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콜리 너마저 - 졸업
졸업
표지훈 이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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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가는 이 길이 참 오랫만이다. 오랫만에 교복을 입고 오랫만에 5-1번 버스를 탄다. 고3이라고 미친듯이 공부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졸업이 날 반긴다. 이제 얼마 안가면 종점에서 내려서 뒷산을 타고 학교엘 가겠지. 그럼 누가 있으려나. 이민혁이랑 안재효가 먼저 와서 투닥투닥 싸우고 있으려나. 동아리 후배들이 찾아 올지도 모르겠다. 나도 작년에 나갔으니까 당연히 오겠지. 근데 한 놈은 안올꺼 같다. 하긴 표지훈한테 내가 뭘 바라겠어. 동아리 탈퇴 안 한것만으로 감사해줘야되나. 항상 따박따박 대들긴 했지만 이상하게 밉지는 않은 녀석이였는데 오히려 좋았다고 해야되나. 오늘 못보면 좀 아쉬울것 같긴 하다. 이어폰에선 포맨노래가 이어지고 벨을 안눌러도 알아서 내려주던 종점에 다다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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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점에서 내리니 낯익은 얼굴이 날 반긴다. 고개를 푹숙이고 조금 쭈뼛쭈뼛 서있긴 하지만 처음 봤을때 그 인상이 너무 강해서 절대 머릿속에서 사라지지 않는 원숭이 닮은 표지훈이 꽃다발을 들고 서있다. 내 예상과는 무척 반대되는 일이라 조금 놀라긴 했지만 그의 등장이 싫지는 않다. 내가 표지훈앞으로 걸어가자 표지훈은 고개를 들고 내 눈을 힐끔 쳐다보더니 내 손목을 잡고 학교와는 반대 방향으로 걸어간다. 아직 시간있죠? 낮게 깔리는 목소리로 갑자기 묻자 난 어떨결에 그렇다고 대답했다. 나도 무슨 생각인지 순순히 그가 데려가는 곳으로 따라가고 내 머리보다 세주먹 더 위에 있는 그의 뒤통수만 빤히 쳐다봤다. 지훈이 갑자기 멈춘 곳은 버스정류장보다 더 위쪽에 있는 외진 주차장, 아침이란 시간 때문인지 사람들도 없었다. 표지훈은 내 손목을 놓더니 그자리에서 머리를 한번 긁고 내 쪽으로 돌아섰다.
형. 우선 졸업 축하해요. 표지훈은 한손으로 꼭 잡고 있던 꽃다발을 내밀면서 바닥만 쳐다본다. 내가 계속 그의 눈을 쳐다보고 있지만 표지훈은 마주칠 생각을 안한다. 전과는 다른 행동이라 좀 의아하지만 그런 그가 많이 변했다고는 생각되질 않는다. 나한테 많이 대들기도 하고 장난치기도 하고 욕과 기타등등 못할 짓은 많이 했지만 그가 싫지 않았던 이유가 여기에 있을까. 숨을 흡- 하고 들이 쉰 지훈이 긴말을 꺼내려고 했다.
이제 형도 졸업이고 하니까 저 하고싶은 말 해도 될것 같아서요. 나 형 좋아해요. 언제부턴진 모르겠는데 그냥 형이 좋아요. 그래서 더 많이 괴롭히고 까불고 했어요. 형 나 미워요?
그의 말은 충격으로 다가 오지 않았다. 오히려 기쁨이 맞을 수도 있겠다. 나도 잘 모르겠지만 그냥 지금 내 마음이 그렇다. 졸업식에 가야하는 지금 난 표지훈과 더 같이 있고 싶고 얼굴을 안봤으면 서운했을 것 같던 감정을 이해했다. 표지훈은 내가 대답이 없자 시무룩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가려했지만 내가 그의 말을 끊었다.
아니.
짧은 한 마디였지만 표지훈은 내 눈을 보고 원숭이 같은 얼굴을 고릴라로 만들며 웃는다. 내가 그의 말에 대답한 것 뿐인데, 표지훈 널 좋아해 라고 말한것도 아닌데 지훈은 날 세게 껴안았다.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오랫동안 껴안고 있는 표지훈이었지만 나는 졸업식 시간에 대한 조급함은 없었다. 하지만 지훈이 날 품에서 떼어놓고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형 이제 졸업식 가야되잖아요. 빨리 가봐요. 늦겠어요.
날 말로 떠미는 표지훈은 내 손을 잡고 놔줄 생각을 안했다. 또 그렇게 한참동안 잡은 손을 놓고 그는 나에게 인사를 했다. 형 진짜 졸업 축하해요.
난 졸업이 실감이 나지 않는다. 고등학교 생활의 끝맺음을 하는 졸업식을 난 다시 시작으로 만들어 버렸다. 학교로 가는 길 위에서 멀어지는 표지훈을 보고 있으려니 그냥 자꾸 웃음이 나왔다. 그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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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졸업 기념 자축용 짧은 오일
아 눈물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