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자. 치킨 사왔는데, 치킨이나 먹어요.
아, 그리고 아까 정신없어서 통성명도 못 했네요. 저는 김민규! 입니다. 성함이 어떻게...?
권 순영입니다.
지훈이 다시 볼 사이도 아닌데 통성명은 무슨.. 이라고 혼잣말로 투덜댔지만,
민규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
순영씨도 같이 드세요! 괜찮죠 형?
어차피 많이 사왔는데. 음식을 남길 수는 없잖아요
지훈은 알아서하라는 듯 말을 그만 두었고. 민규는 뭐가 그리 신난지는 모르겠지만, 활짝 웃으며 포장한 치킨을 풀기 시작했다.
한편, 계속 원우를 노려보던 순영이 입을 뗐다.
아침엔 출근한 사람 맥 빠지게 하더니, 밤엔 퇴근한 사람 불러다 열일하게 하네.
아침이든 밤이든, 사람 일 더시키는 능력이 있으시네요?
죄송합니다.
저기요. 얘가 일부러...
순영이 발끈하자, 원우가 순영의 손을 누르며 고개를 저었다.
순영은 여전히 마음에 안든다는 눈치였지만 어쩔 수 없는 듯 몸을 의자에 기댔다.
순영과 지훈, 원우 사이에서 눈치를 보던 민규는 원우에게 작게 소곤거렸다.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원래 말 저렇게 해요.
그리고 더 작게 원우 귀에 대고 말했다.
또라이에요. 좀.
민규가 원우의 귀에 대고 소곤거리자, 자료를 보고 있던 지훈이 신경쓰인다는 듯 슬쩍 눈으로 민규를 쳐다봤고.
지훈과 눈이 마주친 원우가 괜찮다는 듯 민규에게 웃어보이자. 민규도 활짝 웃으며 원우에게 맥주 캔을 내밀었다.
그리고 한시도 원우가 내민 자료에서 눈을 떼지 않고 점 하나까지 꼼꼼히 보던 지훈에게는 앞에 닭다리 하나를 내밀었다.
싸늘했던 분위기를 민규가 가볍게 풀어주자, 다들 민규가 건넨 닭다리와 맥주 한 캔씩을 들고 먹기 시작했다.
넌, 너가 여기 왜있어.
너 때문에. 난 됐고 넌 어떻게 된 건데. 열은.
몸을 일으켜 자신의 손을 원우의 이마로 가져가는 순영의 행동에 원우는 화들짝 놀라 몸을 뒤로 뺐다.
주사.. 주사.. 맞았잖아. 괜찮아.
밥은. 먹었어? 너 정신 차리자마자 이거 그리고 들고 온 거냐?
원우가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순영의 시선을 피하자 순영은 걱정 반, 어이없음 반으로 원우를 쳐다보며 말했다.
진짜 전원우... 너 나 엄청 고생시킨다?
원우와 순영이 어떻게 된건지 상황을 따지고 있는 한편 지훈이 자료를 살피느라 치킨을 먹는 둥 마는 둥 하자.
민규가 어쩔 수 없다는 듯 탕비실 찬장에서 포크를 꺼내 치킨을 찍어 먹여주거나 컵에 음료를 따라 지훈에게 내밀었다.
민규의 이런저런 챙김을 받던 지훈은, 문득 손에 들고 있던 컵과 자료를 내려놓고. 민규를 보면서 걱정된다는 듯 말했다.
야. 안 피곤해? 쉬라고 들여보냈더니, 왜 또 여기서 고생이야.
아 완전 피곤하죠. 죽을 것 같애요. 그러니까 형, 여기서 치킨만 먹고 집에 가서 잡시다.
말뿐인 게 아니라, 민규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잠들 듯 정말 피곤해 보였다.
지훈은 졸려 죽겠다며 찡찡 대는 민규를 빤히 쳐다보다가, 시선을 돌려 원우에게 자료를 내밀었다.
민규는 그런 지훈을 보곤 어흑. 하는 단말마의 외침과 함께 탁자 위에 엎드렸다.
다 봤는데, 전체적으로 나쁘진 않네요.
여기 이 부분은 좀 밝게. 여기는 선을 연하고 색을 강하게. 여기는 채도 좀 낮추시고 명암 55정도... 여기 글씨는....
순영은 치킨을 뜯으며 지훈과 원우가 일하는 것을 흥미롭게 지켜봤다.
원우가 누군가와 일하는 모습도 바로 좀 전에 자신에게 빽빽 화를 내던 지훈이 차분히 말하는 것도 순영의 눈에는 굉장히 새롭게 보였다.
순간 잠이 든 건지 엎드린 채로 미동도 없는 민규까지 말이다.
지훈의 길고 꼼꼼한 피드백이 막바지에 이를 무렵, 민규는 피곤했던지 코까지 골며 자고 있었고.
치킨으로 대충 주린 배를 채운 순영은 이제는 아예 턱을 괴고 그 둘을 보고 있었다.
빤히 보는 순영에도 아랑곳 않고 설명을 이어가는 지훈과는 달리 원우는 순영의 시선이 신경 쓰였던지,
지훈이 자료에 집중한 사이사이, 흘긋흘긋 순영의 눈치를 봤지만 말이다.
그럼, 내일 오후 2시까지 이 부분만 수정해주셔서 다시 보내주세요,
나머지 부분은 계속 회의 해하면서 차차 수정해 나가죠. 나흘 후에 촬영이니까...
촬영 당일도 화면 맞춰 봐야하니까 나오시구요.
#10.
순영과 원우를 문까지 안내하고, 탕비실로 돌아온 지훈은 큰 덩치로 한껏 몸을 구부려 낮은 식탁에 불편하게 잠든 민규를 발견했다.
민규 앞에 앉은 지훈은 턱을 괴고 자는 민규의 모습을 빤히 바라봤다.
왜 여기서 이러고 불편하게 누워있냐..
지금 누구 때문에 다 들여보내고 혼자 일하고 있는데.
그렇게 한참을 잠든 민규를 바라보다가,
지훈은 자신의 사무실에서 담요를 가져와 민규에게 덮어주고는 민규 옆에 앉아 다시 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가지 않아 지훈은, 자신의 약병이 순영에게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