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커플
01
"미쳤어요?"
내 물음에도 앞에 선 이 남자, 민윤기 씨의 표정은 참 뻔뻔하다. 쇼파에 대충 걸터앉아 나를 바라보는 그는 지금 이 상황이 성가시다는 표정이었다. "내가 뭘?" 하고 묻는 그 물음에 순간 기가 차서 아무런 말도 못 하고 있다가, 이내 겨우 정신을 잡고 말했다.
"혹시 저 좋아하세요?"
"뭐야, 미쳤어?"
"그건 제가 묻고 싶은 말이라구요. 지금 상황이 대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거예요?"
따박따박 묻는 내 물음에 민윤기가 귀찮다는 듯 제 앞머리를 헝크러트렸다. 안 그래도 부스스한 그의 앞머리가 다시 한 번 흐트러지며 그의 이마 위를 불규칙하게 덮었다. 대답 대신 피곤한 듯 하품을 크게 한 그가 쇼파 등받이에 몸을 축 늘어트리듯 기댔다. '나는 지금 네가 무척이나 귀찮고 성가시다.'를 온몸으로 표현하던 그가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며 말했다.
"사겨. 너랑 나, 민윤기와 메리의 열애."
"그러니까, 어떻게 그게 가능한 거냐구요."
"안 될 건 뭐야."
"제 말은!"
어깨를 으쓱이며 말해오는 그의 목소리에 제 말은! 하고 나도 모르게 내 목소리가 커졌다. 그러다 문득, 여기가 불 꺼진 회사 사무실이라는 걸 그제야 다시 기억해낸 내가 목소리를 꾹꾹 누르며 말을 이었다.
"제 말은, 저랑 선배님이랑 사귀지도 않는데 대체 왜 그런 기사를 낸 거냐고 묻…."
"너는 손해볼 거 없잖아."
미처 말을 끝내기도 전에 나온 그의 목소리에 빤히 그를 바라보자 그는 이번엔 제 앞머리를 손으로 쓸어 넘겼다. 피곤한 건지 조금은 풀린 눈으로 날 바라보던 그가 말을 이었다.
"민윤기는 게이다, 그딴 거지같은 소문만 아니었어도 이런 짓 안 해."
"……."'
"어떤 미친 놈이 그런 소문을 내고 다니는 덕분에 이러다 연예계 공식 게이라도 되게 생겼다고, 나."
"…아…."
짜증이 묻은 그의 말에 아무런 말도 못하고 나는 바보같이 아, 하는 소리만 흘렸다. 한 번 쯤은 들어본 적 있는 말이었다. 처음 받은 휴가로 겨우 겨우 고등학생 때 친했던 일반인 친구를 만났을 때, 친구가 아주 조심스럽게 내게 물었던 질문들 중 하나기도 했다. '저어기, 혹시, 너 민윤기랑 같은 소속사지?' '응. 왜?' '요즘에 민윤기 게이라는 소문 많던데, 진짜야?' '뭐? 게이?' 뜬금없는 친구의 물음에 글쎄, 하고 어물쩡 답을 해버린 나였다. 당사자 귀에까지 들어갈 정도였으면 꽤나 심각할 정도로 많이 퍼진 소문이었구나.
뭐라고 말을 해야할지 몰라 대답을 생각하던 중에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너는 곧 컴백한다며. 잘 됐네. 나는 소문 잠재우고, 너는 내 이름 이용해서 언론 플레이 하기 좋고."
"……."
"이런게 윈윈 아니야?"
윈윈이 이럴 때 쓰는 말인가.
"뭐어, 그렇게 말하면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럼 됐잖아."
"그, 그래도 이런 큰 일을 저랑 상의도 없이 이러시면 어떡해요!"
"왜."
"……."
"그래서 싫어?"
여전히 쇼파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힘을 뺀 채로 서있는 날 바라보던 그가 조금 전과는 다른 목소리로 내게 싫어? 하고 물어왔다. 어떻게 다른지 표현하자면, 꼭… 뭔가 재밌는 게 기억이라도 난 듯 장난기를 담은 그런 목소리였다. 조금 전보다 왠지 더 생기있어진 것 같은 건 기분 탓일까. 그리고 그 물음에 나는 기다렸다는 듯 찡얼대는 목소리로 답했다.
"싫죠! 누가 좋겠어요, 이런 상황이."
내 대답을 들은 그가 어깨를 으쓱 했다. 그리곤 내 대답을 예상하고 있었다는 듯, 마치 기다린 것처럼 말을 이어왔다.
"그럼 다 말한다?"
"…뭐, 뭘요?"
"뭘요? 모르는 척 하기는."
"……."
"사진도 있고 동영상도 있는데, 확 다 넘겨버린다?"
뭘요. 설마… 하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자 그가 처음으로 축 늘어트리고 기댄 몸을 일으켜 쇼파에 앉았다. 그리곤 제 옆에 놓여진 휴대폰을 몇 초 만지작거리더니 화면을 나에게로 돌려 무언가를 보여줬다. 화면 속에는 내가 있었다. 얼마 전 회사 근처 아스팔트 바닥에 주저앉아 전봇대와 마주보고 있는 나. 화장은 번질대로 다 번졌고, 구두는 한 쪽 굽이 나간지 오래였고, 립스틱은 입술 밖으로 삐죽삐죽 튀어나간 나. 전봇대를 바라보며 '나쁜 새끼야!' 하고 소리치는 나. 죄 없는 전봇대를 주먹으로 때리고 있는 나….
그 다음 날 매니저에게 더 이상 깨질 수도 없이 왕창 깨진 뒤 들은 바로는, 그렇게 추한 모습의 나를 숙소에 집어넣어준 게 여기 지금 내 앞에 있는 민윤기 씨라고 했다. 우연히 회사를 지나던 민윤기 씨가 아니었으면 나는 그날 어떤 모습으로 뉴스에 났을지 상상만 해도 두려울 정도였다. 무사히 날 집에 데려다주신 같은 소속사 선배님의 넓은 마음에 감사하며 언젠가 꼭 감사 인사를 전하리라 마음을 먹었던 게 엊그제같은데…! 지금, 이게, 무슨!
"무슨 악취미 있어요? 이런 걸 왜 찍어요!"
"웃기잖아."
"안 돼요! 지워요!"
"안 돼?"
"당연하죠! 안 돼요! 안 된다구요! 이걸 동영상까지 찍은 거에요?"
"한 번 보고 말기엔 너무 재밌는 구경거리라."
씩 웃는 그의 표정에 씨이, 하고 그의 휴대폰으로 손을 뻗자 그는 냉큼 휴대폰을 제 쪽으로 가져가 버린다. 이리 줘요. 지우라구요. 내 말에도 그는 못 들은 척 다시 한 번 어깨를 으쓱, 하고는 입고 있던 청자켓 주머니에 쏙 넣어버린다. 그리곤 몸을 일으킨 그가 아무 것도 묻지 않은 제 바지를 터는 시늉을 하며 내게 말했다.
"연기 하고 싶은 생각도 있다고 그러던데, 아냐?"
"…그거랑 지금 이거랑 무슨 상관이에요?"
"연기 연습 한다고 생각해."
"……."
"몇 달만 연인인 척 하면 될 일이야. 어려울 것도 없잖아?"
뚱한 표정의 내가 아무런 대답도 없이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자, 그도 나를 바라보았다. 그리곤 한 걸음 내게 가까이 다가와 내 앞에 섰다. 별로 키가 크지 않다고 알고 있었는데 막상 이렇게 가까운 곳에 서니까 생각보다 키가 꽤 크게 느껴졌다. 나를 바라보던 그가 별안간 피실 웃음을 흘리며 내게 말했다.
"잘 생각해."
"……."
"'술 먹고 전봇대와 씨름하는 메리' 라는 타이틀이 좋은지, 아니면 '민윤기의 그녀, 메리' 라는 타이틀이 좋은지."
"……."
"답은 정해져 있는 거 같은데. 안 그래?"
얄미운 말을 잘도 뱉어낸 그가 씩 웃으며 내 이마를 톡 하고 아프지 않게 때리곤 걸음을 옮겼다. "간다. 조심해서 가라."하는 무심한 말 한 마디를 남기고 먼저 사무실을 나가버린 그를 허망한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쇼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곤 이리저리 마구 발버둥을 쳤다. 머리가 지끈거리는 느낌이었다.
그러니까, 지금 나는, 톱스타 민윤기와 열애를 하는 중이라는 거야?
"…망했어!"
되는 일이 없어 진짜! 망했어! 망했다고! 컴백 준비로도 머리가 터질 것만 같은데 또 다른 걸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에 머리가 다시 한 번 지끈거려왔다. 땅이 꺼질 듯 한숨을 푸욱 내쉬곤 앞으로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을 하고 있는데, 때 마침 휴대폰에서 짧게 '띵동' 하는 문자음이 들려왔다.
광고 문자인가 싶어서 테이블 위에 올려뒀던 휴대폰의 잠금을 풀자 모르는 번호로 사진 하나가 도착해 있었다. 사진 속에는 전봇대를 끌어 안고 있는 만신창이가 된 내 모습이 담겨 있었다. 얼굴에 확 열이 오르는 게 느껴졌고 절로 한숨이 짧게 새어나왔다. 사진을 내리자 밑에는 짧은 한 마디가 적혀져 있었다.
「참 매력적인 여자 아이돌이야, 그치?」
누군지 적혀있지도 않았고 저장되어 있지도 않았지만 말투만 봐도 누군지 딱 알겠다. 민윤기, 민윤기, 민윤기!! 왠지 모르게 머리가 핑도는 기분이 들었다. 머리 속에는 오직 한가지 생각 밖에 없었다.
망했다.
써보고 싶었던 글이에요 톱스타 윤기.. 까칠한데 장난기 많은 톱스타 윤기는 사랑.. (숨멎) 아 메리는 여러분의 예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