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성] 아해의 시간
W.전라도사투리
세상의 만물이 피어나는 생명의 계절 봄. 하지만 그 해의 봄은 나에게 한 없이 잔인하고 모질기만 했다.
02
어릴적 나는 나의 생일이 4년에 한 번인줄로만 알고 있었다. 그저 어린나는 어른들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해맑게 웃엇던 것으로 기억한다. 뒤돌아보면 나의 생일 따위는 없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현아 넌 생일이 언제야?' 라는 물음에 나는 정확히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나도 내 생일이 언제인지 몰랐으니까. 조금 커서 알았을 때 나의 생일은 2월 8일이었다. 생일을 알고 있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하나 없었다. 2월 8일은 특별한 날이 아니라 그냥 보통 평일과도 같은 날로 치부되었습니까 말이다. 나 또한 그닥 나의 생일을 생각하지 않았다. 생각을 하고 기대를 하게 되면 내게 돌아오는 것은 그저 쓸쓸한 외로움 뿐이였으니까.
*
어색한 형제의 어색한 외출이다. 목요일날 학교를 가기 위해서는 교복을 맞춰야했다. 혼자 가는 것이 편하겠지만 이곳의 지리를 모르는 나로서는 엄두도 못낼 일이다. 조금 어색하고 불편해도 성종과 함께 나서는 수 밖에 없었다. 녀석과 나의 거리는 좁혀질 생각을 하지 않고 더욱 멀어져만 갔다. 녀석은 슬쩍 나를 곁눈질 하며 나의 눈치를 보는 듯 했다. 녀석의 입장에서는 내가 모르게 곁눈질을 한다고 생각하고 있겠지만 녀석이 나를 곁눈질 하고 있다는 것 쯤은 너무나 티가나는 행동이었다. 녀석의 행동에 조금 웃음이 날 것 같았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이상황에서 저 혼자 웃음을 터트린다면 어색한 녀석과의 사이에 조금 더 무거운 어색한 기운이 내려 앉을 것이 확실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느새 서로에게 조심스럽고 어색한 사이가 되어 버렸다.
교복을 맞추고 성종과 함께 작은 식당에 들어왔다. 식당은 학생들을 상대로 하는 듯 10대 청소년들의 취향에 맞게 꾸며져 있었다. 녀석은 익숙한 듯 음식을 주문 시키고 나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고 눈만 이리저리 굴려되기 바빳다. 교복을 맞추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녀석은 나의 옷을 잡고 머뭇거리다 이내 배고프다며 식사를 하고 가자는 제안을 한 것이다. 처음에 녀석에 제안에 놀란 것은 사실이었다. 내가 온 뒤로 녀석은 나에게 말 한마디 안 했으며 눈길 조차 주지 않았으니까. 그러니 녀석의 제안에 놀라울 수 밖에.
"형..."
녀석의 조심스러운 부름에 천천히 녀석과 시선을 맞추어 녀석의 대답에 응답해 주었다. 녀석은 조금 망설이는 듯 꽤 지루하게 뜸을 들였다. 나는 녀석을 보채지 않았다. 느긎하게 그의 말을 기다려 주었다. 그의 물음을 기다리는 동안 주문했던 음식이 나왔고 김이 모락모락 피어 오르다 천천히 식어갔다. 녀석의 물음을 기다리는 것은 지루하지 않았다. 녀석이 나에게 처음 물을 대답이 궁굼하였으니까. '아버지... 행복하셨어?' 녀석의 질문은 나에게 오래 전에 물어야할 말이였다. 아니면 아예 말을 하지 않던가. 녀석의 말에 그나마 걸치고 있던 거짓 적으로 지은 웃음도 사라져 버렸다. 녀석은 나의 표정에 당황하더니 아니라며 말을 더듬었다. 이 말을 꺼내기 전이었다면 녀석의 당황하는 행동이 꽤나 귀엽게 느껴졌을 테지만 지금은 아니였다. 녀석은 나의 상처를 스쳤으니까. 살짝 건드리기만 해도 터질 상처를. 녀석의 물음에 쉽사리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나도 그가 행복했는지 모르니까. 한 번도 묻지 않았다. '아버지 행복하세요?' 쉽게 물을 수 있는 물음도 아니였으며 무엇보다 그의 대답에 상처받을 내가 두려워서. '행복하세요?' 라는 물음에 '행복하다.' 라는 대답이 나에게 던져지면 분명히 나는 알 수 없는 괴리감에 휩쌓였을 것이다. 나는 행복하지 않은데 어째서 당신은 행복한 것인지. 그렇다고 그에게 '행복하지 않다.' 라는 대답을 원했던 것도 아니다. 어떠한 대답도 날 두렵게 했을 테니까. 그가 행복하지 않다고 말하면 나는 자책감에 시달렸을 것이다. 내가 있어서, 내가 존재해서 그가 행복하지 않은 것이라고. 그렇게 생각하며 말이다.
"그걸 왜 묻는 거지?"
"...그냥..."
"...나도 잘 몰라."
"..."
"그가 행복했는지 불행했는지 잘 모른다고."
"..."
"그럼 이제 내가 물어볼게. 너는? 너와 어머니는 행복했니?"
"나는... 행복했어. 엄마도 행복했고..."
"그래? 그거 듣던중 가장 기쁜 소리이네."
"형은?"
"나? 글쎄? 내가 행복했을 것 같아? 아니면 행복하지 않았을 것 같아?"
"..."
"이것도 몰라 난. 내가 행복했는지 행복하지 않았는지."
말을 끝으로 또 다시 원치 않는 침묵이 우리의 사이에 내려졌다. 녀석은 잠시 나의 말에 무슨 말을 하려 머뭇 거리더니 이내 아무 말 않고 고개를 숙여 자신의 몫의 음식을 입으로 구겨 넣기 시작했다. 차라리 이것이 나은 것 같다. 애를 쓰면서 까지 이 아이와 예전의 관계를 회복하고 싶지는 않았다. 모든 것이 달라졌으니 나와 녀석의 관계 또한 달라져야 했다. 눈물 나도록 외로웠지만 함께여서 둘이여서 아픔을 슬픔을 덜 수 있었던 그때의 나와 녀석은 지금 존재하지 않는다. 단지, 지금의 나와 녀석만 남았을 뿐. 우리에게 돌아갈 수 있는... 돌아가야 할 때는 없었다.
*
이곳에 이방인 처럼 머물러 지내면서 느낀것이 있다면 딱 한가지였다. 그녀는 변하지 않았다. 그녀는 여전히 가족보다는 자신의 꿈을 우선시 하는 여자였다. 집을 들어오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 또한 그랬다. 그 또한 나의 아버지와 그녀와 다른 것이 없어보였다. 그도 그리 얼굴을 많이 보지는 못하고 있으니. 하지만 다른점이 하나 있다면 그는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우선시 한다는 것.차라리 그가 나의 아버지처럼 또는 그녀처럼 자신의 꿈밖에 몰랐다면 미워하고 증오하는 것이 쉬웠을 터이지만 그는 나에게서 그런 감정을 배제 시켜버린 듯 했다. 단지 그가 불편할 뿐이였다.
"자 전학생이 왔어. 인천에서 왔데. 이름은 남우현이고 친하게들 지내라."
여자 선생의 말이 끝나자 아이들은 부담스러운 눈동자로 나를 훝기 시작했다. 호기심. 그래. 나에 대한 호기심. 또는 이방인에 대한 호기심 일것이다. 그들의 호기심이 그저 부담스럽기만 했다.
"우현이는 반장 옆에 앉으렴. 당분간은 옆에서 도움을 받는 게 좋을 거야."
여자 선생의 말에 고개를 작게 주억거렸다. 반장 손 들어 봐. 담임의 말에 잠시 후 한 소년이 손을 조심스럽게 하지만 무언가 불만인 듯 손을 들어 보였다. 하얀 얼굴 분홍빛 입술 그리고 조금 찢어진 눈. 호감형은 아니였지만 매력적인 얼굴을 가진 것은 확실했다. 천천히 아이들을 지나 손을 번쩍 들어 보인 반장 이라 칭해지는 아이의 옆으로 다가갔다. 어느 학교를 가던 전학생은 항상 구석진 맨 뒷자리. 망설임 없이 자리를 잡고 앉으니 녀석의 시선이 잠시 나를 향했다. 정말 잠시. 그러고는 앞 만 뚫어져라 집중하여 쳐다본다. 녀석의 행동에 작은 웃음이 났다.
아침 조례가 끝나니 기다렸다는 듯이 아이들이 내 자리에 몰려와 관심을 보였다. 내색은 하지 않지만 동물원의 원숭이가 된것 같아 기분이 그렇게 썩 좋은 것은 아니였다. 그러나 단 한명 새로운 이방인에 대해서 관심을 갖지 않는 사람이 있었다. 반장이라 불리우는 지금은 나의 짝인 녀석. 녀석은 꿋꿋하게 자신의 일만 해나가고 있었다. 나를 둘러싼 아이들은 그런 녀석에게 시선 조차 주지 않았다. 녀석에게는 그 흔한 친구라는 이름을 가진 놈도 다가 오지 않았고 말이다.
쉬는 시간이 끝나자 선생이 들어왔고 아이들은 모두 자리로 돌아갔다. 그들이 사라지니 한결 조용한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마음에 걸리는 것. 바로 옆에 묵묵히 앉아 칠판을 쳐다보며 한 손으로 필기를 빠르게 하는 녀석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그렇게 녀석을 계속 쳐다보고 있노라니 녀석은 손에 쥐고 있던 샤프를 내려놓고는 천천히 시선을 나를 향해 돌렸다. 그의 갑작스러운 시선에도 당황하지는 않았다. 알고 있었으니까. 사람의 시선을 받게 되면 자연스럽게 그곳으로 시선을 돌리게 될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사람의 본능이였으니까 말이다. 그 본능을 이용하여 녀석의 시선을 돌리고 싶었다. 그리고 녀석의 입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왜 그렇게 쳐다 보는 거지?"
녀석의 목소리는 듣기 좋으면서 나긋했고 많이 낮추어 있었다. 아마 수업시간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그런 것일 듯 싶었다. 나는 녀석의 물음에 잠시 아무 말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저 이방인에 대한 관심이 없는 녀석에 대한 호기심일 뿐 녀석과 말을 섞고 싶은 것은 아니였으니까. 그렇다고 녀석의 물음에 대답을 안 할 수 있던 것도 아니였다. 무슨 답이든 녀석에게 해주어야 했으니까.
"너는 나한테 왜 관심이 없어?"
나의 목소리 또한 녀석과 다를 바 없이 많이 낮추어 있었다. 두서 없는 나의 말에 녀석은 당황항 할만도 하것만 그저 조소를 흘릴 뿐이였다. 마치 지루한 이야기를 듣고 있는 듯이.
"내가 너한테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가 있어?"