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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도부 중 하나가 남준의 팔을 잡아챘다. 남준은 교탁 앞에 서있는 코타로우를 노려보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남준은 저의 팔을 잡은 선도의 손을 거칠게 뿌리친 다음 천천히 교실을 벗어났다.
선도들은 빠르게 남준의 뒤를 따라나섰고, 코타로우는 그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다 다시 입을 열었다.
"학교 밖을 벗어나고 싶음 나에게 찾아와라. 죽여서라도 내보내줄테니."
코타로우가 그렇게 교실 밖을 나가버렸다. 그러고선 아이들이 풍선 터지듯 얘길 하기 시작했다.
끌려나간 남준에 대해서, 마사토에 대해서, 그리고 조선인에 대해 말이다.
"그래, 츠카사도 어쩔 수 없는 조선인이지."
"조선인들은 조선인들끼리 뭉치는 건가. 참 더럽게도 진한 우정이야."
"오늘 부로 저 학생회장 직위나 벗어버렸으면 좋겠다. 모가지 뻣뻣하게 세우고 다니는 거 꼴뵈기 싫어 죽을 뻔 했는데."
그저 혼동스러웠다. 모두가 아슬아슬해서 누구의 목소릴 먼저 들어야 하나 헷갈렸다.
나는 남준의 손수건을 꽉 쥐었다. 누구 하나 믿어서는 안되는데, 이곳에선 나 혼자 믿어야 하는데 왠지 모르게 끌려간 남준이 걱정되었다.
나는 소란스런 아이들에게서 시선을 땐 뒤 뒷문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태형과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
태형은 알 수 없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맑은 눈으로 나를 담고 있었다. 태형에게 속을 내보이는 것 같았다.
나는 자연스레 태형의 시선을 피해 창문 밖을 바라보았다.
난 내 할 일만 잘하면 돼, 그렇게 계속 되뇌였다.
***
선도부실 문을 연 남준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 피떡이 되어 구석에 쓰러져 있는 마사토의 모습 때문이었다.
남준은 그런 마사토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얼굴을 멀리서 살피고는 윤기를 향해 입을 열었다.
"교장이 이런 폭력까지 허락했다고?"
"학생회장이라고 이런 자세한 것까지 알아야 할 필요는 없어."
"지휘봉을 언제까지 휘두를 수 있을 거라 생각하냐. 그렇게까지 이 덧없는 세계에서 살고 싶으니."
"건방지네. 츠카사."
"주위 사람들을 다 떠나 보내면서까지 이러는 이유가 뭐지. 성공을 위해서야? 그래서 교장에게 충성하는 거야?"
"그 다음부턴 봐주지 않아."
"우린 반드시 독립할 것이야. 모두와 함께 만세를 부를 거야."
"입 다물어."
"다함께 만세를 부를 때, 넌 부끄럽지 않을 자신 있니. 민윤기."
윤기가 주먹으로 남준의 뺨을 치고, 뒤에 서있던 선도부생들이 바닥에 나뒹굴던 몽둥이를 들어 내리치기 시작했다.
남준은 한번의 신음도 내뱉지 않고 애벌레처럼 몸을 웅크렸다. 윤기의 이마에 핏대가 섰다.
아무리 들어도 익숙해지지 않은 마찰음과 거친 숨소리. 윤기는 그런 것에 약해지지 않으리라 속으로 몇십번을 다독였다.
그때 구석에 내몰려있던 마사토가 힘겹게 눈을 떴다. 마사토의 입에선 츠카사라는 이름 대신 남준이란 이름이 새어나왔다.
그간 아무 말이 없던 마사토는 저 때문에 쓰러진 남준의 모습을 보고는 발악을 했다.
"남준이는 아무 잘못 없어! 사람 잘못 데려왔어! 그 아이는 아무런 죄도 짓지 않았어!"
먼지가 나풀거리는 선도부실에서 마사토의 절규가 울려퍼졌다. 윤기는 마사토의 찢어질듯한 고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윤기는 큰 보폭으로 마사토에게 다가가 저의 타이를 풀러 마사토 입에 쑤셔 넣었다.
마사토의 뺨으로 피가 섞인 눈물이 흘러내렸다. 마사토는 절규를 내뱉는 순간에도 저의 앞에 서있는 윤기의 눈을 피하지 않았다.
윤기는 더욱 잔혹해져야 했다. 이들의 기를 꺾거야만 했다.
"하나둘씩 잡아 끌어 내릴거야."
"개같은 새끼."
"이건 다 너희를 위해서야."
윤기는 하루 빨리 이들에게 자신의 마음이 닿기를 애타게 바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