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nash - i hate u, i love u
작은 약국을 운영하고 있던 평범한 약사 너탄은 언젠가부터 매일 밴드만을 사가는 남자를 보게 돼. 어딜 다친거냐고 물어보는 너의 물음에도 그저 밴드, 이 두글자만 남겨두고 너탄만 바라보다가 떠나는 그 남자가 기다려질 즈음. 약국문을 닫고 퇴근하려는 밤, 피를 흘리며 약국앞에 기대어있는 그 남자와 다시 마주치는 거야. 놀란 너탄은 남자를 부축해 약국안으로 데리고 들어가고, 투명한 약국 유리문을 블라인드로 다 가려버리고 치료해줬어. 너는 피범벅이 된 남자의 모습에 놀라서 손을 벌벌 떨면서 정리해둔 약들을 다 넘어뜨렸어. 코를 비집고 들어오는 비릿한 피의 내음과 커다란 상처를 보니 덜컥 두려운 생각에 눈을 꼭 감아버려. 그런 너탄의 벌벌떠는 손을 잡은 김태형이 미안. 난 괜찮으니까, 하고 널 달래면 좋겠다. 그럼 울음이 터진 너탄은 뭐가. 뭐가 괜찮아요. 하고 펑펑 울어버렸어. 서툰 솜씨의 응급처치만을 받은 태형은 놀라 지친 네가 잠든 순간에 약국을 나갔으면 좋겠다. 날이 밝아 눈을 뜬 네가 널부러진 약들과 담요속에서도 그가 보이지 않아 불안했으면, 이때부터 너탄의 마음속엔 작은 트라우마가 생겼으면 좋겠다. 내가 잠들면 그남자는 떠나. 김태형과 약국여자가 밀접한 관계란걸 알계된 상대조직이 너탄 납치했으면. 그리고 태형이네 조직에 무리한 요구를 하는거야. 너탄을 인질로 잡고는. 당연하게도 너탄을 구해낸 태형은 그 뒤로 약국대신 제 집으로 너를 들였어. 이미 신분이 노출된 너탄은 그의 약점이라고 알려질게 뻔했고, 실제로도 그랬고. 그럼 위험해질 테고. 이미 한번 당해 보았기에 꽁꽁 감춰두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납치사건으로 무너진 그의 조직을 정리하느라 그가 너무나 바빠졌어. 그래서 너를 혼자두는 시간이 많아지는 거야. 그녀를 볼 수 있는 시간은 모두 잠든 깊은 밤, 보고싶었던 그녀마저 지쳐 잠에든 밤. 자기가 자고 있을때만 절 보러오는 태형이 때문에 수면장애를 앓게 된 너탄이 보고싶어. 그를 기다리는게 너무나 익숙해져서 수면제없이는 잠을 못자는 너탄이 보고싶어. 마음 둘 사람 하나도 없는 큰 저택에 홀로 그를 기다리는 네가 점점 외로워졌으면. 그리고 그 외로움과 불안함이 절정에 다다랐을 때, 그를 보고싶다는 마음에 비틀린 선택을 하는 너탄이 보고싶어.
#1
또다.
빨간 십자표시가 그려진 유리문이 열리면 딸랑- 하고 울리는 작은 종소리가 들리고,
“밴드”
검은 옷차림을 하고는 매일 반창고를 사러 오는 남자.
그럼 나는
“어딜 다치셨어요?”
하곤 짧은 응대를 내어 놓는다.
내 질문에도 그 남자는 아무 말도 없이 내 앞을 지키고 서있고
몇분간의 정적에 괜히 이상한 기분에
“2000원입니다.”
손가락을 감는 작은 반찬고를 그에게 건내면.
어느덧 내 앞에는 천원짜리 두장과
딸랑- 하고 울리는 종소리.
그리고 유리문 넘어 보이는 그의 뒷모습.
언젠지도 모를 당신과의 옛 기억.
#2
이미 여러 종류의 반창고로 가득찬 바구니에 오늘 사온 작은 밴드를 던져 넣는 그를 지켜보던 남자가 말했다.
“반창고는 왜 이렇게 많이 사셨어요.”
“필요할 때 쓰려고.”
“이런건 여기 의료팀에도 많은거 아시잖아요.”
정곡을 찌르는 날카로운 남자의 말에 입을 다물어 버린 그는 탁자위에 검은 마스크를 내려놓았다.
검은 가죽장갑, 머플러, 코트까지 모두 벗어 걸어놓은 후에야 그의 자리에 앉아 밀린 서류를 처리하기 시작했다.
대답없는 그의 모습에 어이없다는 듯이 한숨을 쉰 정국이 다시 그의 앞에서 말을 이었다.
“요즘 저쪽이 심상치 않아요. ”
우리 거래처들과 접근하고 있다는 정보들이 들어오고 있어요. 몇 군데는 벌서 미팅을 끝냈다는 소리도 있구요.
태형이형. 지금 이거, 그렇게 쉽게 넘어갈 일 아니에요.
그새끼들이...
"끊어내면 될 일이야."
“....형...누구 만나요?”
“신경 안쓰게 해요.” 형도 잘 알꺼 아니야. 위험한거. 굳은 표정이 정국이 말했다.
#3
“.......왜 그랬어.”
말해봐. 들어줄테니까.
그가 화를 참으며 내게 말했다.
남아있는 약기운으로 침대헤드에 기대 저를 바라보는 내 모습이 답답하다는 듯, 제 이마를 커다란 손으로 짚으며 날 쳐다보는 그가 미우면서도 반가워서.
“이제야 오네.”
당신은 꼭,
이렇게 상황을 최악으로 만들곤, 내게 몰아부치잖아. 왜그랬냐고?
다, 당신 때문인데.
“네가 몰라서 그런건 아닐테고.”
시위하는거야?
응 맞아요. 일부러 그랬어.
전엔 약사였는데 이렇게 기본적인 걸 왜 모르겠어.
몽롱한 기분에도 피식하고 웃음이 새어나왔다.
왜 모르겠어요. 알고도 그랬어. 일부러 그랬어. 한번에 고용량으로 복용하면 위험한 약인데, 그래도 삼켰어. 왜냐고?
“내가 미치는 꼴이 보고싶었어?”
아니, 난 그냥 당신이 보고싶었는데.
아 어쩌면,
그런 네가 미치는걸 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네.
“내가 널 어떻게 해야 돼? 김탄소.”
그가 어지럽게 감기는 내 눈을 바라보며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뭐 때문에, 이렇게 고집을 부려.”
고집, 투정, 시위, 발악.
다 맞는데. 다 맞아요. 근데.
“.....당신은 내가 자고 있을때만 옆에있잖아.”
약이라도 먹어서 잠에 들어야, 당신이 올것같아서.
당신이 먼저 시작했어.
“내 옆에 있어줘요. ”
가지말고. 내가 깨어났을 때도 옆에 있어줘.
날 이렇게 만든건 너야.
그러니까,
그럴게.
옆에 있을게.
네가 자고 일어나도, 난 네 옆에있을거야.
지금처럼, 내 옆에 있겠다고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