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줘 ; prologue
"정신이 좀 드세요?"
"......네?"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건 내 방과 대조될 정도로 하얀 천장이었다. 그리고 코 끝을 찌르는 소독약 냄새가 풍겨 왔다.
고개를 돌리니, 시간이 꽤나 지난 건지 링거액의 양이 얼마 남지 않은 채 계속해서 내 몸 안으로 흘러들어오고 있었다.
분명히 여기는 병원이었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곳. 여기에 내가 왜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며칠 째 안 일어나셔서 보호자 분이 걱정 많이 하셨어요. 한 숨도 못 주무시던데."
"......보호자요?"
아무도 없는데.... 병실 안에 사람이 몇 명 있었지만, 그 안에 내가 아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의사의 말에 미간을 좁히고 주위를 다시 둘러 봤지만 아무도 없었다. 의아하단 표정을 짓자 의사가 당황스럽단 표정을 덩달아 지어 보였다.
정말 아무도 없다니까요.
"왜 그러세요?"
"아무도 없어서요...."
"......네?"
머리가 띵하고 아파 왔다. 정말 와야 할 사람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 사람'은 여기에 없어요.
'그 사람'이라면 와야 할 텐데, 오지 않았단 말이에요. 나에게 보호자라면 그 사람밖에 없을 텐데, 사방을 둘러 봐도
'그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불안함 때문인지, 답답함 때문인지, 갑자기 눈물이 고였다. 아무도 없어요, 정말로.
"잠깐 부승관 좀 불러와 봐."
"......네."
부승관? 그 석자를 듣자마자 어딘가 모르게 머리가 아파 왔다. 부승관... 어디서 많이 들어 본 이름인데.
누군가의 친구였던 것 같은데.... 이윽고 숨을 헐떡이며 부승관이라는 남자가 병실 안에 들어왔고, 도대체 뭐가 문제냐는 듯 나와 의사를 번갈아 보았다.
둘이 무어라 속닥대는 동안, 내 머리는 점점 더 띵해졌다. 분명히 아는 사람이었는데....
"어, 세봉 씨가 여긴 무슨 일이에요. 다쳤어요?"
"......네? 네."
"보호자 분이 여기에 안 오셨다구요?"
"네, 정말로 안 온 것 같은데...."
"그럴 리가 없는데."
부승관이라는 남자가 적잖이 당황한 표정으로 머리를 연신 쓸어 넘겼다.
그와 동시에 갑자기 내 침대 옆에 놓여 있는 간이 침대에서 한 남자가 벌떡 일어났다.
"아, 부승관. 시끄러워."
"저....... 누구세요?"
"......네?"
잠을 많이 자지 못 한 건지, 다크써클이 진한 그 남자가 부스스한 머리를 쓸며 매섭게 부승관을 노려보았다.
손에 힘이 들어간다 싶었는데, 알고 보니 내 오른손이 그 남자에게 잡혀 있었다. 생전 모르는 사람에게 손이 잡혀 있었다는 사실에,
황급히 손을 뺐다.
"......세봉 씨, 일단 몸에 이상은 없어요. 근데,"
".......네?"
"이따가 저 따라오셔야 할 것 같은데."
부승관이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무엇보다 지금 내 심기를 가장 거스르는 건 '그 사람'의 부재였다.
분명히 난 '그 사람'의 존재를 알고 있는데, 왜 누군지 떠오르질 않는 걸까. 떠올릴 수록 점점 더 흐릿해져 가는 그 사람의 잔상이었다.
아까 내 손을 잡고 있었던 남자는 다른 사람의 보호자였는지, 멍하니 몇 분을 허공만 응시하고 있다가 홀연히 사라졌다.
뿌리 염색까지 노랗던 그 머리가 인상적이었다. 꽤나 인상적이었는지, 골이 아파 왔다.
"본인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요?"
"......네?"
"본인 이름, 생일, 좋아하는 음식은 뭐였고, 어디 살고, 가족관계는 어떻고. 연인의 유무는. 이런 거요."
"다 알아요. 모를 리가 없잖아요."
이름은 김세봉, 나이는 스물 다섯. 당근을 못 먹고. 어두운 곳을 싫어하고....
"애인은요.... 있었던 것 같은데."
"있었던 것 '같은' 건 뭐에요. 있으면 있는 거지."
"그게요...."
기억을 더듬을 수록 아무 것도 기억이 안 났다. 다른 건 다 기억이 안 나는데, 어제의 일이랑,
'그 사람'만 기억이 안 나요.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 봐도 점점 더 새하얘지는 기억의 파편들에, 그냥 고개를 떨구었다.
"그게, 기억이 안 나요......."
"......어제 일이랑, '그 사람'을 기억을 못 하겠다는 거에요?"
"네. 그게 기억이 안 나요...."
"......."
"소중한 사람이었는데, 기억이 안 나요...."
"나는 기억 나죠."
"기억 나요. '그 사람'이랑 친했던 사이였잖아요."
"......하."
부승관이 머리를 연신 헝클이더니 끝내 한숨을 내쉬었다. 도무지 믿기지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정말 다른 건 다 기억이 나는데, '그 사람'만 기억이 안 나요. 누구였는지, 하나도 기억이 안 나요.
이름도, 생김새도, 하다 못해 목소리도.
"해리성 기억상실증이에요."
"......네?"
"기억의 극히 일부가 상실된 것. 그런 걸 해리성 기억상실증이라고 해요."
"......."
"일단 상담 날짜 잡고 가요."
"......."
"찾고 싶을 거 아니에요."
"......"
"기억 속의 그 사람."
다시 병실로 돌아왔다. 기억 상실증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하늘이 무너지는 듯 했다.
'그 사람'은 나한테 소중한 사람이었을 거다. 모든 걸 잃은 기분이었다. 허한 마음에 한숨을 내쉬며 누가 올려놓았는지 모를 가방을 챙기다,
그 옆에 나란히 놓여 있는 주인 없는 핸드폰을 발견했다. 누구 거지. 나를 뒤따라온 부승관에게 알 리가 만무하겠지만 물어 보았다.
"이거 누구 건지 아세요?"
"모르죠, 제가 어떻게 알아요."
"병원에다 맡아 놓으면 주인 분이 찾아가시겠죠?"
"글쎄요. 병원에다가 뒀다고 기억 할까요. 나중에 주인이 찾고 싶으면 따로 전화해서 가지러 오겠죠. 그냥 갖고 가세요."
보통은 맡아 주지 않나. 어딘가 모르게 의뭉스러웠지만 돌려 줘야 하긴 할 것 같아서 그냥 내 가방 안에 집어 넣었다.
남의 핸드폰을 엿보는 건 좋은 행동은 아니지만, 무심코 잠금 버튼을 누르자 맞잡고 있는 손이 보였다.
꽉 잡은 두 손은, 서로 놓치 않으려는 듯 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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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기작으로 돌아왔습니다!
과연 '그 사람'은 누굴까요. 이 글이 끝날 때까지 '그 사람'이 누군지 추리해 나가도록 합시다!
누군지 중간에 알아채더라도 스포하시면 안 되어요!! 마음 속에 담아두기.
아 그리고 프롤로그가 좀 어두워서 그렇지..마냥 어두운 글은 아닙니다!^0^
감히 이 글의 발림포인트를 알려 드린다면 곧 업뎃될 1화부터 나오는
금발머리남의 치인덫 백인호씨같은 데레...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이 글도 잘 부탁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