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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탄소년단/김태형] 상처를 치료해줄 사람 어디 없나 14 | 인스티즈 

 

 

 

 

 

 

 

 

 

 

 

"먹고 싶은 거 있어?" 

"딱히...." 

"음... 그럼 뭐 먹지." 

 

 

 

괜히 남들 눈치가 보였다. 지나가는 사람 중 우리 둘을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나 혼자만 힐끔힐끔 주위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와 처음 나란히 걷는 것도 아닌데 그때는 지나가는 사람들이 별로 없었지만 뭐 중요한 거라고 급격히 많아진 사람들이 신경 쓰였다. 김태형 하나만 신경 쓰기도 바빠죽겠는데 다른 사람들 눈치까지 보려니 그의 말이 제대로 들어올 리가 없었다. 남자와 나란히 많은 사람들 속을 걷는 것이 처음이라 그런 듯싶었다. 나 자신도 이 상황이 어색하고 생소한데 다른 사람들 눈엔 어떻게 보일까 그게 자꾸 신경 쓰였다. 자기가 어색하고 떳떳하지 못 하면 그게 다른 사람 눈에도 보인다고, 혹시 이상해 보이진 않을까 욕 하진 않을까. 괜한 걱정인 것을 알지만 마음대로 생각이 바뀌지 않았다. 그에게 여자친구가 있다는 사실도 한몫했을 것이다. 콕콕 불륜이라도 저지른 것처럼 양심이 찔렸다. 이래서 잘못을 하고는 못 산다고, 혹시 혜주에게도 들키지 않을까 심장이 쫄였다. 물론 혜주에게 김태형과 단둘이 밥을 먹으러 간다는 것은 어느 힌트라도 주지 않았다. 전날 발 한번 떼지도 못 하게 꽁꽁 가둬놓을 것 같아서.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여러 사람 눈치를 봐야 하는 건지 한숨이 푹푹 나오기는 했다. 

 

 


"아, 맞다." 

"네?" 

"왜 내 우산은 안 줘?" 

 

 


나름은 가만히 있는다 치고 힐끔힐끔 주위를 둘러보고 있으면 그런 내게 김태형이 말을 걸어왔다.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갑자기 정신이 깨서 그런지 깜짝 놀라며 그를 올려다보자 그 또한 나를 내려다보며 내게 물었다. 꽤나 가까운 거리라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 같길래 티 나지 않게 천천히 고개를 다시 내려 앞을 쳐다보았다. 

 

 


"아... 우산." 

"나 그거 되게 아끼는 건데." 

"이따 집 가면 바로 줄게요." 

 

 


우산. 그날 편의점 앞에서 김태형과 마주하고 함께 집으로 향하며 그는 계속해서 우산을 펼친 채 길을 걸었다. 비도 오지 않는데 이제 그만 접으라고 하면 싫다며 계속 버텼다. 다른 사람들이 쳐다본다니까 자기는 그 사람들 모른다며 이상한 소리만 늘어놓았다. 그래서 그냥 알아서 하라고 놔두고 걸었더니 별안간 자기와 더 가까워지지 못 해서 그러는 거냐고 내게 물었다. 설마. 깜짝 놀라 아니라고 해도 실실 웃으며 계속해서 물어댔다. 그리곤 그때와 같이 날 또 자신 쪽으로 당기려는 듯 손을 내 어깨로 가져오다 순간 멈칫하더니 주먹을 꽉 쥐며 다시 내려놓았다. 그날 내가 자신을 밀어버리곤 빗속을 마구 걸었던 것이 생각 난 걸까. 그런 그의 모습에 슬쩍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나도 그날이 생각나 더 이상 그를 보지 않고 고개만 푹이고 걸으니 귀에 그의 목소리가 다시 꽂혔다. 니가 와, 하고.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손사래를 치고 싶었지만 잔뜩 시무룩해진 그의 표정이 너무나도 미안해서 그럴 수가 없었다. 그래서 쭈볏쭈볏, 그의 우산으로 들어갔다. 우산 끝이 몸에 닿을 정도로 멀찍이 떨어져 있기는 했지만. 꽤나 부자연스러워 보였을 테지만 내겐 그것이 최선이었다. 최대한 노력한 거라고. 혼자도 아니고 남녀 둘이 나란히 비도 오지 않는 쨍쨍한 날씨에 우산을 펴고 걸으면 더한 사람들의 시선을 받을게 뻔했지만 난 거절하지 않았다. 그 사람들의 눈빛을 받으며 걸었지만 난 꾹 참았다. 전날 내가 했던 일들에 대한 나름의 사과라며. 

 

 


"근데 너가 가지고 있어." 

 

 


방금까지 아끼는 것이니 뭐니 하며 왜 안주냐고 했으면서 그건 또 무슨 소린지 그를 올려다보며 눈썹을 씰룩였다. 

 

 


"그래야 또 보지."

 

 

 

 

 

 

 

 

 

 

 

[방탄소년단/김태형] 상처를 치료해줄 사람 어디 없나 14 | 인스티즈 

 

 

 

 

상처를 치료해줄 사람 어디 없나 14 

 

 

 

 

 

 

 

 

 

 

 


또 얼굴이 벌겋게 올라오는 것 같아 입을 꾹 다물고 고개만 더욱 푹 숙였다. 왜 그러냐고 대체. 가뜩이나 걷는 내내도 긴장이 되어 가방을 잡고 있는 손하며, 주먹을 쥐고 있는 손하며 벌써 땀에 젖어 축축해졌는데 말이다. 자꾸만 그는 나를 긴장시켰다. 내 위로 그는 실실 웃는 듯했지만 나는 꽉 다물린 입으로 얼굴만 붉히고 있었다. 참도 짓궂어. 내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고 날 놀리는 게 분명하다. 

 

 


"그날은, 미안했어." 

 

 


이내 그의 입에서 그날의 일이 꺼내진다. 나도 언제쯤 말을 꺼내야 할까, 뭐라고 꺼내야 할까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말이다. 그가 먼저 내게 미안하다며 사과를 해주었다. 

 

 


"나도 모르게 화가 나서." 

"...." 

"갑자기 너무 화가 나서, 누를 수가 없었어." 

 

 


자기가 화날게 뭐야. 그때도 말했지만 내가 집으로 남자를 데려왔다고 해서 김태형이 내게 화를 낼 자격은 없다. 그런 나의 말에 멋대로 키스까지 퍼부으며 없는 자격을 만들려고 했지만 그는 아직 내게 좋아한다고 해주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그의 옆엔 멀쩡히 여자친구도 있었으니. 그런 그에게 왜 화가 났냐고, 왜 키스를 했냐고 물어봐도 되는 걸까. 날 좋아하냐고, 내게 관심이 있냐고 물어도 되는 걸까. 처음 김태형과의 만남부터 그는 항상 내게 애매하게 행동했다. 관심이 있는 것 같으면서도 일정선을 지키며 더 이상 다가오지 않으려는 듯 보였다. 그래서 내가 멀어지려 하면 그건 또 그러지 못 하게 그가 다시 다가왔다. 그의 태도는 헷갈릴만했다. 딱 정해서 못 하냐고. 답답한 사람아. 

 

 


"그래도 너무해." 

"뭐가요?" 

"그렇게, 괴물처럼 취급할 필요는 없잖아." 

"아... 그건요, 김태형씨." 

"응." 

"그건...." 

"...." 

"그냥... 놀라서 그랬어요." 

 

 


아직 그에게 정당한 이유를 받아내지도, 확실한 마음을 듣지도 못 했는데 소심한 내가 우물거리는 사이 대화의 주제는 내가 불리한 쪽으로 흘러버렸다. 또 기회를 놓치고 만다. 

아직도 다른 사람들의 눈치가 보이는 걸까. 나 자신도 답답해 미칠 지경이지만 결국 입 밖으로 나오질 않는다. 정말 목 끝까지 차올랐는데. 아님 혹시나 기대했던 식사시간에 피해가 갈까 봐 걱정이 되어 그랬던 걸까. 아직은 아니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잔뜩 기대를 했었지. 전에도 가끔 상상했던 그와 마주 보며 앉아 밥을 먹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잠이 들기 직전까지 기대를 했던 것 같다. 그렇게 기대했던 시간인데 괜한 말을 꺼내 망쳐버리고 싶지 않았다. 물론 내가 자신을 괴물처럼 취급했다는 그의 말에 아니라며 당장 이야기를 하고 싶었지만 밥까지만, 그때까지만 참자고. 어쩌면, 그에게 나에 대해 말을 해버리면 더 이상 그를 보지 못 할지도 모르겠다는 불안감도 있었던 것 같다. 방금 전에도 기회를 놓쳐버렸으면서, 또 후회를 할지도 모르지만 일단은 다시 입을 다물었다. 

그저 놀라서 그랬다는 나의 말에 눈썹이 미세하게 움찔했지만 금방 다시 돌아와 앞을 쳐다보는 그였다. 그 뒤로는 내가 괜히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드는 듯싶었다. 정작 김태형은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데 겁쟁이가 되어버린 것 같아 그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리고 잘 걷다 갑자기 멈춰 선 김태형 때문에 나는 더욱 흠칫 놀라며 그를 올려다보았다. 

 

 


"왜... 요?" 

 

 


뭐 그렇게 잘못한 게 있다고 말도 조심조심 나갔다. 그럼 그는 고개를 내려 빤히 곱게 쥐여있는 내 손을 바라보았다. 

 

 


"너는 왜 만지는 거 싫어해? 

"...." 

"손을 잡을 수가 없잖아." 

"...." 

 

 


결국 다시 입은 굳게 다물린다. 잔뜩 뾰루퉁한 그의 표정을 보면 마냥 어린아이가 투정을 부리는 듯 보이겠지만 그런 표정이 나를 더욱 꽉 짖눌렀다. 계속해서 내 손을 쳐다보며 말하는 김태형 때문에 나는 더욱 주먹을 꽉 쥐며 가늘게 떨었다. 그럼 그의 손 역시 그날 날 자신의 쪽으로 끌어당기려다 말아버렸던 것처럼 꽉 쥐여져 있었다. 

 

 


"여기야. 이거 먹자." 

 

 

 

 

 

 

 

 

[방탄소년단/김태형] 상처를 치료해줄 사람 어디 없나 14 | 인스티즈 

  

 

 

 

그가 멈춰 선 곳은 꽤 비싸 보이는 레스토랑이었다. 들어가자고 하는데 덜컥 겁이 났다. 비싸 보이는데, 난 부자도 아니고 괜히 식사 한번 했다가 거덜 나는 거 아니냐고. 그를 따라 안으로 들어가면 입이 더욱 크게 벌어졌다. 눈알을 돌돌 굴려 식당 내부를 훑어보다 그냥 아무거나 먹고 싶은 저렴한 것을 고를 걸 후회가 밀려왔다. 평소 김태형을 보면 그다지 부자로 보이지는 않았는데 어쩌자고 이런 곳으로 날 데려왔는지 원망의 눈초리를 보내주고 싶었다. 웨이터를 따라 들어가면 자리를 안내해주며 의자까지 빼주는 친절을 베풀었다. 분위기를 깨버리게 돈 걱정 따위 하고 싶지 않았지만 처음 와보는 풍경 때문에 신경을 안 쓸 수가 없었다. 이곳이 꽤 익숙한 듯 보이는 김태형 덕분에 그래도 한시름 놓았지만 말이다. 메뉴판을 보며 입에선 결국 헉- 소리까지 나왔고 그런 내게 자신이 사주겠다며 먹고 싶은 것을 고르라는 그였기에 후- 안도의 한숨도 쉬었다. 그래도 뭘 알아야 고르던가 하지. 뭐 먹을 거냐고 묻는 그의 말에 무한 점점점을 그리는 나를 보고 그는 알아서 주문도 해주었다. 고개만 푹 숙이고 있는 나를 보며 슬쩍 웃어 보이는 김태형 때문에 나는 더욱 얼굴이 빨개지며 창피함을 느꼈다. 많이 와봤나 보네. 하는 행동이나 함께 사는 건물을 보아서는 넉넉한 지갑사정일 거라는 것은 전혀 생각지도 못 하고 있었다. 뭐 다른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고. 그런 그는 좀 의외였다. 

 


나오는 음식들은 비싼 값을 하며 꽤나 내 입맛을 만족시켰다. 간만에 마음에 드는 음식들도 입속으로 들어가고 연신 날 보며 웃어주는 김태형 덕분에 아까의 일은 슬슬 잊혀지는 듯 보였다. 그러다 문득 언제부터 마음대로 말을 놓아버린 김태형이 걸렸다. 난 분명 반말하라고 한 적도 없고 서로 나이를 공개하지도 않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그는 내게 말을 놓고 있었다. 분위기도 풀어진 김에, 얼른 그에게 물어보았다. 

 

 


"저기요, 김태형씨." 

"응." 

"왜 자꾸 반말해요?" 

"내가 너보다 나이 많으니까." 

"그걸 어떻게 장담하는데." 

"나 이래 봬도 나이 되게 많아." 

"몇 살인데요." 

"이십팔." 

 

 


저게 뭐야. 나한테 욕하는 건가. 스물여덟이라는 좋은 말 놔두고 왜 저렇게 대답을 하는 거야. 나보다 나이가 더 많다는 것을 어필이라도 하고 싶었던 걸까. 많아 봤자 나보다 한, 두 살. 그 정도일 줄 알았다. 실은 나보다 어리거나 동갑이라는 생각이 더 들기도 했는데 그의 입에서 나온 큰 숫자에 슬쩍 입이 벌어졌다. 내가 졌네. 

 

 


"너는?" 

"원래 여자 나이는 묻는 거 아니거든요." 

"거봐. 내가 더 많잖아." 

"...." 

 

 


그래, 반말하세요. 더 이상 무슨 말을 하겠는가. 나보다 나이도 많은데. 괜히 말해서 본전도 못 찾은 것 같았다. 차라리 묻지 말고 나도 반말을 해버릴걸. 실제로 그럴 자신은 없지만 말만이도 그렇다고 해보겠다. 

 

 


"그래서 말인데," 

"...." 

"오빠라고 해봐." 

"오... 뭐요?" 

"오빠." 

"안 돼요. 싫어요. 못 해요, 전 그런 거." 

"왜 못 해. 입 있고 말할 수 있고 난 오빠 맞는데." 

 

 


맞다. 난 입도 있고 말을 못 하는 것도 아니고, 김태형은 나보다 나이가 3살이나 더 많다. 그래도 못 해. 오빠라니. 누군가에게 한 번이라도 그런 말을 해본 적은 절대 없었다. 생각만 해도 온몸에 닭살이 우드드 돋는다. 내겐 사촌도 없고 친하게 지낸 학교 선후배도 없었고. 꼭 불러야 하는 대학생 때는 불편하다며 오빠라 부르라 해도 선을 지키며 굳이 선배님이라고 불렀다. 내게 아빠라는 단어 다음으로 생소하게 느끼는 것이 바로 오빠, 였다. 

 

 


"그래도 난 못해요." 

"오. 빠. 딱 두 글자인데 뭐가 그렇게 어려워?" 

"네. 전 그 두 글자가 그렇게 어려워요." 

"더럽게 비싸네." 

 

 


풉- 하고 나도 모르게 웃음 터졌다. 그거 하나 안 해준다고 투정이라니. 저러는데 내가 어떻게 오빠라는 말을 해줘. 가끔 드는 생각이지만 김태형은 종종 어린아이처럼 행동할 때가 있었다. 하지만 그게 철없게 보이거나 흔히 말하는 애처럼 보이는 것은 아니었다. 그저 지금처럼 슬쩍 내게 웃음이 터져 나오게 해주었다. 

 

 


"왜 웃어. 해줄 것도 아니면서." 

 

 


그리고 그럴 때면 그가 귀엽다는 생각도 어렴풋이 들었다. 포크에 잘 잘려진 스테이크를 푹 찍어 제 입에 넣곤 우걱우걱 씹어댔다. 나 지금 몹시 불만이야, 하면서. 

그렇게 마냥 즐거우면 될 것을. 왜 생각이 그렇게 흘러가는 건지 모르겠다. 내 앞에 투덜거리는 김태형을 보며 누가 이런 남자를 좋아하지 않을까, 하다 그의 여자친구가 생각나는 이유는 대체 무엇 때문이지 모르겠다. 슬슬 그의 여자친구를 걱정해주어야 할 때가 된 것도 같았지만 왜 하필 이제 좀 거의 풀어졌다 싶을 때인 건지. 실은 아까부터 애써 누르려 했지만 어느 한켠에 그녀에 대한 미안함이 흘러나오고 있긴 했다. 더 누르고 무시를 하자니 이미 올라온 그녀의 생각에 표정마저 다운이 되어 슬쩍 눈치를 보며 그에게 물었다. 

 

 


"근데 김태형씨." 

"응?" 

"그... 여자친구가... 뭐라고 안 해요?" 

"헤어졌는데." 

"네?" 

"헤어졌어. 오- 래전에." 

 

 


첫 음절을 쭈욱 늘리며 오래 전이라는 것을 강조했다. 거짓말. 내게 여자친구가 있다고 한지도 얼마 되지 않았으면서 그날 헤어졌다고 해도 별로 지나지 않았다. 하긴 이 남자를 본지 얼마나 되었다고 벌써 여자친구를 두 번이나 바꿔버린 걸 보면 그에겐 오래전 일 수도 있겠구나 했다. 바람둥이인가 봐. 나는 어쩌자고 이런 사람이 좋아졌을까. 

여자친구에 대해 묻자 그는 망설임 없이 헤어졌다는 말을 뱉었다. 뭐, 헤어졌다고 하니까 그날 내게 참견했던 것에 대해서는 조금의 자격을 부여하겠다. 왜 헤어졌을까. 그날, 처음 보는 달콤한 김태형의 모습에 반했던 날. 그리도 자신의 여자친구에게 다정한 눈빛을 날리며 나긋한 목소리로 보고 싶다 노래를 불러댔으면서. 갑자기 헤어진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왜요." 

"...." 

"왜. 왜 헤어졌는데." 

"너 때문에." 

 

 


그의 한마디로 우리 둘은 먹던 것을 멈추고 잠시 동안 서로의 눈을 마주 보았다. 순간 든 감정은 뭐였을까. 기대, 떨림, 설렘, 안도감. 아니고 의문, 이었다. 여자친구와 헤어진 지도 그의 기준에선 오래되었다고 했으면서 왜 내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지. 분명 떨리고 설레기도 했다. 혹시 나 때문이었을까 묻기 전에 기대도 했었고. 그런 그의 입에서 정말 나 때문이란 말이 나왔는데도 마냥 기뻐할 수가 없었다. 여전히 그는 내게 좋아한다고, 해주질 않았다. 너무 앞서가는 것일 수도 있다. 그는 단지 내게 조금의 관심이 생겨서 더는 여자친구에게 미안해 만남을 이어가지 못 하고 헤어졌을 수도 있는 것이다. 아직 날 좋아하는, 그렇게 깊은 단계까지는 가지 않은 거라고. 나와 눈을 맞추며 그런 말을 하는 김태형의 감정은 무엇인지, 궁금했다. 

나는 꽤 참을성이 있는 편이다. 궁금한 것이라면 기다리지 못 하고 득달같이 달려들어 알려고 하는 성격이 아니다. 그저 기다린다. 속은 벌써 새까맣게 타버렸어도 겉은 그렇지 않은 척 애써 하얀 것들로 감추고 차분히 기다린다. 하지만 김태형에 관한 것이라면, 그의 마음에 관한 것이라면 이미 지금까지 많이 기다렸다고, 타들어가다 못 해 재로 남아 훨훨 다 날아가 버렸다. 더 이상 하얀 것으로 감추지도 못 한다. 

 

 


"김태형씨." 

"응." 

"나 좋아해요?" 

"...." 

"말... 못 하네. 아님 내가 우스워요?" 

"아니." 

"그럼 왜 자꾸 이러는데." 

 

 


내가 어떻게 저런 말을 뱉었을까 신기하기도 했다. 지난번 비가 오는 날, 홧김에 김태형에게 물어보았던 것까지 벌써 두 번째다. 한 번이 어렵지, 두 번이 어려운가. 역시 옛말은 틀린 것이 없다. 저번보다 좀 더 용기가 생긴 나는 내가 우습냐 당차게 물어보았고 그에겐 이번 역시, 아무런 대답도 듣지 못 했다. 아니, 그래도 우습냐는 물음에 망설임 없이 아니라는 말을 들었으니 적어도 물고기는 아니라고 생각해도 되는 건가. 이제 여자친구도 없으면서. 내가 그동안 착각을 하고 있었던 걸까. 아님 그는 내가 모르는 뭘 기다리고 있는 걸까. 내가 좋냐고 물어도 그는 고개를 숙인 채 접시만 포크로 닥닥 긁었다. 내가 우스운 것도 아니라면서. 이미 나는 김태형 때문에 흔들릴 대로 흔들렸고 타버릴 대로 타버렸다. 더 이상 기다리지 못 하고 그에게 물어본 것에 대해 후회를 하진 않는다. 단지 만족스러운 대답이 나오지 않은 것에 대해 가슴이 살짝 욱신거릴 뿐이지. 실은 조금 많이 욱식거리지만 말이다. 

 

 


"그럼 너는." 

"...." 

"너는 나 좋아해?" 

 

 


그렇게 나를 똑바로 보지 못 한 채 포크만 쥐고 있는 그를 쳐다보고 있으면 뭔가 결심이라도 한 듯 그의 고개가 들렸고 전세는 역전이 되어 그가 되려 내게 물어왔다. 

 

 


"좋아해?" 

"...." 

"좋아하냐고, 나" 

"... 아니요." 

 

 


더한 상처를 받을까 봐 겁이 났다. 그는 내게 관심이 있다고도, 좋아한다고도 하지 않았는데 난 덜컥 너에게 깊어져 버렸다 피할 수도 없이 좋아져 버렸다 해버린다면 내 꼴은 더욱 비참해질 것 같았다. 다시 겁쟁이가 되어버린다. 당차게 그에게 물어보았던 방금 전과는 달리 난 또 마음을 꽁꽁 숨긴 채 겁쟁이가 되어버렸다. 

나의 대답에 그는 내게 시선을 치우며 쓰디쓰게 웃어 보였다. 대체 왜 그런 표정을 짓는 건데.

 

 

 

 

 

 

 

 

 

[방탄소년단/김태형] 상처를 치료해줄 사람 어디 없나 14 | 인스티즈 

 

 

 

 

역시나 나는 처음이 좋다고 끝도 좋을 수는 없는 건가 보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더 이상 오가는 말은 없었다. 그냥 그렇게, 레스토랑에서 흐르는 노래를 배경음악 삼아 서로의 자리를 지키며 접시만 비워갔다. 어색하진 않았다. 그저 둘 사이에 다른 이야기가 오가지 않았던 이유는 각자 머릿속으로 생각할 것이 많았던 것 같다. 나는 나대로, 김태형은 그 나름대로. 그의 표정 또한 잔뜩 실망하거나 기분이 나쁜 것이 아니라 나와 같이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복잡해 보였다. 그래서 서로 말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차마 더 할 말을 꺼내지 못 하고 눌렀던 것이 아니라. 

내가 만약 그때 김태형에게 나 당신을 좋아한다고 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까. 시선을 떨군 채 먹는 둥 마는 둥 입만 오물거리는 그를 보며 생각했다. 만약 그렇다고 말했으면, 달라졌을까. 아니었을 것이다. 일의 흐름을 본다면 내가 김태형에게 차마 좋아한다 말하지 못 한 까닭에는 그가 먼저 내게 확실한 대답을 못 해주었다는 것에 있었다. 그도 내게 말을 안 해주었으니 나도 말 안 해, 그런 어린 투정이나 괜한 자존심 때문이 아니다. 그저 무서워서, 두려워서. 그러니 내가 다르게 말을 했다 하더라도 우리 사이에 흐르는 분위기는, 결과는 똑같았을 것이다. 

 


식사를 마치고 우린 바로 집으로 향했다. 원래 우리의 약속도 함께 밥을 먹는다, 그것이었고 임무를 완수했으니 거기서 끝인 것이다. 뭐 더 다른 것을 할 거냐 묻는 김태형에게 난 또 답답하게 그냥 집으로 가자고 철벽을 쳐댔다. 이런 분위기로 뭘 하겠어, 하면서. 순간 아차 하며 아쉽기는 했다. 기왕 나왔는데, 이런 시간이 또 언제 마련 될지도 모르는데. 그에겐 이제 여자친구도 없다는 것을 알았으니 이건 확실히 데이트라 칭할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난 왜 이렇게 답답하게 구는지. 알면서도 고쳐지질 않았다. 

실은 이런 경험이 한 번도 없었던 지라 뭘 해야 하는지 몰라서 일부러 피했던 것도 있었다. 밥을 먹고 우린 뭘 해야 하는지, 난 뭘 해야 하는지. 친구들과 수다를 떨 때도 남자친구가 있는 친구들은 나 때문이라도 데이트에 관한 이야기는 더욱 빼놓았으니 뭐 하나 아는 것이 없었다. 서투른 내가 그의 여자친구와 달라 비교가 되진 않을까 그런 걱정도 들었다. 내가 차버린 기회이니 서운한 티도 못 내고 속으로만 끙끙거리며 집으로 향하는 길을 나란히 걸었다. 

 

 


"저, 김태형씨." 

"응." 

"있죠, 나." 

"응." 

"할 말 있어요." 

 

 


아까부터 걷는 내내 자꾸만 살짝씩 스치는 그의 손 때문에 흠칫흠칫하며 뭔지 모를 짜릿한 것을 느끼고 있었다. 손을 잡고 싶은 건가. 일부러 그러는 건가 싶다가도 힐끔힐끔 올려다본 그의 표정은 평소와 같아서 그건 또 아닌 것 같고.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혹시 손을 잡고 싶어도 내가 만지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 때문에 참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제까지 묵혀두었던 이야기를 슬슬 꺼내기로 했다. 만약 그가 아무 생각 없이 나와 손등을 부딪치고 있다 하더라도 결국 그 말을 하러 이 자리에 나왔는데 자꾸만 미뤄뒀던 말들을 꺼내야 할 때도 되었다. 지금은 사람들도 별로 없어서 그들을 핑계삼아 더 이상 미룰 수도 없었다. 그래서 입을 열었고 그는 차분하게 대답을 해주었다. 

 

 


"아까 나한테 왜 그랬냐고 물었죠. 왜 만지는 거 싫어하냐고." 

"... 응." 

"나는, 그러니까... 저는요." 

 

 


천천히 나를 내려다보는 그가 느껴졌다. 목구멍이 간질거렸다. 준비 태세를 벌써 다 마치고 목구멍에 걸쳐 나오기만 기다리고 있는데 입만 벙긋거리며 속에서만 웅얼거렸다. 뱉어. 뱉으라고. 함께 그를 향해 고개를 들지 못 하고 여전히 앞만 보고 걸으며 이들만 서로 딱딱 부딪쳤다. 그렇게 약간의 시간이 흘러갔다. 

 

 


"있잖아. 내가 왜 혼자 밥 먹는 걸 싫어하는 줄 알아?" 

 

 


말을 꺼낼 듯 말 듯. 뜸만 들이고 있으면 김태형의 입이 먼저 열리는 것이다. 뜬금없이. 갑자기 무슨 소리가 하고 싶은 걸까. 해줄 말이 있었는데. 한 템포 쉬고 말하라고 준비할 시간을 주는 것인지. 큰 비밀을 말해야 하는 긴장감에 김태형과 눈을 마주치지 못 하고 있었는데 그가 먼저 입을 열어 줌으로써 그와 시선을 맞출 수 있었다. 

 

 


"왜요?" 

"이거 쉽게 말해주는 거 아닌데. 너니까 말해주는 거다?" 

 

 


맞춰진 시선으로 천천히 걸으며 무슨 선심이라도 베풀어주듯 그는 내게 장난스럽게 웃어 보였다. 나도 같이 슬쩍 웃으며 그에게 보답을 해주자 고개를 한번 힘차게 끄덕인 김태형은 시선을 앞으로 옮기며 말을 이어갔다. 

 

 


"난 어렸을 때 밥 먹는 시간이 제일 좋았어. 우리 엄마는 항상 내가 좋아하는 반찬들로 밥상을 차려주셨고, 우리 아빠도. 그 시간만 되면 꼭 집으로 오셨거든." 

"...." 

"셋이 웃으면서, 그렇게 밥 먹는 게 진짜 좋았어. 아, 그거 알아? 나 꽤 부잣집 도련님이었다?" 

 

 


다시 나를 내려다보며 그는 장난스럽게 웃다 브이자를 그렸다. 어쩐지. 그럴 줄 알았어. 나는 처음 가보는 그런 곳을 익숙한 듯 들어갈 때도 그렇고, 꽤 비싼 음식값을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계산할 때도 그렇고. 하지만 한가지 걸리는 것이 있었다. 현재진행형이 아니라 과거형으로 말하는 그의 말에. '이다'가 아니라 '이었다'라는 말이 괜히 걸렸다. 

 

 


"근데 어느 날은. 밥 먹다 말고 전화가 오는 거야. 왜 그런 거 있잖아. 직감이 딱 오는 거. 저건 받으면 안 되는 전화 같다, 뭐 이런 거." 

"...." 

"한번도 안 그러셨는데. 얼마나 급한 일이었으면, 반도 안 드셨는데 자리에서 일어나시더라." 

"...." 

"그리고 결국. 그날 엄마 아빠가 돌아가셨어." 

 

 


눈이 번쩍 뜨였다. 순간 내가 잘못 들은 건가 싶어서. 잔뜩 동그래진 눈으로 그를 쳐다보면 그는 여전히 앞을 보며 차분한 얼굴로 말을 이어갈 뿐이었다. 

 

 


"난 그것도 모르고 엄마, 아빠가 돌아오실 때까지 기다렸거든." 

"...." 

"다시 오시면 같이 밥 먹으려고. 엄청 뜨거웠던 찌개가 식어버려도 난 계속 기다렸어." 

"...." 

"근데 안 오시더라. 금방 오신다면서." 

 

 


그런 그는 바람이 픽 빠지는 소리를 내며 허무한 듯 입꼬리만 슬쩍 올렸다. 그의 목소리는 흔들리는 내 눈동자와 달리 여전히 차분했다. 가까운 아는 사람의 이야기를 하듯 그는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그러다가, 갑자기 그 어린놈이 뭔가 느낌이 왔는지 눈물이 콸콸 쏟아졌어." 

"...." 

"엄마가 나가기 전에 그러셨거든. 먼저 밥 먹고 있으라고." 

"...." 

"그 밥 다 먹으면 오시겠지, 꼭 오시겠지. 그러면서 눈물이 밥그릇으로 떨어지는 지도 모르고 엉엉 울면서 그 밥을 꾸역꾸역 먹었어." 

"...." 

"근데 그때 되게 슬프더라. 늘 같이 먹었는데, 혼자만 덩그러니 있는 식탁에 앉아있으려니까, 너무 아팠어." 

 

 


그는 잠시 고개를 살짝 떨구더니 입술이 마르는지 혀로 한번 훑고는 다시금 평소처럼 웃어 보였다. 그리곤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자신을 보고 있는 나에게 시선을 꽂았다. 

 

 


"그 뒤에 어떻게 됐게?" 

 

 


무슨 옛날이야기라도 들려주는 듯. 그래서 그 아이는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라는 말을 하려는 듯 그의 목소리는 방금까지와는 달리 한층 올라가 있었다. 그럼에도 슬쩍 보이는 그의 눈은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듯 촉촉했다. 그러면서 아무렇지 않은 척, 웃으려 애를 쓰고 있었다. 지금도 그는 슬프고, 아프다. 이 남자의 이야기 끝은 행복하게 살았답니다가 아니라 외롭게 살았답니다, 그것이었다. 

김태형에게 그런 일이 있을 거라고는 짐작도 못 하고 있었다. 더욱이 그런 이야기를 내게 해줄 거라는 것은 정말 몰랐다. 어쩌면 내가 털어놓으려는 것보다 더욱 힘든 것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내게 아무렇지 않은 척 이야기해주었고 그런 그가 고맙고, 안타까웠다. 보듬어주고 싶었다. 자신 때문에 나마저도 그렁그렁한 눈을 보았는지 어떻게든 분위기를 다시 올리려는 듯 그는 더욱 환하게 웃어 보였다. 그는 아무렇지 않은 것이 아니다. 그런 척, 애써 감추고 있는 것이지. 

 

 


"앞으로 내가 먹어줄게요." 

 

 


가던 길을 우뚝 멈추고 흔들리던 눈을 잡아 이번엔 미간이 아닌, 진짜 그의 두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그의 눈 또한 꽉 잡았다. 

 

 


"혼자 밥 안 먹게. 내가 같이 먹어줄게요." 

"...." 

 

 


그럼 그는 내 머리 위로 손을 가져오더니 허공에 붕붕 띄운 채 쓰다듬는 듯 천천히 손을 움직였다. 편안하고 부드럽게 웃어주면서. 그런 그의 행동에 진짜 쓰다듬어 준 것도 아닌데 내 심장은 진짜 그의 손이 내 머리에 닿은 것처럼 쿵쿵 뛰었다. 나를 배려해준 듯한 그의 행동에 한번, 다정하게 들어오는 그의 웃는 모습에 한번. 

 

 


"고마워." 

 

 


쿵쿵거리는 심장은 진정시키지 못 한 채 빨개지는 얼굴을 들키지 않기 위해 고개만 푹 숙였다. 슬슬 손바닥에선 땀도 나는 것 같고 맞잡은 손은 꼼지락거렸다. 뭐 대단한 말을 했다고 내게 고맙다고 해주는 그의 말에 나 자신도 뿌듯해지고 기분이 좋아졌다. 정말 같이 먹어주고 싶었다. 물론 아직까지는 긴장도 되고 힘이 잔뜩 들어간 상태로 식사를 하지만 그래도 그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꽤 어렸을 때부터 나에겐 아빠란 사람이 없었다. 그 자리를 늘 엄마가 대신해주었지만 남들이 자신의 아빠는 이렇다, 이렇게 해주었다 할 때마다  은근한 허전함을 느꼈다. 그래도 내겐 두 배로 날 아껴주고 사랑해주는 엄마라도 계셨지. 아직 그에 대해 자세히 아는 것은 아니만 그 빈자리는 어마어마했을 것이다. 내가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나로 인해 그의 외로움과 허전함이 채워질 수 있다면, 난 당장 그렇게 하겠다.
 

 

 

"그러니까, 너도 말해달라고." 

"...." 

"걱정하지 말고. 내가 들어줄게." 

 

 


쓰다듬던 손을 슬며시 내리고 여전히 다정한 얼굴로 내게 말해주었다. 그런 김태형의 표정은 너무도 편안하고 따뜻해서 무슨 말을 하더라도 괜찮다고, 다 이해한다고 그렇게 말해줄 것 같았다. 그가 내게 자신의 이야기를 해준 것은 나를 위해서였다. 뭔가 할 말은 있는데 그걸 말하기가 어려운 듯 자꾸 망설이는 나를 위해서. 자신이 먼저 길을 터준 것이다. 걱정하지 말라고. 

 

 


"그러니까... 나는," 

"응." 

 

 


그런 그를 위해서라도 이제 입을 열어야 한다. 내가 상처를 받든, 그가 상처를 받든. 내게 너무 고마운 그에게 이제 말해준다. 

 

 


"저는요. 실은, 남자를 무서워해요. 지금은 좀 나아졌지만, 예전엔 눈에 보이기만 해도 아무것도 못 할 정도로 펑펑 울었구요." 

"...." 

"그런 걸 딱 집어서 남성 공포증이라고 한대요. 그냥 무섭기만 하면 다행인데, 심하면 몸에서 열도 나고, 식은땀도 나고. 막 덜덜 떨기도 해요." 

"...." 

"그냥 스킨십을 싫어하는 게 아니라, 못 견디는 거예요. 무서워서." 

"...." 

"어렸을 때 안 좋은 일을 좀 겪었어요. 그래서...." 

 

 


그때 일을 내 입으로 꺼내려니 목이 탁탁 막혀왔다. 긴장을 누르기 위해 꽉 쥔 손은 어느새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그는 지금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까. 궁금했지만 지금은 내 상태를 조절하는 게 더 바빠서 그를 올려다볼 수가 없었다. 

 

 


"사실은 처음에 김태형씨 봤을 때, 그때도 엄청 무서웠어요." 

"...." 

"그날도... 그래서 나도 모르게 다리에 힘이 풀려서 주져앉고 울어버린 거예요. 그... 싫었던 게 아니라." 

"...." 

"미안해요. 그때, 아니 그전에도." 

 

 


말을 다 마치고 후- 아주 길게 숨을 내쉬었다. 말했다. 결국 다 말했어. 할까 말까 무척이나 고민을 했던 거였는데 아직 그의 반응을 확인하진 못 했지만 그래도 속은 후련했다. 꽉 막고 있었던 어떤 것이 스르르 녹아버린 느낌. 그리고 이젠 김태형의 반응 살펴야 한다. 그가 만약 날 이상한 사람처럼 내려다보고 있어도 지금이라면 괜찮을 것 같았다. 어쨌거나 난 말했으니까, 그걸로 만족한다. 침을 한번 꿀꺽 삼킨 뒤 조심조심 고개를 들어 그의 표정을 살폈다. 

 

 

 
"그럼 너," 

"네?" 

"... 아니야." 

 

 


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걸까. 그의 표정은 나를 정신병자처럼 취급하는 것도, 그렇다고 아무렇지 않아 하는 것도 아니었다. 뭘 생각하고 있길래 그의 표정은 잔뜩 복잡해 보였고 곤란해 보이기까지 했다. 걱정하던 반응이 나온 것은 아니니 안심을 해야 하는 건가. 그는 여전히 내게 애매하게 행동했지만 그 또한 충분히 애매한 표정이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묻고 싶었지만 이미 그는 생각들을 정리하느라 정신이 없는 것 같아서 그냥 빤히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입술을 슬쩍 물었다가 뒤통수를 살살 쓸었다가, 이내 마구 헝클였다. 그러다 짧게 후- 한숨을 내뱉더니 다시 평소처럼 돌아와선 나와 시선을 맞춰주었다. 

 

 


"미안해." 

"뭐가... 미안해요?" 

"난 그것도 모르고, 마음대로 니 손 막 만지고, 마음대로 키스하고." 

"...." 

"너 그때마다 내가 무서웠을 거 아니야." 

"무서웠던 건 아닌데...." 

 

 


내게 멋대로 키스를 했던 날은 확실히 무서웠던 건 맞지만 다른 것에 대해서는 무서웠던 건 아니다. 아, 첫날. 그날이 제일 무서웠다. 그다음부터는 무서워서가 아니라 습관적인 것들이 더 많았다. 뭐, 키스를 했던 날도 김태형이 아니라 그들이 떠올라서 겁을 먹었던 것이었고. 어찌 되었든 내게 또한 사과를 해주는 그의 모습에 살짝 놀랐다. 가만 보면 이 사람, 꽤 괜찮은 사람이구나 싶기도 했다. 

 

 


"근데 난 저번에도 말했고, 스킨십 좋아해. 엄청." 

"아...." 

"그래도 니가 무서워하니까," 

 

 


가만히 듣고 있다 보니 살짝 다른 생각이 들었다. 내게 중요한 건 남자를 무서워한다는 것인데 정작 김태형에게 중요한 것은 스킨십에 관한 것인 듯싶었다. 아까부터 그런 얘기만. 좋아하긴 엄청 좋아하나 보다. 이것도 부모님에 관한 것일까. 관심이 고파서, 외로워서. 그럴 수도 있겠구나 했다. 그래서 아까부터 마음이 복잡해 보였나. 자신은 스킨십을 무척 좋아하는데 나는 남자의 손길이 닿는 것을 싫어하고 무서워하니까. 제 윗니로 입술을 한번 쓸더니 내게 찡긋 웃어 보였다. 

 

 


"노력은 할게. 근데, 장담은 못 해." 

"...." 

"나는 니가... 아, 아니다." 

"내가... 뭐요?" 

"아니야." 

 

 


난 무슨 말을 기대하고 집어넣으려는 그의 말을 다시 꺼내려고 했을까. 내가 좋다는 말, 내가 계속 보고 싶을 거라는 말. 하지만 그는 아니라며 결국 뒤의 말을 뱉지 않고 꿀꺽 삼켜버렸다. 

그래도 이 정도면 꽤 괜찮게 흐르는 것 같았다. 내가 알지 못 했던 그의 상처에 대해서도 들을 수 있었고 결국 나에 대해서도 털어놓았으니까. 그간 그에게 행했던 못난 행동들을 내가 가진 트라우마로 정당화시킬 수는 없지만 적어도 이해와 용서를 좀 더 깊이 있게 구할 수는 있다. 아직 더 노력해야 하고 지금도 노력하고 있지만 그래도 나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그걸로 그에게 사과를 하고 이해를 바라는 것이다. 하지만 되려 그는 내게 미안하다 해주었고 나를 위해 노력도 해준다고 말해 주었다. 어쩌면 내가 좋아하는 게 이 남자, 김태형이라서 다행이라고. 그런 생각도 들었다. 물론 아직까지 나를 향한 그의 진심은 듣지 못 했지만 말이다. 

 

 


"근데 너, 엄청난 말한 거 알아?" 

"네?" 

"너 이제 집에 못 가." 

"왜요?" 

"나랑 같이 먹어준다며. 나 오늘 너 만나는 거 말고는 약속도 없는데." 

 

 


아, 맞다. 내가 그랬었지. 같이 먹어준다고. 그 말을 할 때는 정말 그렇게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가 너무 안쓰럽고 조그맣게 느껴져서. 어떻게라도 보듬어 주고 싶었다. 더는 상처받지 않게. 그걸 그가 진심으로 받아들일 줄은 몰랐다. 물론 이제부터는 그가 내게 함께 밥을 먹자 권하면 거절하지 않고 같이 먹어주겠다 진심으로 뱉은 말이기는 했지만 그렇게 말하니 순간 눈이 번쩍 떠졌다. 하지만 싫은 것도 아니고. 먹어 줄 수 있다. 단지 내가 아직까지 완전히 나아지지 않아서 그렇지. 오늘처럼 결국 끝이 안 좋게 나지만 않는다면 난 상관없다. 아니, 좋다. 

 

 


"나랑 같이 저녁도 먹어줘야지." 

"그럴게요." 

"내일 아침도, 점심도." 

"...." 

"너 이제 큰일 났다." 

 

 

 

 

 

 

 

 

 

 

 

 

 

 

 


 

암호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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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안녕하세여 작가님 오랜만에 글잡투어를 하다 제목이 눈에 띄길래 첫화부터 정주행을 하고 왔는데 아직 암호닉 받으시나요.... ㅠㅠㅠㅠ 혹시 아직도 암호닉 받으신다면 [단아한사과]로 암호닉 신청할께요!!
7년 전
독자2
꾸준히챙겨보면서 기다리고있습니다! 어서재업이되길..♡
7년 전
독자3
후하후하 보면서 자꾸 떨리네요
또 얼른 오세요ㅠㅠㅠㅠ!!

7년 전
독자4
으아 드디어 알았네요 ㅠㅠㅠㅠ 태형이가 여주위해서 먼저 말해준거 너무 설레네요 ㅠㅠㅠ 잘봣어요!!
7년 전
독자5
와 ㅠㅠ 대박... 독방에서 추천 받고 와서 1화부터 보는데 대박이네요 완전... 제 스타일이에요 이번 화는 뭔가 순탄하고 달달?은 아니지만 암튼 다른 편들보다는 뭔가 부드럽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뭔가 간질간질했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혹시라도 암호닉 받으신다면 [안녕하새오]로 신청하고 갈게요 ❤❤
7년 전
독자6
워후!!!!! 드디어 둘 사이의 응어리가 풀린 것 같아서 다해이에요ㅠ 흑흑 이제 행복하자
6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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