황한듯 자리에 굳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그때 한 여자 아이가 다가와 재빨리 그림위에 쏟은 물과, 찬열이 옷에 묻은 얼룩들을 닦아주었다.
여태껏 말한마디 조차 해본적 없는 여자애가 자기를 도와준다는게 이상했는지 찬열인 큰 눈을 굴리며 여자아이를 쳐다보았지만 여자아이는 그저 묵묵히 그림 위를 닦아내었다.
하지만 찬열이는 그 애에게 고맙다는 인사조차 하지 않았다. 소심한 여자아이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고 그렇게 당황스럽던 상황은 정리되었다.
다시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가 들릴때즈음, 여자아이는 슬쩍 뒤를 돌아봤고 찬열이와 눈이 마주쳤다.
찬열이의 큰 눈이 마치 '너 나 좋아해?' 라고 물어오는것 같이 느껴진 여자아이는 얼굴이 붉어진채로 몸을 앞으로 돌렸다.
학년이 올라가고, 그 이후로도 여자아이는 찬열이와 마주칠때면 부끄러운 마음에 항상 먼저 돌아섰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졸업식날이 되어 마지막으로 찬열이를 마주쳤을때도 결국 그 둘은 말 한마디도 못한채 떠났다.
3년전부터 초등학교 동창들로 부터 하나 둘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나는 혹시 찬열이도 오지않을까, 하는 마음에 3년전부터 한번도 빠짐없이 동창회에 나갔다. 하지만 찬열이는 나온적이 없었다.
뭐하고 지내나, 혹시 나를 기억하고 있을까, 궁금한 것들이 너무 많았다.
언젠가 나오면 꼭 물어봐야지 했는데 막상 찬열이가 동창회에 나온다는 소식을 듣자 당황스러움과 셀렘 때문에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이번엔 너와 마주 볼 수 있을까.
"ㅇㅇ아 어서와!"
"오,ㅇㅇㅇ 못본사이에 이뻐졌네."
반갑게 맞아주는 지은이와 종대를 보며 자리에 앉았다.
"안녕 지은아. 안녕 김종대. 능글거리는건 여전해."
"그치. 얘는 어쩜 변한게 없는지."
아이들이 하나 둘씩 모이기 시작했고 분위기는 점점 화기애애 해져갔다. 하지만 찬열이는 나타나지 않았고 신경이 쓰이던 나는 자꾸 문쪽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때,
문이 열리고 뿔테안경을 쓴 키가 훤칠한 남자가 걸어들어왔다.
설마, 찬열인가? 하는 마음에 그 남자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곧이어 남자도 내 시선을 느꼈는지 이쪽을 한번 쳐다보더니 걸어오기 시작했다.
한걸음 한걸음 가까워 질수록 떨려왔다.
"김종대?"
"어? 박찬열! 야.. 넌 지금도 잘생겼냐."
"나야 늘 잘생겼지. 하하하 장난이야 장난. 오랜만이다 얘들아."
"와.. 박찬열 진짜. 연예인인줄 알았어. 어릴때 좀 친하게 지낼걸."
애들은 찬열이의 등장에 집중했으며 찬열이는 많은 아이들의 인사를 받아내고 있었다.
어릴적 찬열이가 남자애들 사이에서만 인기가 많은 아이였다면 지금은 남녀 누구나 좋아하는 어딜가서든 주목을 받는 그런 아이가 되어 있었다. 여전히 소심한 나와 비교되듯 밝은 기운을 마구 뿜어내는 찬열이를 보자 물어보려고 했던 수 많은 말들이 입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과거 이야기가 한참동안 이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내 앞에 앉아있는 찬열이 때문에 그들의 이야기속에 집중 할 수가 없었다. 넌 어릴적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빛이난다.
그러다 문득 미술시간의 이야기가 수면위로 올라왔다. 친구들 사이에서 그때 누가 찬열이의 그림을 닦아줬었냐며 논쟁이 일어났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 여자아이를 기억하는 사람은 없었다. 곧, 애들은 찬열이에게 그 아이가 누군지 기억이 나냐며 물었다.
내심 찬열이가 나를 기억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긴장반 기대반을 하고 찬열이의 대답을 기다렸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기억이 안난다며 웃고있는 찬열이었다.
찬열이의 한마디에 기대한 나혼자 바보가 된것같아 허탈해졌다. 더이상 이 자리에 앉아있고싶지 않았다.
복잡한 마음을 추스르러 화장실에 다녀오려고 일어서려는 순간, 찬열이의 입에서 말이 흘러나왔다.
"아, 그때 그 애는 작고 조용하고.. 또 자기 얼굴보다 엄청 큰 안경을 쓰고있었던것 같은데.."
애들이 수근대기 시작했다. 누구지? 안경썼던 사람있어? 누구야? 너야? 아닌데. 너냐?
다시금 부끄러워진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다 고개를 살짝 들었는데 예전처럼 찬열이와 눈이 마주쳤다.
"그런데 지금도 여전히 작고 조용하네. 그때도 귀여웠는데, 너무 예뻐져서 못 알아봤어 ㅇㅇ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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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컨택사진을 찾고 싶었는데..
그나마 마음에 드는 사진이 저거라 골랐는데.. 손가락이 아쉽네요ㅠㅠ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