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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담톡 상황톡 공지사항 팬픽 만화 단편/조각 고르기
이준혁 몬스타엑스 샤이니 온앤오프
여내 전체글ll조회 1920l





햇살이 맑은 오후였다. 초여름과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뜨거운 태양볕과 구름 한 점 없는 높다란 파란 하늘. 길가에 심겨진 나무들이 작게나마 잠시 쉬었다 갈 그늘을 만든다. 사람들은 저마다 바쁜 발걸음을 재촉한다. 손으로 부채질을 하며 지나가는 사람들, 자신의 얼굴의 반을 가리는 큰 선글라스를 쓴 사람들, 다리가 다 드러난 짧은 바지를 입은 여자들, 오부 바지 아래 무성한 털을 자랑하는 남자들의 알찬 다리들이 다시 한 번 이제 여름이구나, 실감 시켜준다.   


툭-


보이지 않는 먼지를 일으키며 아스팔트 위로 떨어진 지갑은 분명 자신의 존재감을 나타내는 소리를 냈지만 금방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에 파묻히고 말았다. 덕분에 지갑의 주인은 자신의 지갑이 주머니에서 방금 막 탈출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 듯 그저 뚜벅뚜벅 가던 길을 갈 뿐이다. 주인은 여전히 알아차리지 못한 듯 저에게서 멀어져 가고, 혼자 덩그러니 거리에 남겨진 지갑은 누군가에 의해 더러운 바닥에서 멀어졌다. 툭툭, 지갑 겉에 뭍은 먼지를 털어내리는 크고 흰 손. 



“저기...”



부르던 말끝이 흐려졌다. 크리스는 느린 걸음으로 멀어져 가는 남자의 뒷모습을 지켜보았다. 꿋꿋이 앞만 보는 곧은 뒤통수. 느린 리듬에 맞추어 한 걸음, 두 걸음 내딛는 작은 몸. 그만큼 작은 손. 그리고 한 손에 쥐어진 하얀 지팡이. 더듬더듬, 지팡이가 바닥을 짚는다. 탁탁 거리는 소리와 함께 지팡이 끝과 바닥이 맞부딪힌다. 남자는 이 시끄러운 세상 속에서 혼자 자신의 세상을 걷는 듯 고요하고 묵묵했다. 탁, 탁, 탁 탁- 남자를 제외하고는 온통 세상이 흑빛으로 보인다. 오직 남자만이 살구색, 검은색, 붉은색. 자신의 색깔을 띤다. 스쳐 지나가는 수 많은 사람 속 남자 혼자만이 초록의 빛을 뿜는다. 홀린 듯 걸음을 옮겼다. 남자가 거닌 길을 똑같이 따라 걷는다. 느린 남자와 빠른 자신. 어느덧 둘의 거리는 그리 멀지 않았다. 크리스는 발걸음을 늦추었다. 뚜벅, 뚜벅-. 남자와 같은 느린 속도였다. 가깝지도, 그렇다고 멀지도 않은 거리 3m, 크리스는 남자를 지켜 보았다.



“죄송합니다.”



남자가 걷는 길은 위험했다. 적어도 남자에게 만큼은. 오가는 사람들과 부딪히고 머리를 조아리는 남자와 그런 남자를 경계 어린 시선으로 위아래를 훑는 눈동자. 아는지 모르는 지 남자는 그저 입가에 미소가 완연하다. 여전히 지팡이는 일정한 박자로 소리를 내며 남자의 앞길에 보탬을 준다. 따르릉-. 먼 곳에서 다가오는 자전거 경적 소리. 남자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덩달아 크리스의 발걸음도. 빠른 속도로 다가오는 자전거가 또 다시 따르릉, 경적을 울린다. 마치 다가오는 자전거가 보이기라도 하는 듯 남자가 자전거를 피해 길 한 쪽으로 물러섰다. 때를 맞추어 자전거가 남자의 앞을 지나갔다. 한 번 더 따르릉-. 소리가 점점 멀어진다. 

얼마나 길을 걸었을까. 아마 15분은 족히 넘게 걷지 않았을까 싶다. 잠시 멈추어 남자가 서있는 주위를 둘러본 크리스는 의외의 장소에 고개를 갸웃했다. 남들은 하루에도 몇 번이나 지나칠 곳이지만 흰 지팡이를 손에 든 남자에게는 꽤나 어울리지 않는 장소였다. 버스정류장. '신사중학교'라고 적힌 안내판이 눈에 들어온다. 버스를 타려는 건가? 어떻게? 머릿 속을 가득 채우는 의문을 안고 크리스는 기척을 죽이고 남자의 옆에 섰다. 지금 지갑을 줘야하나? 손에 든 지갑의 반질반질한 가죽을 매만졌다. 그리고 남자를 힐끗 보았다. 



"저기요"



그와 동시에 말을 건네오는 남자에 크리스는 도둑이 제 발을 저리듯 몸을 움찔 떨었다. 분명 고개가 오른쪽으로 약간 틀어진 것이, 제 쪽을 향해 있긴 했지만 자신을 보지는 않았다. 볼 수도 없는 것이긴 했지만. 크리스는 놀란 나머지 목소리를 떨며 대답했다. 네? 겨우 한 단어 였을 뿐인데 끝에는 목소리가 갈라져 삑사리까지 났다. 민망한 기분에 크리스가 큼큼, 헛기침을 했다. 남자는 크게 신경쓰지 않는 듯 큰 표정 변화 없이 말을 이었다.



"혹시 472번 버스 오면 말씀해 주실 수 있으세요?"



생각지 못한 요구였다. 아, 이렇게 버스를 타는구나. 크리스는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죠. 작은 목소리라도 남자에겐 잘 들린 듯 싱긋 웃으며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남자는 다시 앞을 보았고 크리스는 흘끔 거리며 그런 남자를 보았다. 버스를 탈 때 마다 이렇게 묻는 것일까? 불편할 것이다. 크리스는 버스정류장을 둘러보았다. 그래, 이 곳에는 버스가 온다는 것을 알려줄 만한 아무런 장치가 있지 않았다. 지하철은 알려 주기라도 하지.. 크리스가 혼자 생각에 잠긴 사이 472번 버스가 도착했다. 덜컹하는 소리를 내며 문이 열린 것에 크리스가 톡톡 종대의 어깨를 쳐서 버스가 도착함을 알렸다. 감사합니다. 고개를 꾸벅 숙인 종대가 지팡이를 이용해 혼자 힘으로 버스 위에 올라탔다. 종대가 버스에 다리를 올리는 것을 보고 크리스는 종대의 뒤에 가 섰다. 요금을 내기 위해 교통카드 단말기 앞에 멈춰선 종대의 행동이 머뭇거렸다. 



“아, 잠시만...”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목소리. 버스 안의 모든 눈동자가 남자를 향한다. 허겁지겁 주머니를 뒤지고 주머니가 빈 것을 확인하자 어깨에 맨 가방에 손을 넣는다. 가방 안을 헤집는 오른 손. 찾아지지 않는 지 자꾸 잠시만, 잠시만을 반복할 뿐이다. 찌푸린 인상의 버스 운전자가 큰 소리로 헛기침을 내뱉는다. 버스 안이 술렁거린다.   



“두 명이요.”



자신의 바로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남자가 뒤를 돌아본다. 곧 들리는 교통카드 단말기의 삑-하는 소리. 무어라 입을 열기도 전에 자신의 어깨를 잡고 버스 안으로 미는 두 손에 눈이 크게 뜨인다. 엉겁결에 떠밀리 듯 버스 안으로 들어간 남자는 여전히 자신의 어깨를 감싼 손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그저 작은 탄식만 내뱉을 뿐이다. 방향을 잃은 몸이 위태롭게 스텝을 밟는다. 버스가 출발하고 몸이 한 쪽으로 쏠린다. 아마 자신을 감싼 사람이 아니었다면 분명 넘어졌을 터다. 갑자기 자신을 한 곳에 우뚝 세운다. 정확히 위치를 파악하기도 전에 어깨위의 손이 어딘가로 남자의 손을 가져간다. 손에 잡히는 버스 의자의 손잡이. 단단히 손잡이를 잡은 남자가 그제서야 빙그레 웃었다.



“감사합니다.”



보는 사람마저 기분이 좋아지는 싱그러운 미소였다. 누군지는 모르겠으나 고마운 사람이었다. 별 말씀을. 괜찮습니다. 기대하는 대답대신 돌아오는 말은 대답이 아닌 전혀 엉뚱한 말이었다.



“그쪽 아니고.”
“네?”



크리스가 남자의 양 볼을 감싸 쥐었다. 반대쪽으로 돌아갔던 고개가 크리스를 향한다. 코끝이 부딪힐 것만 같은 가까운 거리. 방향을 잡지 못한 눈동자가 먼 곳을 응시한다. 



“이 쪽.”



남자가 환하게 웃었다. 감사합니다, 고개를 꾸벅 숙여 인사를 하고는 보이지도 않는 창밖을 바라본다. 다물린 입술은 여전히 기분 좋은 미소를 짓는다. 입꼬리가 귀여운 남자. 크리스는 말없이 남자의 올라간 입 꼬리를 주시했다. 유유히 흘러가는 한강을 가로 지르고 각자의 목적지를 향해 가는 차들과 함께 달린다. 시시각각 바뀌는 창밖의 풍경과 자신은 그다지 지날 일이 없는 한강의 다리를 지나며 크리스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내가 왜 이 남자를 따라가고 있는 거지? 제대로 고민하기도 전에 생각을 멈추어 버린 건 때마침 나오는 버스 안내방송을 들은 남자가 벨을 눌렀기 때문이다. 

버스가 멈추자 남자가 문 입구에서 천천히 계단을 내려갔다. 내리는 문 바로 뒤에 남자를 세운 건 잘한 일이었다. 크리스는 위태롭게 계단을 내려가는 남자를 지켜보았다. 지팡이에 의지를 한다고는 하지만 꽤나 높은 높이였다. 다행히 남자는 꽤 손쉽게 버스에서 내렸다. 평소 버스를 즐겨 타 버릇한 듯 했다. 남자가 무사히 땅에 발을 내리자마자 크리스도 기척을 죽이고 빠르게 버스에서 내렸다. 고민의 답을 내리는 건 끝을 보고 난 후에 해도 늦지 않으리라. 한 번 숨을 크게 내쉰 남자는 다시 느릿하게 발을 옮겼다. 남자의 모든 행동은 느렸다. 하지만 절대로 답답해 보이지도 둔해 보이지도 않았다. 모든 일이 여유 있는. 시간의 흐름에 쫓기지 않는 사람의 모습이었다. 그저 시간과 함께 흘러가는 사람이랄까. 



“저 계속 따라오실 거 에요?”



갑자기 들려오는 남자의 질문에 크리스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남자는 마치 크리스가 보인다는 냥 몸을 크리스를 향해 돌렸다. 분명 눈동자는 크리스를 지나쳐 먼 곳을 향하고 있으나 꼭 자신을 보는 듯한 느낌에 몸을 옴짝도 할 수 없었다. 꼭 무언가에 묶인 느낌이었다. 크리스는 입을 열 수 없었다. 기분 좋은 목소리가 말을 잇는다. 꼭 새벽 동 틀 무렵 지저귀는 참새들의 울음소리와도 같이 밝은 목소리였다.



“아까부터 따라오셨잖아요. 가로수 길에서부터.”



이런. 크리스는 작게 읊조렸다. 남자는 처음부터 알았던 것이다. 자신에게 버스가 도착함을 가르쳐준 사람과 버스비를 대신 내준 사람이 같다는 것을. 그 사람이 가로수길에서 부터 자신을 쫓아오고 있었다는 사실도. 원치 않게 누군가의 뒤를 쫓았다는 이유로 죄인이 된 느낌이었다. 크리스의 당황한 모습을 눈에 보기라도 한 냥 남자가 하하, 두 눈을 휘었다. 꼭, 너구리를 닮아 있었다.



"계속 따라 오실 거면 옆에 서주실래요? 뒤에서 들리는 발소리는 조금 무서워서요."



남자의 말에 머뭇거리던 크리스는 입술을 안으로 말아 문 후 느리게 남자 옆으로 다가갔다. 크리스의 기척을 느낀 건지 남자가 다시 몸을 돌려 향하던 방향을 보았다. 지팡이 소리와 함께 남자가 다시 길을 걷기 시작했다. 반 박자 느린 시작이었지만 크리스의 발도 같은 길을 걸었다. 침묵이 이어졌지만 무겁지는 않았다. 금방이라도 떨치라면 떨칠 수 있을 정도의 가벼움. 그 가벼움을 떨친 건 크리스였다.



“내가 위험한 사람이면 어쩌려 구요.”
“아니잖아요.”



맞는 말이다. 하지만 꺼림직 한 부분은 남아있었다. 확신에 찬 목소리에 크리스가 입을 다셨다. 



“어떻게 확신할 수 있지?”
“당신 목소리.”



단호한 한마디였다. 생각지 못한 대답에 당황한 크리스는 남자를 돌아 보았다. 오로지 앞만 보는 시선. 곧고 흔들림이 없다. 여전히 웃는 얼굴의 남자가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부드러워요”



그렇게 말하고 남자는 미소 지었다. 언제고 달고 있는 미소지만 입 꼬리가 조금 더 올라간 것은 지켜보던 크리스만이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었다. 그렇게 둘은 길을 걸었다. 타박타박 거리는 발소리와 탁탁거리는 지팡이의 마찰음이 둘의 사이에 가득 찼다. 시끄럽지도, 요란하지도 않은 소리였다. 어느덧 같아진 두 소리의 박자가 둘의 발걸음에 힘을 실었다. 



“한국사람 아니죠?”
“응”
“한국말 잘하네요.”
“할머니가 한국인이라. 같이 살아서 쓸 일이 많았어.”



그리고 다시 침묵. 오고가는 말은 없었으나 어색함은 없었다. 크리스는 처음 겪는 상황에 기분이 묘했다. 길을 가다 만난 처음 보는 사이가 맞았고 말은 통했으나 태어나고 자란 나라도 달랐다. 하지만 남자와의 동행은 생각보다 어색하지도 서먹하지도 않았다. 마치 오래 사귄 친구와 말없이 길의 풀꽃들을 살펴보며 산책을 걷는 느낌. 그래, 그 느낌이었다. 



“한국은 왜 왔어요?”
“뭐, 일종의 여행이랄까”



여행. 남자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대화를 주고받던 둘의 앞에 나타난 오른쪽으로 꺾어지는 코너 길. 크리스는 망설였다. 말을 해 주어야 하나? 크리스가 머뭇거리는 사이 어느덧 둘은 이미 코너를 코앞에 두고 있었다. 크리스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코너가 나오자마자 익숙하게 코너를 돌았다. 정말로 앞이 보이는 건 아닐까. 괜히 그런 생각에 크리스는 남자의 눈을 보았다. 분명 앞을 향하고 있긴 하나 무언가를 담지는 않았다. 집요하게 쳐다보는 시선을 느낀 건지 남자가 입을 열었다. 왜요? 신기해요? 그에 당황한 것 역시 크리스였다. 모든 것을 꿰뚫린 기분에 머쓱해진 크리스가 눈을 반대로 돌렸다. 



“매일 같이 오는 길인데 이젠 익숙해요. 버스 정류장에서 한 10분? 쯤 걸으면 여기에요. 특히 여기는 바로 저 코너 직전에 약간 튀어나온 보도블럭 하나가 있거든요. 그거 때문에 알아요. 거기 걸려서 넘어지는 사람도 많다던데, 저한텐 고마운 거죠. 사실 저도 한 번 넘어진 적 있지만. 곧 신호등도 하나 있어요. 한 2분 17초 걸으면 나오나. 거긴 음향신호기가 붙어 있어서 좋아요. 그 신호등을 건너면 편의점 하나가 있는데 거기 알바생이 진짜 친절해요. 제가 삼각김밥을 자주 먹는 데 참치마요를 제일 좋아하거든요. 삼각김밥 알아요? 아무튼 제가 가면 매일 참치마요만 찾아서 줘요. 착하죠? 그 다음은 오른쪽으로 쭉 걸으면 되는데 그 길엔 시각장애인유도블럭이 깔려 있어서 다니기 편해요. 그렇게 5분을 더 걸으면 우리 집이에요. 우리 집 근처엔 개가 많이 살아서요, 조금만 가까워 져도 금방 티가 나요. 하도 짖어대니깐. 보통 집 앞에 사는 개 울음 소리를 듣고 우리집을 찾아요. 처음엔 개 짖는 소리가 다 똑같아서 남의 집 대문에 열쇠를 꽂고 한참을 왜 안돌아가? 하면서 화낸 적도 있는데 이제는 완전히 구분해요. 우리 집 바로 앞집 개는 다른 개들 보다 목소리가 가는 편이거든요. 엄청 미세하긴 하지만. 그리고 다른 개들은 워얼! 이렇게 짖을 때 걔는 월! 이렇게…. 이런, 제가 너무 말이 많았나요?”



한참 개 짖는 소리를 따라하던 남자는 갑자기 말을 멈추고는 눈꼬리를 축 늘어뜨렸다. 자신이 말이 많았냐며 울상을 짓는 표정에 크리스가 웃음을 띠고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남자에겐 보이지 않는 다는 것을 잊은 행동이었다. 하지만 크리스의 마음은 전해진 건지 남자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덧 2분 17초라는 시간이 흐른 건지 남자의 말대로 정말로 둘의 앞에 신호등이 나왔다. 건너편엔 편의점도 보인다. 알바생이 친절하다던 그 편의점. 둘은 나란히 횡단보도 앞에 섰다. 횡단보도 옆에 설치된 음향신호장치가 눈에 들어온다.



“미국에서 살았어요?”
“아니. 중국”
“와, 다국적이네. 그럼 중국말도 할 줄 알아요?"
"물론"
"그러면 뭐지... 한국어, 영어, 중국어... 3개국어인가? 아무튼 대단하다"



남자는 표정 변화가 다양했다. 보통은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있는 것이었으나 볼을 몇 번 부풀리기도 하였고 입술을 입 안으로 말아 넣기도 하고 삐죽 내밀기도 했다. 하지만 그 중 살짝 팔자 주름이 패이게 웃는 웃음이 제일 어울리는 것이라, 크리스는 생각했다. 신호등의 불이 바뀌었다. 음향 신호기가 요란하게 떨리는 소리를 낸다. ‘패르르’라는 표현 정도가 알맞겠다. 둘은 동시에 발걸음을 옮겼다. 누구 하나의 발걸음이 반 발짝 느리지도, 그렇다고 빠르지도 않는 딱 맞는 속도였다. 패르르, 패르르-. 음향 신호기는 요란한 소리를 낸다. 하지만 이것은 횡단보도 위에서 만큼은 남자에게 위험을 알려줄 눈이 될 것이다. 남자가 갑자기 팩하고 크리스를 보았다. 안타깝게도 잘 못된 곳을 짚은 듯 크리스의 어깨를 향하는 시선.  



“그나저나 말이 짧다?”



행동과 다르게 유순한 말투였다. 굳이 말하자면 응석에 가까웠다. 크리스는 큰 텀을 두지 않고 대답했다.



“싫으면 너도 놔”
“그래”



담백한 대답이다. 뭐가 웃긴지 남자는 푸흐흐-하며 웃었다. 4초라는 아슬아슬한 시간을 남겨두고 횡단보도를 완전히 건넜다. 편의점을 지나쳐 오른쪽을 향해 걸었다. 크리스는 힐끗 편의점 안을 보았다. 남자가 말한 친절한 알바생이 카운터에 앉아 책을 읽는다. 착하게 생겼네. 길 한가운데에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울퉁불퉁한 보도블럭이 깔려있다. 남자는 그 위를 따라서 걸었다. 어느덧 익숙해진 지팡이의 마찰음은 그저 흘러가는 소리와 같이 느껴진다. 아까까지 재잘재잘 말이 많던 남자는 어디가고 이제는 다시 두 입술이 다물려있다. 입술이 예쁜 호선을 그린다. 얼마동안 걸었을까 멀지 않은 곳에서 개 짖는 소리가 뒤섞여 들린다. 남자의 집이 멀지 않았구나, 크리스는 시계를 확인했다. 한 참 양 옆에서 짖는 개들의 울음소리 사이를 걷던 남자의 발걸음이 우뚝 멈춰 섰다. 덩달아 크리스도 내딛던 발을 도로 자리에 두었다. 



"여기야 우리집."



예쁜 벽돌 집이었다. 빨간 지붕의 벽돌 집. 월넛색의 울타리가 마당을 따라 둘러 있었다. 대문의 가는 철을 통해 안이 들여다 보인다. 남자와 잘 어울리는 집이었다. 크리스는 작고 귀여운 집이라고 생각하며 남자를 보았다. 



"데려다 줘서 고마워."



먼저 작별을 고한 건 남자였다. 여전히 초점 없는 눈동자는 꼭 거울 처럼 크리스를 눈에 비추고 있다. 크리스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남자가 자신의 집을 향해 몸을 돌렸다. 열쇠를 찾는 등을 남겨둔 채 크리스는 왔던 길로 다시 걸음을 옮겼다. 발에 쇳덩이라도 달린 듯 발걸음이 무거웠다. 나아가는 데 망설임이 뒤따랐다. 혼란스러운 감정에 머리가 아파왔다. 



“그냥 갈 거야?”



머뭇거리며 내딛던 발걸음을 붙잡은 건 뒤에서 들리는 낮지 않은 목소리였다. 아직 채 열 걸음을 내딛지 못한 발이 그대로 멈추었다. 크리스는 몸을 돌려 남자를 보았다. 



“여기까지 따라와 놓고?”



따져 묻는 듯한 말투. 아랫입술이 조금 나와 있는 것도 같다. 입술을 잘근 거리며 씹던 크리스는 남자에게 한 발, 두 발 다가갔다. 느릿느릿 내딛는 발걸음은 죽은 듯 조용했다. 남자는 여전히 한 곳을 바라본다. 소리 없이 다가간 크리스가 남자의 앞에 섰다. 아직까지 눈치를 채지 못한 듯 먼 곳을 응시하는 두 눈. 먼 곳을 본다고 하지만 결국 눈이 닿는 것은 자신의 하얀 와이셔츠라는 것을 당신은 모르겠지. 남자를 보았다. 새초롬하게 튀어나온 아랫입술, 아까와 달리 축 내려간 입 꼬리. 촉촉한 눈망울. 어미를 잃은 송아지와도 같은 모습이었다. 깨달았다. 크리스는 두 손으로 남자의 볼을 감쌌다. 거기가 아니라,



“여기야”



검은색의 눈동자와 마주쳤다. 먼 곳이 아닌, 정말로 서로의 눈을 들여다본다. 숨결이 닿는 가까운 거리. 온전히 남자의 맑은 눈동자만이 시야에 담긴다. 쌍꺼풀이 진하게 진 눈, 이슬을 머금은 듯 맑은 눈동자. 예쁘게 두 눈이 접힌다. 아, 이제야 들린다. 이 작은 참새와 같은 남자가 마음속에 지저귀는 울음소리가. 짹짹, 막 모습을 내미는 따스한 햇살의 소리였다.






* * *






"안녕!"



굳게 닫혔던 문이 열림과 동시에 밝은 목소리가 인사를 건네온다. 생글생글 웃는 얼굴이 제일 먼저 크리스를 맞는다. 어정쩡하게 현관앞에 서있던 크리스는 안녕, 짧게 인사한 후 들고 있던 까만 봉투를 바닥에 내려 놓은 후 신발을 벗었다. 봉투가 내는 바스락 거리는 소리에 남자가 웃으며 묻는다.



"오! 진짜 맛있는 거 사온거야?"



크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의 집에 오게된 건 전날 갑작스럽게 만들어진 상황이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을 내딛던 크리스를 뒤에서 부른 건 남자였다. 

'내일 4시에 시간 있어? 시간 있으면 우리집에 놀러 와! 물론 맛있는 거 사들구 오는 거 알지?'

그리고는 크게 손을 흔들었다. 차마 대답을 듣기도 전에 뽀르르 대문을 열고 들어가는 남자를 보고 손목의 시계를 한 번 본 크리스는 다시 발을 내딛었다. 4시. 얼마나 좋은 시간인가. 오후 2시의 뜨거움이 가라앉기 시작하는 시간. 발걸음은 가벼웠다. 



"들어와. 거실에 소파 보이지? 거기 앉아"



크리스는 집 안을 둘러 보았다. 깔끔하게 정리가 잘 된 집이었다. 그렇게 크지도 작지도 않은 크기의 남자 혼자 살기에 적당한 집. 집 앞에는 크지는 않지만 정원도 있었다. 두 명이 앉을 수 있는 원목의 그네의자가 바람에 흔들거리던 것이 머리에 떠올랐다. 크리스는 거실의 소파에 앉았다. 아이보리색의 푹신한 가죽소파. 아이보리색 가구와 연두색의 벽지가 조화를 이룬다. 보기만 해도 싱그러운 기운이 가득한 게 남자와 잘 어울리는 곳이었다.



"뭐 마실래?"



부엌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크리스가 고개를 내밀고 부엌을 살폈다. 작은 몸이 발꿈치를 들고 선반을 뒤진다. 어떻게 저 남자가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인가. 저렇게 우리와 다를 것 없이 행동하는데. 크리스는 소파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향했다. 여전히 선반을 뒤지는 팔이 쭉 뻗었음에도 위까지 닿지 않는다. 크리스는 두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그대로 남자를 공중에 들었다. 어? 놀란 듯 높아진 목소리. 가벼운 무게였다. 허공에서 발을 바둥거릴 때는 조금 무겁긴 했지만. 크리스는 그대로 남자를 소파까지 데리고 갔다. 소파에 앉혀 주자 푸핫, 웃음을 터뜨린다. 



"이런 거 처음인데 좋다. 나쁘지 않아."



크리스는 즐거운 듯 웃음을 띤 남자의 옆에 앉았다. 자신의 오른편의 소파 시트가 기울어지는 것을 느낀 남자가 크리스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다리를 소파에 올린 후 완전히 크리스를 향해 몸을 틀었다. 무릎을 세워 다리를 끌어 안은 몸이 꼭 크리스의 반밖에 되지 않을 만큼 작게 느껴졌다. 작은 난쟁이. 크리스는 그를 보며 영화에 나오는 움파룸파족을 떠올렸다. 남자는 그 자세로 소파에 몸을 기댄다. 덩달아 크리스도 소파에 몸을 기대었다. 온 몸에 힘이 빠질 만큼 정신을 잡아 끄는 안락함이 크리스를 덮쳐왔다. 아 맞다. 크리스가 바지 뒷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었다. 응?하며 묻는 남자에게 대답대신 돌아간 것은 고동색의 가죽 지갑이었다.



"지갑. 잃어 버렸지?"
"응. 이거 내꺼야? 네가 들고 있었어? 어제 없어서 얼마나 놀랬는데"



남자는 지갑의 겉을 몇번 슥슥 만지더니 열어 안을 살폈다. 살핀다기 보다는 손으로 훑었다는 표현이 맞는 듯 싶었지만. 돈 가져 간거 아니지? 장난스럽게 묻는 남자에 크리스가 들켰네. 그 돈으로 맛있는 거 사 온 거니까 저것들 다 먹어. 하며 대답했다. 종대는 그저 샐쭉 웃을 뿐이었다. 소파에 기댄 채 곰곰히 기억을 더듬던 크리스가 던지듯 남자에게 말했다. 



"그러고 보니 아직 이름도 모르네."
"그러게. 내 이름은 종대야. 김종대-"
“종대?”
“응. 종대”
“어려워”



하하-. 남자, 아니 종대가 고른 치아를 드러내며 웃었다. 종대, 종대. 어렵나? 혼자 자신의 이름을 불러 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린다. 생각에 잠긴 건지 음, 음... 말꼬리를 흐린다. 안으로 말려들어간 입술이 진한 호선을 그린다. 작은 탄성과 함께 종대가 크리스에게 물었다. 



“그럼 제이디 어때?”
“제이디? 아-, 종대?”
“응. 아니면 첸도 있어. 친구들이 지어준 별명인데 왠지는 몰라.”
“첸? 첸이 더 예쁘네”
“그래? 그럼 첸이라고 불러”



종대가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웃었다. 산뜻하다, 싱그럽다. 그런 초록의 단어가 참 잘 어울리는 남자다. 너구리를 실제로 본 적은 없지만 만약 본다면 꼭 종대와 닮았을 거라 크리스는 생각했다.



"넌 이름이 뭐야?"
"크리스"
"오, 멋지다. 목소리랑 잘 어울려" 



덧붙여 종대는 크리스 같은 남자다운 목소리를 좋아한다고 말했다. 어제 집에 돌아간 크리스가 얼마나 자신의 목소리에 귀기울였는지는 크리스말고는 아무도 모를터였다. 이름을 묻는 것을 시작으로 물꼬가 트인 듯, 둘의 대화는 계속되었다. 서로의 나이를 묻고, 사소한 일상을 묻고 대답했다. 모든 것을 처음 시작하는 둘에겐 풀어야 할 말도, 알아가야 할 사실도 많았다. 



"첸은 몇 살이야"
"나는 스물 둘."
"스물 넷"
"이런. 형이었어?"
"그러게. 미안하지만 딱 봐도 내가 형 같긴 해"
"아쉽게도 난 딱 볼 수가 없거든. 그래도 크리스라고 해도 돼? 크리스가 편해"
"좋을데로"

-

"혼자 살아?"
"응. 부모님은 시흥에 사셔. 시흥 알아?"
"아니. 어딘데?"
"서울 바깥에. 경기도. 다음에 시간 되면 같이 가자."

-

"그때 가로수길에는 왜 온거야?"
"어제? 아- 좋아하는 카페가 있거든 거기에. 도서관 갔다가 매일 들렸다가 집에 와"
"도서관?"
"응. 대치동쪽에 시각장애인들을 위한 도서관이 하나 있거든. 멀긴한데 거기 갔다가 가로수길에서 책 좀 보다가.. 그러다가 집 오고 그래"
"위험하잖아."
"괜찮아. 처음엔 불편했는데 사람들도 조심해 주거든. 이젠 익숙해"

-

"크리스는 뭐 하는 사람이야?"
"나? 음.. 비밀"
"그런게 어딨어"
"일단은 여행객. 그 이상은 프라이버시"
"와- 너무한다. 여행객이면 다시 미국 가?"
"그것도 비밀"
"이런."



크리스의 말에 토라진 듯 종대는 입술을 내밀었다. 그런 자신을 보며 크리스가 어린 딸을 보는 아빠 같은 미소를 짓고 있다는 것을 종대는 상상이나 할까. 그리고 그런 자신이 얼마나 사랑스러운지도. 평화로운 시간이 계속 되었다. 서로에 대해 알아간다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다. 전혀 알 지 못했던 두 사람이 관계를 맺고 그 관계에 속하게 된다는 것. 그렇게 서로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이해하고, 교류하며 딱히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말 없이 각자의 생각에 심취해 있다 하더라도 어색함이 없는 사이가 될 것이다.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는 일이었다.



"크리스는 어떻게 생겼어?"
"나? 잘-"
"뭐야. 뻔뻔한데?"
"진짜니까"



즉각적인 크리스의 대답에 종대는 웃음을 터뜨렸다. 억울하다는 듯 얼굴을 매만지는 크리스의 큰 손에 작은 얼굴이 한 번에 가려진다. 아무리 생각해도 모난 곳 없이 완벽한 얼굴인데 보여줄 수 없다고 생각하니 답답한 마음 뿐이다. 진짜 잘생겼는데... 말끝을 흐리는 크리스에 종대가 또 다시 큰 소리로 웃었다. 그리고 끌어 안고 있던 무릎을 푼 대신에 크리스를 향한 방향으로 무릎을 꿇은 채 자리에 섰다. 



"그건 만져보면 알겠지"



종대가 손을 뻗어 크리스의 양 볼을 감쌌다. 생각지 못한 행동인 듯 크리스가 눈을 깜빡거리며 종대를 올려다 본다. 그것을 알 턱이 없는 종대는 그저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 손가락으로 크리스의 얼굴을 쓸었다. 이마부터 천천히 마치 손 끝으로 보는 듯한 세세한 손길에 크리스가 느리게 뜬 눈을 감았다.



"음.."



엄지 손가락이 이마를 쓴다. 머리카락과 이마의 경계선을 따라 훑어보기도 하고 오른쪽 손으로 열을 재 듯 이마를 감싼다. 



"앞머리 있구나. 이마 예쁘다. 무슨 축구장 같아. 완전 넓어"



종대의 말에 크리스는 앞머리를 매만졌다. 이마를 훑은 두 손의 엄지가 눈썹을 한 번 쓸더니 좀 더 내려와 눈 두덩이에 안착한다. 머리를 감싼채 엄지 손가락을 이용해 눈꺼풀을 쓰는 손길에 크리스가 천천히 감은 눈을 떴다. 이번엔 검지 손가락으로 짙은 쌍커풀 라인을 따라 손톱으로 긋는다. 한 번 더 크리스가 눈을 느릿하게 감았다 떴다. 



"쌍커풀이 진하네. 나도 쌍커풀 있는데."
"예뻐 첸 쌍커풀."
"고마워"



쌍커풀 진 눈꺼풀을 만지던 손 끝이 좀 더 내려와 그늘을 드리운 속눈썹을 훑는다. 검지의 손끝으로 속눈썹을 훑으며 종대가 낮게 중얼거렸다.



"속눈썹."



간지러운 듯 크리스가 눈을 찡긋 거렸다. 따지고 보면 누군가 자신의 얼굴을 이렇게 세세하게 손으로 훑는 일도 처음이었다. 자신 역시 손 끝을 이용해 이목구비를 살펴본 적도 없었다. 처음 느껴보는 낯선 경험에 종대의 섬세한 손길이 더해지니 괜히 마음이 떨려오는 크리스였다. 이번엔 엄지손가락이 눈 밑 애굣살을 더듬었다.



"도톰하다"



네 음절의 짧은 문장이었을 뿐인데 크리스의 두 볼이 잘 익은 사과처럼 빨개졌다. 종대가 이 모습을 보지 못해서 다행이라고 크리스는 생각했다. 눈가에 머물던 손이 위치를 바꿔 코를 매만진다.   



"와! 나 이런 코 진짜 좋아해"



얼굴이 밝아진 종대가 큰 웃음을 머금고 크리스의 콧날을 쓸었다. 종대의 말에 이리저리 눈을 굴리다가 크리스가 되물었다.



"좋아하는 코가 따로 있어?"
"다른 사람들은 모르지만 나는 있어."
"음..."
"보이지가 않으니깐. 손 끝으로 보이는 게 중요하지"



종대의 말을 이해한 듯 크리스가 고개를 두어 번 끄덕거렸다. 정말로 크리스의 코가 마음에 든 듯 종대의 손은 크리스의 코 주위에서 떠날 줄을 몰랐다. 엄지로 콧대를 쓸고 동그랗지만 뾰족한 높게 솟은 코 끝을 만지고. 잘생긴 코. 만족스러운 미소가 종대의 입가에 걸렸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크리스의 기분도 좋아진 듯 작게 미소를 지었다.



"크리스 웃고있지?"



종대가 묻기 전 까지는. 



"푸핫, 크리스 너무 순식간에 정색하는 거 아니야?"



종대는 크리스의 광대를 작게 꼬집었다. 다 티 나-. 크리스는 입을 한 번 다셨을 뿐이다. 머리를 감싸고 있던 손이 크리스의 턱을 감쌌다. 



"오, 브이라인이야. 날렵하다 턱끝"



손바닥으로 턱끝을 부비던 종대가 왼손의 엄지와 검지를 뺀 나머지를 구부려 총 모양을 만들더니 크리스의 턱에 엄지와 검지 사이의 V자로 파진 곳을 대었다. 브이 라인-. 다시 손을 펴 크리스의 볼을 감쌌다. 종대의 엄지 손가락이 크리스의 입술께에 머물렀다. 종대의 눈이 자신의 손 끝에, 크리스의 입술로 향했다. 초점없는 눈이었지만 괜히 부끄러운 마음에 크리스가 눈을 굴려 땅을 보았다. 



"예쁘다"
"..."
"입술"



굳게 다물린 입술이 유난히 고집스러워 보여 좋아하지 않던 크리스였다. 하지만 지금 부터는 조금 다를 지도 모르겠다, 크리스는 생각했다. 한참을 입술을 더듬던 손 끝이 떼어졌다. 크리스는 아쉬운 마음에 입술을 입 안에 말았다. 종대가 크리스의 머리를 부볐다. 까칠까칠한 감촉이 느껴진다. 



"염색했어? 머릿결이 안 좋네"
"Blond"



영어로 답해주는 것에 종대는 오! 하며 감탄했다. 발음 좋다하며 킬킬 거리는 것에 크리스는 이 정도야 뭘, 자랑스럽게 얘기했다.



"금발 연예인만 하는 줄 알았는데. 멋쟁이네 크리스?"



그리고 머리를 한 번 더 부빈 종대는 편하게 소파에 앉았다. 허공을 보며 허밍을 부르던 종대가 다리를 까딱거렸다. 크리스도 다시 몸을 소파에 기대었다. 종대의 귀엽게 말린 입꼬리가 눈에 들어온다. 



"잘 봤어?"
"응. 아주 잘."
"어때?"
"잘생겼어."



종대는 크리스 쪽으로 고개를 조금 틀고 헤헤 웃었다. 저를 보고 있지는 않지만 꼭 자신을 향해 웃어주는 것 같다 생각하며 크리스는 종대가 해준 것 처럼 손으로 종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종대는 손을 뻗어 쉬고 있는 크리스의 오른쪽 팔을 찾았다. 손을 더듬으며 제 팔을 찾아 자신께로 가져가는 것에 크리스가 그것을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종대는 가져간 크리스의 손에 자신의 손을 겹쳐보았다. 종대의 손이 겹쳐지고도 크리스의 손가락이 한참은 남았다. 크리스는 손가락을 구부려 종대의 손톱에 닿게 했다.



"와, 무슨 손이 이렇게 커? 얼굴 빼고 다 큰거야?"



정말로 놀란 듯 빠르게 내뱉는 말에 크리스가 크게 웃었다. 난 진지해 웃지마. 종대가 계속해서 손바닥을 겹치며 말했다.



"크리스는 키도 크잖아. 손도 크고."
"첸은 키가 작지. 손도 작고."
"그래도 나는 귀엽잖아"
"나는 멋있어."
"잘 모르겠는데"



종대가 짖궂게 말하는 것에 크리스가 잡힌 손을 휙 빼내려는 걸 농담이야 하며 종대가 붙잡는 것에 따라 멈추었다. 둘은 그 상태로 한참동안 얘기를 주고받았다. 종대가 잡았던 크리스의 손은 놓지 않았다. 크리스는 어디 살아? 강 너머. 오, 돈 많나 봐 크리스.  손에 땀이 찰 법도 한 데 꿋꿋히 잡고 있는 것이 크리스는 대견하게만 느껴졌다. 그래서 힘을 주어 맞잡아 주었다. 종대가 싱긋 웃었다. 어느덧 시간이 늦어진 것에 크리스가 시계를 확인하고 아쉬운 듯 말했다. 가봐야 할 것 같아. 종대가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쉬워 보이기도 했고 가벼워 보이기도 했다. 들고온 것은 사왔던 먹을 것들 밖에 없기에 집을 나서는 크리스에게는 들린 것이 없었다. 현관을 나서는 크리스를 배웅해준다며 따라 나서는 것에 크리스가 종대를 말렸지만 종대는 괜찮다며 끝끝내 마당까지 따라 나왔다. 가는 철들이 특이한 모양을 만든 문을 열고 크리스와 종대가 마주보았다. 종대가 나즈막히 크리스에게 물었다.



"오늘 어땠어?"
"첸이 더 좋아진 것 같아"



서슴없는 말에 종대가 방긋 웃었다. 한 번 뜸을 들인 후 종대가 화답했다.



"나는, 크리스를 정말로 좋아할 수 있을 거 같아"



마주보고 웃는 둘 사이에 끝자락만 남겨둔 햇빛이 내려앉았다. 아마도 오늘이 지나 내일이 되면 더 뜨거워질 햇빛 처럼 둘의 마음도 그렇지 않을까. 뜨거운 공기를 가로지르고 작게 불어온 바람이 나뭇잎이 바스라지는 소리를 만들었다. 내일 또 볼까? 묻는 크리스에 종대가 작게 고개를 주억거렸다. 기분좋은 웃음 소리가 마당으로, 공기 중으로, 하늘로 퍼져 나갔다.





내 말

갑작스럽게 왜 클첸이냐 하면 클첸은 내 사랑이라... 가 아니라 원래 몇 주 전부터 쓰던 건데 길어져서..

절대 이건 상하로 나눠질 내용이 아니었는데 분량 조절 실패로..

제목 진짜 고심하다가 지은건데 어때요?

진짜 생각이 안나더라. 블라인드 하려다가 말았어.

종대 진짜 사랑스럽다 내가 데려가고 싶네

근데 아직 결말을 못 정했다. 고로 하는 언제 나올지 모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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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재밋어요..ㅜㅠ문체도좋거ㅜㅜㅠㅠ풋풋해요!
10년 전
독자1
달달하네요ㅠㅠ 저이런거 완전좋아해요♥
10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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