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렷을 때부터 어딜가나 나는 사랑 받았다.
부모가 없어도 나는 사랑 받았다.
곱상하게 생긴 외모는 나의 유일한 방패였다.
'얘, 이리 와서 네 동생 좀 업어줘. 얘가 또 쓰러졌네?'
내 쌍둥이 형.
쌍둥이 형은 나와 달리 큰 몸집에 산 머슴 피부에 땀이 줄줄 나는 일명 '뚱돼지'였다.
그는 뚱돼지라고 불렸지만 그는 걸핏하면 쓰러지는 나를 지켜주던 착한 형이었다.
'창현아!'
"악몽이라도 꿨어?"
"..하....."
악몽이었을까.
형의 기억은 내게 악몽이었을 까.
차에 치이려던 순간 나를 지키려고 뛰어오던 형의 모습.
항상 꾸던 꿈은 그 순간에서 끝나버린다.
"나는 네게 씻으라고 했지, 누워서 자라고 한 적은 없어. 그 정도 잤으면 됐잖아? 잠이 더 필요해?
"너, 너 말이야."
최종현의 눈을 똑바로 쳐다봤다.
"우리 집에 어떻게 들어왔는지. 앞으로 뭘 어떻게 도와줄 것인지. 어디에 사는 누군지. 우리 아는 것도 하나 없는데 첫 날이니까 천천히 대화를 해 보는 게 어때?"
"그 말은 나를 믿어 보겠다고 생각해도 되는 건가?"
"믿고 안 믿고는 대화 후에 다시 생각해 볼게. 사실 나는 네가 선배의 부탁 때문에 왔다는 말도 석연치 않아."
"그래, 그럼."
".............."
"뭐부터 시작할까."
이름은 최종현. 나이는 22살.
다니는 학교는 없음. 딱히 직업도 없음.
부모님은 두 분 모두 외국에 계심.
찬희형과는 아르바이트로 알게된 사이.
"그래서 집은?"
"원래 하숙했는데 너 도와주기로 했으니까, 너희 집에서 신세 좀 지려고."
"나를 도와주려고 왔다기 보다는 거주할 집이 필요한 거네, 그지?"
"뭐, 뭐든 저든."
색이 다 빠져가는 빨간 머리를 긁적이며 성의 없게 대답하는 녀석은 집이 필요하고 녀석은 내 사정, 개학 후의 내 이병헌에게 복수하겠다는 것을 다 알고 있었다.
"이제 좀 씻지 그래?"
"응, 머리 감고 나올게."
"머리는 감지 말고. 양치 세수."
"왜! 나가는데 머리 감지 말라는 건 뭐야, 대체. 뭐에 도움이 되는 건데?"
"미용실 갈거야."
"뭐?"
"거울 좀 봐, 염색도 하고 머리도 다듬고. 싹둑. 그 긴 머리, 아무리 겨울이라지만 덥지 않아?"
나는 그의 말이 끝나기 전에 화장실에 들어왔다.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을 본다.
지금 내 모습은 전혀 닮지 않았던 꿈 속의 형의 모습과 닮았다.
내게 맞는 사이즈라고 보라색 패딩 밖에 없었다. 급격히 찐 살 때문에 내게 맞는 옷은 몇 벌 되지 않았다.
그래서 보라색 패딩에 녹색 츄리닝 바지.
뱃살 때문에 숙여서 운동화 끈을 묶을 수 없어 맨발로 슬리퍼를 신고 집을 나섰다.
최종현은 그런 내 꼬락서니에 혀를 찼다.
최근 머리를 할 일이 없던 나는 집 앞에 2층에 이렇게 큰 미용실이 생겼는 지 몰랐다.
"어느 분이 하실 건가요?"
"일단 쟤는 머리 좀 짧게 잘라 주시고요, 저는 검은 색으로 염색하고 다듬을게요."
"네, 이쪽으로 오세요."
나를 자리로 안내한 여자는 얼굴이 하얗게 화장을 하고 검은 색 아이쉐도우로 마치 아이돌의 무대화장을 연상시켰다.
자기 꼴은 안 우스운 건가, 거울로 나를 힐끔힐끔 보며 조소를 지었다.
내 반대편에 앉은 최종현은 느긋이 다리를 꼬고 앉아 신문을 보고 앉았다.
여자는 내 머리를 하는 내내 계속 이유를 모를 웃음을 계속 흘렸다.
그래, 웃기겠지. 이렇게 뚱뚱한 사람이 멋내려고 머리하는 게.
나는 집에 빨리 가고 싶었다. 창피했다.
"빨리 걸으면 운동 되는 건 아는데 뭔가 마음에 안 드는 눈치다? 머리 마음에 안들어?"
"... 말 시키지마."
"뭐가 마음에 안 드는 데?"
".............."
"야!"
"놔! 이 손 놔! 나 갈거야!"
"뭔데. 뭐가 마음에 안 드는 건데. 머리? 머리가 마음에 안드는 거야? 아니면 뭐, 배고파?"
배고프면 화를 내고 투정을 부리고 내가 돼지인가.
더 이상 대화하고 싶지 않았다.
최종현을 뒤로 하고 혼자 집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