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다들 먼저 퇴근해. 난 혼자서 할일 있으니까.
혼.자.서. 할 일이니까 괜히 뭐라도 하겠답시고 눈앞에서 거슬리지 말고 빨리들 사라져줘.
밤 11시가 다되어 일이 끝난 모두의 표정에는 정말로 집에 가서 쉬고싶다는 마음들이 여실히 드러나있었다.
사실 일이 많이 남아있기도 했고 상사가 남아서 일을 한다는 것이 다들 신경쓰이긴 했지만,
완벽주의인 그를 따라 같이 밤샘 야근 했다가 아침 출근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감사하게도 방해가 되니 빨리 꺼져달라는 상사가 그 순간만큼은 예뻐보였다.
민규를 비롯해 다른 직원 모두 녹초가 된 상태였지만, 지훈의 퇴근 명령에 올라오는 입꼬리를 숨길 수 없었다.
그럼 저흰 진짜 갑니다 형님. 수고하세요!!
"수고하십시오!"
직원들의 인사에도 귀찮다는 듯 손을 휘휘 내저어 보이며 지훈은, 발길을 돌려 탕비실로 향했다.
아 깜짝이야. 뭐야? 당신.
이제 끝나신거에요? 하루가 다 갔네요. 당신 한번 보려고.
여기, 어떻게 들어왔냐고.
말 끊는 건 여전하시네.
일단 전 전원우 일러스트레이터 친구고. 걔 대신에 아까 당신 전화 받은 제갈량입니다.
여기는 민.. 민규씨? 통해서 들어왔어요.
순영에게 상황설명을 모두 들은 지훈은 경계심은 풀었지만,
귀찮은 듯 약병에서 약을 한 알 꺼내먹으며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아, 네. 용건은요?
커피랑 약. 같이 먹으면 안돼요. 제 친구랑 병실 돌려쓴다는 말 헛말 아니셨나 보네. 벤제드린 각성제?
미쳤어요? 지금 이거 먹고 일하는 거에요?
정수기 위에 올려뒀던 약병을 순영이 가져가자
지훈은 커피가 들린 오른손은 그대로 잡힌 채, 신경질 적으로 순영의 손에 있던 약병을 낚아챘다.
댁이 뭔 상관이세요. 이거 안 놔?
눈 앞에서 사람이 죽는 거 방관하면. 자살 방조죄인거 알죠?
안 놔?
순영은 매섭게 노려보는 지훈의 협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히려 지훈의 팔목에 힘을 줘 커피잔을 뺏어 들었다.
이건 제가 마시는 걸로.
엄청 쓰게 드시네요. 저 쓴 거 굉장히 싫어하는데. 왜냐면 쓴걸 마시면. 쓰거든요.
순영이 자신의 커피를 빼앗아 단번에 마셔버리고는 커피가 쓰다고 투정을 부리자.
지훈은 '뭐 이런 미친새끼가 다있어.' 라는 생각을 온몸으로 표출하며 순영을 쳐다봤다.
볼 일 끝났으면, 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