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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 이름 변경 적용
*본 글은 애니메이션 SPY X FAMILY의 설정을 차용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그러니까 그날은, 아주 석연찮게 시작했다.


“...뭐야, 8시??”


  너무 깊이 늦잠을 자버린 것도 그렇고.


“여주 씨, 여기 뭐 묻었는데요.”

“네? 으앗-”

“조심-”


  허둥지둥 움직이다, 쾅 소리가 날 정도로 세게 엉덩방아를 찧어버린 것도 그렇고.


“아야...”

“...괜찮아요?”

“아뇨...”

“다쳤어요?!”

“그건 괜찮아요. 그냥 민망해서...”


  그 모습을 민규 씨한테 다 들킨 것도 그렇고.

  무엇보다,


“이렇게 덤벙대서 혼자는 어떻게 살았대.”

“...잘 살았어요, 나름.”

“퍽이나 그랬겠어요. 두 번 먼지 뗐다간 일 치겠는데.”


  몸을 일으켜주며 장난스럽게 웃는 얼굴에, 속절없이 설레버리기도 했고.


“잠깐 가만히 있어요.”


  목깃에 묻은 먼지를 털어주려 가까이 다가온 민규 씨에게는 익숙한 향기가 났었다. 너무 시원하고 부드러워서, 사람을 어지럽게 하는 그런 향.

[세븐틴/김민규] SPY X FAMILY - 04. 운수 나쁜 날 | 인스티즈


“됐다.”

“...고마워요.”


  그래서였을까. 그렇게 혼돈 속에 시작한 하루는 갈수록 더, 더 어지러워져만 갔다.




*** 




  간신히 지각을 면하고 자리에 앉은 나를 기다리고 있는 건,


“...오늘따라 많은 것 같은데 기분 탓일까요.”


  오늘 하루 정리할, 수없이 쌓인 기록물들의 탑이었다.


“어머? 여주 씨가 어제 조퇴한 탓이지 뭐겠어.”


  보통은 피치 못할 사정으로 휴가를 쓰면 같은 동료들이 일을 나눠서 해주곤 하지만,


“...그렇죠.”


  나는 밉보인 상태니, 몰래 양이 늘어났다 해도 이상하지 않으리라.

  괴롭힘이 시작된 지는 오래다. 사유가 꽤 명백하고 합리적이라서 딱히 반응하지 않을 뿐. 경력 얼마 차지도 않았을 때부터 눈치 안 보고 휴가를 팍팍 써댔으니, 그럴 만도 하다.


“막내가 늦게 와서 모닝티를 못 마셨더니, 어우, 졸려 죽겠구만.”


  거기다 일 많은 부서라 신입이 들어오질 않아 막내이기까지 하니, 얼마나 갈구기 좋은가.


“죄송합니다, 늦잠을 자는 바람에.”

“결혼한 거 숨길 땐 언제고, 이젠 신혼부부라고 티 내는 거야?”


  설상가상으로 부서장이 아내와 싸우고 온 것 같았다. 쉽지 않을 하루가 눈에 훤했다.


“아닙니다. 얼른 차 내오겠습니다.”


  고개를 살짝 숙인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 

  역시, 암살자로 사는 게 훨씬 편하다.




*** 




  점심때까지 어떻게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다. 일 쳐내고, 결재 올리고, 서류 정리하고, 차 타오고, 다시 일 쳐내고.


“점심들 드시고 오시게- 나는 옆 부서 직원하고 약속이 있어서, 큼.”


  불륜인 걸 모르는 사람이 시청에 얼마나 있다고 애써 저렇게 포장을 해대는지. 다른 직원들 역시 알 만 하다는 눈빛으로 그에게 목례를 했다.


“다녀오십시오-”


  쿵.


  살짝 고개를 들어, 뻐근해진 어깨와 목을 풀었다. 하루종일 서류와 타자기 앞에 붙어 있어야 하는 기록관리부는 도통 쉴 틈을 가지기가 어려워서, 점심시간은 그 어느 때보다 소중한 단비와 같다.

  그래서,


“여주 씨, 점심 어떻게 할 거예요?”


  이 어지럽고 버거운 날에, 불쑥 다가온 승관 씨는 아주 조금은 귀찮은 대상이었다.


“...뭐, 그냥 평범하게, 앞에 빵집에서 샌드위치나 사올까 하는데요.”

“집에서 먹을 걸 싸 왔는데, 좀 많이 가져왔거든요. 휴게실에서 같이 먹을래요?”


  지인과 결혼했다는 내적 친밀감 때문일까. 집들이 이후로 승관 씨는 유독 살갑게 굴었다. 이전까지는 그냥 적당히 사내 동료 정도로만 보던 사람이었는데.


“...감사하죠, 저는.”


  어쨌든 거저 얻는 식사를 거절할 이유는 없어, 고개를 끄덕였다. 빨리 먹고 쉬면 그만이니, 오히려 괜찮을지도 몰랐다.

  괜찮다고 생각했었다.


“여주 씨, 이런 질문 실례일 수도 있는데.”

“네.”

“어제 어디 갔다 오셨어요?”

“켁-”


  승관 씨가 저 질문을 내 양심에 박기 전까지는.


“켈록-”

“어이쿠, 물 드세요, 물. 여기.”


  눈앞에 내밀어진 물마저 죄스러웠다. 

  아니, 죄스러운 걸 떠나서 공포감이 밀려왔다. 

  생각해보니, 어제 늦게 퇴근했다는 핑계를 대서는 안 됐다. 조퇴를 한 걸 뻔히 아는 인간이 있는데, 그것도 민규 씨 측근인데. 

  어떻게든 머리를 굴려야-


“머리 굴리지 마시고, 솔직하게 대답해주세요.”

“...큼, 티나요?”

“네, 굉장히.”


  ...아무래도 끼리끼리는 과학인가 보다. 어쩌면 이렇게 하나같이 눈치가 빠르지.

  따뜻한 물이 담긴 컵을 괜히 꼼지락거리다가, 슬쩍 눈을 굴려봤다.


“혹시, 민규 씨한테 말씀하셨나요...?”


  이게, 이게 제일 중요하다. 내가 변명의 효과 말이다. 변명이 통하면 민규 씨에게 얘기 안 하는 거라면, 적당히 짜깁기만 해서-


“아직 말 안 했어요. 그런데,”

“그런데...?”

“어떤 말씀을 하시든, 형한테 전달은 할 거예요. 그 뉘앙스가 달라질 뿐이겠죠.”


  -는 안 된다고 못을 박는다, 이 망할 인간이.

  아니, 난 안 중요해? 어? 물론 민규 씨랑 더 친하겠지만! 나는 직장 동료 정도겠지만! 거짓말한 건 나고 당한 건 민규 씨지만!


“...그렇...죠. 그게 맞죠.”


  생각해보니, 나에게 변명 기회를 먼저 주는 것부터 이 사람은 천사인 거다. 어제 식사 자리에서 바로 말했다면.... 상상도 하기 싫다. 그 집에서의 마지막 날이 되었을지도 몰라.


“그게, 말이죠.”

“네에.”

“그니까...”


  식은땀이 흘렀다. 어제 뭘 했지. 아니, 뭘 했긴. 사람 죽이고 왔지.

  절대 발설할 수 없는 비밀 속에, 조금이라도 포장할 수 있을 법한 일이 있을까.

  어제 정확히 어딜 갔었더라. 정확히 어떤 순서를 거쳐서, 무슨 일을 했었더라.


“...여주 씨, 그렇게 오래 고민하실 정도의 일이에요?”

“...그게.”


   네, 존나 오래 고민해야 해요. 그럴 수밖에 없단 말입니다.

   시시각각 어두워지는 승관 씨의 얼굴은 꼭 유죄로 심증이 기우는 판사 같아서, 더 마음이 조급해지고 머릿속이 엉켜갔다.

  생각해. 생각해내란 말이야.


“...여주 씨.”


  뭐라도, 좀.


“...할 말 없으시면 이만-”


  아!


“그, 제가-”


  그거라면, 될지도...?


“-담배를, 피거든요...!”


  생각보다 크게 튀어나온 목소리가 울린 후, 잠깐의 정적이 흘렀다. 정적이라 함은, 휴게실에서 식사하던 모두가 조용해졌단 소리다.

  ...제기랄.


“...나가서 얘기할까요?”


  승관 씨가 먼저 짐을 싸기 시작했고, 나는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혼란 그 자체인 하루가 절정에 치닫고 있었다.




*** 




“그러니까, 보육원 때 친했던 친구를 보기로 했던 날이라 만나러 갔었고.”

“네.”


  미리 맡겨둔 바늘을 찾으러 호랑이를 만나야 했으니까.


“익숙하게 얘기하다 보니 습관적으로 흡연을 하셨고.”

“네.”


  사실 약속 시간에 방해될 정도는 아니었지만.


“냄새를 빼려고 밖을 오래 돌아다니다 보니 늦게 집에 들어갔다?”

“네... 승관 씨는 비흡연자라 모르시겠지만, 냄새 빼는 거 꽤 오래 걸린단 말이에요.”


  물론 뺄 냄새는 담배 냄새뿐이 아니긴 했는데, 어쨌든.

  께름칙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빤히 주시하던 승관 씨는 얼굴을 찌푸리며 제 머리를 마구 헝클었다.


“아니 뭐, 저도 흡연자 지인은 많아서 냄새 빼는 거 오래 걸리는 건 이해하는데.”

“...네.”

“어제 그 알레르기 얘기도 그렇고, 보육원 출신 친구 있는 것도 그렇고, 담배도 그렇고. 뭐 그렇게 형한테 숨기는 게 많아요? 부부잖아요.”


  ...이렇게까지 근본적인 질문을 한다고?

  하긴, 어쨌든 승관 씨는 나와 민규 씨가 진짜 사랑해서 비밀스럽게 결혼했다고 알고 있으니, 그런 질문을 할 수 있을 수도 있으리라.

  숨기는 게 왜 그렇게 많은가...라.


“...신경 쓰이게 하고 싶지 않아서요.”


  아예 처음부터 따지자면 내 직업이 문제겠지만, 그건 차치하고라도.


“...뭐를요?”

“그냥...”


  충분히 사교적이고 다정하지만, 민규 씨는 분명히 예민한 사람임이 분명했다. 항상 촉각을 곤두세운 채로, 수많은 사람의 감정과 행태를 관찰하는 경향이 있으니까. 

  그건 아마도, 


“안 그래도 신경 쓸 게 많아 보이는 사람이거든요, 민규 씨는.”


  어린 시절 이방인의 삶을 살아온 탓이리라.


“...저도, 어머니가 서국 분이셨어서 잘 알아요.”

“...어떤 걸요?”


  내가 그랬듯이.


“...혼자나 다름없는 존재들이 어떻게 자라게 되는지?”

“.......”

“어떻게 이질적인 모습을, 악착같이 숨기게 되는지, 그런 거요.”


  내가 그렇듯이.


“아무튼 잘 알다 보니까... 곤란한 상황에서 구해준 것만으로도 고마운 사람인데, 너무 사소한 문제로 신경 쓰이게 하기는 싫었어요.”

“........”

“물론 첫 만남에 잘 보이려고 거짓말했던 게 너무 크게 돌아오긴 했는데...”

“...네에, 그래 보이네요.”

“뭐 어쩌겠어요, 이 김에 끊어 봐야죠.”


  으음, 하고 신음 소리를 내는 승관 씨의 고개가 뚜두둑 돌아갔다. 뭔가 말린 것 같은 기분이라며 투덜거리는가 싶더니, 손을 훠이훠이 젓는다.


“일단 알았어요. 형한테 얘기할지 말지는 생각해볼게요.”


  세상에, 이건 예상하지 못했는데.


“정말요??!!”

“담배는, 좀 중요한 문제일 수 있으니까... 끊고 계신다고 하고.”

“세상에!! 정말 감사해요!!!”


  살았다!!! 진짜 살았다!!!


“...그래도, 저 또 이런 걸로 사이에서 속 끓게 하지 마시고 알아서 형한테 알리세요. 굉장히 신경 쓰이니까.”

“네!! 다음부터는 거짓말 안 할게요!!”

“담배는 끊으시고요.”

“네!!!”

“...먼저 들어갈게요. 점심시간 끝나면 들어오세요.”


  휘적휘적, 아주 빠르게 멀어지는 승관 씨의 등이 그렇게 빛나 보일 수가 없었다.

 
“...하아...”


  다리에 힘이 풀린다. 이번엔 진짜, 진짜로 위험했다.

  아무래도 내일 중으로 점장님에게 연락해, 임무 시간대를 조정하든지 해서 승관 씨에게 인지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 같았다.


“담배 말린다...”


  그렇게, 정체를 들킬 위기는 간신히, 아주 간신히 나를 빗겨 나갔다.




***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보안국입니다. 수사 협조 부탁드립니다.”

“...네??”

“신분증을 제시해주십시오.”


  도통 하루가, 끝나질 않는다.

  퇴근하던 중, 골목길을 들어서기 무섭게 내 앞을 가로막은 엄청난 덩치의 남자. 내려다보는 시선에 남색 제복까지 더해지니, 몸이 긴장될 정도의 위압감이 전해졌다.


“...여기요.”


  살짝 떨며 내민 신분증이 가죽 장갑 낀 손가락에 빠르게 낚아채졌다.

  
“김여주, 본인 맞습니까.”

“네, 네.”

“남부 중앙 보육원 출신 맞습니까.”

“...네.”


  남자의 눈이 찌푸려지자, 오른쪽 얼굴에 있는 흉터가 깊게 패였다. 한층 더 험악해 보이게 됐단 소리다.

  여전히 신분증을 쥔 채, 남자는 이미 완벽하게 착용된 모자를 한 번 더 정리했다.


“남부 보육원들을 중심으로 서국 이민자 후손을 무단으로 편입시킨 정황이 발견된 것, 알고 계십니까.”

“...네?”


  ...그걸, 어떻게?


“관련자 조사로 몇 가지 질문하겠습니다.”


  알 만한 사람은 다 죽었을 텐데.


“김여주 씨, 모친이 서국인이고, 현재 남편도 서국 이민자 출신으로 파악됩니다. 사실입니까.”


  심지어 윤정한과 권순영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모르는 정보까지. 좀 전의 승관 씨까지 포함하더라도...

  ...동국 정부 단위 조직이 벌써 여기까지 접근했다고?


“...맞아요.”


  이러면 계획에 차질이 생기는데. 보안국은 거추장스럽단 말이야.


“둘 다 적법한 이민자예요. 아무 문제 없으시고, 그 보육원은 떠난 지 10년은 됐는데... 아무 관련 없어요.”

“그건 보안국에서 확인할 문제입니다. 지금은 소재 확인을 위한 단순 질의조사이고, 수상한 정황 있으면 따로 신변확보 조치 취해질 겁니다.”


  신분증이 다시 손으로 돌아왔지만, 머릿속은 복잡했다.

  조직 일이나 복수는, 그냥 홀로 도망가서 어떻게든 하면 된다. 그건 자신 있다.

  다만 자칫 민규 씨한테 피해가 갈 수 있는 상황이다. 정말 보안국이 개입하게 되면, 서국인 피가 흐르는 사람은 어떤 식으로든 만들어진 죄로 끌려갈 수 있다.

  ...그건, 정말 싫을 것 같은데.


“정말 아무 관계 없는데, 어떻게 증명할 방법이 없을까요?”

“그건 저희가 알아서-”

“저희 남편, 힘든 환경에서도 성실하게 자란 사람이에요. 괜히 저 때문에 의심받는 상황 만들고 싶지 않아요.”

“.......”

“...어떻게, 안 될까요?”


  목소리가 떨렸다.

  가족을 형성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참 불편하고, 버겁고, 그저 미안하기만 한 일인가 보다.




*** 




“여주 씨-”


  터덜터덜 가던 발을 멈추고, 휙 뒤를 돌았다. 해맑은, 어느샌가 익숙해진 눈웃음이 생각보다 가까이 있었다.

[세븐틴/김민규] SPY X FAMILY - 04. 운수 나쁜 날 | 인스티즈


“이제 퇴근해요?”

“네, 오다가-”

“어우, 먼지. 어딜 들어갔다 온 거예요?”


  아침의 데자뷰처럼 가까이 다가오는 얼굴에 굳어 있는 사이, 민규 씨는 능숙하게 내 목깃을 정리하고 손을 떼어냈다. 


“됐어요.”

“...고마워요.”


  오래 닿은 것도 아닌데. 왜인지 살갗이 깊이 닿은 마냥 따뜻한 온기가 느껴지는 것 같아 긴장이 탁 풀렸다.

  그래서였을까, 생각하기도 전에 말이 줄줄 튀어나왔다.


“...저, 오다가 보안국에 잡혔었어요.”

“...네?”

“예전에 있었던 보육원에 석연치 않은 점이 있어서... 조사할 게 있다고.”

“뭐라고 하던가요?”

“그냥 신분증 보고... 이것저것 물어봤는데. 민규 씨 얘기도 하고...”


  민규 씨의 얼굴이 사뭇 어두워졌다. 그럴 만도 하다. 주변의 그 누구라도 의심받기 시작하면 일상생활에 가장 큰 영향을 받기 시작할 것은 자명하니까.

  그래서, 바로 질문이 돌아올 거라고 각오했는데.


“여주 씨, 괜찮은 거죠?”

“...네?”

“막, 협박하거나, 총을 들이댔다거나... 그런 일은 없었어요? 상처 같은 건 안 보이긴 한데... 그 새끼들 폭력적으로 구는 거 한두 번도 아니고.”


  ...걱정 가득한 눈빛과 말들이 쏟아진다.

  왜. 왜 굳이.

  가장 피해 볼 건 본인이면서, 왜 내 걱정을.


“저한테 화 안 났어요?”

“여주 씨한테요?”

“제가, 괜히 민규 씨한테 피해를...”


  민규 씨의 미간이 다시 한 번 구겨졌다.

  이제야 본인 안위에 대해 새겨보게 됐나. 이번엔 진짜 물어보겠거니, 하고 눈을 지그시 감는데,


“자꾸 그런 말 하지 말아요.”


  사락, 내 머리 위로 온기가 얹어졌다. 그게 민규 씨의 오른손이라는 걸 알아차렸을 때쯤,


“저번에 집들이 때도 말해주려던 건데, 여주 씨의 상황이 저한테 피해를 준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니까.”

“.......”

“그럴 일도 없고.”


  다정하게, 반복적으로 움직이는 손길이 머리카락 사이로 부드럽게 감겨왔다. 

  ...이게 뭐라고, 위로가 됐다. 생각보다 많이.

[세븐틴/김민규] SPY X FAMILY - 04. 운수 나쁜 날 | 인스티즈


“저도 조사 몇 번 당해봤는데, 별거 없으면서 괜히 찔러보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바로 보내준 거면 별일 없을 거예요.”

“그렇겠죠...?”

“네. 걱정 마요.”


  민규 씨는 그렇게, 내가 진정될 때까지 계속해서 머리를 쓰다듬었다. 마침내 떨어졌을 땐 조금 아쉬울 정도로, 울컥하리만치 따듯하게.


“...고마워요.”

“고생도 했는데, 금요일쯤에 퇴근하고 외식이나 할까요.”

“...그럴까요.”

“술도 한 잔 하고.”


  언제나처럼 싱긋 웃는 민규 씨의 눈 속에서, 따스한 석양이 붉고 눈부시게 빛났다. 언제나처럼 심장이 떨어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저는,”


  이번엔 가슴에, 아니 온몸에 뜨거운 사슬이 감기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죄스러운 갈증이 목 끝까지 차올라, 차가운 숨이 폐를 채운 후에야 간신히 말을 뱉을 수 있었다.


“...좋아요.”


  그의 눈을 사랑하게 된 순간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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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혼’은 한 번 부서진 초소형 도청기를 한 번 더 구겨 쥐어 가루로 만들었다. 하루 간의 감청은 생각 외로 효과적이었다. 동거인의 직장생활 패턴과 주변인을 확인하는 동시에, 주목할 만한 정보도 새롭게 얻었다. 

  기억 속에 넣어둔 사실들을 하나하나 되감던 중, ‘황혼’의 입에서 작게 웃음이 터졌다.


“흡연자란 말이지.”


  알고 보니 같은 처지였을 줄이야. ‘섬’과의 대화가 끝나고 담배를 찾는 목소리를 들었을 때는 마시던 커피를 뿜을 뻔했더랬다. 사서 고생을 하는 게 저만이 아니었다는 사실이 황당했지만, 마냥 나쁘지만은 않았다.

  ...예상치 못한 이야기를 듣기도 했고.


- “안 그래도 신경 쓸 게 많아 보이는 사람이거든요, 민규 씨는.”
- “혼자나 다름없는 존재들이 어떻게 자라게 되는지?”


  생각보다 정확하게 파악해서 간담이 서늘하게 하질 않나.


- “저희 남편, 힘든 환경에서도 성실하게 자란 사람이에요.”


  괜히 한참 묻어두었던 기억 속에 잠기게 하질 않나.


- “너무 사소한 문제로 신경 쓰이게 하기는 싫었어요.”
- “괜히 저 때문에 의심받는 상황 만들고 싶지 않아요.”
- “저한테 화 안 났어요?”


  ...마음 한 쪽이 불편해질 정도로 안쓰럽게 보이질 않나.


“...뭐, 확인할 건 확인했으니까.”


  친지 중 보안국 소속이 있다면 입직 시 관련인 조사를 통과했단 뜻이니 연루되지 않은 증거가 될 것이라 전했을 때 보였던 그 눈. 그 속엔 정말이지 순수한 절망만이 담겨 있었다.


- “그냥 정부 본청 직원은 안 되는 거죠...?”

- “...어렵습니다.”

- “하아...”


  세상 무너진 듯 한숨을 내쉬는 모습에, 간만에 임무 중 웃음을 참으려 상당히 노력해야 했던 ‘황혼’이었다.

  어딘지 우습기만 한 기억을 다시 한 번 떠올리며 지어진 미소는, ‘황혼’이 내용을 수정한 수첩을 덮기까지 꽤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았다.


“김여주. 28세. 5월 26일생. 미혼.기혼. 수도 시청 기록관리부 소속.”
“남부 출신으로 예상. 고아. 서국인 이민자 혼혈.”
“기타 인간관계로 보이는 것은 확인 불가하나 친하게 지내는 남성 1명 존재.”
“- 윤정한. 31세. 정부청사 외무부 소속. 동향 지인으로 가족처럼 생활.
“- 보안국 비밀경찰 간부. 가족보다는 이성으로서의 호의를 보이는 것으로 관찰.”
“- 연루 가능성 확인 필요.보안국 입직 사실을 공유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
담배연기를 혐오.흡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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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1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지 너무 궁금합니다 •••
11개월 전
독자2
🥲
10개월 전
비회원도 댓글을 달 수 있어요 (You can write a com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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