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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김태형] 상처를 치료해줄 사람 어디 없나 04 | 인스티즈

 

 

 

 

 

 

 

 

 

"하, 하지마...! 하지마!" 


"우리가 뭐 했냐?"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이러네-." 


"제발... 제발...," 


"재미 좀 보자." 

"나 먼저!" 

 

 


한적한 골목. 이들 말고 그곳을 지나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듯 보였다. 교복은 이미 너덜너덜해졌고 입술은 이미 터져 굳어버린 피딱지가 안쓰럽게 붙어있었다. 움직이지도 못 하게 꽉 잡혀있는 꼴이라니. 누구 한 명만. 누구든 좋으니까 한 명만 지나가 달라고. 빌고 또 빌었다. 왜 하필 이 길로 들어섰을까. 왜 하필 이 시간에 이 곳을 지나려 했을까. 왜 하필.
그래, 그 이유도 모두 이들 때문이었지. 

 

 


"그만, 그만해!" 


"야, 시끄러." 

"얘 입 좀 막아라!" 

 

 


결국 얻어 맞아 보기 좋게 빨개진 뺨과 이내 막혀버린 입. 따끔거리는 볼로 눈물이 줄줄 흘렀다. 대체 뭘 잘못했을까. 어쩌다 또 걸려서. 하긴 어쩌다가 아닐 수도 있겠지. 어쩌면 이 또한 그들의 계획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어디서부터 잘못 되었을까. 어디서부터.

 

 

 

 

 

 

 

 

 

 

[방탄소년단/김태형] 상처를 치료해줄 사람 어디 없나 04 | 인스티즈  

 

 

 

 

상처를 치료해줄 사람 어디 없나 04 

 

 

 

 

 

 

 

 

 

 

 

"야 이년아!" 

 

 


하얀 천장, 지독한 소독약 냄새... 망할 이딴 건 다 소설에서나 지껄이는 되도 않는 거지 같은 소리였고 그런 소설과 달리 눈을 뜨자마자 상황 파악을 할 겨를도 없이 귀를 까랑까랑하게 울리는 혜주의 목소리가 먼저 반겼다. 덕분에 다시 눈을 감고 싶은 걸 겨우 참고 짧게 한숨을 쉰 뒤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뭐야." 

"뭐긴 뭐야. 병원이지. 너 니 몸 관리 안 할래?" 

"미안. 그게 상한 건지 몰랐어." 

"상한 것도 먹었냐? 진짜 큰일 날 년이네!" 

"어?" 

"너 영양실조래." 

 

 


영양실조라니. 이렇게 튼튼하고 군데군데 통통하게 살이 붙어있는 내가 무슨 영양실조인지. 설마하니 내게 영양실조라는 것이 떨어질 줄은 정말 상상도 못 하고 있었다. 요즘 끼니를 자주 거르긴 했지만. 아니, 좀 오래되었구나. 집을 나와서 살고부턴 혼자 챙겨 먹기도 번거롭고 해서 대충대충 때웠더니 결국 이 사달이 났다보다. 가끔 엄마가 보내주시는 반찬들도 제때 못 먹어서 버리는 게 대부분이었으니. 

영양실조라는 말을 들으니 갑자기 몸에 힘이 더욱 빠지는 것 같기도 하고 잔뜩 깔아져 누워있고 싶었다. 와, 근데 나 회사는. 분명 팀장님을 마지막으로 보고 정신이 나간 것 같은데. 회사에 또 큰 소란이 났겠구나 싶었다. 이게 무슨 망신이야. 이런 건강한 몸으로 회사에서 쓰러지기나 하고.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지도 모르겠고. 팀장님과 다른 사람들은 또 얼마나 놀랐겠어. 내 몸 하나 관리 못 해서 여러 사람들한테 참 많은 피해를 준다. 

 

 


"왜 일어나. 누워있어." 

"회사 가야지." 

"회사는 얼어 죽을. 너 입원하래." 

"입원? 입원을 어떻게 해. 나 일가야 하는데." 

"일 같은 소리 하네. 너 지금 바로 나가면 또 쓰러져, 이것아." 

"가야 하는데...." 

"그, 누구라더라. 너희 팀장? 그 잘생긴 놈이 너 쉬고 오게 챙겨주라고 했어." 

"팀장님이?" 

 

 


여기까지 오셨구나. 자기 부하직원이라서 그러셨나. 아님, 설마 자기 잘못이라는 이상한 생각 따위 하진 않겠지. 괜히 걱정이 들었다. 자기 손이 내 이마에 닿자마자 그렇게 쓰러졌으니.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하긴 처음부터 내게 아프냐고 물어봤으니 그런 오해는 하지 않으려나. 쓸데없는 걱정이겠다. 하지만 팀장이 그런 걱정을 하든 안 하든 어쨌든 그 사람 몫도 좀 있는걸. 가뜩이나 열이 오르고 있는 몸에 손을 대서 불길에 마른 장작을 한 무더기 던져놓았으니 한몫은 단단히 했다. 그래도 나에 대해 모를 텐데 괜한 오해 안 했으면 하는 것이었다. 오해는 아니겠지만. 

나도 그렇지. 영양실조라면서 몸이 활활 타오를 건 뭐야. 이것저것 겹쳐서 몸에 과부하가 난 듯싶었다. 속에 든 것은 하나도 없는데 거기다 상한 걸 들이부어 가뜩이나 없는 걸 전부 뱉어냈으니 그만 좀 하라고 몸이 버럭 화를 낸 것이다. 

 

 


"엄마는?" 

"연락 안 드렸어. 얼마나 걱정하시겠냐? 또 당신 탓이라고 하실라." 

"응... 고맙다." 

"밥이나 잘 먹고 다녀!"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언제나 내가 미안해 했으니까. 그때도. 당신 잘못이라고. 그게 아닌데 자꾸 자책을 하셨다. 내가 이렇게 된 게 당신 탓이라고. 참 고맙게도 혜주가 속 깊은 생각을 해주었다. 별일도 아닌데 연락을 해서 뭐 해. 더한 걱정만 끼쳐드릴 게 분명했다. 고마운데. 밥 좀 먹으라고 날 때릴 건 뭐야. 나 환자라고.

 

 

 

 

 

 

 

 

[방탄소년단/김태형] 상처를 치료해줄 사람 어디 없나 04 | 인스티즈 

 

 

 

많이는 쉬지 못 했다. 회사도 그렇고 내가 그렇게 가만히 병실에만 누워 비생산적으로 아까운 시간을 허비하고 있을 성격이 못 된다. 몸이 자꾸 들썩거려서 누워있을 수가 있어야지. 쉬어도 쉬는 게 아니었다. 속이 찝찝하니 못 끝내고 온 업무도 걸렸고 팀장님도 걸렸고. 그래서 얼른 퇴원 수속을 밟았다. 일단 오늘은 시간이 애매하니 좀 쉬고. 병원에서도 그랬고 혜주도 그랬고. 잘 챙겨 먹으라는 말에 곧장 집으로 향하지 않고 잠시 마트를 들려 비어 있는 냉장고를 채우기 위해 장을 좀 봐서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분명 똑같은 길인데 며칠 못 봤다고 되게 반갑네. 평일에, 것도 해가 쨍쨍한 낮에 회사가 아닌 곳에 있다는 게 어색하기도 하고. 나름 식단이 짜여 나오는 거라는데 맛도 더럽게 없는 병원밥을 반성 못 하고 가린 탓에 벌써 푸석해진 볼을 쓱쓱 쓸었다. 집 가서 시원하게 팩이라도 해야지. 

 

 


"무슨 일 있었어요? 안 보이던데." 

 

 


이건 또 뭘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하는지. 또 아무렇지 않게 내게 말을 걸어오는 옆집 남자였다. 어떻게 하필 딱 맞았는지 집으로 들어가려고 도어락을 열면 옆집 문이 대신 열리며 그 남자가 나왔다. 그리고는 날 쌩하고 지나쳤던 그날은 마치 없었던 일처럼 다시금 말을 걸어왔다. 

 

 


"아니에요." 

 

 


날 가지고 놀려 드는 거라면 거기에 장단 맞춰 놀아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내가 왜 끝이 상처라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해야 하는데. 며칠 못 본 사이에 이 남자에 대한 관심은 눈에 띄게 떨어져 있었다. 병원에서도 한 번 그 남자를 생각한 순간이 없었다. 그래서 기대했던 내 마음에 실망감을 안겨주며 잔뜩 고민했던 것들은 어디로 접어 휙 버린 후였고 이제 남은 건 기막힘과 황당함이었다. 그 당시엔 애써 부정했지만 그날 날 똑바로 보았고 날 알아보았음에도 무시하고 지나친 게 맞았다. 혜주의 말들도 이젠 상관이 없었다. 관심이 있다느니 좋은 영향을 줄 거라느니 그런 말은 이제 내겐 상관이 없었다. 그럼에도 다시 말을 걸어오는 이 남자에게 어이가 없었고 나를 우습게 보는 건지 괘씸함도 떠올랐다. 

내 얼굴을 보려는 듯 고개를 기울였고 나는 더욱 문 쪽으로 고개를 박고 짧게 대답했다. 짜증 나는 기분에 그 남자를 노려보고 싶었지만 그건 내 능력 밖이니 포기하겠다. 대답을 더 길게 하지 않으면 되돌아오는 물음도 없을 거라는 내 예상을 깨고 또 한 번 그 남자의 입이 열렸다. 

 

 


"여행 갔다 왔어요?" 

 

 


여행 같은 소리 하고 있다. 그래 여행 갔다 왔다. 에어컨도 빵빵하고 밥은 드럽게 맛없지만 그래도 기력 좀 충전해줄 피서지 같지도 않은 곳으로. 내가 왜 심술을 부리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슬슬 더한 짜증이 밀려왔다. 내가 그렇게 만만한가? 자기 기분 내키는 대로 막 대해도 난 그냥 대꾸해주고 상대해주고 그런 애라고 생각하는 건가? 생각해보니 괘심하고 화가 나네. 물론 아직도 눈은 못 마주치고 있지만 그래도 속으로는 저 남자를 한참 째리고도 남았다. 

 

 


"아닌가. 살이 좀 빠진 거 같기도," 

 

 


답답하게 박고만 있는 내 시선을 돌리고 싶었는지, 아님 식단이 별로라서 영양은 찼을지 모르겠지만 적게 먹어 정말 살이 빠진 내 얼굴이 보고 싶었는지. 그 남자는 내 어깨를 잡아 자신 쪽으로 돌렸고 나는 또 매정하게 그 손길을 쳐버리고 말았다. 또. 습관적으로. 

 

 


"만지는 거 싫어하는 구나? 저번에도 그렇고." 

 

 


뭐 얼마나 봤다고 저번에도, 하면서 친한 척 구는 것인지. 진짜 니 머릿속엔 어떤 사고가 박혀있는 건데, 알 수가 없었다. 그래도 반사적으로 쳐버린 손에 바보같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고. 그 김에 잠깐 마주친 그의 얼굴은 꽤나 놀랐는지 입술이 살짝 벌어져 있었다. 피하고 있던 시선이 마주치자 얼굴이 빨갛게 올라오는 게 느껴졌고 심장이 쿵쿵 뛰어대기에 얼른 다시 얼굴을 바닥으로 쏟았다.

 

 


"그럼 들어가서 쉬어요." 

 

 


나가려던 거 아니었나. 저 한마디를 마지막으로 그 남자는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는 날 두고 다시 자신의 집으로 들어가 버렸다. 못나고 꼴사나운 내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애쓰는 동안 훌쩍 먼저 자리를 피해버렸다. 화난 건가. 내가 자신을 벌레 보 듯 그렇게 쳐버려서 티는 안 냈지만 실은 화가 난 건가. 조금만 기다려주지. 순간 나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나간 행동이라고 사과라도 하게. 화가 난 게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쾅 소리가 나게 문을 닫고 들어갈 이유가 없었다. 나는 대답 한 번 안 했는데. 아직 들어가지도 않았는데. 물론 그렇게 손길을 거부당한 저 남자의 기분도 좋지 않겠지만 사과와 변명도 하지 못 한 채 집으로 들어가야 하는 내 기분도 그다지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잡지도 못 하고 들어가 버린 그 남자의 문을 쳐다보다 후- 한숨을 뱉고 나도 집안으로 들어갔다. 장 봐온 것들을 테이블에 올려놓으니 또 생각이 났다. 저번에는 같이 밥 먹자고 초인종을 미친 듯이 눌러댔으면서. 이제 곧 점심때인데 또 그러기만 해봐라. 이번에도 절대 나가지 말아야지. 아니야, 나가서 뭐라고 크게 소리 지를까? 하긴 아까의 내 행동으로 화가 났다면 우리 집 초인종은 울리지도 않겠구나. 그래도 나는 사과하려 했다. 그 남자가 먼저 들어가 버린 거야. 나는 잘못이 없다, 애써 합리화 시켜가면서 괜히 투덜거렸다. 

며칠 동안이지만 비어있던 집을 환기 시키기 위해 베란다로 나갔다. 커튼도 쫙 치고 문을 활짝 열었는데. 대체 언제 옷은 갈아입은 건지. 아까와는 사뭇 다른 차림새의 옆집 남자가 핸드폰을 들고 현관을 나서고 있었다. 뭐야 오늘도 초인종을 눌러대면 뭐라 하려 했더니. 약속이 있었잖아. 푹- 김이 샜다. 그래 혼자 밥 잘 먹는 나는 씩씩하게 잘 차려 먹을 거다.

 

 

 

 

 

 

 

 

[방탄소년단/김태형] 상처를 치료해줄 사람 어디 없나 04 | 인스티즈

 

 

 

그리고 평범하게 며칠이 지났다. 매일매일 똑같이. 첫날은 좀 달랐지만. 병원에 며칠 입원을 하고 나니 출근하자마자 몇몇은 내게 안부를 물어왔고 특히나 박지민은 좀 방방 뛰며 물어왔다. 내게 갑작스러운 휴가를 내어준 팀장에게 감사의 인사라도 하려고 그의 자리로 가면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평소와 똑같이 나를 대했다. 그래, 이 고.마.운 상사야. 

요즘은 그래서 잘 챙겨 먹고 있는 편이었다. 는 내가 아니라 혜주가 날 챙기는 거였지만. 벌써 며칠째 내가 걱정이 된다며 점심시간마다 불러냈다. 해서 오늘도 늘 가던 구내식당을 지나쳐  혜주가 말한 식당으로 가기 위해 횡단보도에 서있었다. 언제 초록불이 켜질까 신호등을 보다 눈길이 간 곳은.
꽤나 오랜만에 보는 얼굴인 옆집 남자였다. 반대쪽 건널목에 서있는 그는 깔끔하게 쫙 빼입은 것이 평소 집 앞에서 보던 모습과 달랐다. 그때, 날 보고 그냥 지나쳤던 그 날밤과 비슷한 분위기였다. 요 며칠간은 그렇게 자주 보였던 이 남자를 통 보지 못 했다. 퇴근을 하고 집에 와도 나란히 위치한 옆집의 불은 꺼져있었고 분리수거를 하러 나오는 모습도 본 지 오래되었다. 생각해보면 그렇게 자주 본 것도 아닌데 말야. 분리수거를 하는 모습도 한 번이었고. 그래서 더 우습지만 왜 그 얼굴에 반가운 마음이 드는 것인지. 참나. 그쪽도 날 보고 있을지 아님 허공을 보고 있을지. 난 확실히 그 남자를 빤히 뚫어보았고 마침 초록불이 반짝였다. 뚜벅뚜벅 한 걸음씩 내딛을 때마다 그 남자와의 거리는 점점 좁혀졌다. 인사를 해야 할까. 아님 사과를 해야 할까. 하긴 이제 와 사과를 하기엔 너무 늦은 감이 있었지만 말이다. 아니, 늦어도 한참 늦었지. 이 남자는 그 날의 무례를 벌써 잊어버리고 넘겨버렸을지 모르겠지만 난 아니었다. 게다가 살짝 보았던 그 상처받은 듯한 표정은, 내 착각일 수도 있지만, 절대 잊었을 수 없었다. 내내 사과하지 못 하고 그냥 들어가도록 놔둔 것을 후회하며 가슴 어느 한켠에서 신경 쓰고 있었다. 어쨌거나 내가 이 남자의 기분을 상하게 했으니까. 가까워질수록 고개가 점점 떨어지긴 했지만 시선만은 그 남자를 향해 걸어놓은 채 속으로 뒹굴뒹굴 다음 행동에 대해 고민했다. 인사를 건네오면 어떡하지. 아님 내가 먼저 해야 하나. 밖에서 보는 건 처음인데. 여긴 건널목인데 그냥 가야 하나. 

그리고 그쪽에서 또한 날 보며 걷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을 즘. 그날처럼. 그 남자는 내게 한 번 웃어준 뒤 일말의 멈춤도 없이 빠르게 내 옆을 지나쳤다. 이건 또 뭐지. 기분이 마구 구겨져 눈썹이 일렁였다. 맞은편에 도달하자마자 내 길을 재촉하지 못 하고 뒤를 돌아 그 남자를 찾았다. 하지만 어디로 벌써 사라졌는지 보이질 않았다. 와, 나 또 무시당했어. 어색하게 웃으며 먼저 인사를 건네었으면 얼마나 개쪽이 났을까 끔찍한 생각이 들었다. 

화난 거다. 내가 그날 자신을 쳐버려서 화가 난 것이다. 그쪽에선 벌써 잊어버렸겠거니,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보다. 다른 이유가 떠오르지 않았다. 솔직히 끼워맞추려는 지도 모르겠다. 밖에서만 만나면 날 무시하고 지나가는데 도통 이유를 모르겠으니 이렇게라도 황당함을 풀고 싶었다. 위안이라도 얻으려고. 그래야 지금 마구 뭉게진 내 기분이 그나마 나아질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게 이유를 설명한다 해도 한 가지 오류라면, 화가 난 거라면 내게 눈길도 주지 말고 그냥 지나치면 되지 왜 또 다정하게 웃어주며 여지를 남기냔 말이다. 분명 날 무시하고 지나쳐간 것에 대해서는 내게 화난 게 맞는데 표정은 또 그게 아니니 헷갈릴 수밖에 없었다. 뭐 어쩌라는 건지. 어느 장단에 맞춰줘야 하는지를 모르겠다.

 

 

 

 

 

 

 

 

"야." 

"어, 어?" 

"너 무슨 생각해?" 

 

 


무슨 생각이긴. 부정하고 싶지만 방금까지도 생생하게 그 남자를 곱씹고 있었으니 굳이 변명은 않겠다. 얼른 혜주를 만나야 했기에 발걸음을 떼었지만 뒤로 남는 찜찜함에 걷는 내내 그 남자를 설명하려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정리는 전혀 되지 않았고, 이제 와서 창피함이 밀려왔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난 그 남자에게 무시를 당했으며 게다가 실천만 안 했다 뿐이지 실은 인사를 먼저 하려 했는데 보기 좋게 개무시를 당한 것이다. 인사를 할까 사과를 할까 뭐라고 말을 꺼낼까 생각은 해보았으니 이미 바보 같은 짓을 하고도 남은 것이다.  

그 상태를 계속 유지하며 혜주를 만났고 일부러 차가운 음식을 시켰음에도 속은 부글부글 끓었다. 그만하고 음식 먹는 것에, 혜주와 대화하는 것에 집중을 하려 해도 타는 속은 허락해주지 않았다. 얼음 물까지 부탁해 얼음을 오독오독 씹어먹었다. 나 같은 병신이 또 어디 있냐고. 나 같아도 우습게 보겠다. 가끔 자기 기분 내킬 때 인사 몇 번, 대화 몇 번 걸어주면 그거에 또 헤벌레 해서 얼굴 붉히는 꼴이라니. 나 같은 경우에는, 설렘과 부끄러움이 그 이유가 되지 않지만 그 남자가 볼 땐 오해를 살 여지가 충분하니까.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잖아. 아니 그럴 것이다. 뭐가 그렇게 좋아서 오랜만에 보는 얼굴이라고 반갑다며 인사까지 먼저 하려 하고. 만만하다 만만해. 이제 생각해보니 그 웃음은 다정했던 것이 아니라 비웃음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게 또 창피하고 꼴사나워서 당장 머리털이라도 쥐어뜯고 싶을 때 앞에서 얌전히 내 상태를 지켜보던 혜주가 드디어 말을 걸어온 것이었다. 

 

 


"아무 생각도...." 

"이건 정신과의사로서가 아니고 평범한 사람으로서 느끼는 건데. 넌 지금 머릿속이 엄청 복잡하고," 

"...." 

"무엇보다 지금 니 모습 굉장히 웃기거든?" 

 

 


결론은 이미 내가 우습고 만만했기 때문, 이라 내렸고 나 자신도 창피한 쪽팔리는 짓을 굳이 설명해주고 싶지 않아 대답을 회피했다. 웃기겠지. 혼자 이리저리 머리속을 더럽히고 있는데 그게 겉으론 티가 안 날 리 없었다. 그래서 더 궁금하겠지만 묻지마. 더 웃긴 꼴을 보여줄 것 같으니까. 혜주의 그런 말에도 멋쩍은 웃음으로 답했고 돌아오는 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입술을 살짝 내밀었지만 그녀는 더 묻지 않았다. 혜주는 한 번 찔러서 나오지 않는 말이면 굳이 끝까지 추궁해서 답을 듣는 것보다 먼저 입을 열 때까지 기다려주는 편이었기에 넘어가 주었다. 하지만 결국 먼저 털어놓고 싶게 만드는 묘한 능력이 혜주에겐 있었다. 참 신기하게 '있잖아,'를 시작으로 말문이 터지게 만들었다. 뭐 어쨌거나 지금은 넘어가는 것 같으니 안심하고 나도 넘어가 본다. 

그렇게 혜주의 덕으로 내 머릿속에서 그 남자도 몰아내고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잔소리만 듣고 있었다. 그새를 못 참고 퇴원을 했냐느니 자기가 꼭 이렇게 챙겨줘야 밥을 먹냐느니. 아까보다 더욱 머리가 아프게 골을 딱딱 때렸다. 퇴원이야, 화장실 가는 것도 눈치 보이는 회사원 나부랭이인데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다. 그리고 니가 꼭 안 챙겨줘도 밥을 먹긴 먹거든? 꽉꽉 차게 먹지 않아서 그렇지, 회사에 또 다른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 그래도 나름 잘 챙겨 먹는 편이었다. 내가 원한 것도 아니고 자기가 불러냈으면서 꼭 저렇게 생색을 냈다. 내일부턴 불러도 나가지 말야아지. 며칠간 점심시간마다 들은 잔소리로 산을 쌓을 수도 있겠다. 

 

 


"근데 요즘은 별일 없나 봐?" 

"어?" 

"니가 저번에 말한 남자 말이야." 

"아...." 

 

 


했던 얘기 또 하고 같은 얘기 반복해서 하고. 지루한 기분에 귀까지 긁적거리며 한 귀로 흘리고 있었는데 문득 혜주가 주제를 바꾸려는 듯 내게 물었다. 애써 잊어보려 애쓰다 이제 즘 혜주의 잔소리로 잊혀지려는 것 같았는데 다시 꺼내버렸다. 알고 묻는 건지 모르고 묻는 건지, 혜주의 다음 표정을 보니 후자였나 보다. 그 남자가 혜주의 입이서 나오자마자 나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보지 못 하고 이리저리 굴렸고 그런 내 모습에 그녀는 입꼬리를 올려 씨익 웃어 보였다. 이거구나, 라는 표정으로. 

 

 


"실은 아까 여기로 오다가 봤어." 

"정말?" 

"응. 근데 그냥 지나가더라." 

"엥?" 

 

 


결국은 그 남자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버린다. 뭐, 여기까지만 말하면 되겠지. 혜주에게 물어보면 내가 만만해서라는 이유 말고 뭔가 다른 답이 나올 것 같기도 했고. 내 표정으로 혜주 또한 호기심이 마구 올라올 텐데 아무 말 안 하고 입을 닫고 있기도 뭐 해서 그냥 입을 열었다. 그 짧은 찰나의 일을 혜주에게 전하며 누르고 있던 분노가 다시 끓었다. 나를 개무시하고 지나갔어. 망할. 그 말에 혜주 또한 적잖게 어이가 없었는지 눈썹을 씰룩거리며 서로 본 게 맞냐고 나만 본 건 아니냐고 눈을 다시 고쳐뜨며 물었다. 분명 눈까지 한 번 마주쳤고 날 향해 비웃음인지 그냥 웃음인지 모를 무언가를 날려주었으니 확실했다. 날 봤어. 

 

 


"먼저 인사라도 해보지." 

 

 


안 그래도 그러려고 했는데 무시를 당해서 더 빡이 치는구만. 자꾸 찔러대지 말란 말이야, 이 친구야.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마치 그런 생각은 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그래야 덜 쪽팔리지, 어후. 혜주는 우리가 함께 식사를 하기 위해 만났다는 사실도 잊었는지 언제부터 그녀의 손엔 숟가락이 들려있지 않았다. 워낙 밥 먹는 속도가 늦은 편인데 이러다 날이 새도 식당을 벗어나지 못 하겠다. 

 

 


"밥 안 먹어?" 

"어? 아, 밥." 

"으이그." 

"근데, 뭐 다른, 일은 없고, 갑자기, 그러는 거야?" 

 

 


내 말에 정신을 차리고 다시 숟가락을 집은 혜주는 여전히 뭐가 궁금하고 풀리지 않는지 입속에 숟가락을 넣으며 말을 이었다. 그러게 말이다. 대체 뭐 때문에 그러는지. 내가 자신을 쳐버렸다는 사실에 화가 나서 무시했던 거라면 이전에 날 무시했던 것은 설명이 되지 않으니 꺼내지 않겠다. 또 그랬냐고, 아직도 그러냐고 한소리 또 들을까 봐 지레 겁을 먹고 입을 떼지 못 하는 것은 절대 아니다. 그래서 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고 혜주는 반대로 고개를 옆으로 까딱였다. 내가 그 기분이었어. 설명도 안 되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참 답답했다고. 일단 마저 먹으라는 내 말을 듣고 혜주는 드디어 먹는 것에 집중하고 제 나름 빠른 속도로 먹어치웠다. 그래, 난 이제 들어가 봐야 해. 

푹푹 맛있게도 흡입하는 혜주를 보다 딸랑- 하는 소리에 턱을 괜 채 그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뭐야, 뭐지. 눈까지 슬쩍 비벼 그쪽을 봐도 저건 내가 아는 새 인턴, 박지민이 맞았다. 이미 점심시간이 다 끝나가고 있는데 이곳에, 그것도 항상 여직원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던 사람이 혼자 식당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처음부터 내게 꽂았던 시선은 들어오는 내내 유지하며 방긋거리는 얼굴로 내가 앉아있는 테이블까지 망설임없이 가까워졌다. 뭔가 싶어 눈을 반짝이며 나 또한 박지민을 바라보았고 우리 테이블 바로 옆에 섰을 때가 되어서야 고개를 숙이며 그 시선을 치웠다. 이마엔 송글송글 땀이 맺혀있었고 구레나룻 주변은 땀을 머금어 촉촉해져 있었다. 반 쯤 걷어놓은 셔츠 소매 밑으로 핏줄이 선명하게 선 팔뚝이 보였다. 

 

 


"지나가는 길에 보이셔서- 이거 커피, 이거 맞으시죠?" 

"아, 고마워요." 

"옆에 친구분... 어쩌지.... 어, 일단 이거 드세요! 아이스티 좋아하세요?" 

"내가 아이스티만 먹는 건 어떻게 알고. 고마워요!" 

"그럼 이따 사무실에서 봬요." 

 

 


사무실로 커피 배달을 가는 것인지 양손 가득 캐리어엔 방금 사온 듯한 시원한 음료들이 담겨있었다. 그중 휘핑크림이 잔뜩 올라간 음료를 꺼내 내 쪽으로 건넸고 고개를 살짝 들어 음료를 받아들었다. 점점 날이 뜨거워지고 햇빛이 비치는 곳으로 한 발짝만 들어서도 땀이 삐질삐질 나는데도 누구 하나 시키는 사람이 없음에도 항상 커피 심부름을 자처해 밖으로 나가는 그였다. 사무실에 딱 한 명, 좀 너무할 정도로 진상이 있는데 자신은 꼭 그곳에서 마셔야 한다며 가까운 카페가 아닌 굳이 조금 떨어진 카페를 고르는 사람이 있었다. 그럼에도 그는 인상 한 번 찡그린 적이 없었다. 점심시간이 끝날 즘 대부분의 직원들이 사무실로 돌아오고 그는 기다렸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곳곳을 돌아다니며 어떤 음료를 배달해올까 주문을 받았고 남에게 피해 주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나는 처음 몇 번 거절을 했었다. 하지만 여러 번 그렇게 거절을 해도 시간만 되면 다시 물어왔고 얼마 전부터 나 또한 작게 '카라멜 마끼아또, 휘핑 많이요'라며 속삭였다. 매번 거절을 하다가 뒤에 휘핑 많이, 라는 수식어까지 붙이는 게 꽤 웃겼지만 가끔 누군가에게 부탁하면 휘핑을 빼오길래 나도 모르게 나간 것이었다. 드디어 나온 내 주문에 박지민은 환호가 터지는 표정을 지었고 정말 하늘이라도 찌를 듯 휘핑크림이 쏫아있는 마끼아또를 대령해주었다. 그걸 받아들고 나면 사람이 참 미련하고 바보같이 착하고 순수하다는 사실이 다시금 뇌에 박혔다. 그래서 사무실엔 박지민을 미워하는 사람이 없었다. 오히려 좋아했으면 좋아했지. 가만 보면 사람들에게 이쁨 받는 짓을 곧잘 하는 듯했다. 

이번 또한 자신이 먼저 나섰을 테고 아직 사무실로 들어가지 않아 따로 주문을 할 시간이 없었던 나를 위해 빼놓지 않고 매번 먹는 음료를 사 가던 중인 모양이었다. 먹어보지 않아도 이건 카라멜 마끼아또일 거라고. 목소리마저 통통 튀는 박지민은 굳이 표정을 보지 않아도 웃으며 말하고 있다는 것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넉살 좋게 혜주에게도 아이스티를 하나 꺼내 건네었고 또한 넉살이 좋은 혜주는 실실거리며 그것을 받아들었다. 뜻밖의 배달을 끝마치고 우리에게 꾸벅 인사를 한 뒤 더 이상의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박지민은 식당을 빠져나갔다. 그런 박지민에게 못 다한 감사함을 전하기 위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시선을 쫓아주었다. 식당 문을 열고 나가 문 앞에 서서 하늘을 향해 후- 한 번 숨을 내뱉고 광대가 쏫아오르는게 보일 만큼 활짝 웃더니 다시 씩씩하게 걸어나갔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저렇게 깨끗하고 청량한 사람이 있을까 순간 싶었다. 

 

 


"이야, 너 왜 말 안 했냐, 저런 꽃다운 남자랑 같이 일한다고. 너 회사 어디라고? 아주 미생을 찍고 계셨네." 

 

 


혜주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렸고 이미 밥은 포기했는지 벌써부터 빨대를 입에 꽂고 있었다. 목에 사원증을 떡하니 걸고 있었고 난생처음 보는 남자에게 내가 고맙다며 인사까지 한 것을 보고 쉽게 같은 회사에 다니는 직원인 걸 알아차린 듯싶었다. 근데 무슨 미생이야, 안 봐서 모르겠고. 박지민을 칭찬하는 것은 확실했다. 나만 아니라서 그렇지, 회사 거의 모든 여직원들이 한번씩 고개를 돌려보는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항상 해맑게 웃고 있는 모습이 마냥 아이 같았지만 업무를 보고 있을 때면 급 진지해지는 모습이 멋있기는 했다. 그러니 여직원들의 수다에 박지민은 빠짐없이 등장했다. 그리고 미워할 수 없는 그의 행동 하나하나는 사무실에 행복 바이러스를 통통 뿌리고 다녔다. 대충 등장인물은 아는데 미생이라면 그런 박지민을 임시완에게 빗대는 거겠지. 어쨌거나 둘 다 잘생긴 외모였으니까. 

나도 모른다며 어깨를 한 번 으쓱이곤 앞에 놓인 카라멜 마끼아또를 집어 들었다. 위로 쏫은 휘핑크림을 한번 할짝이면 그 달콤함이 입안을 깨끗하게 치워주었다. 좋다, 좋아. 달콤함에 미소가 지어졌다. 하지만 그 즐거움도 잠시, 나도 곧 들어가야 했고 자리를 정리해야 했다. 그래서 다 먹지도 못 한 마끼아또를 한 손에 쥐고 식당을 빠져나왔다. 하지만 얼른 들어가 봐야 한다는 나를 혜주는 카페로 끌었다. 방금까지 먹은 아이스티는 부족했냐며 질질 끌려가고 있는데 그게 아니라고 답했다. 뻘쭘하고 예의 없게 다른 카페의 음료를 들고 서서 혜주가 주문을 마치고 내 쪽으로 올 때까지 눈을 깜빡이고 있었다. 

 

 


"그거 원래 그 남자 거였을 거 아니야." 

"응?" 

"난 원래 계획에 없던 손님이잖아. 개수대로 샀을 거고, 그럼 자기 먹을 거 포기하고 나한테 줬겠지." 

 

 


아.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되는 구나. 시간을 보니 다시 카페에 들려 하나 채울 여유는 없을 테고 다들 받아들었는데 혜주로 인해 한 사람은 받지 못 할 테니 자신이 희생한 것이라는 혜주의 추측이었다. 하긴 그는 쓴 것을 못 먹는다고 했다. 그래서 항상 아이스티를 먹었지. 탕비실에서도 커피를 들고 오는 것 한 번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보통 아메리카노를 건네는데 아이스티를 건넸던 거라면 확실히 모든 게 딱딱 맞아떨어졌다. 다행히 혜주 또한 아이스티를 잘 먹기도 했고. 그러게 알고 있었으면 처음부터 그냥 거절하고 받지 않으면 될 걸 왜 받아들었냐는 나의 물음에 그건 예의가 아니라고 했다. 그냥 거절하는 것보다 일단 받아들고 서로 주고받는 게 있으면 감동이 더한 것이라고. 역시 대단하다며 엄지를 치켜들고 있으면 금방 나온 아이스티를 받아들고 온 혜주가 그것을 내게 건네었다. 가서 주라고. 그것도 자신이 아무 말 없이 받아들었던 이유 중 하나라고 말했다. 내가 주냐고, 어떻게 주냐고 징징거렸지만 꼭 내가 가서 전해주라고 나를 꾹꾹 밀었다. 한 번 해보라고. 뭐 그렇게 어렵냐고 아무것도 아니라고. '굳이'라는 생각든 이유는 단 두 가지. 몸에 익지 않은 일을 하는 것이 벌써부터 긴장되고 민망하다는 이유 하나. 하지만 그건 한순간만 꾹 참으면 후딱 지나간 일이 되는 것이고. 실은 그렇게 주고 나면 뭐냐며 호들갑을 떨어댈 여직원들이 더 큰 두 번째 이유였다. 가뜩이나 미움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존재가 이쁨은 한 몸에 받고 있는 박지민에게. 으. 극과 극의 사람들이었으니까. 박지민이 내게 살갑게 다가오는 것은 다른 직원들에게도 예외가 없는 일이니 별 말 없이 넘어가지만 이번 건 반대였기에 내 딴에는 걱정이 될 만도 했다. 분명 괜히 걱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럴 가능성이 정말 다분했다. 

입술이 잔뜩 나와 걱정을 하고 있는 내게 혜주는 등을 톡톡 토닥이며 달랬다. 늦지 않았냐며 얼른 들어가라고. 그래, 자기가 먹을 것도 내 친구라고 양보해 주었는데 이미 미움받고 있는 거 더 받는다고 뭐가 달라지겠어. 용기내서 해보기로 한다. 비록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오렌지 주스도 벌써 몇 병 째 그냥 받았고, 내가 사주는 것이 아니라 원래 그의 것을 돌려주는 것이긴 하지만 후의 일을 감수하고 한 번 줘보련다.

 

 

 

 

 

 

 

 

[방탄소년단/김태형] 상처를 치료해줄 사람 어디 없나 04 | 인스티즈 

 

 

 


혜주를 보내고 양손엔 시원한 음료를 나란히 든 채 얼른 회사로 향했다. 아까부터 먹기 시작해 이미 다 먹어버려 얼음만 남아있는 내 음료는 도착하자마자 쓰레기통에 던져 넣었고 남아있는 아이스티만 꼭 쥐고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뭐 하나 착한 일 한 것도 없는데 하늘이 도운 건가. 열리는 엘리베이터 문 앞엔 어디를 가려는 것인지 서류철을 들고 낱장을 팔랑이며 혼자 서있는 박지민이 반기고 있었다. 하지만 잠시 더 생각해보면 그 반대라는 걸 금방 알 수 있었다. 생각도 하지 못 했는데 딱 마주치는 바람에 얼른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야 함에도 몸이 얼어 몇 초 그대로 멈춰있었다. 돌돌 머리를 굴려대면서. 다행히 집중을 하는 듯 박지민 또한 열리는 엘리베이터를 보지 못 했는지 그 앞에 꼿꼿이 서 있었다. 문이 닫히려 하는 걸 열림 버튼을 눌러 다시 열었고 엘리베이터 밖으로 한발 내딛자 박지민도 고개를 들어 나를 확인했다. 

 

 


"이제 오세요?" 

"... 네." 

"먼저 들어가계세요! 저는 이것 좀-." 

 

 


묻지 않은 말에 먼저 대답을 해주며 나를 지나쳐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나 대신 엘리베이터에 올라탄 박지민을 배웅하기 위해 그쪽으로 몸을 돌렸고 언뜻 보인 그의 모습은 이러했다. 벌써 말라버린 머리는 찰랑거렸고 실내는 시원한 지라 접어올렸던 셔츠 소매는 다시 내려와 맨살을 덮고 있었다. 아까의 그 아이 같던 개구진 모습은 어디 갔는지 근무시간이라고 잔뜩 진지해져선 미간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아, 아이스티. 단번에 마주한 그였기에 제일 중요한 걸 잊고 있다가 웃는 얼굴로 문이 닫히길 기다리는 그를 보자 다행히도 다시 떠올랐다. 닫히려는 엘리베이터를 잡기 위해 얼른 버튼을 누르자 그런 내 모습에 박지민은 눈을 똥그랗게 떴다. 

 

 


"뭐 시킬 일 있으세요?" 

"어, 이거." 

 

 


자신도 이 곳에서의 제 존재를 심부름꾼으로 여기는 게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습관적으로 바로 튀어나오는 저 말은 대체 무슨 안타까운 발언인지. 남자에게 무언가을 주는 상황이 처음인지라 어색하고 긴장이 되어 여전히 눈을 맞추지 못 하고 나머지 빈 손을 꼼지락거리며 아이스티를 그에게 건넸다. 얼른 받아 들었으면 좋겠는데 박지민은 멀뚱하게 서서 뻘쭘한 내 손을 허공에 두었다. 

 

 


"아까 아이스티." 

"아, 저 주시는 거예요?" 

 

 


약간은 하이톤의 놀란 말투로 물어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니 그제서야 내가 건넨 아이스티를 받아들었고 스쳐버린 손끝이 살짝 따끔했다. 다시금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려는 듯 가까워졌고 그 사이로 나는 얼른 고개를 살짝 까딱이곤 자리를 피해버렸다. 거 되게 민망하네. 


빠르게 사무실로 들어와 간단하게 다녀왔다며 인사를 하고는 자리로 가서 앉았다. 그거 하나 했다고 얼굴이 후끈거려 손바닥으로 활활 식혔다. 다행히 혼자 있는 박지민이었기에 아무 문제 없이 아이스티를 전달하는 임무를 수행했지만 의외의 상황이 내 몸에 식은땀을 내었다. 그래도 뿌듯하긴 했다. 다른 말이 그의 입에서 나오기 전에 자리를 떠버렸지만 그래도 기분은 나름 좋았다. 실내도 에어컨을 빵빵하게 틀어 시원했고 금방 식어버린 긴장이었기에 바로 회복하고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그 잠시 동안의 단순했던 해프닝이 지나간 후 아무 일도 었었다는 듯 다른 생각 없이 일에만 집중했다. 역시 나는 쉬는 것보단 어떻게든 몸을 굴리고 있는 게 마음이 더 편했다. 가만히 있으면 괜히 잡생각만 나고. 일이라도 하고 있어야 그나마 다른 생각이 나지 않았다. 문득 일하는 중에도 쓸데없는 생각이 떠오르긴 했지만 그건 드문 일이었다. 다른 사람 신경 쓸 겨를도 없이 그렇게 일에만 집중하고 있으니 나는 박지민이 다시 돌아온 지도 몰랐다. 그가 내게 다가오기 전까지는. 

 

 


"감사합니다. 잘 먹을게요." 

 

 


이어폰이라도 꼽았던 것처럼 귀 가까이에서 박지민의 목소리가 들렸고 열심히 움직이던 손은 순간 얼음이 되어버렸다. 서로 업무에만 집중하느라 조용했던 사무실에 큰소리를 낼 수 없어 선택한 방법이겠지만 그의 행동에 나는 놀랄 틈도 없이 몸이 굳어버린 것이다. 나만 들리던 토닥토닥 키보드 소리는 내 손이 멈춤으로써 들리지 않았고 손가락 끝부터 손바닥 끝까지 짧은 시간에 전기가 올랐다. 그런 내 반응에도 박지민은 반쯤 남아있는 아이스티를 흔들거리곤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앉아 나머지 것들을 쪽쪽 들이켰다. 

처음 듣는 꽤 놀라운 저음의 속삭임이었다. 그 소리는 내 안에 있는 모든 세포들을 깨우기에 충분했고 눈치를 살피며 몸을 잔뜩 웅크렸다. 그제야 얼굴이 빨갛게 올라왔고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대체 왜! 나한테 왜 그러는 거야! 마음 놓고 원망을 하고 싶었다. 혼자 얌전히 앉아 일만 열심히 하고 있었는데 그 모든 것이 한 순간에 멈춰버린 것이다. 여전히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사무실에 나만의 소리 없는 절규가 들려왔다. 침착하려 후후- 숨을 내쉬며 속을 가다듬었다. 다음부턴 다신 뭘 주지 말아야지. 다음에 또 이런 일이 있으면 얘는 그런 거 못 마신다고 딱 잘라서 내가 먼저 거절하리라 다짐했다. 

그런데도 뭐가 그렇게 좋은지 살짝 확인해 본 박지민은 방긋방긋 웃으며 콧노래까지 부르고 있었다. 나쁜 사람아. 신이 나 보이는 그 남자와는 다르게 나는 이미 이 다음의 일들이 손에 잡히지 않을 게 뻔했다. 

 

 

 

 

 

 

 

 

 

 

 

 

 

 

 


암호닉

 

통통님 눈부신님 태태님 인사이드아웃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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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 전
노란 딸기
얼른 재업을 끝내야 하는데ㅠㅠ 기다려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벌써부터 떨리고 설렌답니다! 또 한 주가 시작 되었네요 이번주도 힘!
8년 전
비회원235.28
[내2름]이에여!!!
오늘 박지민 뭔가 설렘설렘하네요..ㅎ.

8년 전
독자2
태형이가 마상받은거같아요 ㅜㅜ 박지민 너무귀엽구여..ㅎㅎㅎㅎㅎㅎㅎ바람직한 캐릭터들 사랑합니다 ㅋㅋㅋㅋㅋ다음화때 또 오겠습니당!
8년 전
독자3
태형이는 뭔가 유니크하고 매력이 넘치는 캐릭터지만 이해하기가 힘든 캐릭터이기도 한것같네요ㅠㅠㅠ지민이는 너무 귀엽고 매너남..♡사랑합니다 작가님!
6년 전
독자4
태형이는 어떤사람일까... 아직 파악하기 힘든것8ㅁ8... 지민이 넘나스윗
6년 전
비회원229.22
ㅏ아아앙ㅇ 다시 읽어도 넘나 설레고 오묘하고 재밌는 것 ..☆ 작가님 사랑해요♡♡
6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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