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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준X석진
W. 필명이 없습니다.

 

 


-

 힘이 빠진 두 손이 침대위로 툭 떨어졌다. 좀처럼 힘이 들어가지 않는 몸을 억지로 일으켜 침대 옆에 섰다. 걷힌 와이셔츠의 헐렁이는 소매가 축 늘어진 가는 팔을 타고 스르르 내려와 그의 손 언저리까지 덮었다. 지민이 지금껏 박스에서 찾던 것들을 주사기가 놓여 있었던 작은 탁자 위에 올려놓자 석진이 그것을 품에 안았다. 지민이 침대 밑에서 큰 케이크상자를 꺼내 석진에게 내밀자 석진이 상자를 받아들어 품에 안고 있었던 것들을 상자안에 집어넣었다. 상자의 입구를 잘 접어 닫은 후 손잡이를 꼭 그러쥐었다. 상자에 대롱대롱 매달려 흔들리고 있는 폭죽이 마음에 들었는지 석진이 입꼬리를 올렸다. 그가 바지 주머니에서 하얗고 빳빳한 수표 몇 장을 꺼내 지민의 침대 위에 올려놓고는 벗어두었던 모자와 마스크를 썼다. 

 "벌써 가요? 좀 더 있다 가지."
 "괜찮아. 가볼게."
 "잘가요, 형."
 "고마워."

 석진이 허리를 숙여 신발을 신고 다시 몸을 일으켜세웠다. 문고리를 잡고 돌리니 부드럽게 돌아가는 문고리가 달칵하는 작은 소리를 냈다. 뿌연 연기로 가득했던 방 안에서 나오자 숨이 탁 트일만큼 맑은 공기가 그의 몸속을 헤집어놓았다. 발소리를 죽여가며 조용히 가게의 뒷문으로 나온 그가 앞머리를 옆으로 쓸어넘기며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모자를 더 깊게 눌러쓰며 붐비는 번화가 쪽으로 발을 옮겼다. 그의 손에 들린 케이크 상자가 그의 발걸음에 맞추어 작게 흔들렸다. 사람 많은 곳을 싫어하는 석진이기에 걷는 내내 인상을 찌푸리며 이곳저곳을 노려보며 몸을 움직였다. 한참을 걷다 목을 쭉 빼고 주변을 둘러보더니 꽤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편의점으로 향했다. 계산대 앞에서 멍하니 서 있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화들짝 놀라 황급히 인삿말을 뱉어내는 알바생의 말을 듣는둥 마는둥 하던 석진이 계산대 앞쪽에 놓인 라이터를 한 움큼 집어들었다. 접힌 손가락을 펴 계산대 위에 라이터를 모조리 쏟아버리자 갸우뚱거리며 계산하던 알바생이 석진을 쓱 쳐다보았다. 싸늘하고 생기 없는 눈빛으로 그를 마주하자 서늘해진 공기가 그를 스치고 지나갔다. 진땀을 흘리며 손을 더 빠릿하게 움직이는 알바생에 석진이 작게 조소를 흘려보냈다. 여전히 긴장한 채로 조그마한 검은 봉지에 라이터를 쓸어담아 석진에게 내밀자 석진이 봉지를 뺏아가듯 낚아채 자신의 손목에 걸었다. 다 기어들어가는 듯한 작은 목소리로 쭈뼛쭈뼛 건네는 알바생의 인삿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문을 활짝 열어젖혀 밖으로 나간 석진이 매몰차게 문을 닫아버렸다. 문 위에 달린 작은 종이 크게 흔들리며 딸랑이는 소리를 냈다.
 
 발걸음을 빨리하여 일찍 집으로 들어온 석진이 신발을 아무렇게나 벗어두고 집 안으로 헐레벌떡 들어왔다. 곧바로 주방으로 향하여 손에 들려있던 케이크 상자를 냉장고 안에 넣은 뒤 세차게 문을 닫았다. 그는 습관적으로 집에 들어오면 옷도 갈아입지 않고 소파에 길게 드러누워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곤 했는데, 오늘도 어김없이 소파에 몸을 던졌다. 푹신한 감촉이 그의 온몸을 에워쌌다. 크고 동그란 눈을 멀뚱멀뚱 감았다 뜨며 희미해져가는 정신을 붙잡았다. 그렇게 무료한 시간을 보내며 무기력하게 누워있던 석진의 눈이 스르르 감겼다. 무거운 공기가 그를 압박했고 그마저도 모자라 저 끝까지 내려앉을 기세로, 모든 것이 멈출 듯 공기의 흐름이 괴상하게 흘러갔다.
 
 '쾅쾅쾅'
 
 누군가 주먹으로 크게 현관문을 두드렸다. 시끄러운 소음에 감긴 눈을 억지로 뜬 석진이 소파에서 일어섰다. 잠시 곰곰히 생각에 잠기더니 문 앞에 누가 서 있는지 알기라도 하는 듯 다시 소파에 앉았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정적이 흘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도어락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키가 큰 한 남자가 그의 집 안으로 들어왔다. 그가 들어오자마자 어질러진 신발장을 보곤 이런저런 잔소리들을 늘어놓으며 자신의 신발을 가지런히 벗어두었다. 집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싸늘한 공기가 그의 팔을 타고 올라와 그의 몸 전체를 모두 옭아매었다. 몸을 작게 부르르 떨며 소파에 앉아있는 석진에게로 다가갔다. 자신이 바로 옆에 서 있음에도 고개를 한 번도 돌리지 않고 그저 멍하니 앞만 바라보는 석진에 남자가 석진의 두 어깨를 잡고 흔들었다. 왜소한 체구에 정처없이 흔들리는 종잇장같은 그의 넓은 어깨가 안쓰러웠던 것인지 남자가 한숨을 푹 쉬며 석진의 옆에 앉았다. 소파에 작게 일렁이다 멈추었다.
 
 "전화는 왜 안 받아요."
 "…"
 "내가 그러지 말라고 몇 번을 말했어요."
 "…"
 "제가 형 때문에 얼마나 힘든지 몰라요?"
 
 남자가 석진을 타박하자 아무말도 하지 않은 채 남자를 바라보던 석진의 눈동자가 작게 흔들렸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이 눈꼬리가 축 내려갔고 남자를 바라보는 석진의 눈빛도 변해갔다. 석진이 아무 말 없이 남자의 팔을 꼭 붙들은 채로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무어라 할 말이 있는 듯 통통한 입술이 달싹거렸다. 쉽사리 떨어지지 않는 입술에 석진이 답답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
 
 "앞으로는 그러지 마요."
 "남준아."
 "…"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
 "미안해."
 "알면 됐어요."
 
 사랑해. 석진이 남준의 팔을 놓아 손에 깍지를 끼며 말했다. 그 어떠한 말 중에서도 방금 한 말만큼은 정말 진심이야. 차마 하지 못 할 말을 애써 집어삼키며 그의 손을 더 세게 마주잡았다.
 
-
 
 아침부터 바쁘게 움직이던 남준이 점심시간이 찾아오자마자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어젯밤 새 석진이 저질렀던 일들로 사무실이 온통 들썩였고 덕분에 평소 출근 시간보다 훨씬 일찍 호출되어 일하게 되어 평소보다 더 피곤해보이는 그이다. 동료인 호석이 건네는 커피 한 잔에 피곤하다며 안 마시겠다고 거절한 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무작정 밖으로 뛰쳐나와 바깥공기를 맞았다. 크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기를 반복했다. 숨을 한 번 크게 내쉴때 마다 마음 속에 쌓여있었던 짐들이 쓸어내려가는 듯 했다. 하지만 이마저도 잠시, 갑자기 드는 불안함에 주머니에 집어넣었던 휴대폰을 꺼내들어 석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얼마 가지 않아 연결되는 전화에 남준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여보세요?"
 "형, 집이에요?"
 "응, 집이지."
 "다행이다. 집에 꼼짝 말고 있어요."
 "왜, 무슨 일 있어? 뭐… 일단 알겠어."
 
 짧게 이어진 전화통화가 끝나고 남준이 다시 휴대폰을 바지 주머니에 넣은 뒤 급하게 자신의 차키를 찾았다. 아, 사무실에 두고 왔다. 문득 스쳐가는 생각에 허겁지겁 사무실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남준이 뛰어들어오자 다들 큰 책상에 한데 모여 점심을 먹다 그를 바라보았다. 어느새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있었고, 급한 손길로 차키를 찾아 다시 사무실의 문을 벌컥 열었다.
 
 "어, 남준 씨, 어디 가요? 이리 와서 식사해요.'
 "지금 급한 일이 생겨서요. 밥 먹을 시간이 안될 것 같네요. 그럼, 가보겠습니다."
 
 점심을 먹지 않겠다는 말만을 남겨두고 헐레벌떡 뛰어나온 그가 자신의 차로 향했다. 급한 손길로 시동을 걸고 있는대로 엑셀을 세게 밟으며 앞으로 나아갔다. 급하게 차를 몰며 석진의 집으로 향했다. 커브길에도 속도를 줄이지 않고 줄곧 엑셀을 밟아대던 그가 얼마 지나지 않아 석진의 집에 도착했다. 대충 차를 아무렇게나 주차해 놓고는 차에서 내렸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새도 없이 곧장 계단을 뛰어올라가는 그의 등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긴 다리로 두칸씩 계단을 오르다보니 금방 도착한 그의 집 앞에서 노크나 초인종도 눌러보지 않은 채 바로 도어락을 풀었다. 급하게 신발을 벗어두고 언제나 그랬듯 소파에 누워있는 석진을 일으켜세웠다. 석진이 놀란 눈으로 남준을 쳐다보자 그가 얘기할 시간이 없다며 석진의 손목을 세게 붙잡고 그의 방으로 데려갔다.
 
 "일단 있는 짐들 다 챙겨요. 옷이나, 그런 것들."
 "왜, 무슨 일 있어?"
 "얘기 할 시간이 없다니까요. 가면서 얘기해 줄게요."
 
 석진이 알겠다며 베란다에서 큰 캐리어 두개를 꺼내오자 남준이 그의 옷장을 활짝 열어젖힌 뒤 걸려있던 옷들을 모두 꺼내 가방 안에 집어넣었다. 옷 개서 넣을 시간 없으니까, 그냥 막 넣어요. 남준이 급하다며 석진을 재촉하자, 석진이 손을 더 빠르게 움직이며 서랍에 있던 물건들도 모조리 가방 안에 쓸어넣었다. 마지막으로 두툼한 지갑을 주머니에 쑤셔넣듯 집어넣고 캐리어의 손잡이를 양손에 쥐었다. 얼른 가자며 재촉하는 남준에 급히 신발을 신고 그를 따라 나섰다. 무거운 캐리어를 질질 끌며 점점 발걸음이 느려지자 남준이 석진에게로 뛰어오며 캐리어 하나를 자신의 손에 들고 차가 주차되어있었던 곳으로 뛰어갔다. 뒷자석 바닥에 캐리어를 실어놓고 다시 석진에게로 뛰어가 다른 캐리어 하나를 들고 다시 그의 차로 뛰어가 캐리어를 차에 실었다. 석진에게 빨리 오라 손짓한 뒤 앞좌석에 앉아 시트를 살짝 뉘였다. 머리까지 시트에 모두 기대 눈을 살짝 감고 한숨을 내쉬었다. 핸들을 잡은 두 손이 파르르 떨렸다. 곧이어 석진이 조수석에 타 벨트를 매더니 무슨 일이냐며 남준에게 물었다.
 
 "형, 제가 조심하랬잖아요. 자꾸 이렇게 발목이 잡히면,"
 "넌 내가 그렇게 멍청한 것 같아?"
 "…네?"
 "난 네 생각보다 그렇게 멍청한 사람이 아니야."
 "…"
 "어쩌면 네 생각보다 훨씬 더 악랄하고 잔인한 사람일 수도 있지."
 
 석진의 말을 끝으로 차 안은 정적이 흘렀다. 아무 말도 오가지 않는 그들 사이엔 차디찬 침묵만이 이어졌다. 그렇게 한참을 달렸을까, 석진이 먼저 입을 뗐다.
 
 "아까 한 말은 못 들은걸로 해줘."
 "…."
 "지금 가는 곳에선 조용히 있을게. 자주 놀러와."
 
 다시 또 무한한 침묵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

작가의 말

안녕하세요. 정말 오랜만이네요. 본편을 처음으로 올리고 오기로 약속했던 날짜에서 거의 한 1개월쯤 지났는데 많이 늦어서 죄송합니다. 말 한마디 없이 한 달동안 아무 글도 올리지 않았고, 또 약속했던 날짜로부터 한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는데 본편 분량도 많지 않아서 정말 죄송합니다. 원래 글 쓰는 속도가 느린 것은 알고 있었으나 이렇게까지 늦어질 줄 몰랐네요. 죄송합니다.  *브금을 분명 잘라서 올렸는데 자꾸 원본으로(원본보다도 두배정도 더 길게) 올라가네요. pc에서는 잘 되는 것 같은데 모바일에선(제 휴대폰만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안 되는 것 같아요. 브금 6분에서부터는 불편하시더라도 다시 앞으로 돌려주세요. 최대한 빨리 수정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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